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코리아 매거진 1호 발행

글쓴이 : 오스카 날짜 : 2013-05-14 (화) 13:46 조회 : 52
글주소 : http://www.oshokorea.com/magazin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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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 붓다의 혁명-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위대한 통합
오쇼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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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유일의 오쇼 라즈니쉬 관련 잡지 - 오쇼코리아 매거진 3호 무료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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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 붓다의 혁명-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위대한 통합
오쇼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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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라즈니쉬 신간 <조르바 붓다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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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 붓다의 혁명 앞표지.jpg

 

 

오쇼 라즈니쉬의 사상을 핵심적으로 담고 있는 조르바 붓다의 개념과 그에 의한 혁명정신을 다룬 책이 출간됩니다. (5월 8일 발매 예정)

256페이지 / 17,000원 / 구매처 : 전국 서점, 인터넷 서점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문 가능

 

 

본문 중에서

 

 

진정한 혁명가는 이 삶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며 결국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아무것도 그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 수 없다. 아무것도 그를 타협하게 할 수 없다. 그렇게 찰나적인 삶인데 왜 구차하게 타협을 하겠는가? 누구에게나 죽음이 확실한데 타협할 필요가 있는가?

이 삶은 너무나 짧다. 따라서 혁명가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전력을 다한다. 그는 창조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고, 그 창조적인 일을 위해 없애야 할 것이 있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파괴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가 무엇인가 파괴하는 것은 항상 창조를 위한 일이다.

새로운 인간인 혁명가는 뛰어난 유머 감각을 갖고 있다. 그는 죽음의 코앞에서도 웃을 수 있다. 그는 무엇을 하든 간에 결코 심각하지 않다. 그는 항상 즐거움에 넘친다. 그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세상에서 불행함을 몰아내려고 웃음의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다. 그는 웃음으로 가득 찬 세상을 원한다. 그는 웃음에 기초한 종교를 만들고 싶어 한다.

 

목차

 

위대한 통합, 조르바 붓다 ․ 9
새벽을 여는 선구자 ․ 23
그대 영혼에 불을 붙여라! ․ 39
서둘러라. 그렇지 않으면 종말이 올 것이다 ․ 61
폭력은 혁명에 대한 모독이다 ․ 73
정의란 무엇인가? ․ 79
평화란 무엇인가? ․ 101
세상을 사랑하는 전사戰士 ․ 117
인간보다 높은 진리는 없다 ․ 133
진정한 혁명가는 명상가이다 ․ 147
군중에서 벗어나라 ․ 167
지금 당장 혁명을 시작하라 ․ 179
그대는 혁명가로 태어났다 ․ 191
완전한 자유 ․ 201
깨달음을 얻은 혁명가 ․ 215
먼저 그대 자신이 불꽃이 되어라 ․ 223
사랑의 정점 ․ 229
농담을 즐기듯이 살라 ․ 235
오쇼 연보 ․ 242

 

 

역자 서문

 

구호도 없고, 깃발도 없고, 성난 군중도 없고,
타도할 대상도 없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로봇이기를 그만두고 인간으로 우뚝 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 혁명의 대열을 이루었다.

나와 너 안에 빛나는 새벽별.
빛으로 하나 된 우리.

이것은 꿈이 아니다.

아침이 되어 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빛과 하나가 되어 있을 뿐이다.

오쇼,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
우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투명한 이해의 빛과 한 몸이 되어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의 혁명은 즐겁다.
이 삶을 노래하고 즐기는 우리는 무적의 혁명가들이다.
세상의 어떠한 지배자도,
아무리 굳은 어리석음도 우리를 막지 못한다.
우리는 누구도 지배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지배당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이고 자유인이다.
우리는 조르바 붓다이다.

이것은 가장 위대한 도전이며 우리의 운명이다.
겁에 질려 이 운명을 막아서는 자들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흥겹게 소리 지를 것이다.
이리 와, 우리와 함께 어울려!

이제 세상은 역사상 모든 혁명을 합친 것보다 더 큰 혁명을 보게 될 것이다.


춘천, 소양강변에서
손 민 규

 

 

책 속으로

 

혁명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확실히 위험한 일이다. 사자의 심장을 가진 사람, 불굴의 용기를 가진 사람, 한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만이 혁명가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모두에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혁명적인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혁명가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따라오기만 할 뿐, 절대로 이 혁명의 대열에 앞장서지 않는다. 혁명가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면 대중은 그 사회의 일원이 될 뿐이다. 그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나의 사람들은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과감하게 도전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하여, 자유로운 영혼을 위하여 우리는 꺾이지 않는 용기로 도전한다. 이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갈망하고 도전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무런 위험요소도 없이 사는 사람은 결코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항상 면도날 위를 걷는 것처럼 위험하게 사는 것이다. 그럴 때 삶은 활력과 생기로 넘친다. 매순간이 강렬하고 전체적인 삶이 된다. 다음 순간에 대한 확실성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이것이 중산층의 삶이다. 이 ‘중산층’이란 말은 대단히 모욕적인 단어이다. 중산층의 삶을 살지 말라. 이미 시체가 되어 버린 과거에 매달리는 사람들, 부패한 원칙과 무의미한 관습에 집착하는 사람들, 이것이 중산층이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의문을 떠올리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그들은 진실보다 안락함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들은 강렬하고 불꽃같은 삶보다 중산층의 편안한 삶을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산야신은 불꽃같은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이다. 그는 안락한 삶보다 위험한 삶을 동경한다. 그는 안전한 삶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다. 이런 사람이 산야신이다.
어떠한 확실성에도 기대지 말고 위험한 삶을 살아라. 내일에 대한 보장을 얻으려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라. 오늘의 삶에 최대한 충실해라. 과즙을 짜내듯이 매순간 전체적으로 살아라. 이 순간이 전부이며 다른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라.
사랑하라! 그 사랑에 자신의 전부를 내던져라
살아라!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삶을 살아라.
허황된 숭배와 미신, 얼어붙은 관념의 노예가 되어 백년을 사느니 그렇게 강렬하게 타오르는 한 순간이 더 가치 있다.

 

조르바 붓다의 혁명 표지 sprea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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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

 

1931년 - 오쇼는 1931년 12월 11일 인도의 마드야 프라데시Madhya Pradesh에서 자이나교도인 직물상인의 장남으로 태어나 7살이 될 때까지 그의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가 마음껏 행동할 수 있도록 절대적 자유를 허락해주고, 삶의 진리에 대한 그의 조숙하고 강렬한 탐구를 전면적으로 지원해 준다.

1938년 -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인구 2만의 읍인 가다르와라Gadawara로 가서 부모와 함께 사는데 그의 할머니도 같은 마을로 이사를 와 스스로 손자의 제자임을 선언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의 가장 관대한 친구가 되어준다.

1946년 - 14살 때 오쇼는 처음으로 깨달음의 일별, 즉 사토리를 경험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명상 실험은 깊어져 갔으며 그의 영적 탐구의 강렬함은 그의 육체적 건강을 손상시킬 정도여서 그의 부모나 친구들은 그가 오래 살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대학 시절

 

1952년 - 3월 21일, 21살의 오쇼는 인간 의식의 최고 정점인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외적 전기는 끝났다고 말한다. 이후 그의 삶의 내적 규율을 갖고 일체성이라는 무아의 경지에서 살면서 외면적으로는, 사가르Saugar 대학교에서 학문을 계속하여 1956년 졸업할 때는 철학 부문의 최고상을 받는다. 그는 인도 토론대회의 우승자로 졸업반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다.

1957년 - 오쇼는 라이푸르Raipur 시의 산스크리트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다. 1년 후 그는 자발푸르Jabalpur 대학교의 철학 교수가 된다. 1966년 그는 현대인에게 명상기법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직을 버린다. 60년대를 통해 그는 ‘아챠리아(교사) 라즈니쉬’로서 인도 전역을 여행하고, 가는 곳마다 체제 측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특권계급의 위선을 폭로하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최대 권리,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는 것을 방해하려 하는 그들의 기도를 폭로한다. 그는 수만 명의 청중과 이야기하며, 그들의 가슴속 깊이 감명을 준다.

 

 

봄베이 시절

 

1968년 - 그는 봄베이에 정착해 살며 가르침을 계속한다. 그는 주로 고원의 피서지에서 정기적으로 ‘명상캠프’를 열어 혁명적인 ‘다이나믹 명상’을 도입하는데, 그것은 먼저 카타르시스를 허용함으로써 상념의 정지를 돕는 기법이었다. 1970년부터 그는 애정과 개인적 지도로써 사람들을 자기탐구와 명상으로 들어서는 길인 네오 산야신Neo-Sannyas으로 인도하기 시작한다. 그는 축복받은 자라는 의미인 ‘바그완Bhagwan'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1970년 - 서양으로부터 최초의 구도자들이 도착한다. 그들 가운데는 많은 전문가들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오쇼의 명성을 유럽,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에 까지 퍼지기 시작한다. 매달 명상캠프가 열렸고, 1974년에는 푸나Poona에 새로운 장소가 물색되어 그곳에서 그의 가르침은 강렬해진다.

 

 

푸나 시절

 

1974년 - 오쇼의 깨달음을 기리는 21번째 기념일에 푸나에서 아쉬람이 열린다. 오쇼의 영향력은 이제 세계적인 것이 되었으나 동시에 그의 건강은 쇠약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점점 자신의 방에 칩거하게 되었고, 아침에 강의를 할 때와 저녁에 구도자들의 입문을 전수하거나 조언을 줄 때 두 번밖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게 된다. 동양의 명상에 대한 통찰과 서양의 정신요법의 결합에 기초한 치료집단이 창설된다. 2년 이내에 아쉬람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장과 치료 센터’라는 명성을 얻는다. 오쇼의 강의는 세계의 모든 위대한 종교적 전통을 포괄하고 있었으며 서양의 과학이나 사상에 관한 그의 해박한 지식, 언사의 명증성, 논의의 깊이는 그의 청중들 사이에서 오랜 동서양간의 단절을 해소시킨다. 70년대 후반까지는 푸나에 있는 오쇼의 아쉬람이 현대의 진리 탐구자들의 메카였다. 열렬한 전통적 힌두교도인 인도 수상 모라지 데사이Morarji Desai는 아쉬람을 인도의 변방으로 옮기려 하는 오쇼의 제자들의 모든 시도를 방해한다. 그곳에서는 오쇼의 가르침을 응용하여 명상, 사랑, 창조성, 웃음 속에 살아가는 공동체를 창설하기 위한 실험이 가능했을 것이다.

1980년 - 강의 중에 오쇼를 암살하려 한 기도가 어떤 전통적 힌두교파의 일원에 의해 일어난다. 동양과 서양의 공적인 종교, 교회들은 그를 비난하지만 그때까지 오쇼는 전 세계에 25만 명의 넘는 제자를 갖고 있었다.

 

 

새로운 국면 ― 라즈니쉬푸람, 미국

 

1981년 - 5월 1일 오쇼는 침묵하기 시작한다. 등의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됨에 따라 그의 육체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가슴과 가슴의 침묵의 교감’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그가 긴급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의사와, 돌보는 사람들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진다. 그의 미국 제자들은 센트럴 오리건 주의 불모지에 있는 6만 4천 에이커의 목장을 구입하여 오쇼를 초대하는데 그곳에서 그는 신속하게 건강을 회복한다. 동물들이 풀을 너무 많이 뜯어 먹어서 고갈되어 버린 황무지를 재생시켜 5000명이 사는 마을을 먹일 수 있는 녹색의 오아시스로 바꾸는 모범적인 농업공동체를 급성장시킨다.

해마다 전 세계의 오쇼의 친구들을 위해 여름 축제가 열리고, 2만 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라즈니쉬푸람이라는 이 새 도시에서 숙박하며 음식을 제공받는다.

오리건 공동체가 형성되어 독자적 사업으로 생활을 꾸리게 된다.

오쇼는 종교적 지도자로서 미국 정부에 영주권을 신청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거절한다. 공적으로 침묵할 것을 서약하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였다. 동시에 새로운 도시는 오리건 주정부와 다수파 기독교인들이 점증하는 법률적 공격에 직면하게 돈다. 원래 환경보호를 위해 제정했던 ‘오리건 주 토지 이용법’이 불모지를 개간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인 시에 반대하는 투쟁의 주요한 무기가 되어 버렸다. 이 시야말로 전 세계를 위한 하나의 생태학적 모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84년 10월, 오쇼는 자신의 저택에서 소수 그룹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1985년 7월, 그는 라즈니쉬 만디르에서 매일 아침 수천 명의 구도자들에게 공개 강의를 하기 시작한다.

1985년 - 9월 14일 오쇼의 개인 비서와 공동체 관리를 담당하던 몇 명의 구성원이 갑자기 사라지고, 그들에 의해 저질러진 모든 비합법적 행위가 밝혀진다. 오쇼는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미 당국자들을 시로 부르지만, 당국자들은 이 기회를 공동체에 반대하는 싸움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이용한다.

10월 29일, 오쇼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샤로트에서 영장 없이 체포된다. 보석심문 때 그는 묶여 있었고, 그의 법정 출두를 위해 마련된 오리건의 귀로는 통상 비행기로 5시간 걸리는 거리인데도 8일간이나 걸리게 된다. 수일 동안 오쇼는 행방불명이 된다. 나중에 그는 오클라호마 주 연방형무소에서 ‘데이비드 워싱턴’이라는 이름으로 서명하도록 강요받았고 그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전염성 헤르페스를 앓고 있는 죄수와 함께 격리 감방에 수용되어 있었음을 밝힌다.

12일 동안 감금당하고 결박당하는 수난을 겪은 후 석방되기 바로 1시간 전 오쇼가 수감되어 있던, 오리건 주에서 보안시설이 가장 잘 되어 있던 포틀랜드 감옥에서 폭탄이 발견된다. 오쇼 이외의 죄수들은 모두 대피했는데도 오쇼는 1시간 동안이나 그 안에 갇혀 있게 된다.

11월 중순 오쇼의 변호사들은 미 사법제도의 손안에 놓인 그의 생명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고발된 34개의 죄목 가운데 비교적 가벼운 ‘출입국 관리법 위반’ 등의 두 항목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도로 그를 설득한다. 오쇼는 묵인하고 ‘알프레드 항변’에 들어간다. 그 항변은 미국 사법제도의 특이한 것으로, 그에 의해 무죄를 주장함과 동시에 그 죄목에 대한 논쟁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는 40만 달러의 벌금을 물 것, 미국을 떠날 것, 5년 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을 명령 받는다. 그는 자가용 제트 비행기를 타고 인도로 날아갔고, 히말라야 산속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기자회견에서 미 연방 검사 챨스 티너는 ‘오쇼의 비서에 대해 이루어진 고발이 왜 오쇼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며 세 가지 요점으로 열거하는데 정부의 첫 번째 관심사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었고, 당국자들은 오쇼의 추방이 그것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둘째, 그들은 오쇼를 결코 순교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 셋째, 오쇼가 어떠한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세계여행 ― 인권에 대한 탐구

 

1985년 - 12월 오쇼의 비서와 동료, 의사는 인도에서 떠날 것을 명령 받았고, 그들의 비자는 취소된다. 오쇼는 네팔의 카트만두로 떠나 그곳에서 강의를 재개한다.

1986년 - 2월 오쇼는 30일 간의 관광 비자로 그리스에 간다. 그는 그곳에서 한 그리스인 영화 제작자의 집에 머물며 매일 2회씩 강의를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제자들이 모여들고, 그리스 정교의 성직자들은 그를 국외로 추방하지 않는 한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정부를 협박한다.

3월 5일 경찰이 별장에 난입하여 영장도 없이 오쇼를 체포하고, 곧이어 아테네로 이송한다. 아테네에서는 겨우 2만 5천 달러의 금액으로 그를 인도행 선박에 태우지 못하도록 당국을 움직일 수 있었다.

3월 6일 오쇼는 자가용 제트기로 스위스를 향해 떠난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무장 경관들에 의해 7일간의 연회를 취소당한다. 그는 ‘미합중국 출입국 관리법 위반’을 이유로 ‘탐탁지 않은 인물’로 선언되어 떠나도록 요구받는다.

그는 스웨덴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라이플총으로 무장한 경관들에 의해 포위되어 ‘국가의 안전상 위험하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고 즉각 출국하도록 명령받는다.

그는 영국으로 간다. 이번에는 법률상의 이유로 비행기 조종사가 8시간의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오쇼는 일등급 통과여객용 라운지에서 대기하기를 원했지만 허용되지 않고 호텔에서 1박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대신 그와 그 일행은 난민들로 북적거리는 작고 더러운 방에 갇히게 된다.

3월 7일 오쇼와 그 일행은 아일랜드로 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관광비자를 받고 리메릭 부근에 있는 호텔로 갔으나 다음날 아침 경찰이 와서 그들에게 즉시 떠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했다. 그때까지도 캐나다 정부에서는 오쇼의 비행기가 예정지인 카리브 해의 안티구아로 가는 도중 연료를 보급받기 위해 캐나다 공항에 착륙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료 보급의 권리에 대한 이 이상스러울 정도의 거부는, 오쇼가 비행기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보증을 했던 런던의 로이드 보험 협회의 보증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다.

당국은 난처하게 만드는 공표는 일체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다른 채비가 마련될 때까지 아일랜드에 체재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 대기 중에 안티구아는 오쇼의 입국 허가를 철회한다. 네덜란드도 타진했지만 오쇼를 거절한다. 독일은 이미 오쇼의 입국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저지법’을 통과시키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관광바자 신청의 심리가 연기된 상태였고, 10개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연기된다.

3월 19일 마지막 순간, 뜻밖에 우루과이에서 초청장이 발급이 된다. 3월 19일 오쇼와 그 동반자들은 세네갈의 다카르를 경유하여 몬테비데오로 날아갔고, 우루과이는 영주 가능성까지 밝힌다. 우루과이에서 모든 나라들이 그의 입국 허가를 거부한 이유가 밝혀진다. 오쇼 일행이 ‘밀수, 마약취급, 매춘’에 연루되어 있다는 내용의 인터폴의 루머에 대해 언급한 ‘외교상의 비밀정보(모든 것은 NATO의 정부 정보원으로부터 나온다)’에 관한 텔렉스가 그들에 앞서 입국 예정국에 도착하여 경찰이 경계태세를 갖출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 우루과이도 곧 다른 나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된다.

5월 14일 우루과이 정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오쇼가 우루과이의 영주권을 얻었다고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바로 그날 밤 우루과이 대통령 상귀네티는 오쇼가 우루과이에 체재한다면 현재의 미국 차관 600억 달러는 회수될 것이고, 앞으로 어떤 차관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워싱턴 DC의 전화를 받음으로써 6월 18일 오쇼는 우루과이를 떠나야 했고, 다음날 워싱턴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이 1억 5천만 달러의 새로운 미국 차관이 우루과이에 주어진다고 발표된다.

6월 19일 자메이카는 오쇼에게 10일간의 비자를 허용한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자마자 미 해군의 제트기가 오쇼의 자가용 제트기 곁에 착륙하더니 두 사람의 비전투 요원이 내렸고, 다음날 아침 오쇼와 그 일행의 비자는 취소된다.

오쇼는 마드리드를 경유하여 리스본으로 날아갔고, 잠시 동안 발견되지 않고 머무른다. 몇 주일 후 경관들은 그가 쉬고 있는 별장을 포위했으며 오쇼는 다음날 인도로 돌아갈 것을 결정한다.

이렇게 모두 21개의 국가들이 그를 국외로 강제 추방하거나 입국을 거부했다.

7월 29일 오쇼는 인도의 봄베이에 도착해 그곳에서 인도 친구의 개인적인 손님으로 6개월간 체재한다. 그는 그 친구의 집에 은둔하며 매일 강의를 재개한다.

1987년 - 1월 4일 오쇼는 1970년대의 대부분을 보냈던 푸나 아쉬람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푸나의 경찰서장은 ‘시의 평화를 어지럽힐’ 염려가 있는 ‘문제 인물’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떠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그 명령은 같은 날 봄베이의 고등재판소에 의해 무효화된다. 그러자 1980년 5월, 공개강의 중 칼을 던져 오쇼를 살해하려 했던 그 힌두교 광신자들이 오쇼를 푸나에서 추방하지 않는다면 격투기로 훈련된 200명의 기습부대로 아쉬람을 침입하겠다고 협박하기 시작한다.

8월 ‘자유세계’의 정부들이 사실상 연금 상태로 오쇼를 고립시키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제자들은 다시 한 번 스승과 함께 하기 위해 푸나로 향한다.

 

1990년 - 1월 오쇼는 많은 가르침을 남기고 인도의 푸나에서 육체를 떠났다.

 

오쇼의 신간 <떠도는 자의 노래 1권+2권>에서 삶과 사랑, 빛과 자유에 관한 그의 철학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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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자의 노래 2- 인도 바울이 들려주는 영혼의 노래
오쇼(Osho)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2년 11월
17,000원 → 16,150원(5%할인) / 마일리지 17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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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1- 동양과 서양을 잇는 인류 최고의 신비주의자
오쇼(Osho)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3년 3월
25,000원 → 23,750원(5%할인) / 마일리지 25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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