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발견하게 해주기 때문에 책은 중요합니다. ‘나‘를 읽게 하지 않는다면 책을 읽을 이유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아니,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나‘를 읽게 하지 않는 책을 도대체 왜 읽는단 말입니까? 책을 통해 ‘나‘를 읽을 때, 나는 ‘나‘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같이 읽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타인과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통해 읽는 사람과 세상만이 진실합니다. ‘나‘를 배제한 어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도 진짜가 아닙니다. 자기에 대한 의심과 돌아봄이 없는 이해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읽기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어야 합니다. - P7

왜 심장이 뛰고 눈물이 흐를까?
모르는가, 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당신이 내게 작별을 고하는 순간
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그의 세상은 종말을 맞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세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그러나 그는 ‘세상의 끝‘에 있다. 장소가 아니라 어떤 상태라는 건 그런 뜻이다. 끝은 그렇게 온다. 개별적으로, 세상과 상관없이. 말하자면 실존적으로. - P16

옛날 사람들은 똑바로 계속 걸으면 세상의 끝에 닿고 낭떠러지로 떨어질 거라고 믿었다. 세상이 평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똑바로 계속 걸으면 언젠가 출발한 자리로 돌아온다는 걸, 세상이 둥글다는 걸 알고 있는 우리는 안다. 둥근 지구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출발점이 곧 도착점이다. 끝은 시작에 있다. 등뒤에 있는 사람이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다. 등뒤에 있는 사람을 만나려면 한없이 걸어 끝까지, 세상의 끝까지 가야 한다. - P17

나는 나에게서 가장 멀고, 내가 가장 잘 모르고, 내가 가장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두려워하는 것이 또 있을 까?"(헬무트 틸리케, 『신과 악마 사이』) 각성한 인간에게는 오직 하나의 의무만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이라고 헤르만 헤세는 말한다. "나는 나의 내면에서 뿜어져나오려는 것을 실현하며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데미안』)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렵냐고? 헤세는 같은 책에서 이미 답을 말해버렸다. 그것이 ‘의무‘이기 때문이다. 의무는 언제나 어렵다. 할 수 있는 한 피하고 싶은 것이 의무다. ‘기꺼이‘가 아니라 ‘마침내‘ 하게 되는 것이 의무다. - P18

사람은 자기 앞에 가는 사람을 미워하고, 미워하면서 따라 가고, 자기 뒷사람은 부정한다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볼프강 보르헤르트는 말한다.
‘내 뒤에서 내 뒷사람이 되어 걸어보아야 한다. 그러면 네가 얼마나 빨리 나를 미워하게 되는지 보게 될 것이다.’ - P19

그런 시간이 있다.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시간. 피할 수 없는 시간. 부딪쳐야 하는 시간. 다른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자기 얼굴을,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쳐다보아야 하는 시간.
"그대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오." 이 말은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눈이 멀기 전의 오이디푸스에게 한 말이다. 눈 먼 예언자는, 왕이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디 사는지, 누구와 사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대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오." 오이디푸스만 들을 말이겠는가.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 한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탄했다. 이스라엘 백성만 그렇겠는가. 우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보지 않으려 한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듣지 않으려 한다. 보게 될 것, 듣게 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 P21

고백은 벌거벗는 것이 아니라 벌거벗겨지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능동의 형태를 띤 이 동사 ‘고백하다‘에 자발적인 성격은 거의 없다. 고백하는 사람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이다. 우리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기까지 고백하지 않는다. 고백은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고, 그러므로 일단 행해진 고백은 천하만한 무게를 지닌다.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지 않은 사람이 하는 고백, 이른바 자발적인 고백에는 자랑의 성격이 섞여 있을 것이다.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 자랑이다. 자랑하기 위해 고백할 수 없다. 어떤 고백도 자랑이 될 수 없다. - P28

자신이 비참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에 사람은 위대하다고 파스칼은 말했다.
‘인간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그는 비참하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진정 위대하다.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팡세』)’ - P29

고백한 사람은 고백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무엇을 고백했느냐는 부차적이다. 고백의 내용이 아니라 고백한 사실이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 P31

우화적인 이야기는 그 자체로 자생적이지 않고 더 본질적인 다른 이야기를 가리킨다. 보다 실제적이고 더 근본적인 다른 의미를 향해 자기 몸을 내주는 이야기가 우화라면, 우화적 독서는 그 이야기가 가리키는 현실과 근본을 밝히는 넓은 의미의 은유적 해석의 과정일 것이다. - P33

작가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작가 이전을 향하지 않는다. 작가 이전에 그는 누구였는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어떤 과정을 통해 작가가 되었는가. 이런 질문은 호사가들의 흥밋거리를 위해 필요할 뿐이다. 이것은 작가가 누구인지를 알려고 하는 사람의 질문이 아니다. 물어야 하는 질문은 어디 있는가, 이다. 어디서 왔는가, 가 아니라 어디에 머무는가, 이다.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온 것이 아니다. - P34

자유와 운명은 작가에게는 한 단어이다. 작가는 누구의 강요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온전히 자유롭게 창작자가 되기로 결단한다. 그러나 그 결단은 그에게 주어진 단 하나뿐인 선택지이므로, 그는 그것 말고는 다른 것을 선택할 능력이 없다. 그는 다른 곳에 갈 수 있는데도, 그곳에 오지 않을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곳에 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 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곳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곳에 온 것은 온전한 그의 뜻이다. 그는 완전히 자유롭고 완전히 부자유하다. - P35

‘놀이‘와 대척점에 있는 것은 ‘일‘이다. 공부하느라 수고한다거나 무리하지 말고 쉬어가면서 공부하라는 말을 하는 것은 공부를 일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의 화법이다. 공부하는 내게 수고한다는 말을 해준 어른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쉬면서 공부하라는 말 대신 쉬었으니 이제 일하라는 말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공부가 일이라는 생각을, 적어도 소년기에는 하지 못했다. 일은 물리적이고, 실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것이었다.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타나야 했다. 공부나 독서는, 가시적으로 무엇을 나타나게 하지 못 했다. 그것을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 P39

영감이란 약삭빠른 작가들이 예술적으로 추앙받기 위해 하는 나쁜 말이라고 꼬집은 사람은 움베르토 에코이다. 그는 프랑스 낭만파 시인 라마르틴의 예를 들어 이 문장의 뜻을 설명했다. 라마르틴은 어느 날 숲길을 거닐고 있을 때 한 편의 시가 완성된 형태로 섬광처럼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 시를 그대로 옮겨 적기만 했다고, 자기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죽은 후 그의 서재에서 수없이 고쳐쓴 방대한 분량의 원고 뭉치가 발견되었다. 작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관념,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신의 선택,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신의 영감에 의해 위대한 작가와 작품이 탄생한다는 낭만적인 관념이 지배하던 시대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라고 해야 할 것이다. - P47

누군가를 꿈꾸는 자는 누군가가 꿈꾼 자이다. 누군가가 꿈꾼 자가 누군가를 꿈꾼다. 작가는 어디서 태어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보르헤스의 답은 이렇다. 위대한 다른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작가가 태어난다. 작가가 작가를 태어나게 한다. 책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들의 자궁이다. 책은 책에서 나온다. 작가는 독자적이고 개별적인 실체가 아니라 그가 읽은 놀라운 책들의, 우리가 형언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환영이다. 위대한 작가와 그 작품의 품(즉, 꿈)속에서 창조된 정신적 존재이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올 때 작가로 살도록 운명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비록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강렬하고 위대한 독서 경험의 영향 아래서 힘들게 빚어져 작가가 되는 것이다. - P56

상황이 압도적일 때 개인의 자발성은 최소화되고 삶은 살아 내야 하는 것. 의무가 된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몰린 사람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는 부도수표와 같다. 강요된 자유보다 자유에 반하는 것은 없다. 자유의 행사가 차단된 상황에서 허락된 자유보다 기만적인 것은 없다. 이 경우 취할 수 있는 유일하게 가능한 길은, 아마도 유예일 것이다. - P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