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똑같은 조건 속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왜 이다지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만 삶에 대한 다른 호기심까지도 다 거두어버렸다. 이런 것이 운명이라면, 그것을 내가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인생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이것이 사춘기의 내가 삶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어머니의 경험이 나에게서 멋진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동기 유발을 앗아가 버린 것이었다. - P20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 P21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삶이란 뜻이었다. - P28
누가 그랬다. 결혼은 디저트보다 수프 쪽이 더 맛있는 정찬이라고. - P38
만약 누군가 지금 대문을 들어서서 방 쪽을 쳐다본다면 아마 이런 그림이 보일 것이다. 환하고 어둡고, 다시 환하고 어둡고, 다시 환한 빛의 그림. 두 번의 어둠은 욕실과 부엌이 자아내는 것이고 세 번의 환한 빛은 세 명의 가족이 각각 하나씩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언젠가부터 늘 이랬다. 두 개의 방을 비우고 하나의 방에 모여서 단란한 풍경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들처럼 늘 이랬다. - P45
어떻게 살아야 옳은 삶인지 그것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라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읽고 배운다. 학교를 다니지 않더라도 좋은 말씀들을 들을 기회는 사방 천지에 차고 넘쳤다. 신문이나 잡지나 책, 그리고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등장하여 가슴이 뻐근하도록 일일이 옳은 말씀만 하고 계신다. 모른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 P50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었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이었다. 누군가 내게 그런 실례의 발언을 하는 것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두 번 다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상처 받은 내 자존심이 용서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 P51
어떤 경우에는 천박함이 무명천처럼 고슬고슬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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