10여 년 전 사극 <다모>가 인기를 끌었다. 내 눈가와 귓가에서 희미하게 가물거리는 장면이 있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덤덤한 목소리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말한다.
브라운관 너머에서 드라마를 들여다보던 시청자 중상당수가 이 대목에서 탄성을 질렀다. 남자 주인공의 입술을 떠나 여자 주인공의 마음으로 들이닥친이 짧은 문장에 상대를 향한 애타는 마음이 구구절절하게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공감이고 소통이 아닐까.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상대가 느끼는 아픔을 느끼고 또 상대의 입장과 시선으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자세야말로 소통의 정수가 아닐는지….

공감은 한국인 특유의 ‘정‘과 유사한 감정의 무늬를 지닌다. - P41

동정과 공감은 우리 마음속에서 전혀 다른 맥락의생성 과정을 거친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감정이 마음속에 흐르는 것이 공감이라면, 남의 딱한 처지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연민이 마음 한구석에 고이면 동정이라는 웅덩이가 된다.
웅덩이는 흐르지 않고 정체돼 있으며 깊지 않다. 동정도 매한가지다. 누군가를 가볍게 여기는 감정에는자칫 본인의 형편이 상대방보다 낫다는 얄팍한 판단이 스며들 수 있다. 그럴 경우 동정은 상대의 아픔을달래기는커녕 곪을 대로 곪은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것밖에 안 된다. - P43

전방위적 지식인으로 불리는 한나 아렌트는 여기서한발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한 메마른 가슴에 악惡이 깃들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에 참관하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개념을 구체화했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을 체포해 수용소로 이송하는 일을 총괄한 책임자였다. 그러나 예루살렘 전범 재판정에선 아이히만은 "의무를 준수했고 명령에 따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의 변명에는 죄의식은커녕 고민의 흔적조차묻어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거악을 창안하는 것은 히틀러 같은 악인이지만, 거악과 손을 잡거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인지 모른다 - P45

그런 적당히 따듯한 말을 접할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 ‘하나의 상처와 다른 상처가 포개지거나 맞닿을 때 우리가 지닌 상처의 모서리는 조금씩 닳아서 마모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상처의 모서리가 둥글게 다듬어지면 그 위에서 위로와 희망이라는 새순이 돋아나는 건지도 몰라.‘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는 굽이쳐 흐르는 강물과 같다. 상대가 건네는 말에 맞장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화의 물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그 언어의 물결에 진심을 실어서 보내면, 상대가 그걸 확인하는 순간 상처가 마모되거나 뭉툭해질 수도있다.
그럼 날카로운 상처가 마음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찌르지 않을 테고, 상대방은 전보다 덜 아파하며 살아 - P56

갈지도 모른다. 비록 상처를 완벽히 지울 수는 없다고 해도 말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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