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이런 상태에서 살면서, 물에 빠져 죽을 힘도 부족했다면, 왜 미치지 않았을까? 물론 그는 소냐의 상황이 불행하게도 유일하게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연한 현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상황의 우연성, 그녀가 받은 약간의 교육과 그때까지의 그녀의 삶이 그 혐오스러운 길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곧장 그녀를 파멸시켜 버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무엇이 그녀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일까? 음탕한 생활을 즐기는 건 아닐까? 이 온갖 치욕은 분명 그녀를 기계적으로만 건드렸을 뿐이고, 진정 음란한 마음은 아직 한 방울도 그녀의 심장 속을 파고들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그 앞에 실제로 서 있지 않은가………. - P472
라스꼴리니꼬프는 그녀에게 몸을 돌리고 흥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역시 그랬다! 그녀는 정말로 오한이라도 난 듯이 이미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전대미문의 가장 위대한 기적에 대한 말에 다가가고 있었고, 엄청난 승리감에 사로잡혔다. 그녀의 목소리는 금속처럼 낭랑해졌고, 승리감과 기쁨이 그 속에서 울리며 목소리를 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읽고 있던 글자 모양이 그녀 앞에서 흔들렸지만, 그녀는 자기가 읽고 있는 부분을 완전히 외우고 있었다. - P479
부숴야 할 것은 단번에 때려 부수어 버려야해, 그러면 돼. 그리고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는 거야! 뭐라고?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나중에 이해하게 되겠지……. 자유와 권력,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권력이야! 떨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과 모든 개미 군단들에 대한 권력…………! 그것이 목적이야! 이것을 잘 기억해 둬! 이것이 내 이별 선물이니까! - P482
<모든 것이 서로 다른 양 끝을 가리키고 있다. 서로 다른 양 끝을.> 라스꼴리니꼬프는 이렇게 반복해서말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원기 왕성하게 방을 나섰다. <이제부터 또다시 싸워 보자.> 그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독기 어린 비웃음을 머금고는 이렇게 말했다. 증오심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소심함을 상기하고는 경멸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 P525
상처받은 자존심이 검은 뱀처럼 그의 심장을 밤새도록 빨아댔다. - P529
여기에는 가난한 사람들 특유의 자존심이 개입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자존심 때문에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오직 <남에게 뒤지지 않기 > 위해서, 그리고 어떻게든 남들의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겠다는 일념하에,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의무적으로 행하는 몇몇 사회적인 의식에 마지막 힘을 모아 여태껏 모아 두었던 마지막 한 닢까지도 다 탕진해버리는 것이다. 까쩨리나 이바노브나는 세상 모든 이로부터 버림받은 것만 같은 그 순간에, 바로 그 상황에서 이 <형편없고 환멸스러운 세입자들 모두에게〉, 자기가 <훌륭한 삶의 방식도 알고있고, 손님을 대접할 줄도 알 뿐 아니라〉, 절대 이런 운명에 따라살도록 양육받지 않았으며, <고결하고, 어쩌면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대령의 가정에서 자라나, 자기 손으로 마루를 닦고, 밤마다 아이들의 걸레 같은 옷을 빨며 살 신세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것이 더 타당한 해석일지 모른다. 이런 자존심과 허영심의 발작은 때로 몹시 가난하고 짓밟힌 사람들에게도 찾아들어, 자칫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초조한 욕구로 변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까쩨리나 이바노브나는 짓밟힐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환경은 그녀를 육체적으로 완전히 죽일 수는 있을지언정, 정신적으로 파괴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즉, 그녀를 위협해서 굴복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P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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