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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평전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김만권 감수 / 혜다 / 2022년 9월
평점 :

책을 다 읽을 쯤이면 서평을 이렇게 써야겠구나 하는 각이 생긴다.
하지만 #한나아렌트평전 은 나에게 그 각을 허락하지 않았다.
난 이 한권으로 한나 아렌트를 온전히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저서를 몇 권 읽은 후에야 감히 조금의 평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냥 얕은 느낌을 써보기로 했다.
그녀는 (1907~1975) 세계 1,2차 대전을 모두 겪었다.
유대인이라는 껍데기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희생이 뒤따를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했다.
그녀의 국적은 나치독일을 지나 무국적에서 미국으로 바뀐다.
이 과정만 봐도 어떤 고생을 했을지 역사를 안다면 대충의 감을 잡을 수 있다.
나치독일을 피해 프랑스로 떠났지만 그곳에서 강제수용소에 가게 되고, 혼란해진 틈을 타 도망나오지 않았다면 홀로코스트에 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그때 미국비자를 받게 도와준 비상구조위원회 수장 바리안 프라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프라이가 구한 유대인들 중에
'장 아르프, 마르크 샤갈, 막스 에른스트 같은 화가들, 시인 앙드레 브르통, 영화감독 막스 오퓔스, 화가 마르셀 뒤샹도 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음에 놀랐다.
이때만 해도 난 그녀의 사상과 삶보다는 시대상에 더욱 집중했고,
그 동안 읽었던 역사이야기가, 또 예술인들의 이야기가 단 한명 여자의 삶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하고 있었다.
#폴리아모리 같은 그녀의 결혼생활
이 부부에게 결혼이란 서로에게 비밀을 만들지 않고, 상대를 구속하지 않으며, 언제나 새로움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각자에게 생각을 위해 필요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한나 아렌트 평전 -188p
한나는 대학시절 무려 #마르틴하이데거 와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우리가 아는 그 하이데거가 맞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두번째 남편 블뤼허와 결혼해서 살고 있을 때였다.
그녀와 하이데거의 사이를 모두 알고 있는 블뤼허는 하이데거를 만나러 간 한나에게 쿨했고,
그 사이 불륜을 저지른 블뤼허의 소식을 친구에게 들은 한나는 솔직하지 못한 블뤼허로 부터 화가 났다.
서로 사랑하지만 솔직함이 가장 중요하고, 서로가 알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와 사랑을 해도 괜찮은 폴리아모리가 떠올랐다.
물론 한나 부부는 서로의 연인을 집에 들이고 사랑을 확장해 가는 관계는 결코 아니었고,
오히려 한나는 결혼과 사랑에 무심한 면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솔직함을 무기로 결혼생활을 해나가고 전 연인을 만나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온 한나를 이해하는 블뤼허와 그의 불륜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한나의 모습을 보며 비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비범함을 표현할 꿋꿋함과 당참을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하필이면 매카시즘 열풍이 가장 뜨거울 때 이런 대담한 글을 발표하는 건 엔만한 용기로는 힘든 일이다.더군다나 법무장관이 '국적이 다른 시민'을 조사해 불온하다고 판단되면 추방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나는 결코 논쟁을 피하거나 이데올로기의 요구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나 아렌트 평전 -200p
한나는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어떤 상황이든, 누구에게든 상관 없이 말이다.
자신의 안위와 상관 없이 사유하고 결론을 내렸다면 그 의견을 피력했고,
상황에 맞춰 말을 바꾸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녀가 책을 내고 많은 사람에게 거센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말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모두 읽지도 않고 꼬투리를 잡고 비판하며, 거짓된 진실을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한나는 인터뷰에서 그런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건 어쩔수 없군요 라고 담담하게 말하기도 했다.
굉장히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태도에 대한 불만이라면 나는 쪼그라든 가슴을 부여잡고 미안하다며 고치겠다고 말할 것 같다. 나를 남에게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어떻게,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강하게 만들었을까?
한나가 강조하는 깊은 사유에서 나오는 힘이 분명했다.
주어진 문제를 관찰하며 마음속에서 더 많은 사람의 관점을 떠올릴수록, 내가 그 사람들 처지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지 더 자세히 상상할수록, 타인을 대변하는 나의 사고 능력이 더 강해질수록 타당한 결론, 즉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
한나 아렌트 평전 -258p
한나는 사유를 강조하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사유를 하라고 한다.
끊임없이 사유하고 토론했으며,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의견을 만들었을 것이다.
마치 죽도록 연습해서 강철 멘탈로 경기를 치루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수긍하는 김연아를 보는 듯 했다.
그렇게 적용하고 한나를 이해하는게 나에겐 가장 적합하다 생각되었다
그런 그녀가 주장하는 것들 중 블랙펜서 사건으로 이야기하게 된 것이 있다.
그리고 무시험 전형과 흑인 특별 전형을 만들라는 그들 요구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한나로서는 이러한 것들이 그녀가 말하는 '실재하지 않는 주체'들이었고, 흑인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도록' 백인들이 놓은 '덫'일 뿐이라고 보았다.
한나 아렌트 평전 -277p
소수계층 혹은 취약한 계층을 위해 복지라는 이름으로 특별 전형이 생긴다.
그에 대해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권리지 라는 생각외엔 별다른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나가 특별 전형이 오히려 그 계층을 더욱 약화시킨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을 땐,
마치 내가 굳어버린 생각을 가지고 끄떡끄덕이며 살기만 한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왜 한번 더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약하면 힘을 길러서 강해져야 하는데,
사회는 그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튼튼히 걸을 수 있는 다리에 근육을 만들어 준게 아닌 전동 휠체어를 주고선, 근육은 더 흐물해 지지만 당장은 쉽게 앞으로 갈 수 있는 방법만 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흑인 특별전형을 반대하는 한나는 진심으로 그들의 입장이 되어 사유해서 나온 결과임이 분명했다.
정치 및 도덕 관련 사안에 사윻지 않는 것은 사회에서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행동규칙이 무엇이든 맹목적으로 따르라고 사람들을 가르칠 위험이 있다. 우리는 규칙에 익숙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하는 데 익숙지 않다. 누군가 옛 규칙, 즉 오래된 사회규범을 더 빨리 고수할수록, 그들은 더 빨리 새로운 규칙에 동화되기를 갈망할 것이다. 자신은 이 점을 알아차리지 못할 텐데, 그건 잠든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 평전 -285p
한나를 통해 사유하지 않는 자의 모습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규칙에 익숙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하는 데 익숙지 않다.'
선택장애가 많은 세상은 사실, 책임회피도 있겠지만 맹목적으로 따르라는 배움에 따른 부작용이 아닐까?
'토'달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란 프레임이 있던 시절은 선택장애를 낳은 것이다.
따르기만 하는 상태를 '잠든 상태'로 표현한 한나의 말처럼
이제는 깨어나야 할 때이다.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의 의견이 세워질 때 까지 끊임없이 사유하고
옳은 판단이 섰을 땐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외칠 줄 아는 용기.
한나 아렌트가 그녀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세지 같다.
살아가기 위한 삶이 아니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녀 다운 죽음을 맞이한 한나 아렌트처럼,
'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멋지게 살아봐야 겠다.
*이 책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