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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 진정한 자유를 위한 관계맺기와 홀로서기 지혜의 연금술 시리즈 9
오쇼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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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Video Embed 방법...

글쓴이 : 카지임 날짜 : 2013-07-17 (수) 07:33 조회 : 38
글주소 : http://www.oshokorea.com/comm_free/19894
아니샤님이 올린 "찍지마라" 동영상에 딸린 질문 답 여기 있습니다. 

YouTube 사이트에서...

1. 유튜브 영상 아래 Share 를 클릭한다.  
2. Embed 를 클릭한다.  
3. 화면 크기를 선택하고
4. Use old embed code 를 첵크한다. 
5. 코드를 카피한다. 

test1.png


OshoKorea 사이트에서...

1. 글쓰기 화면에서 아래 화면에 표시된<> 를 클릭한다.  
2. 카피한 코드를 페이스트 한다. 
3. <> 왼편에 연필 아이콘을 클릭에 영상 작동을 확인한다. 
4. 글저장 버튼을 클릭한다. 

test2.png


자~ 이제 방법을 알려드렸으니...
각자 가장 재미었거나 감동받았거나 기억에 남는 영상 한 편씩 올리시기 바랍니다. 

무리한 요구일지는 모르나, 
유튜브에 오쇼코리아 채널을 만들어
가능하다면 매월 정기 모임의 중요 강의와 대화 내용 일부도 올리면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유익하고
또 훗날 좋은 기록으로도 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데오 장비니 뭐니 복잡하고 광범하게 준비 할 필요도 없구
그냥 모임 중 어떤 부분을 촬영할건지만 미리 정해놓으면
그냥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올려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인터넷에 얼굴이 노출되기 싫어 하는 사람도 있고
밖으로 흘리면 안되는 사적인 대화 내용도 있을 테니
이런 점들을 염두해시고 딱 지정된 시간만 (예를 들어 10분~15분)
그날 모임의 핵심 포인트를 다루는 강의나 질문 일부만 
(원하시지 않는 분들 얼굴이 노출되지 않는 각도에서) 
촬영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보니...큰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어려우면 그냥 생략하십시요. 


마지막으로 "찍지마라" 동영상...

고것 참...뉘집 딸래미인지...이제 겨우 다섯살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데
전혀 기죽지않고 논리적으로 따져대는 걸 보니...
나중에 뭐를 해도 잘 할 거라는 느낌이 드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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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서 - 내면에서 찾는 자유의 날개
오쇼 라즈니쉬 지음, 손민규 옮김 / 판미동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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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text/javascript> $(document).ready(function () { $("#mw_basic").append("
QR CODE
"); $(".qr_code").css("cursor", "pointer"); $(".qr_code").toggle(function () { var url = $(this).attr("value"); var x = $(this).offset().top; var y = $(this).offset().left; //$(".qr_code").append(""); $("#qr_code_layer").html($("#qr_code_layer").html() + "
모바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웹사이트 또는 모바일사이트에 바로 접속할 수 있습니다.
"); $("#qr_code_layer").show("fast"); }, function () { $("#qr_code_layer").hide("fast"); }); });

명상은 하루 종일 유지되어야 한다

글쓴이 : 앤디홍 님 날짜 : 2013-04-14 (일) 23:17 조회 : 16
글주소 : http://www.oshokorea.com/osho_talk/418

41786_146778005362573_6815_n.jpg

명상의 세번째 장애물은 아침에 이십 분, 저녁에 삼십 분 하는 식으로 명상을 특정한 시간대에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머지 시간에 그대는 명상에 대해 까맣게 잊고 지낸다. 이것이 종교인들이 하는 일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한 시간 기도하거나 절에서 한 시간 명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시간 명상하고 나머지 스물 세 시간 동안 잊고 지낸다면 명상적인 의식 상태로 들어갈 수 없다. 그대가 한 시간 동안 얻은 것은 나머지 스물 세 시간 동안에 낭비된다. 그러고 나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는 날마다 명상해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게 명상이란 호흡처럼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한 시간 동안의 명상에 반대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은 하루 종일 명상이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라다니며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평화와 침묵, 이완된 상태가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건 거기에 완전히 몰입하라. 사념에 이용될 에너지가 남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몰입하라. 그러면 무엇을 하건 명상이 된다. 땅을 파는 일도,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도 명상으로 승화된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삶의 모든 행위들이 명상으로 변형된다. 이 때 깨달음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 때 그대는 앉아서 명상을 해도 그 행위와 특별히 동일시되지 않는다. 그렇게 앉아 있는 행위 또한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대는 걸으면서 명상하고, 일하면서 명상하고, 때로는 앉아서 명상하고, 때로는 침대에 누워서 명상한다. 무엇을 하건 명상이 그대의 친근한 동반자가 된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명상이 그대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것을 주시(witnessing)라고 부른다.


어떤 일이 일어나건 주시하라. 걸을 때에도 주시하고, 앉아 있을 때에도 주시하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주시하라. 어떤 일을 하건 주시가 깊을수록 그 일을 더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 행위의 특성 자체가 변한다.


명상이 깊어질수록 그대의 태도가 부드럽고 온화해진다. 우아함이 배어 나온다. 이것을 그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인식하기 시작한다. 명상의 '명'자도 모르는 사람들도 그대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대의 걸음걸이, 말하는 태도 등 모든 것에서 우아함과 침묵이 느껴진다. 어떤 평화로움이 그대에게서 발산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고 그대와 함께 하고 싶어한다. 그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분위기가 그들에게 영적인 무엇인가를 전해 준다.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기운을 빼앗아 가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대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런 사람들은 피하려고 한다. 그들과 헤어진 후에는 피곤하고 무엇인가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명상이 깊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그와 함께 있으면 기운을 얻고 고양되는 느낌이다. 그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명상이 깊어지면 그대 자신만 변화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그대의 변화를 감지한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간단한 단어 하나는 바로 '주시'라는 단어이다.



- 오쇼, <이해의 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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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서 - 내면에서 찾는 자유의 날개
오쇼 라즈니쉬 지음, 손민규 옮김 / 판미동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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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type=text/javascript> $(document).ready(function () { $("#mw_basic").append("
QR CODE
"); $(".qr_code").css("cursor", "pointer"); $(".qr_code").toggle(function () { var url = $(this).attr("value"); var x = $(this).offset().top; var y = $(this).offset().left; //$(".qr_code").append(""); $("#qr_code_layer").html($("#qr_code_layer").html() + "
모바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웹사이트 또는 모바일사이트에 바로 접속할 수 있습니다.
"); $("#qr_code_layer").show("fast"); }, function () { $("#qr_code_layer").hide("fast"); }); });

명상은 하루 종일 유지되어야 한다

글쓴이 : 앤디홍 님 날짜 : 2013-04-14 (일) 23:17 조회 : 15
글주소 : http://www.oshokorea.com/osho_talk/418

41786_146778005362573_6815_n.jpg

명상의 세번째 장애물은 아침에 이십 분, 저녁에 삼십 분 하는 식으로 명상을 특정한 시간대에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머지 시간에 그대는 명상에 대해 까맣게 잊고 지낸다. 이것이 종교인들이 하는 일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한 시간 기도하거나 절에서 한 시간 명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시간 명상하고 나머지 스물 세 시간 동안 잊고 지낸다면 명상적인 의식 상태로 들어갈 수 없다. 그대가 한 시간 동안 얻은 것은 나머지 스물 세 시간 동안에 낭비된다. 그러고 나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는 날마다 명상해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게 명상이란 호흡처럼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한 시간 동안의 명상에 반대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은 하루 종일 명상이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라다니며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평화와 침묵, 이완된 상태가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건 거기에 완전히 몰입하라. 사념에 이용될 에너지가 남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몰입하라. 그러면 무엇을 하건 명상이 된다. 땅을 파는 일도,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도 명상으로 승화된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삶의 모든 행위들이 명상으로 변형된다. 이 때 깨달음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 때 그대는 앉아서 명상을 해도 그 행위와 특별히 동일시되지 않는다. 그렇게 앉아 있는 행위 또한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대는 걸으면서 명상하고, 일하면서 명상하고, 때로는 앉아서 명상하고, 때로는 침대에 누워서 명상한다. 무엇을 하건 명상이 그대의 친근한 동반자가 된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명상이 그대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것을 주시(witnessing)라고 부른다.


어떤 일이 일어나건 주시하라. 걸을 때에도 주시하고, 앉아 있을 때에도 주시하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주시하라. 어떤 일을 하건 주시가 깊을수록 그 일을 더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 행위의 특성 자체가 변한다.


명상이 깊어질수록 그대의 태도가 부드럽고 온화해진다. 우아함이 배어 나온다. 이것을 그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인식하기 시작한다. 명상의 '명'자도 모르는 사람들도 그대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대의 걸음걸이, 말하는 태도 등 모든 것에서 우아함과 침묵이 느껴진다. 어떤 평화로움이 그대에게서 발산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고 그대와 함께 하고 싶어한다. 그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분위기가 그들에게 영적인 무엇인가를 전해 준다.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기운을 빼앗아 가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대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런 사람들은 피하려고 한다. 그들과 헤어진 후에는 피곤하고 무엇인가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명상이 깊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그와 함께 있으면 기운을 얻고 고양되는 느낌이다. 그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명상이 깊어지면 그대 자신만 변화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그대의 변화를 감지한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간단한 단어 하나는 바로 '주시'라는 단어이다.



- 오쇼, <이해의 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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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1 - 동양과 서양을 잇는 인류 최고의 신비주의자 지혜의 연금술 시리즈 5
오쇼(Osho)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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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한 방편을 강조하는 이유
글쓴이 : 아니샤 님 날짜 : 2013-04-06 (토) 07:25 조회 : 9
글주소 : type=text/javascript> function get_shorten(obj) { obj.select(); if (g4_is_ie) { document.selection.createRange().execCommand("copy"); alert("글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 }
나는 체계화된 방편보다 무질서한(chaotic) 방편을 사용한다. 무질서한 방편은 그대의 중심을 머리에서 아래로 끌어내리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체계화된 방법을 통해서는 중심을 끌어내릴 수 없다. 체계화 자체가 머리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체계화된 방법은 머리를 더 강화시킬 것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뇌에 보태진다.
 
무질서한 방편을 통해서 뇌는 무기력해진다. 뇌가 할 일이 없어진다. 이 방법은 너무나 혼라스럽기 때문에 중심이 자동적으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온다. 내가 개발한 '다이나믹 명상'을 하면, 아무 체계없이 무질서하게, 열정적으로 이 명상법을 행하면 그대의 중심이 가슴으로 이동한다. 이때 '카타르시스'가 일어난다.
 
의식을 뿌리로 밀어넣기 위해서는 무질서한 방법이 필요하다. 그 뿌리에서만 변형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백날 말로만 떠들 뿐, 아무 변형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이 옳은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뿌리를 변형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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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2 - 동양과 서양을 잇는 인류 최고의 신비주의자 지혜의 연금술 시리즈 6
오쇼(Osho)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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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글쓴이 : 비샤드 님 날짜 : 2013-03-31 (일) 12:46 조회 : 31
글주소 : type=text/javascript> function get_shorten(obj) { obj.select(); if (g4_is_ie) { document.selection.createRange().execCommand("copy"); alert("글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 }
이해가 유일한 해법이다.
 
어떠한 테크닉도, 어떠한 방편도, 어떠한 길도, 어떠한 노력도 그대 삶에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대 삶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이해이다.
왜냐하면 그대에게 가져다주는 모든 불행과 착각은 몰이해 때문이다.
 
유일한 해법은 이해이다.
이해 외에 다른 해법은 없다.
이런 이해의 능력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다.
왜냐하면 이해의 능력은 우리 의식의 본성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의식이 깨어있을 때 이해의 능력은 모든 면에서 가능하다.
심지어는 그대가 몰이해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대 안에 어떤 지점은 이해를 향해 활짝 열려있다.
그대는 이해의 능력을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몰이해의 능력을 쓰고 있다.
우리가 올바른 지점을 향해 열려있지 않기 때문에 몰이해를 하는 것이다.
올바른 지점에 머물러라, 그리고 그 지점에서부터 보아라.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말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문제를 이해하면 그 이해가 답을 드러내 줄 것이다.
이것이 이해이다.
 
어떤 영적 체험을 준다는 것들을 쫓아서 가지 말라.
우리 본연의 상태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단순한 모든 것들과 그저 존재하라.
왜냐하면 그 본연의 상태는 그대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저 기억해 내면 되는 것이다.
 
이런 기억은 이해했을 때 온다.
이해야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깨달음이다.
이해 이외에 다른 깨달음은 없다.
 
 
-  끼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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