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힘들고 누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그때, 무엇이 보고 싶은지도 모른 채 무언가 보고 싶었다. 아플 때마다 뭐가 그리운지도 모르게 그리운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서러움이 어딘가 향할 곳이 있기를 바랐다. 그러면 이불 속에서 앓는 마음이 조금은 견딜 만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대상도 없는 막연한 그리움을 꼭 끌어안은 채 이불 속을 파고들면 살갗과 이불이 맞닿은 그 미세한 틈 사이로 한기가 새어들어왔다. 독감 끝물에 한 엄마와의 통화에선 그냥 지나가던 감기였다고만 말했다. - P50

2006년 11월에 처음 메일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XX년 XX월 마지막 메일링을 받기까지, 한 공간이 건재했다가 사라지는 시간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오래도록 형체도 모른 채 내밀하게 간직해왔던 ‘장소‘와 ‘공간‘ 에 대한 관심은 아마 그때 처음 불거져 나온 걸지도 모른다. 섬들이 모여 이룬 군도. 내가 머무는 방이 아주 작고 누추한 본 섬이라면, 집 밖에도 내가 편하게 오갈 수 있는 다른 섬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살만 한 곳을, 내 것 같은 공간을 찾아내기 위해 어디서든 살아나 보자 싶던 결심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내 다음 거처를 궁금해하는 마음은 모험심과도 닮아 있었다. 지금까지 그때의 시간을 기억하는 건 그 온기에 기댄 감각이 잠깐이지만 진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도시이방인으로서, 때때로 도시여행자로서 사람이 머무는 곳을 떠돌아더니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 P59

물론 예쁜 커튼을 걸고 싶은 욕심도 이따금씩 들었다. 나름 감당할 만한 가격에 괜찮은 디자인의 커튼을 골라 위시리스트와 장바구니에 야심차게 담은 것도 여러 번. 하지만 늘 커튼보다 시급하거나, 돈을 지불하기 더 가치 있는 물품들을 떠올리며 결제 앞에서 망설였다. 그러는 동안 내 커튼이 될 뻔한 물건들은 장바구니에서 자동 삭제되거나 품절되곤 했다. 버릇이라면 버릇, 미련하다면 미련한 짓이었는데 장바구니에서 없어지고 나면 이상하 게 아쉽기보다는 차라리 잘 됐다는 마음이 매번 들었다. - P79

에어컨도 없는 비좁은 집에서 선풍기 하나로 열대야와 온열 증세를 묵묵히 견디던 스물다섯 살의 여름과 고독. 젊고 가진 거 없는 세입자와 나이 들고 가진 게 많은 임대인의 자격으로, 나는 나 자신과 할머니를 분리해서 비교하고 있었다. 가진 것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고, 무슨 재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마당에 월세를 건네러 할머니 앞에만 서면 어쩐지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비교였지만 그랬다. 일흔쯤 돼보 이시던 주인집 할머니는 가늠할 수 없는 긴 시간을 건너 마치 처음부터 ‘주인집 할머니‘였던 것처럼 내 눈앞에 있었으니까. 친할머니나 외할머니를 봐도 나이 들어서의 내 모습을 대입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셈을 하는 주인집 할머니의 정정한 모습을 보면서 내 노년의 삶에 있을 수 있는 구체적인 생활을 짐작해보고 있었다. - P85

모든 경험은 경험할 가치가 있다고 애써 맹신했다. 그래야 내가 겪는 고생을 덜 억울해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맹신은 일종의 부적 같은 것이다. 부러 겪지 않아도 될 경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듬성듬성 그물지었던 나의 체념과 염세의 세계가 해체될까 봐, 체념으로 버텨온 내가 그대로 무너질까 봐 너무 두려웠다. 삶이 너무 누추해서 내 것이라 하고 싶지 않았다. - P95

조금 더 집다운 집에 살았다면 삶이 좀 더 살만해졌을까. 덜 아팠을까. 상관관계야 있겠지만 몸이 사는 집만큼 마음이 사는 집이 어떤 상태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녹록지 않은 생활을 버텨냈더니 나는 나에게 좀 더 잘해주고 싶어졌다. 적어도 몸이 사는 집이 누추하다는 이유로 마음 집까지 해치고 싶진 않았다. 마음이 건강하면 누추한 집의 삶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염세와 체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비관을 줄 여나가고, 보잘 것 없는 와중에도 소중한 것들을 만들어 두려하고, 그런 동시다발적인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천천히 일어나는 동안 곁에는 간간히 사람이 있었다. 내 손으로 두 눈을 가린 채 어둡다고 웅크리 진 말자고 했다. 어둠 속을 혼자 견뎌야 할 때도 문을 열면 거기에 도와줄 누군가 있을 거라고 훈련하듯, 학습하 듯 생각하려 했다.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너무 고단해서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감당하기 쉬워지고 싶어서 되든 안 되든 애를 써나갔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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