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알아듣는 것은 그 사람을 알아듣는 것이다. 특정 언어의 구사 능력과는 상관이 없다. 말은 사람을 통해 나오고 사람은 말을 통해 자기를 드러낸다. 말은 그 사람이다. 지금한 그 말은 지금 그 사람이다. 살기 위해서는 지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때때로 생존의 문제가 여기에 걸쳐 있다. - P99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해서, 누구인지 모른 채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어떤 말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인간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 P100

식민 지배는 말을 옮긴다. 말을 옮겨 심는 이식의 과정이 식민주의의 실천에 포함된다. 정복자의 언어가 식민지에 옮겨온다. 식민지의 언어는 정복자의 언어로 대체된다. 땅을 정복한 자는 그 땅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정복자의 정신을 이식 한다. 언어는 정신을 실어나르는 수레와 같다. 땅만 차지할 뿐 자기 말을 이식하지 못한 자의 지배는 두려움을 주지 않는다. 땅의 지배가 끝남과 동시에 그 지배도 끝난다. 그러나 언어를 옮겨 심는 데 성공한 지배는 땅의 지배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언어와 함께 지배가 계속된다. 언어 속에 지배자의 정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말을 바꾸는 것은 어렵고 중요하다. 중요한데 어렵다. - P100

말의 변질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한 시기에 존중을 표현하기 위해 쓰이던 단어가 다른 시기에는 무시하기 위해 쓰인다. 한 곳에서 존중하기 위해 사용되는 표현이 다른 곳에서는 조롱하기 위해 사용된다. 말은 자율적이지 않다. 말의 운명은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정해진다. 그러니까 말의 타락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말은 타락할 줄 모른다. 스스로 숭고해질 줄 모르는 것처럼 타락할 줄도 모른다. 타락한 사람들이 말을 더럽힐 뿐이다. 이렇게 쓰이던 말을 저렇게 쓰면 그 말은 더이상 이런 말이 아니게 된다. 적어도 그런 뜻으로는 쓰지 못하게 된다. - P102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많은 것을 바꾼다. 무엇보다 말을 바꾼다. 성향이나 출신, 인종이나 이념이 만든 혐오와 조롱의 말들을 내버린다. 사랑이 그런 단어들을 그의 사전에서 사라지게 한다. […] 사랑이 성향이나 출신, 인종이나 이념의 벽에 갇히지 않는다는 예시이기도 할 것이다.
사랑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무엇으로도 사랑을 제어할 수 없는 것은 사랑이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 P104

어떤 뜻은 발화의 순간이 아니라 번역의 순간에 비로소 출현한다. 그러니까 번역되기까지는 누구도 아직 말한 것이 아니다. 듣는 사람(의 반응)이 말하는 사람의 말을 규정/결정한다. 번역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 P106

잘 말한다는 것은 알아듣게 말한다는 것이다. - P108

내일은 오지 않는 시간이다. 내일에 이르렀다고 깨닫는 순간, 그 시간은 오늘이 된다. 내일은 정복되지 않는다. 사람이 ‘앞‘에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내일에 이를 수 없다. ‘앞‘은 항상 앞에 있고,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여전히 앞에 있다. 앞에 이른 순간 그곳은 여기가 되고, 여기 앞에는 다시 앞이 있다. ‘앞‘은 항상 앞에 놓인다. ‘앞‘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다. ‘내일‘은 도착할 수 없는 시간이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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