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적 고기 운동에서는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고 상품화하는 것, 동물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정치적인 것이나 착취로 그리지 않고 그저 "세상의 이치"로 그린다. 생물학적으로 고기를 필요로 한다는 대중적인 논의를 통해서든 진화와 공생에 관한 더 세련된 이론들을 통해서든, 이들은 계속해서 "자연"을 동물 도살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 P277
우리는 다른 존재의 주체성을 인식하고, 공감을 경험하며, 윤리적 선택을 하도록 진화해온 동물이다. 만약 고기에 대한 욕망이 "인간 본성의 일부라면, 우리가 사는 방식을 질문하고, 정의에 대해 생각하고, 도덕적 삶의 진전을 반영하기 위해 우리의 습관을 바꾸는 것 또한 "인간 본성"을 구성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인간을 다른 동물보다 더 나은 존재, 더 진화된 존재로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각기른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중 하나가 이러한 윤리적 문제를 생각하는 힘인 것이다. - P278
우리는 인간의 쾌락과 이익을 위한 동물들의 부적절한 죽음과 상품화에 반대한다. - P279
종과 생태계에는 가치가 부여되지만 개체에게는 부여되지 않는다. 야생동물은 가축화된 동물보다 더 큰 가치를 부여받는다. 이런 관점은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비가축화된 종들의 자율성과 자연 전체에 대한 공헌을 축복하는 동시에 개별 동물들, 특히 가축화된 동물들(흔히 이들은 의존적이고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멸시받고, 때로는 더 큰 생물 군집에 해를 끼친다고 간주된다)의 복지에 치중하는 일이 순진하고 감상적임을 시사한다. - P283
흥미롭게도 폴란, 피언리-휘팅스톨을 비롯한 저자들이 육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공진화 이론co-evolution theory 에서도 사회계약 관념과 매우 유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폴란이 "상호주의 혹은 여러 종들의 공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과 가축화된 동물은 서로 어떤 계약을 맺었는데, 사회계약론에서처럼 이 계약은 대개 상호 이익에바탕을 둔다. 이 계약은 공진화적인 협약으로, 인간이 동물 종들을 돌볼 책임을 지는 대신 동물들이 그들의 노동과 살을 인간에게 제공한다. 베지테리언이나 비건이 된다는 것은 곧 우리에게가장 의존적인 이 동물들을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그냥 방치되는 것이 저녁 식탁에 놓이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운명일 거라고이 이론의 추종자는 주장한다." - P285
이 이론가들은 가축화 및 그에 동반되는 살해가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그들을 먹지 않는다면 그들은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그랜딘이 설명했듯, 이 동물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도살에 의존하고 있다. 동물의 가축화에 대해 폴란은 이렇게 말한다. "동물의 시각에서 보자면, 인류와의 거래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다. 소, 돼지, 개, 고양이, 닭은 번성한 반면, 야생에 남은 그들 조상은 멸종될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생각을 밀어붙이면, 동물 먹기를 중단한다는 것은 이 관계를 저버린 채 의존적이고 가축화된 존재를 야생으로 내보내자는 뜻이 될 것이다. - P286
엄청나게 많은 농장동물들이 계속해서 살고 죽는 것이 그 종 전체에 혜택일 수 있다는 관념은 진화적 성공이라는 개념을 터무니없이 남용하는 사례 중 하나다. 그렇다, 몇십억에 이르는 동물들은 축산이 없었다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동물들은 태어날 때부터 도살당할 때까지 매우 억압적인 환경에서 살아간다. 뻔뻔할 정도로 폭력적이며 부도덕한산업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 사육된 동물들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충족할 수 없는데, 그런 상황이 어떻게 혜택 혹은 도덕적선의 일종일 수 있단 말인가?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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