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너는 멀리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그러나 주말이 끝나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만 먼 곳으로

가서는 제철 음식을 먹기로 했다 초봄에 어울리는 여리고 어린 쑥과 향기로운 더덕, 살이 오른 어류들, 평소에 좋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많이 먹어본 적 없는 것들을 너는 떠올렸다

너는 인적 없는 바다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는 데 놀라며 자연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에 새삼 감탄하며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쁨은 이렇게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찾아온다

멀리 떠난 너는 죽음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너는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숨을 쉬었다 여전히 두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너는 주말이 끝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슬픔은 바닥을 뒹구는 깨진 유리병 사이에 앉아 돌아올 너를 상상하고 있었다 - P23

인화

그는 저녁을 먹다 말고 여름 계곡의 물소리가 듣고 싶다고 했다 거기에도 음악이 있다나

지난여름, 우리는 계곡의 한가운데 있었다

계곡물로 차가워진 수박과 웃고 떠드는 아이들, 여름의 빛과 근교 유원지의 나른한 소란스러움 따위로 가득한 곳

거기서 우리는 그 여름의 마지막 수박을 갈랐다 그러자 쩍 소리와 함께 시커먼 속이 보였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고 시원했지만 그다음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산속의 밤이 어두웠고 반딧불의 흐린 빛은 물위를 떠돌다 곧 사라졌다는 것만이 기억날 뿐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수박의 시커먼 속에 희고 작은 빛이 어른거리는 장면만 떠오른다

그런데 그 수박은 뭐였을까? 그가 질문을 꺼내자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이 그날의 저녁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후로 우리의 삶은 결코 해명되지 않는 작은 비밀을 끌 어안은 채로 계속된다 - P36

내가 노래를 관둬도

여기 아직 사람 있어요

중학생 때, 불 꺼진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벗어나면
오래도록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겠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러나 기다려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퇴근하는 길
사람으로 가득한 차량

이제 와서 외치거나 하지는 않지
사람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그러나 열차가 어둠 속을 달릴 때 차창에 비치는 얼굴들
왜 다 웃고 있는지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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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사람은 저마다 마음에 구멍이 있다. 그 구멍에 바람이 드나들 때를 우리는 허하다고 말하는데 혼자 있을 때면 그 구멍이 유독 더 잘 보 인다.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외로움이 혼자일 때 눈에 더 잘 띄는 것 같다. 지난 십여 년의 혼자 살이 동안 고독과 외로움은 성가신 만성질환 같다가도 점차 데리고 살 만한 반려감정이 되어갔다. - P156

좁은 방에 혼자 누워 있자면 허한 마음이 갑갑해져왔다. ‘허한 마음‘과 ‘갑갑‘이라니. 빈 곳과 옥죄는 기분이 함께 있는 건 대체 무슨 마음일까. 마음이 건강할 땐 좁은 방도 아늑했지만, 마음이 허약해질 땐 좁은 방이 구속 같고 싫었다. 할 수 있는 대로 방을 열심히 꾸며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집 밖에서 치이고 돌아와 스트레스를 그대로 껴안고 머물기에 새장처럼 작은 방은 좋은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 P160

내 방에는 창 대신 빛이 드는 베란다가 있었다. 세탁기 밖에 못 두는 좁고 퀴퀴한 베란다였지만, 그래도 낮에는 그쪽으로 들어오는 빛이 방을 밝혀주었다. 그 빛을 좋아해서 책상머리도 빛이 들어오는 쪽을 바라보게 돌려뒀다. 벽을 등진 채 앉으려면 옷장과 책상 모서리 사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했지만 그래도 햇빛이 좋았다. 친구는 그것마저 나답다고 했다. 우리는 종종 재능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지, 도달할 수 없는 답답함과 가난함 같이 답이 없는 문제를 저글링 하듯 주거니 받거니 얘기하곤 했었다. 김치찌개를 끓인 상 앞에서, 밥상 위로 코를 들 이미는 강아지를 웃음기 섞인 엄한 표정으로 얼러가며 말이다. 그 해 함께 살던 거실에는 한숨 섞인 미소와 농담들이 공기 중에 존재했다. 희뿌연 먼지들이 둥둥 떠다니는 게 보이던, 밝고 따뜻한 낮 시간의 장면들이었다. - P174

어릴 적부터 스스로를 작고, 약하고, 크지 않은 시련에도 가열차게 생채기가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런 나에게 엄마가 나를 낳아 키운 나이가 오리라고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엄마처럼 살 미래 가 내 것이라면 그런 미래 따위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30대가 된 어른으로 살고 있는 지금이 가끔 무척 신기합니다.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살아왔는지, 하루하루는 언제 이렇게 지나 있는지, 그 사이 나는 어떤 모양으로 빚어져 왔는지를 생각해봅니다. 나의 삶이 부모 세대와 일견 다르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참 다행입니다. 앞으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삶을 감당해나갈까요. 불감당 이 감당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미래의 제가 또 의연하게, 잘 빚어진 모습으로, 다소 거칠지만 견고한 보수 작업을 거치면서 더 아름다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신록의 30대를 이야기할 날이 너무 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P181

놀기 좋은 것과 살기 좋은 것은 다른 문제. 바깥이 화려할수록 집에서의 고독과 외로움은 더 무겁다. 남들처 럼 번화가 밖에 돌아갈 집이 없던 나는 늘 겉만 번지르르한 건물에 세 들어 사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포구 내 에서도 동네다운 동네는 어디일까. 여러 이름을 제외하니 그중에 성산동이 있었다. - P193

그런 얘기가 있다. 집을 구할 때 여러 지하철 역과 가깝다는 건 어느 역과도 가깝지 않다는 얘기고, 공기 좋은 집은 지대가 높아서 그렇고, 조용하게 살기 좋다는 건 주변에 편의 시설이 드물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 동네 같은 곳을 원하지만 역세권과 도심지의 편리함도 중요하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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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올라오면 빵빵대는 도로 위의 소음과 유흥가의 음악, 와글대는 사람 소리를 모두 멀찍이 발 아래에다 둘 수 있었다. 겨우 살아 남았다는 안도감에 섞인 피로, 마음처럼 능숙하지 않아 쉬이 엉겨 붙던 서글픔을 밀쳐 내려고 버둥대던 날들이었다. 소음을 딛고 저녁 신촌 하늘을 올려다보며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던 감탄 어린 탄식은 점차 고단한 푸념으로 바뀌어갔다. - P107

마포 08번의 모든 정류소는 곧 나의 목적지였다. 그 버스를 타고 많은 생각을 했고 여러 장소에 갔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혼자이기를 자처했다. 그곳에서 조용히 울기도 했고, 어느 날은 노선을 다 돌도록 내리지 않았다. 마포 08번 정류소가 내려다보이던 어느 2층 카페 창가 자리를 그 카페가 사라지기 전까지 무척 좋아했었다. 상심이 큰 날엔 그 2층 창가 아래에 잠깐 서 있다 떠나는 마포 08번을 수십 대나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참 아무렇고 이상한 위로였다.
그렇게 마포 08번은 어디론가 가고 싶지만 어디를 가면 좋을지 몰라 혼자 방황하던 나의 동선을 사소한 관성으로 이끌었다. 정처 없이 흩어지는 발걸음을 마포 08번 이 자신의 반경 속으로 동그랗게 끌어당겼다. 이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생각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절반쯤 쓸쓸하지 않았다. - P124

버스로 10분, 걸으면 30분 정도 걸릴 거리를 매일 빙빙 둘러 걷느라 집에 가는 데 한 시간 이상씩 걸렸다. 퇴근 후 약속 없이도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게 좋았다. 마음 에 드는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숨통을 틔우고, 턱 없이 부족하다 느껴지는 나의 능력과 쓸모를 의심하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밝아질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너무 많은 생각에 다시 어두워질지언정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내게 꼭 필요한 일과였다. 응어리진 마음으로 곧장 집에 가기에는 내 방이 너무 성냥갑처럼 작았으니까. 쉴 틈도 없이 곧장 그 작은 방에 가고 싶진 않았다. - P125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방의 짐들을 조금 우려스럽게 만 생각했지 ‘그래도 이 정도면 옮길 만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짐을 건드려보니 가볍게 생각할 게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버는 족족 책과 잡지를 사 보고 있었다. 사 모으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방에 그것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으니까. 내가 책과 잡지를 사 모으는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갈망, 동경, 불안, 불만족 같은 감정의 복합체. 그 감정들은 전부 조바심을 향하고 있었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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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힘들고 누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그때, 무엇이 보고 싶은지도 모른 채 무언가 보고 싶었다. 아플 때마다 뭐가 그리운지도 모르게 그리운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서러움이 어딘가 향할 곳이 있기를 바랐다. 그러면 이불 속에서 앓는 마음이 조금은 견딜 만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대상도 없는 막연한 그리움을 꼭 끌어안은 채 이불 속을 파고들면 살갗과 이불이 맞닿은 그 미세한 틈 사이로 한기가 새어들어왔다. 독감 끝물에 한 엄마와의 통화에선 그냥 지나가던 감기였다고만 말했다. - P50

2006년 11월에 처음 메일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XX년 XX월 마지막 메일링을 받기까지, 한 공간이 건재했다가 사라지는 시간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오래도록 형체도 모른 채 내밀하게 간직해왔던 ‘장소‘와 ‘공간‘ 에 대한 관심은 아마 그때 처음 불거져 나온 걸지도 모른다. 섬들이 모여 이룬 군도. 내가 머무는 방이 아주 작고 누추한 본 섬이라면, 집 밖에도 내가 편하게 오갈 수 있는 다른 섬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살만 한 곳을, 내 것 같은 공간을 찾아내기 위해 어디서든 살아나 보자 싶던 결심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내 다음 거처를 궁금해하는 마음은 모험심과도 닮아 있었다. 지금까지 그때의 시간을 기억하는 건 그 온기에 기댄 감각이 잠깐이지만 진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도시이방인으로서, 때때로 도시여행자로서 사람이 머무는 곳을 떠돌아더니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 P59

물론 예쁜 커튼을 걸고 싶은 욕심도 이따금씩 들었다. 나름 감당할 만한 가격에 괜찮은 디자인의 커튼을 골라 위시리스트와 장바구니에 야심차게 담은 것도 여러 번. 하지만 늘 커튼보다 시급하거나, 돈을 지불하기 더 가치 있는 물품들을 떠올리며 결제 앞에서 망설였다. 그러는 동안 내 커튼이 될 뻔한 물건들은 장바구니에서 자동 삭제되거나 품절되곤 했다. 버릇이라면 버릇, 미련하다면 미련한 짓이었는데 장바구니에서 없어지고 나면 이상하 게 아쉽기보다는 차라리 잘 됐다는 마음이 매번 들었다. - P79

에어컨도 없는 비좁은 집에서 선풍기 하나로 열대야와 온열 증세를 묵묵히 견디던 스물다섯 살의 여름과 고독. 젊고 가진 거 없는 세입자와 나이 들고 가진 게 많은 임대인의 자격으로, 나는 나 자신과 할머니를 분리해서 비교하고 있었다. 가진 것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고, 무슨 재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마당에 월세를 건네러 할머니 앞에만 서면 어쩐지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비교였지만 그랬다. 일흔쯤 돼보 이시던 주인집 할머니는 가늠할 수 없는 긴 시간을 건너 마치 처음부터 ‘주인집 할머니‘였던 것처럼 내 눈앞에 있었으니까. 친할머니나 외할머니를 봐도 나이 들어서의 내 모습을 대입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셈을 하는 주인집 할머니의 정정한 모습을 보면서 내 노년의 삶에 있을 수 있는 구체적인 생활을 짐작해보고 있었다. - P85

모든 경험은 경험할 가치가 있다고 애써 맹신했다. 그래야 내가 겪는 고생을 덜 억울해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맹신은 일종의 부적 같은 것이다. 부러 겪지 않아도 될 경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듬성듬성 그물지었던 나의 체념과 염세의 세계가 해체될까 봐, 체념으로 버텨온 내가 그대로 무너질까 봐 너무 두려웠다. 삶이 너무 누추해서 내 것이라 하고 싶지 않았다. - P95

조금 더 집다운 집에 살았다면 삶이 좀 더 살만해졌을까. 덜 아팠을까. 상관관계야 있겠지만 몸이 사는 집만큼 마음이 사는 집이 어떤 상태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녹록지 않은 생활을 버텨냈더니 나는 나에게 좀 더 잘해주고 싶어졌다. 적어도 몸이 사는 집이 누추하다는 이유로 마음 집까지 해치고 싶진 않았다. 마음이 건강하면 누추한 집의 삶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염세와 체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비관을 줄 여나가고, 보잘 것 없는 와중에도 소중한 것들을 만들어 두려하고, 그런 동시다발적인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천천히 일어나는 동안 곁에는 간간히 사람이 있었다. 내 손으로 두 눈을 가린 채 어둡다고 웅크리 진 말자고 했다. 어둠 속을 혼자 견뎌야 할 때도 문을 열면 거기에 도와줄 누군가 있을 거라고 훈련하듯, 학습하 듯 생각하려 했다.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너무 고단해서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감당하기 쉬워지고 싶어서 되든 안 되든 애를 써나갔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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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중에 배어 있는 불편함을 적절히 무시하거나 견디지 못한다면 원룸텔과 같은 성냥갑 생활은 더 숨 막히게 나를 옥죄일 것이었다. 적응하거나 무뎌지는 수밖에 없었다. 초반에는 부엌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목례 정도는 했었지만 나중에는 눈과 입과 귀를 다 닫고 살았다. 될 수 있는 한 나 자신이 타인에게도 그림자였으면, 무엇보다 타인이 나에게 그림자보다도 못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좁은 방보다 더 비좁고 답답하게 느껴지던 게 바로 원룸텔 공동생활 구역이었다. 좁은 내 방이 내겐 가장 편한 곳이었다. - P35

앞으로 얘기하게 될 세 번째 원룸텔에서의 기억인데, 거기는 총무를 따로 두지 않고 사장님이 직접 관리하는 곳이었다. 잘 관리된 본인 원룸텔에 꽤 자부심이 있는 분이었고 그 자부심의 근거로 든 것 중의 하나가 ‘우리는 중국인은 받지 않는다‘였다. 왜냐고 물으니 사장님의 경우에는 몇몇 중국인 유학생들을 받으면서 겪은 인상들이 모든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은 것이었다. 쾌적한 원룸텔을 자랑하면서 내세운 근거가 고작 그런 이유라니. 하지만 사장님의 노골적인 태도를 무례하다고 느끼는 나 역시 이전 원룸텔에서 괜한 심증 을 품었던 이력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 말을 검증된 정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약간 불편하게 생각하고 지나쳤던 그 모순적인 마음을 이 책을 쓰면서 다시 되새겨보니 나 자신의 무지함에 낯이 뜨거워진다. 종특이라는 말이 공공연한 시대에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대상을 범주화하고 낮춰보는 일이 숨 쉬듯 이루어진다. 잘못된 줄도 모르게, 잘못되었는지 검증할 틈도 없이 말이다. ‘다들 그러니까‘, ‘공공연한 일이니까‘로 치부되는 것들을 머리 힘 바짝 주고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할 텐데. 아직 갈 길이 멀다. - P42

싫은 환경과 적당히 화해하는 데에 요령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는 아니고, 그 당시에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언젠가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에게서 ‘꿈을 이루는 데에 방해가 있다면 너는 부술 거냐, 타협할 거냐‘라는 맥락의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나는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다면 타협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다. 그때 친구는 내 대답이 실망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타협이라도 잘 해내고 싶었던 나는 싫으면 싫은 감정이 얼굴에 다 티가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말이라도 ‘타협해야지‘라고 말하면 싫은 환경 앞에서 불같이 화내거나 악을 쓰거나 비겁하게 도망치는 대신, 좀 더 세련된 대처 방식을 학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답한 ‘타협‘이란 단어는 화해와 협상의 의미였지만 표면적으로는 타성에 젖은 인상이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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