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연극의 감독이라면 무대 디자이너에게 조금 살살 하라고 말할 것 같다. 하지만 받아들이자. 이것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것이다. 혼돈이 지배한다는 것, 나에게는 이보다 더 분명한 메시지는 없어 보였다. 나라면 이 지점에서 포기했을 것이다. 신성이 훼손되고, 꿈이 박살 났으며, 수십 년 동안 끈기 있게 해온 일이 헛수고로 돌아갔다면, 나라면 지하실로 내려가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다. - P113
"낮이나 밤이나 호스로 물을 뿌려. 낮이나 밤이나." 해는 뜨고 지고, 뜨고 지고, 데이비드의 동료 두 사람은 고무 덧신을 신고서 물고기들의 살덩이를 향해 호스로 물을 뿌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불굴의 기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창밖에는 그들의 선지자가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있고, 공기 중에는 먼지가 희부옇게 드리워 있으며, 이 난장판을 어떻게 다시 수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차가운 물과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고스란히 받아내며 적어도 당장은 이것들을 마르지 않게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 - P114
머나먼 곳에 있는 동료들에게까지 에탄올을 보내달라는 황급한 메시지를 보냈다. 낮이나 밤이나. 그는 학생들에게 잔디밭에 나와 자도 된다고 허락했다. 많은 학생들이 이제 벽을, 주거시설을 두려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낮이나 밤이나. 친구들과 동료들이 땅속에 묻혔다. 먼지에서 먼지로 먼지는 임시 휴전에 들어간듯 일시적으로 가라앉는 것 같더니 다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떠올라 진드기와 푸트레신과 세균들을 품고 데이비드의 연구실 창들을 통해 안으로 몰려들어, 되돌릴 수 없는 부패의 과정을 개시하겠다고 위협을 가해왔다. - P115
사람들은 물을 뿌리고 뿌리고 또 뿌렸다. 이토록 억눌리지 않는 불굴의 끈기는 어쩌면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그건 미친 짓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선에 대한 믿음을, 별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류의 가슴속에는 존재하는 따뜻함에 대한 믿음을 조용히 실행에 옮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신뢰 비슷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 차가운 물이 흩뿌려지는 빛 속에서, 48시간 이상 틀어놓은수도꼭지는 누가 봐도 위풍당당해 보였다. - P115
데이비드는 바늘에 실을 꿴 다음 바늘 끝을 파나마 망둥이의 목살에 찔러 넣어 반대쪽으로 뽑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름표를 망둥이의 살갗에 곧바로 매달았을 것이고, 그렇게 망둥이는 짠 하고 다시 존재하는 상태로 되돌려졌을 것이다. 에베르만니아 파나멘시스! 혼돈의 그 작은 덩굴손 하나가 데이비드의 가차없는 끈기 덕분에 다시 질서 속으로 돌아온 것이다. - P118
나는 점점 더 필사적으로 알고 싶어졌다. 곱슬머리 남자가 나를 떠난 지 3년이 되었고, 세계는 계속 침묵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나는 어느 결혼식장에서 그를 만났다. 우리는 포옹을 했고그의 계피 향기가 소나기처럼 내게 훅 끼쳐왔다. 그게 다였지만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언젠가는 모든 게 다 복구될 거라는, 우리의 사랑은 나의 배신에도, 떨어져 있는 몇 년, 이제 더 이상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낸 몇 년 세월에도 버틸 만큼 충분히 강할 거라는 희망을 말이다. 무언가에 대한 믿음, 말과 행동을 초월하는 실체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비록그 믿음이 의심이라는 나방에게 갉아먹힌 믿음이라 해도. - P118
샬러츠빌에 있는 내 아파트에는 커피 컵들이 불룩하게 쌓여갔다. 모든 컵이 처음에는 따뜻했고 희망으로 가득했다. 나를 이 엉망인 상태에서 빼내줄 소설에, 연애편지에, 만트라에 쓸 딱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매일 하루가 끝날 때면 커피 컵은 그을음으로 무거워져 있었다. 너무 무거워서들 수도 없었다. 머그컵들이 창틀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내가 논문을 다 썼을 무렵, 노란 벽의 다락방 같은 내 아파트는 퀭한 흙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한 까끌까끌한 보도를 따라 걸었다. 나는 폴짝 뛰었다. 내가 되고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람둥이가 아니라,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우주적 정의가 실행되는 대상이 아니라, 고향에 행복한 가정이 있는 사람이. 그러나 헤더가 남자친구와 시내로 외출한 밤, 도시의 자주색 불빛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면 나는 그 모든 것의 현실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내 인생에 생긴 공백을, 내가 품은 희망의 빛이 나를 더 따뜻이 데워줄수록 점점 더 넓어지고 차가워지기만 하는 그 공백을 말이다. 그래서였다. 나는 절박했다. 단순하게 말하자. 데이비드 스타조던의 책에서,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 P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