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흘리고 있는 피야.」 그는 거의 미친 듯이 그 말을 잡아챘다. 지금도 흐르고 있고, 언제나 세상에서 폭포수처럼흘렀던 피, 샴페인처럼 흐르고 있는 피, 덕분에 카피톨리움 신전에서 월계관을 쓰고, 훗날 인류의 은인으로 칭송받게 한 그 피야. 그래, 똑바로 쳐다봐, 잘 들여다보란 말이야! 난 사람들을 위해서 선을 원했던 거야. 나 자신은 이 어리석은 일, 아니 어리석다기보다는 그냥 적절치 못했던 이 일 대신에 수백, 수천 가지의 착한 일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왜냐하면 내 사상은 실패한 지금에 와서 생각하듯이 그렇게 어리석은 것만은 전혀 아니니까…… (실패했을 경우에는 모든 것이 어리석게 보이지!) 그 어리석은 행위를통해 난 다만 나 자신을 독립적인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는 자금을 얻기 위한 첫걸음을 떼고싶었던 것뿐이야. 그렇게 되었더라면 모든 일은 그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무한한 이로움을 안겨주어서 모든 것을 상쇄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난, 난 그 첫걸음을 견뎌낼 수가 없었던 거야. 왜냐하면 난 비열한 녀석이니까! 바로 이게 문제의 전부야! 어쨌든 너희들의 생각대로 세상을 보지는 않을 거야. 만일 내가 성공했더라면, 내게 월계관을 씌워 주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난 지금 함정에 빠져 있으니!」 - P763

「아! 형식이 이래서는 안 되었어. 내가 행한 일이 그렇게 미학적으로 훌륭한 형식은 아니었어! 하지만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왜 폭탄으로, 포위 공격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더 존경할만한 형식이라고 하는 거지? 미학적인 두려움은 무력함의 첫 번째 징후야……! 난 이것을 지금보다 더 명확하게 의식해 본 적은한 번도 없어. 그리고 난 지금보다 더 나의 범죄를 잘 이해한 적은없어! 난 지금보다 더 나의 범죄에 대해 강한 확신을 느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 P764

「모두, 모든 것이. 그런데 난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나 자신은 과연 이걸 원하고 있는 걸까? 나의 시련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 그런데 왜, 왜 이 쓸데없는 시련이 필요하다는 거지? 왜 그것들이 필요한 거지? 20년동안의 유형 생활 이후에 늙어 빠져서 힘없고 고통에 찌들어 백치가 다 되고 난 다음에 깨닫는 것이 지금 깨닫는 것보다 더 낫다는건가? 그렇다면 내가 왜 살아야 하는 거지? 그런데 지금은 내가왜 그렇게 살겠다는 데 동의하는 걸까? 아아, 오늘 새벽 네바 강위에 서 있을 때 나는 내가 비열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 P766

<나는 나쁜 놈이야, 나도 알아. 그는 두냐에게 불만스러운 손짓을 한 지 1분쯤 후에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나를 이렇게사랑하는 걸까, 난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인데! 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만약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도 결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이 모든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15년이나 20년이 흐르고 나면, 내 영혼이 유순해져서, 말끝마다 스스로를 도둑놈이라고 칭하며 사람들 앞에서 흐느끼게 될까? 그래, 바로 맞아. 그렇게 될 거야! 이것을 위해서 그들은 지금 나를 유형 보내려고 하는 거야. 바로 이게 필요한 거야…… 놈들은 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니고 있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비열한 인간들이고, 본질적으로 도둑놈들이다. 아니, 그보다 더 나쁜 멍청이들이다! 내가 유형이라도 면하게 되면, 이들은 의분에 못 이겨 날뛰겠지! 오, 난 얼마나 그들을 증오하는지 모른다!〉 - P766

그는 벌써 그녀를 잊고 있었다. 한 가지 적의에 가득찬 반항적인 의심만이 그의 영혼에서 끓어올랐다.
<모든 일이 이렇게, 이렇게 끝난단 말인가?> 그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또다시 생각했다. <정말로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슬쩍 넘어가면 안 되는 걸까……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 P771

<그런데, 왜, 무슨 목적으로 나는 그녀에게 지금 갔을까? 난 말했었지, 볼일이 있어서 왔다고. 그런데 무슨 일이었지? 아무 일도 없었지 않았나! 《간다는 것을》 알리려고 갔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그게 무슨 필요가 있었던 걸까? 내가 그 여자를 사랑하기라도 하나? 아니, 아니지 않은가? 난 지금 그 여자를 개 내몰듯이 쫓아 버리지 않았나? 소냐에게서 십자가를 받는 것이 정말로 내게 필요했던 것일까? 오, 난 정말로 밑바닥까지 추락해 버렸구나! 아냐, 내겐 그 여자의 눈물이 필요했던 거야. 그 여자의 겁먹은 표정을 보는 것이 필요했고, 그 여자의 마음이 아프게 찢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던 거야! 무슨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서 시간을 끌고싶었던 거야. 사람을 보고 싶었던 거야! 이런 내가 감히 자기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꿈을 꾸었다니! 난 비열하고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난 비열한 놈이다, 비열한 놈!> - P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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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쨌든 구제 불능의 파렴치한은 아닙니다. 전혀 그런 파렴치한이 아니에요! 적어도 오랫동안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단숨에 막다른 골목까지 이른 겁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만일 당신이 신앙이나 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은 창자를 찢긴다 해도 꿋꿋이 서서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의 얼굴을 미소를 띠고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자, 이제 발견도 하고, 찾기도 하십시오. 우선 당신은 진작 공기를 바꿔야 했어요. 어떨까요? 고난도 역시 좋은 일이겠지요. 고난을 받으십시오. 고난을 원하는 니꼴라이가 어쩌면 옳은 건지도 모릅니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교활하게 머리를 짜내지도,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삶 속으로 뛰어드십시오. 그러면 곧장 당신은 어떤 해안에 도달해서 두 다리로 서게 될겁니다. 어떤 해안이냐고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난 단지 당신은 아직 더 살아야 한다고 믿을 뿐입니다. - P676

당신은 마음을 크게 먹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곧 있을 위대한 실천 때문에 겁을 먹었나요? 겁을 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만일 그런 첫걸음을 내디뎠다면, 강해지셔야지요. 이건 정의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정의가 요구하는 것을 행하십시오.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맹세코 삶이 당신을 이끌어 줄 겁니다. 나중에는 스스로도 마음에 들게 될 거예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공기입니다. 공기, 공기! - P677

아브도찌야 로마노브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순교의 고난을 감당해 낼 그런 여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빨갛게 달군 쇠창살로 가슴을 지진다 해도 미소를 지을 그런 여인입니다. 자청해서 일부러라도 그 길을 갔을 여자입니다. 4세기나 5세기였다면 이집트의 사막으로 나가서, 30년 동안 풀뿌리만 먹고 살면서도 환희를 느끼며 환상 속에서 살아갈 여인입니다. 당신의 누이동생이 갈망하고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누구를 위해서도, 무엇을 위해서도 좋으니 속히 고통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만일 그녀에게 그 고통을 주지 않는다면, 그녀는 창밖으로라도 뛰어내릴 겁니다. - P700

당신도 상당한 냉소주의자로군요. 적어도 그럴 소지가 아주 많아요. 당신은 많은 걸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많은 걸・・・・ 그리고 많은 것을 실행할 수도 있고요 - P712

「아브도찌야 로마노브나, 이런 일에는 수천 수백만 가지의 배합과 분류가 있습니다. 도둑은 도둑질을 하지만, 그 대신 마음속으로는 자기가 파렴치한 놈이라는 걸 알고 있지요. 나는 어떤 고상한 신사가 우체국을 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는 자기가 정말 올바른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물론 나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얘기를 들었다면 당신과 마찬가지로 믿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자기의 귀는 믿지 않을 수 없더군요. 당신의 오빠는 소피야 세묘노브나에게 모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 아가씨도 처음에는 자기 귀를 의심하더니만, 결국은 눈, 자기 눈은 믿더라고요. 당신 오빠가 직접 그 아가씨에게 말했으니까요.」 - P723

「범죄라고? 어떤 범죄 말이냐?」 그는 갑작스럽게 격분해서 외쳤다. 「내가 더럽고 해로운 <이>같은 존재, 아무에게도 필요치 않은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죽인 범죄 말이냐?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즙을 빨아먹은 그 여자를 죽였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40가지의 죄도 용서해 줄 거야. 과연 그런 게 범죄일까? 난 그런 것에대해서는 생각지 않아 죄를 씻을 생각도 없어. 모두들 사방에서내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말하지, <범죄다, 범죄다!>라고. 하지만, 그 불필요한 수치를 향해 가기로 결심한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는 내 소심함과 어리석음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어! 난 단지 비열함과 무능함 때문에 가려고 결심한 거야. 그리고 또 그…… 뽀르피리가 제안한 것처럼 그것이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 - P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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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병적인 상태에 대해 염려할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끊임없는 불안과 정신적인 괴로움이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가 아직 진짜 열병에 걸려 쓰러지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 끊임없는 내적인 불안이 그의 두 다리를 지탱해주고, 일정 시간까지 그의 의식을 억지로라도 붙들어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626

죽음을 의식하고,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때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한 신비스러운 공포를 체험하곤 했다. 그리고 진혼 기도를 듣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무언가 다른 것, 너무나도 무섭고 불안한 어떤 것이 있었다. - P648

1백 마리의 토끼로 결단코 말[馬]을만들 수 없고, 1백 가지의 혐의가 결코 증거가 될 수가 없다는 영국 속담이 있지요. 그러나 이건 분별을 가지고 생각할 경우의 얘기입니다. 신경이 곤두섰을 때는 그게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일이지요. 예심 판사도 사람이니까요. - P664

당신은 정말 참을성이 없고 아주 병적인 분이에요, 로지온 로마노비치, 당신은 대담하고 거만하고 진지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분입니다. 저는 그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런 느낌은 내게 익숙한 것이고, 그래서 나는 당신의 논문을 친근하게 읽었던 거지요. 잠이 오지 않는 밤에 극도로 흥분된 상태에서 그 논문은 구상된 것이더군요. 터질 것 같이 고동치는 심장과 억눌린 열정으로 쓰인 논문입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그런 억눌린 오만한 열정은 위험한 것이지요! 난 그때 당신을 조롱했습니다만, 지금은 당신에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대체로 젊은이의 열정적인 처녀작을 좋아하는 사람, 정말 그런 것을 지독할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건 뿌연 연기와 안개, 그 속에서 울리는 현악기의 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당신의 논문은 불합리하고 공상적이지만, 그 속에는 진실성이 담겨 있습니다. 그 속에는 청년의 청렴결백한 기상과 절망적인 용기가 담겨있습니다. 그 논문은 암울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암울함도 훌륭합니다. - P664

로지온 로마노비치, 그들에게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고난을당하는 것이 필요한 겁니다. 그건 고난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지요. 그러니 하물며 국가 권력으로부터 받는 고난이라면 더할나위가 없겠지요. - P669

이건 환상적이고 암울한 사건, 현대적인 사건, 인간의 마음이 혼미해진 시대, 피가 <맑아진다느니 하는 말이 인용되고, 편안함이야말로 인생의 전부라고 선전되는 우리 시대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는 탁상공론, 이론에 자극을 받은 심리가 보입니다. 여기에서는 첫걸음을 내딛는 단호함이 엿보입니다. 특별한 종류의 단호함이지요. 마치 산에서 떨어지고, 종루에서 뛰어내리듯이 단호한 결심을 했지만, 결국 범죄를 저지를 때는 제정신으로 한 일이 아닙니다. 죽일 때 자기 뒤에 문을 잠그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두 사람 다 이론에 따라 죽인 겁니다. 죽였는데, 결국에는 훔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겨우 손에 쥔 것들도 돌 밑에 숨겨 버리고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종을 울릴 때 문 뒤에 서서 겪은 괴로움만으로도 부족해서, 나중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그 종소리를 기억하기 위해 그는 그 텅 빈 아파트로 갔던 겁니다. 다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맛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거지요…………. 그게 모두 병 때문이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사람을 죽여 놓고는, 자기는 스스로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며 창백한 천사처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 P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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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쩨리나 이바노브나는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당사자가 무안해질 정도로 아주 거창하고 환한 빛깔로 치장해 주고, 칭송해 대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는 이를 위해서 전혀 있지도 않은 여러가지 상황을 꾸며 내서는 자기도 그것을 진심으로 믿어버리곤 했다. 그러다가는 금세 환멸을 느끼고,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진실로 숭배하던 그 사람을 헐뜯으면서 욕을 퍼붓고 떼밀어 내쫓아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천성적으로 그녀는 잘 웃고 명랑하고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끊임없는 불행과 낭패를 겪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평화와 기쁨 속에서만 살기를 감히 다른 모습으로는 살지 않기를 너무나도 강렬하게 원하고 강요하게 되어서, 아주 작은 불화나 사소한 실패만 봐도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가장 밝은 희망과 환상을 품다가도, 다음 순간 갑자기 운명을 저주하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찢고 던지며 머리를 벽에 박아 버리는 것이었다. - P557

천성적으로 소심한 소냐는 예전에도 자기가 누구보다도 더 쉽게 파멸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누구든 대가를 치르는 일 없이 그녀를 쉽게 모욕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고 온순하고 고분고분하게 대하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느낀 절망은 너무나도 견디기힘든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모든 일을, 심지어 이런 일마저 아무 불평 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 순간은 너무나도 힘겨운 것이었다. 자신의 결백이 입증되어 누명을 벗었는데도, 처음 느꼈던 경악과 충격이 사라지고 이제 모든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깨닫게 되자, 의지할 데 없이 나약한 자신의 처지와 모욕감이 그녀의 심장을 고통스럽게 파고들었다. - P594

「내가 하느님의 섭리를 어떻게 알겠어요…… 당신은 왜 해서는 안 될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일이 내 결정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지요? 누구는 살아야 하고, 누구는 죽어야 한다고 심판할 권리를 누가 내게 주었나요?」

왜 나는 이렇게 어리석은 걸까? 만일 다른 사람들이 어리석고, 내가 그들이 어리석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나는 왜 자신만이라도 더욱 영리해지려고 하지 않는 걸까? 그다음에 나는 깨달았어, 소냐. 만일 모든 사람들이 똑똑해지기를 기다린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어쩌면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지도 모르지. 사람들은 변하지 않을것이며, 그들을 개조할 사람은 누구도 없다고, 그러니 애쓸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래, 바로 맞아! 그게 인간의 법칙이야…… 법칙, 소냐! 바로 그래…! 그리고 난 알아, 소냐, 머리와 정신이 견고하고 강한 사람이라야만 사람들의 주권자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야! 더 많이 용기를 내어 일을 감행하는 사람만이 사람들 눈에는 옳아 보이는 거야.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하는 자만이 그들의 입법자가 되고, 더 많은 일을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 그 누구보다도 옳은 사람이 되는 거야!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눈먼 사람들만이 그것을 모를 뿐이지!」 - P613

나는 그때 알고 싶었던 거야, 어서 알고 싶었어.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이>인가, 아니면 인간인가를 말이야. 내가 선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아니면 넘지 못하는가! 나는 벌벌 떠는 피조물인가, 아니면 권리를 지니고 있는가…… - P615

인간은, 본질적으로 울 까닭이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면, 그녀가 우는 것을 멈추게 될 거라고요. 이건 분명한 일입니다. 당신은 멈추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사는게 너무 쉽겠군요.」 라스꼴리니꼬프가 대답했다. - P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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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런 상태에서 살면서, 물에 빠져 죽을 힘도 부족했다면, 왜 미치지 않았을까? 물론 그는 소냐의 상황이 불행하게도 유일하게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연한 현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상황의 우연성, 그녀가 받은 약간의 교육과 그때까지의 그녀의 삶이 그 혐오스러운 길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곧장 그녀를 파멸시켜 버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무엇이 그녀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일까? 음탕한 생활을 즐기는 건 아닐까? 이 온갖 치욕은 분명 그녀를 기계적으로만 건드렸을 뿐이고, 진정 음란한 마음은 아직 한 방울도 그녀의 심장 속을 파고들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그 앞에 실제로 서 있지 않은가………. - P472

라스꼴리니꼬프는 그녀에게 몸을 돌리고 흥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역시 그랬다! 그녀는 정말로 오한이라도 난 듯이 이미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전대미문의 가장 위대한 기적에 대한 말에 다가가고 있었고, 엄청난 승리감에 사로잡혔다. 그녀의 목소리는 금속처럼 낭랑해졌고, 승리감과 기쁨이 그 속에서 울리며 목소리를 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읽고 있던 글자 모양이 그녀 앞에서 흔들렸지만, 그녀는 자기가 읽고 있는 부분을 완전히 외우고 있었다. - P479

부숴야 할 것은 단번에 때려 부수어 버려야해, 그러면 돼. 그리고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는 거야! 뭐라고?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나중에 이해하게 되겠지……. 자유와 권력,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권력이야! 떨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과 모든 개미 군단들에 대한 권력…………! 그것이 목적이야! 이것을 잘 기억해 둬! 이것이 내 이별 선물이니까! - P482

<모든 것이 서로 다른 양 끝을 가리키고 있다. 서로 다른 양 끝을.> 라스꼴리니꼬프는 이렇게 반복해서말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원기 왕성하게 방을 나섰다.
<이제부터 또다시 싸워 보자.> 그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독기 어린 비웃음을 머금고는 이렇게 말했다. 증오심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소심함을 상기하고는 경멸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 P525

상처받은 자존심이 검은 뱀처럼 그의 심장을 밤새도록 빨아댔다. - P529

여기에는 가난한 사람들 특유의 자존심이 개입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자존심 때문에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오직 <남에게 뒤지지 않기 > 위해서, 그리고 어떻게든 남들의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겠다는 일념하에,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의무적으로 행하는 몇몇 사회적인 의식에 마지막 힘을 모아 여태껏 모아 두었던 마지막 한 닢까지도 다 탕진해버리는 것이다. 까쩨리나 이바노브나는 세상 모든 이로부터 버림받은 것만 같은 그 순간에, 바로 그 상황에서 이 <형편없고 환멸스러운 세입자들 모두에게〉, 자기가 <훌륭한 삶의 방식도 알고있고, 손님을 대접할 줄도 알 뿐 아니라〉, 절대 이런 운명에 따라살도록 양육받지 않았으며, <고결하고, 어쩌면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대령의 가정에서 자라나, 자기 손으로 마루를 닦고, 밤마다 아이들의 걸레 같은 옷을 빨며 살 신세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것이 더 타당한 해석일지 모른다. 이런 자존심과 허영심의 발작은 때로 몹시 가난하고 짓밟힌 사람들에게도 찾아들어, 자칫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초조한 욕구로 변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까쩨리나 이바노브나는 짓밟힐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환경은 그녀를 육체적으로 완전히 죽일 수는 있을지언정, 정신적으로 파괴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즉, 그녀를 위협해서 굴복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P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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