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1주일 후, 한 달 후면, 나를 수감자들의 수레에 태워 어디론가 이 다리를 통해 데려가겠지. 그때 난 이 도랑을 또 보게 되겠지? 지금의 일들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 P772
맙소사, 이 모든 것, 지금의 내…걱정거리들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들인가! 물론 이 모든 것들은분명 흥미로운 일들이다…… 그 나름대로는…… (하하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어린아이처럼 되어 버렸어. 자기자신에게 허세를 부리고 있어. 왜 내가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거지? 후, 사람들이 많다! 저기 저 뚱뚱한 사람은, 분명 독일사람일텐데, 왜 나를 밀치는 거야. 자기가 누구를 쳤는지 알기나 할까? 어린아이를 안은 아주머니가 구걸을 하고 있군. 재미있어. 저 아주머니는 나를 자기보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 아냐. 자, 그럼, 재미 삼아 자선을 베풀어볼까. 이런, 주머니에 5꼬뻬이까 동전이 그대로 남아 있잖아. 어디서 난 거지? 자, 자…… 받으세요, 아주머니!> - P773
그는 갑자기 소냐의 말이 생각났다. <네거리에 가서 사람들에게 절을 하고 대지에 키스하세요. 당신은 대지 앞에 죄를 지었으니까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리내어 말하세요. 《내가 죽였습니다》라고. 그는 그 말을 기억해내고,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출구가 없는 비탄과 그동안, 특히 지금 몇 시간 동안의 불안이 그를 너무나도 깊이 압박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금방이 완전하고 새롭고 충만한 감정 속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감동이 발작처럼 갑자기 그에게 북받쳐 올랐던 것이다. 한꺼번에 그의 마음은 녹아 내렸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서 있던 모습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그는 광장의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는 달콤한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더러운 땅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일어나서 또 한 번 절했다. - P774
범죄 자체가 일종의 일시적인 정신 착란, 즉 차후의 이득을 얻기 위한 목적과 의도 없이, 살인 강도라는 병적인 편집광 증세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밖에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오늘날 다른 범죄자들에게도 자주 적용하려 드는 이른바 일시적인 정신 착란에 의한 범죄라는 최신 유행의 이론이 무르익어 갔다. - P788
정작 피고는 자기 자신을 거의 변호하려고 들지 않았다. 어쩌다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느냐는 점, 무엇이 그로 하여금 도둑질을 하게 부추겼느냐는 결정적인 질문에 대해서 그는 대단히 명확하고 거칠게 그리고 정확하게 모든 것은 그의 처참했던 상황,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처지에서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즉, 죽은노파에게서 훔칠 수 있다고 판단한 3천 루블의 돈으로 인생에서 출세의 첫걸음을 내디뎌 보려고 갈망했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살인을 결심한 것은 경솔하고 소심하며 쉽게 분노하는 자기성격과 더 나아가 자신이 겪은 궁색한 삶과 좌절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째서 자수를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진심으로 후회했기 때문이라고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그의 대답 모두는 거의 난폭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 P789
라스꼴리니꼬프는 시베리아로 이주하자마자 뻬쩨르부르그와 편지 연락을 나눴지만, 오랫동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편지 연락은 소냐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소냐는 다달이 정성스레 뻬쩨르부르그에 있는 라주미힌의 주소로 편지를 썼고, 그곳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처음에 소냐의 편지는 두냐와 라주미힌에게 왠지 무미건조하고 불만스럽게 여겨지기까지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들 두 사람은 더 이상 훌륭하게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편지들을 통해서 결국에는 어쨌든 불행한 오빠의 운명에 대해 완전하고 정확한 보고를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냐의 편지는 가장 일상적인 현실, 라스꼴리니꼬프가 겪고 있는 수형 생활의 환경에 대한 가장 평범하고 정확한 묘사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그녀 자신의 희망, 미래에 대한 추측, 자신의 감정에 대한 서술과 묘사는 전혀 없었다. 그의 기분과 대체적인 그의 내면적인삶을 설명하려는 시도 대신에 오직 사실, 즉 그가 한 말,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자세한 정보, 만났을 당시 그가 무엇을 바랐는지, 어떤 것을 부탁했는지, 어떤 일을 그녀에게 맡겼는지 등에 대한 것만이 씌어 있었다. 이 모든 소식들은 아주 자세하게 전해졌다. 그래서 결국에는 불행한 오빠의 형상이 자연스레 드러나서 정확하고 분명하게 그려지는 것이었다. 그것에는 어떠한 실수도 있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모든 것이 확고한 사실들이기 때문이었다. - P795
그가 이렇게 원시적으로 가난하게 지내는 것은 미리 정한 어떤 계획이나 의도에 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자신의 운명에 대한 소홀함과 겉으로 드러나는 무관심에서 기인한다고 했다. 소나는 그가 특히 처음에는 그녀의 방문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거의 그녀에게 불만을 털어놓다시피 하면서, 말도 하지 않고 거칠게 대했지만, 나중에는 이 만남이 습관으로 변하다 못해 요구사항이 되었다고 했다. - P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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