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유난히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지난 몇차례의 비로 기온이 뚝 떨어져, 지난 겨울을 보냈을 패딩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난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도 패딩 대신 조금 얇은 모직코트를 고집스럽게 입고 있다.
패딩을 입는 순간, 가을이 끝났다라고 인정하는 것 같아서다.
지난 주 결혼식에 참석하러 여의도를 들렀다. 한낮의 여의도는 파랗고 빨갛고 노란색이었다.
그 색깔이 하도 고와서 멈춰서서 사진도 몇장 찍었다. 날씨가 좋은 가을엔 모든 색깔이 평상시보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모니터만 들여다보던 눈이 어딘가 탁 트이는 느낌이 좋았다.
사실 그 날의 결혼식은 별로 친하지 않은 선배의 것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였고,
축가를 내가 좋아하는 어느 친구같은 후배가 한다고 하여 그 장면을 보고 싶어 갔던 것이었다.
축가까지만 듣고 밥 안먹고 그냥 나와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아뿔사. 결혼식은 식장 내에 앉아 코스 요리를 먹는 방식이었다.
난감했다. 결혼식에 같이 가자 미리 얘기해둔 동료도 없었고,
그나마 얼굴보면 아는체 할만한 사람들도 이미 어두운 식장 내에 자리하고 있어 찾을 수도 없다.
하는수없이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많은 축의금을 내고(밥 안 먹고 가려고 했는데ㅠ)
식장에 들어가 두리번거렸다. 모르는 사람 옆자리에라도 앉아야 하나 두려운 마음으로.
나는 이런 순간들이 제일 싫다. 나에게 정해진 자리가 없어 주저하며 두리번 거리는 순간.
함께 온 혹은 미리 온 누군가의 옆자리에 앉는 것. 또는 지정된 어떤 자리에 앉는 것을 원해 - 라고 생각했다.
이럴 때에는 꼭. 외롭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외로움은 역시 혼자있을 때 느끼는게 아니다.
익명과 지인이 섞인 자리에서 느끼는 거지.
다행히 결혼식은 만석인지라 뒷벽 근처에 서있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자리도 없으니 원래 계획대로 밥은 먹지 않고 축가까지만 들은 후 식장을 빠져나왔다.
날씨는 여전히 맑고 햇살은 황금빛인데, 왠지 좀더 쓸쓸해졌다.
정말 가을은 끝났을지도 몰라. 이젠 패딩을 입어야할지도 모르겠어 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