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흘리고 있는 피야.」 그는 거의 미친 듯이 그 말을 잡아챘다. 지금도 흐르고 있고, 언제나 세상에서 폭포수처럼흘렀던 피, 샴페인처럼 흐르고 있는 피, 덕분에 카피톨리움 신전에서 월계관을 쓰고, 훗날 인류의 은인으로 칭송받게 한 그 피야. 그래, 똑바로 쳐다봐, 잘 들여다보란 말이야! 난 사람들을 위해서 선을 원했던 거야. 나 자신은 이 어리석은 일, 아니 어리석다기보다는 그냥 적절치 못했던 이 일 대신에 수백, 수천 가지의 착한 일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왜냐하면 내 사상은 실패한 지금에 와서 생각하듯이 그렇게 어리석은 것만은 전혀 아니니까…… (실패했을 경우에는 모든 것이 어리석게 보이지!) 그 어리석은 행위를통해 난 다만 나 자신을 독립적인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는 자금을 얻기 위한 첫걸음을 떼고싶었던 것뿐이야. 그렇게 되었더라면 모든 일은 그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무한한 이로움을 안겨주어서 모든 것을 상쇄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난, 난 그 첫걸음을 견뎌낼 수가 없었던 거야. 왜냐하면 난 비열한 녀석이니까! 바로 이게 문제의 전부야! 어쨌든 너희들의 생각대로 세상을 보지는 않을 거야. 만일 내가 성공했더라면, 내게 월계관을 씌워 주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난 지금 함정에 빠져 있으니!」 - P763

「아! 형식이 이래서는 안 되었어. 내가 행한 일이 그렇게 미학적으로 훌륭한 형식은 아니었어! 하지만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왜 폭탄으로, 포위 공격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더 존경할만한 형식이라고 하는 거지? 미학적인 두려움은 무력함의 첫 번째 징후야……! 난 이것을 지금보다 더 명확하게 의식해 본 적은한 번도 없어. 그리고 난 지금보다 더 나의 범죄를 잘 이해한 적은없어! 난 지금보다 더 나의 범죄에 대해 강한 확신을 느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 P764

「모두, 모든 것이. 그런데 난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나 자신은 과연 이걸 원하고 있는 걸까? 나의 시련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 그런데 왜, 왜 이 쓸데없는 시련이 필요하다는 거지? 왜 그것들이 필요한 거지? 20년동안의 유형 생활 이후에 늙어 빠져서 힘없고 고통에 찌들어 백치가 다 되고 난 다음에 깨닫는 것이 지금 깨닫는 것보다 더 낫다는건가? 그렇다면 내가 왜 살아야 하는 거지? 그런데 지금은 내가왜 그렇게 살겠다는 데 동의하는 걸까? 아아, 오늘 새벽 네바 강위에 서 있을 때 나는 내가 비열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 P766

<나는 나쁜 놈이야, 나도 알아. 그는 두냐에게 불만스러운 손짓을 한 지 1분쯤 후에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나를 이렇게사랑하는 걸까, 난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인데! 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만약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도 결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이 모든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15년이나 20년이 흐르고 나면, 내 영혼이 유순해져서, 말끝마다 스스로를 도둑놈이라고 칭하며 사람들 앞에서 흐느끼게 될까? 그래, 바로 맞아. 그렇게 될 거야! 이것을 위해서 그들은 지금 나를 유형 보내려고 하는 거야. 바로 이게 필요한 거야…… 놈들은 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니고 있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비열한 인간들이고, 본질적으로 도둑놈들이다. 아니, 그보다 더 나쁜 멍청이들이다! 내가 유형이라도 면하게 되면, 이들은 의분에 못 이겨 날뛰겠지! 오, 난 얼마나 그들을 증오하는지 모른다!〉 - P766

그는 벌써 그녀를 잊고 있었다. 한 가지 적의에 가득찬 반항적인 의심만이 그의 영혼에서 끓어올랐다.
<모든 일이 이렇게, 이렇게 끝난단 말인가?> 그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또다시 생각했다. <정말로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슬쩍 넘어가면 안 되는 걸까……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 P771

<그런데, 왜, 무슨 목적으로 나는 그녀에게 지금 갔을까? 난 말했었지, 볼일이 있어서 왔다고. 그런데 무슨 일이었지? 아무 일도 없었지 않았나! 《간다는 것을》 알리려고 갔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그게 무슨 필요가 있었던 걸까? 내가 그 여자를 사랑하기라도 하나? 아니, 아니지 않은가? 난 지금 그 여자를 개 내몰듯이 쫓아 버리지 않았나? 소냐에게서 십자가를 받는 것이 정말로 내게 필요했던 것일까? 오, 난 정말로 밑바닥까지 추락해 버렸구나! 아냐, 내겐 그 여자의 눈물이 필요했던 거야. 그 여자의 겁먹은 표정을 보는 것이 필요했고, 그 여자의 마음이 아프게 찢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던 거야! 무슨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서 시간을 끌고싶었던 거야. 사람을 보고 싶었던 거야! 이런 내가 감히 자기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꿈을 꾸었다니! 난 비열하고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난 비열한 놈이다, 비열한 놈!> - P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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