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둘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예전과 같이 언제나 그렇게, 저 위쪽 길과 같은 높이로 난 직사각형 창문 아래 앉아 바느질감에 몰두했고, 어쩌다 이야기를 나눌 때면, 자신들이 방금 지나온 시절,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 힘들었던 시절이 아니라,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로 이 야기를 채웠다. 예전보다 더 친밀해졌고 훨씬 더 가까운 사이가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조화는 오직 그렇게, 그러니까 밑바닥에 있는 유일한 주제에 관한 그 어떤 암시도 피한다는 조건에서만 지속될 수 있음을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 P13
그에 따르면, 리다는 성격상 큰 결점을 갖고 있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그렇게 선언할 수 있었고, 그럴 때면 주저 없이 눈짓으로 마리아 만토바니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요컨대, 그는 리다가 항상 얼굴을 뒤로 돌린 채 다 지나간 일들을 곱씹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잠시라도 미래가 있는 그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 건가요? 오만함은 나쁜 짐승입니다. 그것은 마치 뱀이 의심이 들지 않는 곳만 찾아 숨는 것과 같지요. - P26
얼마 있다가, 발 디딜 틈도 없고 담배 연기로 자욱한 디아나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 겨우 다비드 옆에 앉아 스크린에 눈을 두게 되면 이내 긴장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사랑 이야기가 아닌 경우가 없던 그 영화들, 거기서 온갖 난관에도 꿈을 이어가는 주인공이 그녀에겐 자신을 빼박은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영사기에서 퍼지는 길고 푸르스름한 빛줄기가 허공을 가로지르는 가운데 그림자에 잠긴 넥타이 매듭, 커다란 목 젖, 그 위로 튀어나온 턱, 야위고 기다란 목, 관자놀이 위 머릿 기름을 바른 곱슬곱슬한 머리칼을 한) 다비드를 쳐다봤을 뿐 아니라, 그의 손을 더듬어 아플 만큼 꼭 쥐었다. 그러면 다비드는? 그녀의 눈길에 응해 바로 손을 맞잡을 준비가 돼 있던 그는 평온한 모습이었고,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을 결코 다 믿을 수는 없었다. - P32
중심지를 가로질러 집에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천지사방에 핀(두어 시간 만에 노란 가로등 불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짙어진) 안개에 파묻혀 간다면, 장담하건대, 누구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텐데. 리스토네를 지나 조베카 대로로 가더라도. 물기 축축한 인도로 천천히 걸어 입술과 눈썹이 미지근한 작은 물방울들에 물큰 젖는 걸 느끼고, 진짜 여느 약혼자들처럼 서로 껴안고 갈 수도 있으련만. - P33
성벽 쪽으로 가려고 할 때, 활짝 열린 영화관 유리문 앞에 모여 있던 그 동네 청년들이 휘파람을 불고 고성을 지르며 경멸로 씩씩대는 원숭이 소리와 상스런 말을 쏟아냈다. […] 발걸음을 서둘러도 소용없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고성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예리해지는 것 같았다. 가까이 뒤따르는 것처럼, 낚아채서 그녀를 만지려 옷 속으로 파고드는 차갑고 음습한 손처럼 말이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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