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현대인은 지나친 풍요로움 속에서 산다. 그런 우리에게 니체는 "혹시 지나친 풍요 자체에 대한 고통은 없는가?"라고묻는다. 니체는 비극을 삶에 대한 긍정에서 나온 최고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비극적 예술은 모든 추한 것, 쇠퇴, 무기력, 권태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삶의 희망과 행복과 넘치는 건강함과 삶의 충만함을 준다. 니체의 말처럼 비극적 예술 속에 등장하는 고통에 익숙한 자, 고통을 찾아다니는자, 영웅적인 인간을 보면서 나 자신의 존재를 찬양해 보라. 이것이 니체가 말한 진정한 예술의 힘이 아니겠는가.
모든 예술은 목적과 목표가 있다. 삶의 기쁨, 치유의 수단, 존재의 긍정. - P207
중요한 것은 우리의 고통과 고뇌는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다. 진정으로 고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내면에서 만들어지는 고통을 고뇌를 향한 열정으로 바꿀 줄알아야 한다. 그래서 니체는 고통을 추구할 때 그 고통으로 인해창조적 역량이 더 세련된다고 말한다. 니체는 건강을 위해 몸에 알맞고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장소를 찾아 홀로 끊임없이 옮겨 다녔다. 때때로 그도 우리처럼 처절하게 외로움과 고독을 증오하면서 싸우기도 했지만 그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그를 더욱 고독한 여행자로 만들었다. 니체는 삶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철저히 고독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고독한 사유의 여행에서 새로운 동반자를 발견한다. 바로 니체 자신의 그림자였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I> 제2장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는 자기 그림자와 대화한 결과물이다. 니체는 그 이후로도 철저히 고독 속에서 내면의 그림자와의대화를 통해 멋진 작품들을 완성했다. 외롭고 고통스러울수록나를 따라다니는 내면의 그림자와의 대화가 필요하다. - P217
고독을 즐기지 않고서는 결코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주변에 아무것도 두지 않은 채 내 안의 고요함에 귀를 기울여라.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는 의식을 날마다 규칙적으로 행하라. 혼자 있어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비로소 고독의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힘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공기가 필요하다. 나무들이 성장해서 울창한 숲을 이루려면맑은 공기가 필요하듯, 니체가 제시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초인이 되려면 고독은 꼭 필요하다.
혼자라는 것은 남들과 다르다는 뜻이고,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혼자라는 뜻이다. - P228
당신은 지금까지 생각의 주인으로 살았는가, 생각의 노예로살았는가? 지금 당신의 모습은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능동적인 인간인가, 아니면 원한과 증오의 감정이 곪아 터져 고통을 느끼는 인간인가? 지금 당신은 안전하게 획득할 수있는 소유물에 만족감을 느끼는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획득하기 어려운 소유물을 바라볼 때 만족감을 느끼는가? 자신의 나약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가, 아니면 고귀한 인간처럼 행운의 여신의 앞머리 털을 잡기 위해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는가? 만약 지금 누군가에게 원한을 갖고 있거나 원망하고 있다면열등감으로 가득한 약한 자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문제는 자신의 열등감을 인생의 걸림돌로 보느냐, 아니면 성공의 발판으로 보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는 열등감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버리고 정면으 - P238
로 맞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르상티망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삶이란 열등감을 발판 삼아 도약하는 삶이다. 외부의 가치보다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생각의 노예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변할 수 있다.
우아하고 고귀하게 사는 것은 곧 의욕적이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다. - P239
고귀한 인간은 자신을 존중하며 능동적인 삶을 산다. 비천한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수동적인 삶을 산다. 당신은 삶의 주인으로 살 텐가, 노예로 살 텐가. - P241
죽음을 생각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비관적인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죽음을 생각하면 자신의 삶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1,000년을 살게 된다고 과연 하루하루를 허비하지 않고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마흔 이후, 살날이 길어야 5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라. 많은 사람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에만 집중할 뿐 자신의 죽음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고, 숨이 붙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제때에 살고 제때에 죽어라.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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