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 김영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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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표지가 너무 무서워서 안 읽는 동안에는 책을 뒤집어 놓았었다. 밑에 깔린 사람이 너무 답답하고 굴욕적일 것 같다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책 내용은 인물의 심리묘사가 대부분이었다. 가끔 두 사람 사이의 대화나 장소의 묘사도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심리가 공감이 잘 되지 않았다. 뉴욕 맨해튼과 브루클린이 배경인데 뉴욕의 아는 장소가 나오면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좋은 정도였다. 마리는 어려서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가서 학업을 마치고 자리 잡은 인물인데 그녀의 독백이 영어를 안 쓰는 한국인같이 느껴졌다. 한국인은 미국에 가서 영어를 쓰며 살아가도 사고는 한국어로 하는 건가? 그리고 이 소설에 나오는 여성인물들의 마음속 소리들은 마치 한 사람이 하는 말처럼 느낌이 똑같았다. 작가가 주인공들의 입과 마음과 머리를 빌려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두루뭉실하게 쓰여진 이 책이 끝나고 작가가 빈칸으로 남겨 놓고 독자가 상상이나 추리로 채워 넣기를 바랐던 부분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 책 속의 남자가 누구를 사랑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남자는 그냥 자기 자신을 사랑했을 뿐 여자들을 이용한 것 같다는 게 내 결론이다. 이런 남자 때문에 여자 한 명은 자기 손목을 면도칼로 세 번이나 긋고 또 다른 여자는 이혼 수속 중인 남자가 손목을 세 번이나 그은 그 부인과 사는 집에 단기 월세를 얻고 그 빈집에서 남자의 흔적을 킁킁거리며 찾고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제3의 여자는 남자가 더 좋아한 여자로 나오지만 만약 이 여자도 남자에게 연연했다면 남자는 기억 속의 전리품으로 남기고 또 다른 여자를 찾아 떠났을 것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사랑과 결혼을 통합한 것은 낭만주의 시대의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그 전까지는 결혼은 집에서 정해준 상대와 하는 비즈니스이고 사랑이나 연애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고 한다. 책의 누군가가 이 책의 남자를 중세인 같다고 한 것이 결혼관을 두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유학생으로서 미국 영주권을 얻기 위해 결혼에 적합한 여자를 낚는 데 성공했다. 그걸 도저히 믿을 수 없던 여자는 끝까지 괴로워하고 망가져간다. 이용하기 위해 작정하고 속이면서 다가왔으니 운명처럼 보이게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여자는 그 남자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기꾼은 속고 싶어하는 사람을 속이기가 제일 쉬울 것이다.

사랑에 관한 소설을 범죄소설로 보는 내가 세파에 찌들고 닳고 닳은 중년여성임을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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