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사람은 저마다 마음에 구멍이 있다. 그 구멍에 바람이 드나들 때를 우리는 허하다고 말하는데 혼자 있을 때면 그 구멍이 유독 더 잘 보 인다.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외로움이 혼자일 때 눈에 더 잘 띄는 것 같다. 지난 십여 년의 혼자 살이 동안 고독과 외로움은 성가신 만성질환 같다가도 점차 데리고 살 만한 반려감정이 되어갔다. - P156
좁은 방에 혼자 누워 있자면 허한 마음이 갑갑해져왔다. ‘허한 마음‘과 ‘갑갑‘이라니. 빈 곳과 옥죄는 기분이 함께 있는 건 대체 무슨 마음일까. 마음이 건강할 땐 좁은 방도 아늑했지만, 마음이 허약해질 땐 좁은 방이 구속 같고 싫었다. 할 수 있는 대로 방을 열심히 꾸며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집 밖에서 치이고 돌아와 스트레스를 그대로 껴안고 머물기에 새장처럼 작은 방은 좋은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 P160
내 방에는 창 대신 빛이 드는 베란다가 있었다. 세탁기 밖에 못 두는 좁고 퀴퀴한 베란다였지만, 그래도 낮에는 그쪽으로 들어오는 빛이 방을 밝혀주었다. 그 빛을 좋아해서 책상머리도 빛이 들어오는 쪽을 바라보게 돌려뒀다. 벽을 등진 채 앉으려면 옷장과 책상 모서리 사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했지만 그래도 햇빛이 좋았다. 친구는 그것마저 나답다고 했다. 우리는 종종 재능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지, 도달할 수 없는 답답함과 가난함 같이 답이 없는 문제를 저글링 하듯 주거니 받거니 얘기하곤 했었다. 김치찌개를 끓인 상 앞에서, 밥상 위로 코를 들 이미는 강아지를 웃음기 섞인 엄한 표정으로 얼러가며 말이다. 그 해 함께 살던 거실에는 한숨 섞인 미소와 농담들이 공기 중에 존재했다. 희뿌연 먼지들이 둥둥 떠다니는 게 보이던, 밝고 따뜻한 낮 시간의 장면들이었다. - P174
어릴 적부터 스스로를 작고, 약하고, 크지 않은 시련에도 가열차게 생채기가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런 나에게 엄마가 나를 낳아 키운 나이가 오리라고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엄마처럼 살 미래 가 내 것이라면 그런 미래 따위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30대가 된 어른으로 살고 있는 지금이 가끔 무척 신기합니다.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살아왔는지, 하루하루는 언제 이렇게 지나 있는지, 그 사이 나는 어떤 모양으로 빚어져 왔는지를 생각해봅니다. 나의 삶이 부모 세대와 일견 다르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참 다행입니다. 앞으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삶을 감당해나갈까요. 불감당 이 감당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미래의 제가 또 의연하게, 잘 빚어진 모습으로, 다소 거칠지만 견고한 보수 작업을 거치면서 더 아름다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신록의 30대를 이야기할 날이 너무 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P181
놀기 좋은 것과 살기 좋은 것은 다른 문제. 바깥이 화려할수록 집에서의 고독과 외로움은 더 무겁다. 남들처 럼 번화가 밖에 돌아갈 집이 없던 나는 늘 겉만 번지르르한 건물에 세 들어 사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포구 내 에서도 동네다운 동네는 어디일까. 여러 이름을 제외하니 그중에 성산동이 있었다. - P193
그런 얘기가 있다. 집을 구할 때 여러 지하철 역과 가깝다는 건 어느 역과도 가깝지 않다는 얘기고, 공기 좋은 집은 지대가 높아서 그렇고, 조용하게 살기 좋다는 건 주변에 편의 시설이 드물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 동네 같은 곳을 원하지만 역세권과 도심지의 편리함도 중요하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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