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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Dec

11월 이벤트 당첨 독후감 3 - <톰슨씨의 명상기행>을 읽고

작성자: anonymous IP ADRESS: *.188.130.66 조회 수: 96

'톰슨씨의 명상기행'은 마두카르 톰슨이란 이름의 독일 남자가 그의 젊은 시절을 바쳐 인도 전역을 떠돌며 14명의 스승을 찾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성공한 사업가로 세상의 쾌락을 만끽하던 톰슨, 그러나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가 빠져 있다는 강한 느낌을 시작으로 그 후 20년 동안 영적 여행을 시작한다. 그가 처음으로 만난 첫 스승 '오쇼' 에서부터 마지막 스승들과 나눈 질문과 대답, 일화들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매우 새롭고 독특한 것들이다.

명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막상 살아있는 스승을 찾아가는 일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적극적인 소수의 사람들이 한 두명의 스승을 찾는 일은 있겠으나, 20년이란 세월 동안 14명의 스승을 찾아다닌 이야기는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톰슨은 그의 첫 스승 오쇼의 제자가 되어 오쇼의 공동체(아쉬람)에서 생활하며 자신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는 등, 일단의 체험을 하지만 그 경험들은 영속적이지 않았다. 그러다 1990년 1월, 오쇼의 죽음으로 스승의 가르침 없이 혼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현실에 부딪혔고 그로 인해 그의 깨달음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져간 것 같다. 결국 그 강한 열망이 그를 또다른 13명의 스승에게로 인도한다.

오쇼는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을 통해 어느 정도 오쇼의 사상에 대해 접했고, 톰슨이 만난 다른 13명의 스승 중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유지 크리슈나무르티' 와 '끼란' 이라는 스승이었다.

끼란은 오쇼의 제자로 입문하여 오쇼를 스승으로 섬기며 깨달음이라는 목적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오쇼가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고 그것을 계기로 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 끼란은 그제서야 오쇼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그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마두카르 톰슨이 끼란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고 묻자 끼란이 대답했다.

"그대는 그저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았다. 그대와 나 사이에는 단 한가지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그대는 여전히 꿈속에 있고 나는 깨어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삶은 그저 꿈이나 연극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 는지 그저 지켜볼 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저 받아들이며 삶을 즐기고 있다. 아무 불평도 하지 않는다. 도달해야 하는 목표도 없고 이루어야 하는 목적도 없다. 영적 세계에서 평범한 인생으로 되돌아왔다. 자연 그대로의 내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외부적으로 나는 그대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내면에는 좌절도 슬픔도 없다. 나는 완전히 명료하다.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면 될수록 나는 점점 더 평범해져간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난 톰슨은 말한다.

"저는 깨달음을 찾아다녔습니다. 깨달음에 중독되었습니다. 저의 영적 탐구는 마치 중독과도 같았습니다."

유지 크리슈나무르티: 알코올 중독이라면 그 속에서 빠져 나올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깨달음이라는 마약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평생 동안 중독된 채 살아야 할 것이다........ 이전에 그대는 깨닫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지금은 그 환상이 사라졌다. 그대는 더 이상 깨달은 사람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멈추기를 원하고 영적인 탐색에 이끌리는 마음을 없애고자 한다. 지금 구도의 여정을 멈추고 싶어 하는 욕구와 처음 구도의 길을 걷게 했던 욕구는 둘 다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욕구이다. 그러니 빠져 나갈 길은 없다."

강렬한 영혼의 갈망, 스스로의 말처럼 깨달음에 중독된 마두카르 톰슨은 그렇게 스승들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난다.

톰슨은 독일인답게 14명의 스승들과의 만남을 간결하고 과장됨없이 그려나갔는데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14명의 스승은 각자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스승들의 말에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 공통점이 무엇인가는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 스스로 발견해 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되어 여기에 나의 생각을

밝히지는 않겠다. ^^

무수하게 쏟아지는 명상과 힐링에 관한 책들이 난무하는 요즘... 톰슨씨의 명상기행은 진리를 갈망하는, 삶에 절망한, 또는 스승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가치있고 소중한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춘천 김*라 님의 당첨 독서후기 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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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씨의 명상기행- 깨달음의 스승 14인이 전하는 자유를 향한 가르침
마두카르 톰슨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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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Dec

11월 이벤트 당첨 독후감 1 - <톰슨씨의 명상기행>을 읽고

작성자: anonymous IP ADRESS: *.188.130.66 조회 수: 97

겨울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는 새벽녁이다. 몇 일 전에 오쇼코리아 게시판에서 젠토피아 이벤트를 읽고, 독후감 후기를 한 번 써보기로 생각했다. 학교다닐 떄 뺴고,,내 기억속에서 기억을 끄집어 내봐도 독후감 후기를 써 보기는 처음이다.

톰슨씨는 독일사람이고,카톨릭집안에서 자랐다. 사업으로 많은 돈도 벌었다. 거기에 유산까지 물려받아 풍요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고, 돈으로 할 수 있는 쾌락은 다 맞보았다.그러나 그것은 잠깐이다. 조만간에 그 쾌락은 고통으로 변하기 떄문이다. 극단으로 치우치면 다른 극단으로 이끌리는 법이다. 마치 시계추가 오른쪽으로 가는것은 왼쪽으로 가기위한 에너지 축적과도 같은 원리이다. 붓다또한 온갖 쾌락을 맛본후에야.....톰슨씨도 마찬가지로 영적인 것에 이끌리는 것은 당연하면서..극소수의 한사람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꺠달음에 관심이 없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구도를 하며,영적인 순례를 한다. 인도로 건너가 맨처음 오쇼의 제자가 된다. 아쉬람에서 명상를 하며, 구도의 길을 10년넘게 오쇼의 곁에 머물면서 영적성장을 이루어 나간다. 그런데 오쇼는 1990년 1월 19일에 세상을 떠난다. 톰슨씨는 아직도 깨달음을 이루지 못햔 상태에서 스승을 잃어버린다. 그는 아쉬람에 많은 돈을 기부했기때문에 아쉬람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자신의 거처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톰슨씨는 그것이 꺠달음을 얻기위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아쉬람을 떠난다.새로운 스승을 찾아 나선다. 이렇게 그는 꺠달은 스승을 찾아 인도 전역을 순례한다. 그렇게 찾은 스승이 14명이나 된다. 많이도 찾았다. 톰슨씨는 모험심과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비디오를 가지고 다니면서 스승들의 말을 녹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외부세계를 탐험하고 다닌다. 끊임없이 외부에서 깨달음을 찾아헤멘다. 깨달음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깨달음을 갈구하고 욕망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욕망은 왔다가 그냥 사라진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저절로 사라진다.욕망을 없애기 위해 계속 무언가를 한다면,그 욕망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세상을 즐기며 살아도 모자라는 시간이다.왜 자꾸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모든 헛소리에 집착하는지, 꺠달음도 마찬가지로 과거에 누가 맨처음 이 글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세뇌가 되어버렸다. 깨달음이라는 단어가 꺠달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유지 크리슈나무르티는 '꺠달음 없다'라고 말한다. 꺠달은 스승들이 말하는 꺠달음은 전부'헛소리'라고 한다.전적으로 동의한다. 요즘 누가 꺠달음에 대해 신경이나 쓰겠나. 돈벌기도 바빠죽겠는데...나부터도 꺠달음이 뭔지...예수는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한테는 빵도 필요하고,또 그 무언가 영적인 것도 있어야 한다.두가지 다 가질 수 있다.조르바 붓다처럼 삶을 즐기면서,명상을 해 나간다면...요즘 힐링캠프가 대세다.여기저기서 힐링캘프를 한다. 오쇼코리아에서는 힐링도 하고 명상도 하고 춤도 추고, 하여튼 삶을 즐기자.그러면서 가끔씩 스트레스도 풀러 명상캠프에 참석도 해보면 좋을 것이다. 아무튼 톰슨씨는 유지크리슈나무르티에게 질문한 내용을 잠깐 적어보면,"톰슨:마하리쉬는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유지:오래된 헛소리라니까! 그가 가진 것이면 무엇이든 줄 수 있겠지" '그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왜냐하면 답은 이미 존재하고 있기 떄문이다."그대는 자신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경험 할 수 없다.그대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절대로 경험 할 수 없다."전적으로 동의한다.

 

 

 

 

군산에서 김*식 님의 당첨 독서 후기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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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씨의 명상기행- 깨달음의 스승 14인이 전하는 자유를 향한 가르침
마두카르 톰슨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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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서 - 내면에서 찾는 자유의 날개
오쇼 라즈니쉬 지음, 손민규 옮김 / 판미동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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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하루 종일 유지되어야 한다

글쓴이 : 앤디홍 님 날짜 : 2013-04-14 (일) 23:17 조회 : 16
글주소 : http://www.oshokorea.com/osho_talk/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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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세번째 장애물은 아침에 이십 분, 저녁에 삼십 분 하는 식으로 명상을 특정한 시간대에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머지 시간에 그대는 명상에 대해 까맣게 잊고 지낸다. 이것이 종교인들이 하는 일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한 시간 기도하거나 절에서 한 시간 명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시간 명상하고 나머지 스물 세 시간 동안 잊고 지낸다면 명상적인 의식 상태로 들어갈 수 없다. 그대가 한 시간 동안 얻은 것은 나머지 스물 세 시간 동안에 낭비된다. 그러고 나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는 날마다 명상해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게 명상이란 호흡처럼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한 시간 동안의 명상에 반대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은 하루 종일 명상이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라다니며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평화와 침묵, 이완된 상태가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건 거기에 완전히 몰입하라. 사념에 이용될 에너지가 남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몰입하라. 그러면 무엇을 하건 명상이 된다. 땅을 파는 일도,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도 명상으로 승화된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삶의 모든 행위들이 명상으로 변형된다. 이 때 깨달음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 때 그대는 앉아서 명상을 해도 그 행위와 특별히 동일시되지 않는다. 그렇게 앉아 있는 행위 또한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대는 걸으면서 명상하고, 일하면서 명상하고, 때로는 앉아서 명상하고, 때로는 침대에 누워서 명상한다. 무엇을 하건 명상이 그대의 친근한 동반자가 된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명상이 그대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것을 주시(witnessing)라고 부른다.


어떤 일이 일어나건 주시하라. 걸을 때에도 주시하고, 앉아 있을 때에도 주시하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주시하라. 어떤 일을 하건 주시가 깊을수록 그 일을 더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 행위의 특성 자체가 변한다.


명상이 깊어질수록 그대의 태도가 부드럽고 온화해진다. 우아함이 배어 나온다. 이것을 그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인식하기 시작한다. 명상의 '명'자도 모르는 사람들도 그대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대의 걸음걸이, 말하는 태도 등 모든 것에서 우아함과 침묵이 느껴진다. 어떤 평화로움이 그대에게서 발산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고 그대와 함께 하고 싶어한다. 그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분위기가 그들에게 영적인 무엇인가를 전해 준다.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기운을 빼앗아 가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대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런 사람들은 피하려고 한다. 그들과 헤어진 후에는 피곤하고 무엇인가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명상이 깊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그와 함께 있으면 기운을 얻고 고양되는 느낌이다. 그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명상이 깊어지면 그대 자신만 변화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그대의 변화를 감지한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간단한 단어 하나는 바로 '주시'라는 단어이다.



- 오쇼, <이해의 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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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Dec

11월 이벤트 당첨 독후감 2 - <떠도는 자의 노래>를 읽고

작성자: anonymous IP ADRESS: *.188.130.66 조회 수: 88

떠.난.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낯설은 세계에 대한 설렘과 낯설은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는 단어인 거 같다.

익숙해져있던 생활 공간과 의식에서 벗어나 모르는 세계로의 여행.

삶은 여행이고 탐험이고 모험인 것을...

 

그러나 우리는 한곳에 정착하여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레임 보다는 낯설고 불안하고 알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 때문이리라. 진정 삶을 살고 있다고, 살아 숨쉬고 있다고 할수 있을까?

 

지금의 내 현실과 너무 상반되는 바울의 삶을 보면서, 그가 그렇게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어떻게 얻은 것들인지,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떠도는 자 바울. 오쇼와의 만남은 그런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만남의 시작이었다.

 

가장 설레고 두려웠던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의식의 틀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성장하며 배우고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남들로부터 주어진 단순한 지식이나

신념에 불과했다는 일갈!

조금만 그 의식의 틀에서 벗어나 내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했을 때 찾게되는 새로운 진리들!

내게 진리를 대면할 용기가 있는지, 내게 진리를 알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되묻게 된다.

 

기존에 품었던 의식의 틀에 의문을 던지고 단단한 거짓 의식의 껍질을 깨고 나온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그 껍질을 깨고 나오는 일이 그처럼 힘들고 고된 산고의 노력이 필요없다는 것을 바울은 전하고 있다.

 

“생각은 외부에서 차용된 것이다. 모든 생각은 타인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주의 깊게 관찰해보라. 자신의 생각 모두가 빌려온 것이다. 이미 죽어버린 과거로부터 나온 내용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해의 인간 Man of Understanding 은 다만 질문을 주의 깊게 듣고 그 질문 안으로 깊이 들어가 관찰한다. 이해의 인간은 진실하다.“

진실한 인간은 현재의 내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정하고 미워하고 거부하기 전에, 지금껏 세뇌되고 조건화되어진 내모습을 인식하는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오쇼를 만나기전 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들, 심지어 나 자신조차 다른 사람이길 갈망했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던 것일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들었던 것일까?

오쇼를 통해 나 자신을 진실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 지 정확하게 아는 것, 이것이 진정한 앎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아는 지 분명하게 인식하라. 그러면 그런 상태에 오래 머물러있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것을 탐구하게 된다. 모든 아이는 무한한 호기심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나 이런 욕구는 믿음에 의해 불구가 된다. 믿음은 마치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심어준다. 그것은 실제적인 삶에서 전혀 도움이 안된다. ‘나는 안다’라는 생각을 버려라. 진정으로 무엇인가 안다면 항상 그 앎에 따라 행동한다. 지식은 경험이 되어야 한다. 앎이 단순히 말뿐이거나 지적인 것에 불과하다면 실제적인 삶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적인 삶에는 실제적인 앎이 필요하다“

 

과거의 낡은 의식과 욕망에서 벗어나 진정한 영혼의 삶을 노래하는 오쇼!

터부시하며 잘못됐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기존 사회의 무의식적인 맹종과 순화 속에서

만들어진 것들임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을 찾아가는 노력과 여정이 힘들겠지만 그러한 노력들은 전적으로 내게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연스럽게 즉흥적으로 감응하면서 살아가라.”

오래된 습관이나 전통, 관습이 아닌 나 스스로의 감응에 따라 즉흥적으로 산다는 것,

너무나 오랫동안 무의식적으로 살아왔기에, 의식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 즉흥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 이해되지 않지만, 여기에서 멈출수는 없다.

 

명상! 새로운 나를, 삶의 진리를 찾아 떠나는 바울의 길.

나도 열심히 따라가다보면, 어쩜 바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인간으로 살고 있지만, 인간을 초월한 삶.

삶을 살고 있지만, 삶을 초월한 삶.

 

바울 오쇼는 그런 삶을 살았으리라.

 

 

 

춘천 비*드 님의 당첨 독자후기 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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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자의 노래 2- 인도 바울이 들려주는 영혼의 노래
오쇼(Osho)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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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나 2013-04-15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추합니다!!!!!!
 
이해의 서 - 내면에서 찾는 자유의 날개
오쇼 라즈니쉬 지음, 손민규 옮김 / 판미동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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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하루 종일 유지되어야 한다

글쓴이 : 앤디홍 님 날짜 : 2013-04-14 (일) 23:17 조회 : 15
글주소 : http://www.oshokorea.com/osho_talk/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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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세번째 장애물은 아침에 이십 분, 저녁에 삼십 분 하는 식으로 명상을 특정한 시간대에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머지 시간에 그대는 명상에 대해 까맣게 잊고 지낸다. 이것이 종교인들이 하는 일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한 시간 기도하거나 절에서 한 시간 명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시간 명상하고 나머지 스물 세 시간 동안 잊고 지낸다면 명상적인 의식 상태로 들어갈 수 없다. 그대가 한 시간 동안 얻은 것은 나머지 스물 세 시간 동안에 낭비된다. 그러고 나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는 날마다 명상해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게 명상이란 호흡처럼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한 시간 동안의 명상에 반대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은 하루 종일 명상이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라다니며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평화와 침묵, 이완된 상태가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건 거기에 완전히 몰입하라. 사념에 이용될 에너지가 남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몰입하라. 그러면 무엇을 하건 명상이 된다. 땅을 파는 일도,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도 명상으로 승화된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삶의 모든 행위들이 명상으로 변형된다. 이 때 깨달음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 때 그대는 앉아서 명상을 해도 그 행위와 특별히 동일시되지 않는다. 그렇게 앉아 있는 행위 또한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대는 걸으면서 명상하고, 일하면서 명상하고, 때로는 앉아서 명상하고, 때로는 침대에 누워서 명상한다. 무엇을 하건 명상이 그대의 친근한 동반자가 된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명상이 그대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것을 주시(witnessing)라고 부른다.


어떤 일이 일어나건 주시하라. 걸을 때에도 주시하고, 앉아 있을 때에도 주시하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주시하라. 어떤 일을 하건 주시가 깊을수록 그 일을 더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 행위의 특성 자체가 변한다.


명상이 깊어질수록 그대의 태도가 부드럽고 온화해진다. 우아함이 배어 나온다. 이것을 그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인식하기 시작한다. 명상의 '명'자도 모르는 사람들도 그대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대의 걸음걸이, 말하는 태도 등 모든 것에서 우아함과 침묵이 느껴진다. 어떤 평화로움이 그대에게서 발산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고 그대와 함께 하고 싶어한다. 그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분위기가 그들에게 영적인 무엇인가를 전해 준다.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기운을 빼앗아 가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대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런 사람들은 피하려고 한다. 그들과 헤어진 후에는 피곤하고 무엇인가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명상이 깊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그와 함께 있으면 기운을 얻고 고양되는 느낌이다. 그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명상이 깊어지면 그대 자신만 변화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그대의 변화를 감지한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간단한 단어 하나는 바로 '주시'라는 단어이다.



- 오쇼, <이해의 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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