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강수돌 지음 / 그린비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1세기의 화두 중 하나가 바로 '교육' 혹은 '교육문제'인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 한창 '학업성취도 평가' 조작이 연일 매스컴을 달구고 있고,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처험학습'을 실시했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쫓겨난 선생님들은 여전히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움을 하고 있고,

상황이 이러한데, 이제 또 몇일 안있으면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제고사'가 실시된다. 이번엔 과연  아무일(?) 없이 그냥 넘어갈 수 있을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럴때 만난 책이 바로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이다.

누구나 다 한국사회의 '교육', 그리고 '교육현실'에 대해 걱정을 하고, 고민을 하지만 '교육'이라는 단어 뒤에 늘상 '문제'라는 단어가 붙음에도 불구하고 별 뾰족한 대책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바로 세가지 문제를 핵심에 놓고 이 책을 풀어나간다.

첫째, 교육문제를 교육 문제로만 풀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거다. 즉, 제아무리 '교육문제'를 해결할 획기적인 대책이 나온다하더라도 교육문제를 '먹고사는 문제'와 결부짓지 않는 이상 그것은 단지 좋은 제안에 그칠 뿐이라는 것.

따라서 교육문제를 '제대로' 풀어가려면 교육과 더불어 경제, 나아가 삶의 방식과 더불어 풀어나가야 한다

 둘째, 교육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철저히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바로 아이들이 도대체 어떻게 자라나고 어떻게 학습하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될까, 이런 입장에서 교육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셋째, '나부터 바꾼다'는 자세로 문제를 보아야 한다.

제 아무리 좋은 분석과 대안이 나오더라도 모든 해결의 실마리를 나 밖에서만 찾으려 한다면 말짱 도루묵이고, 잘못된 구조의 파악도  중요하지만  그 구조의 유지와 존속, 강화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하는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 찬찬히 찾아내고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 책의 이런 관점은 우리 사회에서 소위 교육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교육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그리고 교육의 주체인  교사, 부모, 학생은 지금의 교육구조와 현실에 어떻게 '기여'(?)해 왔는지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다음의 예는 우리사회 교육 패러다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경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 연약한 강사가 수백명이 모인 강당에 들어섰는데 도저히 연설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장내가 시끌벅적하다.

학생들이 잡담을 하고 장난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이 강사가 수백명의 학생들을 간단히 '장악'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이성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이때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아무래도 '박수치기 게임'일 것이다.

 먼저 연약한 강사는 학생들을 몇개의 분단으로 나누고 "분단별로 박수치기를 해보라"한 다음 점수를 부여한다.

"1조, 박수 한번 쳐보세요. 아, 15점밖에 안되네요"하며 점수를 부여하는 순간, 2조는 긴장한다. 당연히 1조보다 더 세게 친다. "2조는 30점 나왔어요. 자 3조도 한번...." 하는 순간, 3조에서 한 학생이 앞으로 뛰어나와 게다리를 하고 몹시 우스꽝스럽게 흔들며 3조의 박수치기를 고무한다. 굉장하다.

강사는 "아, 3조는 80점까지 올랐어요. 대단합니다"라고 칭찬한다. 그리고는 "이제 1조가 다시 한번 해볼까요?" 한다....

이제 강사가 잠시 화장실을 갔다와도 될 정도로 박수 게임이 자동적으로 계속된다. 모두가 긴장하며 집중한다.....

이런식으로 연약한 강사는 수백명의 학생들을 간단히 장악하게 된다.... (중략)

 바로 이 '박수게임'의  핵심은  강사입장에서 1조가 이기든, 2조, 3조가 이기든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오로지 박수치기 '게임' , 즉 조별 '경쟁'이 계속되는 것이다. 반면 학생들은 강사에게서 점수를 부여받는 순간, 거의 무조건적으로 더 높은 점수를 받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즉 1조가 1등을 하든 2조가 1등을 하든 박수치기 경쟁을 지속하는 한, 그 누가 승리하냐와는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은 강사의 의도에 장악(지배)된다.

 바로 '경쟁'에 동참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강사의 통제아래 놓이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쟁'은 '지배'와 더불어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바로 이것이 자본관계의 핵심이다.

내가 경쟁에 참여하는 순간, 승패와는 무관하게 경쟁의 희생자가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지배력을 강화시켜주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메커니즘이며, 또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 교육현장에서의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배의 메커니즘이 '교육'을 통해 행해지고 있으며, 그러한 면에서 '학교'는 지배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따진다면 왜 학교교육이 질높은 교육이 될 수 없는지, 왜 학교에서는 '일류, 최고, 경쟁'만을 가르치고, '인간답게 사는 것, 모두가 더불어 행복해 지는 것,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가르치지 않는지가 보다 명확해 진다.

 바로 이런 점에서 '교육'문제는 학생, 교사, 학생이 있는 부모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보다 공동체적으로 만들고, 사람 그 자체로서 존중받는 사회,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드려면 온 국민이 바로 '교육'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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