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주민은 여우의 삶의 질quality of life 이 도저히 용인될 수 없을 만큼 낮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 사람은 동물의 장애를 위험한 것으로, 혹은 죽는 게 더 나을 정도로 불행한 운명으로 간주한 것일까? 안락사 개념에는 장애에 대한 두 가지 뚜렷한 반응이 담겨 있다. 바로파괴destruction와 연민pity이다. 인간의 비장애 중심주의가 여우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하다. 장애를 오직 고통 및 전염에 대한 공포와 동일시한 사람에게 사살되었기 때문이다. - P69

우리는 분명 비장애중심주의를 비인간 동물에게도 투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애 개념 자체도 그런 식으로 투사하는걸까? 장애라는 범주가 사회적 구축물이라면, 동물이 장애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로서는 다른 동물들이 신체적·인지적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 수 없다. 다리가 하나없는 강아지의 차이를 다른 강아지가 감지할까? 다리를 저는 원숭이는 스스로 자신과 다른 원숭이의 차이를 알아챌까? 동물들은 장애를 가진 다른 동료를 도와줄까? 동물들은 자신과 다른 종의 장애를 감지할까? 동물 세계는 이런 상상을 넘어서는 무수한 차이들로 가득해서, 장애가 만들어내는 차이를 가늠하려는 시도가 거의 헛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데 몇몇 동물들이 장애와 비슷한 어떤 것을 인식할 수 있고 실제로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증거들이 다수 있다. - P70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에룬이 적에게 발견될 뻔했을 때에만 절뚝거렸음을 금세 발견했다. 이에룬은 절뚝거리는 척함으로써 공격자에게 동정을 유발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장애와 그에 대한 일련의 반응들을 인간중심적으로 상정해 이에룬의 행동을 너무 성급히 독해한 것일까? - P71

"장애"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 문화를 통해 몇 세기에 걸쳐 창조되고 맥락을 구축했다. - P71

또한 피부로 와닿는 현실이자 이데올로기로서 장애가 어떤 식으로 비인간 동물에게도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비인간 동물들은 신체적 · 인지적 차이를 어떻게 자기 자신과 관계 지을까? 장애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우리가 다른 동물들이 경험하는 것을 해석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P71

나는 모즈가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무척이나 알고 싶다. 나무에 올라가려고 하는 모즈의 본능적 욕구는 영영 충족될 수 없었을까? 모즈는 항상 괴로워하고 지쳐 있었을까? 눈 덮인 바닥을 느리게 이동할 때 두려웠을까? 어째서 자신은 자신의 동료들과 다르게 태어났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했을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생각들이 나 자신의 삶과 장애에 관해 끊임없이, 지칠 정도로 질문해온 물음들과 얼마나 유사한지 깨닫게 되니 말이다. 모즈의 삶이 단지 고통과 투쟁으로만 간주되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 즉 나의 동료 영장류의 장애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고 싶은 마음 또한 하나의 투사라고 할 수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간적 시각human perspective은 모즈의 경험을 해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 P73

베코프는 바빌 무리의 다른 코끼리들이 왜 이런식으로 행동하는지 물었다. 그렇게 해야 할 실용적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바빌이 그들을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베코프와 동료들이 내릴 수 있었던 유일한 결론은 다른 코끼리들이 바빌을 배려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동물들이 직계 가족이 아닌 동료를 그런 식으로 배려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한(그리고 급진적인 만큼, 비판적 장애학의 관점에서 바빌이 무리에서 어떤 유용한 역할을 수행했을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장애를 단순한 결함이나 제약으로 이해할 때 인식하기 어려운 점이다. - P75

그들은 그 동물을 돕거나, 지키거나, 덜 공격적인 방식으로 대한다. 그 동물이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드 발은 이것을 더 복잡한 반응인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과 비교한다. 인지적 공감은 "다른 개체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을 그려보는 능력이다. 인지적 공감 능력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존재가 어떤 한계에 직면하는지, 단지 그들을 지켜봄으로써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바로 그들의 위치에 놓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76

이리, 영장류, 코끼리를 포함한 무수한 동물들이 이런 공감 반응 역량을 지닌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인간이 인지적 공감 능력을 가진 유일한 종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 P77

"장애를 가진 이를 특별하게 대하는 것은 학습된 적응과 강한 애착의 조합으로 간주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적응을 긍정적이고 배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애착이다." 그렇다면 애착attachment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우정인가? 사랑인가? 공감인가? - P77

어떤 존재가장애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걸까-개인가, 아니면 관찰자로 전제된 인간인가?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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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알 수 있을까요?"
" 4시 45분입니다." 내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말했다.
"그런가요? 제 시계는 4시 42분인데요. 에반, 네 시계는?"
"나도야. 적어도 우리 두 사람 시계는 시간이 같네. 그럼 됐지."
"제 시계가 맞을까요?" 가르스가 내게 물었다. "누구 시계가 잘못된 걸까요?"
"아마도 제 시계가 잘못되었을 겁니다." 내가 둘러댔다.
가르스가 에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거의 보라색에 가까운 눈꺼풀 밑으로 흰자가 살짝 보일 정도로 가늘게 눈을 뜨고 있었다. 어두운 피부색 때문에 두 눈이 마치 밤 하늘에 미소 짓고 있는 초승달처럼 보였다.
"모두의 시계가 틀렸을 수도 있지." 가르스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 P38

"이해한 것 같네요." 가르스가 말했다. "주관성, 인식에 관한 문제지요. 사고방식에 관한 문제요. 관찰은 생각과 마찬가지니까."
"그렇죠."
"나는 아니에요. 생각을 개입하지 않고 볼 수 있지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맹시(광원이나 시각적 자극을 정확히 느끼는 맹인의 능력 - 옮긴이)란 그런 거니까요. 그다지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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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은 비장애 신체를 가진 사람들보다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많고, 장애인들에 대한 증오 범죄는 잘 보도되지도 기소되지도 않는 것으로 악명 높다. 수감되고, 시설에 보내지고, 자신의 활동보조인을 선택해 고용할 수 없는 장애인들에게 폭력과 증오는 매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 P58

우리에게 to us 직접 말을 거는 대신 우리를 위해 for us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특히 비언어 사용자 nonverbal 인 장애인이나 "중증" 지적장애인의 경우, 당사자 대신 그들을 잘 알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을 합당하게 여긴다. - P58

"장애는 일단 찾아내려고만 하면 역사의 모든 곳에 있지만, 우리가 기술하는 역사에는 눈에 띄게 부재한다". - P60

장애 개념은 다양한 인구집단들을 유아화infantilize함으로써, 그리고 약하고, 취약하며, 지능이 떨어지고, 병에 걸리기 쉬우며, 뒤떨어지고, 돌봄이 요구된다는 식으로 규정함으로써 이들을 병리화하는 데 기여했다. - P60

이러한 장애 이데올로기는, 흑인은 백인보다 신체적으로는 강건하지만 지적으로는 열등하다거나, 원주민 공동체는 관리가 필요하며 병에 취약하다거나, 상류계급의 백인 여성은 지적으로 엄밀한 작업이나 신체적인 작업을 하기에는 너무 연약하다는 편견에서 드러나듯, 지적·신체적 열등성을 근거로 특정 집단 전체를 장애화하는 데 일조했다. - P61

연구자들이 장애가 차이의 범주를 구조화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할 때, 그것은 장애가 인종, 성별, 계급과 같은 다른 차이의 징표들을 능가한다는 뜻이 아니라, 장애 또한 차이의 다양한 형태들과 상호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의미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달리 말하면, 장애가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성별 같은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구축하듯, 이들 또한 장애의 의미를 구축한다. 이 범주들은 서로를 구축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때로는 서로 합쳐지면서 나아갔다. - P61

이보다 한 세기 전인 1700년대, 우리가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과학적 분류 체계의 기초가 된 종 분류 체계인 린네식Linnaean 분류법이 등장했다. 이 체계는 인간을 자연 안에 위치 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종적으로나 젠더적으로 편향된 인간 범주화와 관련된 논의들과 밀접하게 엮여 있었고, 그러한 논의들의 전형적인 산물이기도 했다. - P63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범주화와 비인간화의 역사에서 동물이 갖는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뿐 아니라, "동물"과 "인간"은 오로지 생물학적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복잡한범주임을 밝히는 데 있다. - P63

서구적 인식 아래에서 동물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열등한 피조물로 간주된다. 이런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세계는 "인간man" (즉 일부 남성들)을 위해 존재하고, 동물은 이 창조의 정점인 인간과는 완전히 별개인 모자란 존재로 정립된다. - P64

어떻게 하면 인간의 동물화라는 잔인한 현실과 동물 멸시에 맞설 필요성이 양립할 수 있는지 묻는 것,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의 동물성을 자각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장애와 동물성은 차이에 기반한 다른 범주들과 수많은 사회정의 문제들(빈곤, 감금,전쟁 문제부터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에 깊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후순위로 치워둘 수 없으며, 따라서 이두 개념(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교차하는지)을 소홀히 다루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장애와 동물의 문제가 다른 해방운동과 궤를 같이하지 않는다면, 비장애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는 영영 도전받지 않은 채 지속될 것이고, 지배와 억압의 체계에 계속 이용될 것이다. - P65

"자립적independent"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어떻게 측정하는지, 무엇이 "정상적"이고 무엇이 "자연스러운지" 등에 대한 통념들은 말할 것도 없다. - P66

나는 이런 가치관들이 장애인들과 비장애 신체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물론, 우리와 이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비인간 동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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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1주일 후, 한 달 후면, 나를 수감자들의 수레에 태워 어디론가 이 다리를 통해 데려가겠지. 그때 난 이 도랑을 또 보게 되겠지? 지금의 일들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 P772

맙소사, 이 모든 것, 지금의 내…걱정거리들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들인가! 물론 이 모든 것들은분명 흥미로운 일들이다…… 그 나름대로는…… (하하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어린아이처럼 되어 버렸어. 자기자신에게 허세를 부리고 있어. 왜 내가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거지? 후, 사람들이 많다! 저기 저 뚱뚱한 사람은, 분명 독일사람일텐데, 왜 나를 밀치는 거야. 자기가 누구를 쳤는지 알기나 할까? 어린아이를 안은 아주머니가 구걸을 하고 있군. 재미있어. 저 아주머니는 나를 자기보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 아냐. 자, 그럼, 재미 삼아 자선을 베풀어볼까. 이런, 주머니에 5꼬뻬이까 동전이 그대로 남아 있잖아. 어디서 난 거지? 자, 자…… 받으세요, 아주머니!> - P773

그는 갑자기 소냐의 말이 생각났다. <네거리에 가서 사람들에게 절을 하고 대지에 키스하세요. 당신은 대지 앞에 죄를 지었으니까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리내어 말하세요. 《내가 죽였습니다》라고. 그는 그 말을 기억해내고,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출구가 없는 비탄과 그동안, 특히 지금 몇 시간 동안의 불안이 그를 너무나도 깊이 압박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금방이 완전하고 새롭고 충만한 감정 속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감동이 발작처럼 갑자기 그에게 북받쳐 올랐던 것이다. 한꺼번에 그의 마음은 녹아 내렸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서 있던 모습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그는 광장의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는 달콤한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더러운 땅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일어나서 또 한 번 절했다. - P774

범죄 자체가 일종의 일시적인 정신 착란, 즉 차후의 이득을 얻기 위한 목적과 의도 없이, 살인 강도라는 병적인 편집광 증세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밖에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오늘날 다른 범죄자들에게도 자주 적용하려 드는 이른바 일시적인 정신 착란에 의한 범죄라는 최신 유행의 이론이 무르익어 갔다. - P788

정작 피고는 자기 자신을 거의 변호하려고 들지 않았다. 어쩌다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느냐는 점, 무엇이 그로 하여금 도둑질을 하게 부추겼느냐는 결정적인 질문에 대해서 그는 대단히 명확하고 거칠게 그리고 정확하게 모든 것은 그의 처참했던 상황,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처지에서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즉, 죽은노파에게서 훔칠 수 있다고 판단한 3천 루블의 돈으로 인생에서 출세의 첫걸음을 내디뎌 보려고 갈망했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살인을 결심한 것은 경솔하고 소심하며 쉽게 분노하는 자기성격과 더 나아가 자신이 겪은 궁색한 삶과 좌절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째서 자수를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진심으로 후회했기 때문이라고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그의 대답 모두는 거의 난폭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 P789

라스꼴리니꼬프는 시베리아로 이주하자마자 뻬쩨르부르그와 편지 연락을 나눴지만, 오랫동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편지 연락은 소냐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소냐는 다달이 정성스레 뻬쩨르부르그에 있는 라주미힌의 주소로 편지를 썼고, 그곳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처음에 소냐의 편지는 두냐와 라주미힌에게 왠지 무미건조하고 불만스럽게 여겨지기까지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들 두 사람은 더 이상 훌륭하게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편지들을 통해서 결국에는 어쨌든 불행한 오빠의 운명에 대해 완전하고 정확한 보고를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냐의 편지는 가장 일상적인 현실, 라스꼴리니꼬프가 겪고 있는 수형 생활의 환경에 대한 가장 평범하고 정확한 묘사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그녀 자신의 희망, 미래에 대한 추측, 자신의 감정에 대한 서술과 묘사는 전혀 없었다. 그의 기분과 대체적인 그의 내면적인삶을 설명하려는 시도 대신에 오직 사실, 즉 그가 한 말,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자세한 정보, 만났을 당시 그가 무엇을 바랐는지, 어떤 것을 부탁했는지, 어떤 일을 그녀에게 맡겼는지 등에 대한 것만이 씌어 있었다. 이 모든 소식들은 아주 자세하게 전해졌다.
그래서 결국에는 불행한 오빠의 형상이 자연스레 드러나서 정확하고 분명하게 그려지는 것이었다. 그것에는 어떠한 실수도 있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모든 것이 확고한 사실들이기 때문이었다. - P795

그가 이렇게 원시적으로 가난하게 지내는 것은 미리 정한 어떤 계획이나 의도에 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자신의 운명에 대한 소홀함과 겉으로 드러나는 무관심에서 기인한다고 했다. 소나는 그가 특히 처음에는 그녀의 방문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거의 그녀에게 불만을 털어놓다시피 하면서, 말도 하지 않고 거칠게 대했지만, 나중에는 이 만남이 습관으로 변하다 못해 요구사항이 되었다고 했다. - P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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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흘리고 있는 피야.」 그는 거의 미친 듯이 그 말을 잡아챘다. 지금도 흐르고 있고, 언제나 세상에서 폭포수처럼흘렀던 피, 샴페인처럼 흐르고 있는 피, 덕분에 카피톨리움 신전에서 월계관을 쓰고, 훗날 인류의 은인으로 칭송받게 한 그 피야. 그래, 똑바로 쳐다봐, 잘 들여다보란 말이야! 난 사람들을 위해서 선을 원했던 거야. 나 자신은 이 어리석은 일, 아니 어리석다기보다는 그냥 적절치 못했던 이 일 대신에 수백, 수천 가지의 착한 일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왜냐하면 내 사상은 실패한 지금에 와서 생각하듯이 그렇게 어리석은 것만은 전혀 아니니까…… (실패했을 경우에는 모든 것이 어리석게 보이지!) 그 어리석은 행위를통해 난 다만 나 자신을 독립적인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는 자금을 얻기 위한 첫걸음을 떼고싶었던 것뿐이야. 그렇게 되었더라면 모든 일은 그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무한한 이로움을 안겨주어서 모든 것을 상쇄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난, 난 그 첫걸음을 견뎌낼 수가 없었던 거야. 왜냐하면 난 비열한 녀석이니까! 바로 이게 문제의 전부야! 어쨌든 너희들의 생각대로 세상을 보지는 않을 거야. 만일 내가 성공했더라면, 내게 월계관을 씌워 주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난 지금 함정에 빠져 있으니!」 - P763

「아! 형식이 이래서는 안 되었어. 내가 행한 일이 그렇게 미학적으로 훌륭한 형식은 아니었어! 하지만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왜 폭탄으로, 포위 공격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더 존경할만한 형식이라고 하는 거지? 미학적인 두려움은 무력함의 첫 번째 징후야……! 난 이것을 지금보다 더 명확하게 의식해 본 적은한 번도 없어. 그리고 난 지금보다 더 나의 범죄를 잘 이해한 적은없어! 난 지금보다 더 나의 범죄에 대해 강한 확신을 느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 P764

「모두, 모든 것이. 그런데 난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나 자신은 과연 이걸 원하고 있는 걸까? 나의 시련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 그런데 왜, 왜 이 쓸데없는 시련이 필요하다는 거지? 왜 그것들이 필요한 거지? 20년동안의 유형 생활 이후에 늙어 빠져서 힘없고 고통에 찌들어 백치가 다 되고 난 다음에 깨닫는 것이 지금 깨닫는 것보다 더 낫다는건가? 그렇다면 내가 왜 살아야 하는 거지? 그런데 지금은 내가왜 그렇게 살겠다는 데 동의하는 걸까? 아아, 오늘 새벽 네바 강위에 서 있을 때 나는 내가 비열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 P766

<나는 나쁜 놈이야, 나도 알아. 그는 두냐에게 불만스러운 손짓을 한 지 1분쯤 후에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나를 이렇게사랑하는 걸까, 난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인데! 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만약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도 결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이 모든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15년이나 20년이 흐르고 나면, 내 영혼이 유순해져서, 말끝마다 스스로를 도둑놈이라고 칭하며 사람들 앞에서 흐느끼게 될까? 그래, 바로 맞아. 그렇게 될 거야! 이것을 위해서 그들은 지금 나를 유형 보내려고 하는 거야. 바로 이게 필요한 거야…… 놈들은 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니고 있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비열한 인간들이고, 본질적으로 도둑놈들이다. 아니, 그보다 더 나쁜 멍청이들이다! 내가 유형이라도 면하게 되면, 이들은 의분에 못 이겨 날뛰겠지! 오, 난 얼마나 그들을 증오하는지 모른다!〉 - P766

그는 벌써 그녀를 잊고 있었다. 한 가지 적의에 가득찬 반항적인 의심만이 그의 영혼에서 끓어올랐다.
<모든 일이 이렇게, 이렇게 끝난단 말인가?> 그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또다시 생각했다. <정말로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슬쩍 넘어가면 안 되는 걸까……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 P771

<그런데, 왜, 무슨 목적으로 나는 그녀에게 지금 갔을까? 난 말했었지, 볼일이 있어서 왔다고. 그런데 무슨 일이었지? 아무 일도 없었지 않았나! 《간다는 것을》 알리려고 갔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그게 무슨 필요가 있었던 걸까? 내가 그 여자를 사랑하기라도 하나? 아니, 아니지 않은가? 난 지금 그 여자를 개 내몰듯이 쫓아 버리지 않았나? 소냐에게서 십자가를 받는 것이 정말로 내게 필요했던 것일까? 오, 난 정말로 밑바닥까지 추락해 버렸구나! 아냐, 내겐 그 여자의 눈물이 필요했던 거야. 그 여자의 겁먹은 표정을 보는 것이 필요했고, 그 여자의 마음이 아프게 찢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던 거야! 무슨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서 시간을 끌고싶었던 거야. 사람을 보고 싶었던 거야! 이런 내가 감히 자기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꿈을 꾸었다니! 난 비열하고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난 비열한 놈이다, 비열한 놈!> - P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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