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글은 속임수‘ 이론의 대표 주자는 탈식민주의 비평가 가야트리스피바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백인 남성의 인식이 쉽고 투명해 보이는 것은 실제로 쉬워서가 아니라 오랫동안보편적인 언어로 군림해 왔기 때문이다. 백인 남성의 언어여서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언어는 우리의 현실을 드러내기어려운, 사실은 진짜 어려운(쓸모가 적은) 말이라는 뜻이다. 현존하는 언어가 모두 진리는 아니다. 시인들이 그토록 외치지 않았던가. 꽃은 꽃이 아니라 꽃으로 간주될뿐이라고.
대중적인 글은 쉬운 글일까? 아니, 대중이 존재하기나 하는것일까. 대중은 균질적이거나 실체적인 집단이 아니다. 모두가만족하는 글은 가능하지 않다. 대중적인 글을 지향하는 것은글을 못 쓰는 첩경이다. 안 되는 일을 어떻게 되게 하겠는가.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아메리카 인디언이 들려주는 지혜의목소리)의 저자 켄트 너번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위해 헌신해왔으며 이 책도 좋은 책이다. 부제 그대로 지혜가 넘친다. 하지만 잠시 의문. 왜 어떤 사람의 말은 ‘사상‘이고 ‘잠언‘인데, 노인이나 원주민이 하는 말은 ‘지혜‘라고 할까.
- P107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구조 속의 무기력한 개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죄와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자신이 학살 집단의 일부라는 사실이 아니다. 수용소를 비워야만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는 일상의 노동을 수용해야하는 문제다.
세상은 그렇게 굴러간다. 삶은 옳고 그름이나 일의 가치를기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냥 사는 것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 의미를 추구하는 삶? 신성한 노동? 이런 가치들은 소통하기 어렵다. 전쟁은 이런 것이 있다는 가정, 즉 정치경제적 이유와 ‘진리는 하나‘라는 확신 때문에 발생한다.
살아 있는 인간에겐 해야 할 일이 필요할 뿐이다. "삶은 지속된다(lasting)"라는 제목의 책, 영화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 P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