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편지
이머전 클락 지음, 배효진 옮김 / 오리지널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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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읽다가 끝으로 가서 결말을 읽고 하이라이트 부분을 먼저 읽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낯선 편지를 발견하고 또 그 편지 주인을 만났으니 일단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다 본 것이다. 어떻게든 읽어 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다 읽지 못한 이유는 낯선 문체 때문이었다. 이렇게 현재형으로 씌여진 소설을 거의 못 본 것 같다. 그래서 과거형으로 바꿔서 읽어보니 훨씬 몰입도 잘 되고 등장인물들에게 연민도 생겨났다. 하지만 현재형을 그대로 읽으면 숨이 막히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제가 바뀌면 느낌도 이토록 바뀔 수 있는 것인가? 과거와 더 과거와 현재와 비교적 가까운 과거와 왔다 갔다 하는 구성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시간으로 가든 다 현재형으로 서술 되는 건 무슨 시나리오도 아니고 연극 대본도 아니고 너무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작가에게 건의한다. 과거형으로 다시 출판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오늘은 쉬는 날이고 푹 자고 일어나서 좋은 컨디션으로 다시 이어서 읽어보았다. 역시 힘들다. 내가 읽다가 멈춘 부분은 애니의 남자친구 조가 집에 처음 방문한 날이다. 애니의 아버지가 남자친구 앞에서 엄마를 무시하고 모욕하고 몰아대는 장면을 실시간 현재형으로 읽자니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처럼 화가 난다. 작가가 의도한 것도 독자의 적극적인 동참이었을까? "아빠 미친거 아니야?" 이런식으로 공분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것이었을까?  어제 저녁에 현재형이 문제인지 내용이 문제인지 알고 싶어서 현재형으로 밝고 행복한 장면을 써보았다. " 언제나 그렇듯이 퇴근하고 주차를 하고, 내려서 집 현관까지 가는 길에 고양이들을 찾아본다. 얘네들은 길고양이도 아니고 집고양이도 아닌 공동의 고양이다. 담벼락아래 누군가 놓고 간 사료그릇이 있는 걸 보면 입주자 중에 돌봐주는 사람이 있는게 분명하다. 고양이 세마리는 자기들끼리도 적당한 거리, 사람들과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렇게 주자장에서 논다. 세 놈중에 그래도 사람을 덜 무서워하는 놈과 마주친다. 치즈 줄무늬 꼬리를 가져서 내가 '너구리꼬리'라고 이름 붙인 대장이다.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멈춰있는 너구리꼬리가 귀엽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츄르라는 걸 사본다. 유튜브에서 본것처럼 위를 뜯어 구멍을 내고 조금씩 츄르를 밀어올린다. 냥이가 다가온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냥이가 내 츄르를 먹는다. 이젠 내츄르가 아니라 너의 츄르야. 속도가 느린지 불만스런 냐옹과 함께 앞발을 들어 서두르라 한다. "  이렇게 써보면 전혀 답답하지도 토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면 이건 문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 문제였나보다. 나는 아빠가 엄마를 괴롭히고 무시하고 누르는 것을 보기가 힘든것 같다.  그래서 미련을 갖지 않고 반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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