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기
잔느 귀용 지음 / 생명의말씀사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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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달라스 윌라드의 책에서 소개되었기에 구입했는데, 결론적으로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lectio divina에 대한 내용일 거라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그것과는 별 관계없는 '기도'에 대한 내용, 그것도 '신비주의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유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책 전체에서 발견되는 '기도'와 '영성'에 대한 주옥같은 설명들은 상당히 유익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비주의자'다운 생각과 주장에 대해서는 위험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중 두 가지만...

1) 성경을 읽되 그 내용은 무시하고 예수님의 임재를 느끼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라는 충고는 매우 위험스러워 보인다. 내용과 무관한 체험만의 강조가 아닌가! 성경을 신비 체험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태도! 기독교가 가지는 '역사성' 부분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2) 그녀의 영향력! 지나친 주관주의와 지나친 확신... 자신이 제시하는 대로만 하면 너무도 쉽게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주장! 현대 교회 안에서 쉽게 발견하게 되는, 기도하는 이들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 이들의 태도와 판박이다! 그들의 원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 '주관성' 부분을 전혀 무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 신앙의 '객관성' 부분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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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실의 죄수
진 에드워드 지음, 서은재 옮김 / 좋은씨앗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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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저자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와 같은 수준인양 끌어내리고 있지 않았는가!

K. Barth가 하나님의 초월성을 주장한 것이 그 시대 신학자들에게 폭탄과 같았다고 하지만... 이 시대에도 또 다시 그러한 폭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생각을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위험성!

c.f.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엔도 슈사꾸의 [침묵]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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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깊이 읽는 독서법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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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잔잔한 가운데 ‘천천히’ 그리고 ‘깊이’ 읽을 것을 이야기한다.

책의 절반은 ‘왜’에, 나머지는 ‘어떻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전반적인 느낌은 ‘어떻게’ 부분은 매우 간략하고, ‘왜’에 치중한 듯...


성경 읽기에 대한 내용 조금, lectio divina에 대한 내용 조금, 그리고 경건 서적 독서에 대한 내용 조금...

편하게 읽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


독서의 목적을 ‘변화’에 두는 것은 좋은 시도/시각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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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라 - 한정판
제임스 스나이더 엮음, 장인식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글을 시작하며... - 가장 존경하는 인물, 토저

내가 성경에서 제일 존경하는 인물은 다니엘이다. 그의 지혜와 탁월한 능력, 그리고 그의 흠 없는 삶과 단호한 의지 등이 나를 매료시킨다.

그런데 성경 이외의 인물 가운데 나를 가장 매료시키는 인물이 있다. 어쩌면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다니엘보다도 더 강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바로 토저다.


1. 토저와 나 - 토저 독서기

처음 토저에 대해서 들은 것은 그가 ‘20세기의 선지자’로 불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그의 책들 - [거듭난 자의 생활], [하나님을 추구함](생명의 말씀사) - 을 읽었을 때에는 그리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었다. 어쩌면 대학생 시절에 읽었었기에 그의 글이 주는 강한 인상을 다 포착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토저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게 되었던 것은 은성 출판사에서 나온 토저의 글 모음인 [인스턴트 크리스챤](은성)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어쩌면 글 한 편 한 편, 문장 하나 하나가 내 마음을 쿡! 쿡! 쑤셔대던지... 모태 신앙으로 자라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늘 고민했던 무기력하고 나태했던 나의 모습을 말씀으로 난도질당하는 느낌이었다.

그 후에 본 것이 [이러한 예배라야...](은성)라는 책이었고, 그 다음에 제임스 스나이더가 쓴 간단한 토저의 전기인 [A. W. 토저](두란노)를 보게 되었다. 토저의 생애를 살펴보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이었고 또한 충격이었다. 그의 사역과 그의 강렬한 글들의 배경이 되는 삶은 나로 하여금 토저와 같이 되는 것을 꿈꾸게 만들었다. 현대의 흐름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 말씀에 근거한 확고함! 하나님을 향한 끊이지 않는 갈망! 그렇게 토저는 나의 생애와 사역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모범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책들을 본 한참 후에야 규장 출판사에서 토저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그 책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었다. 최근에 규장에서 나온 그의 책들을 몇 권 사놓기는 했지만 아직 읽지는 않고 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내가 알고 있기로는 토저가 직접 쓴 책들은 몇 권 되지 않았는데, 꽤 많은 분량의 책들이 토저의 이름으로 나오는 것이 미덥지가 않고 못마땅했다. ‘이 책들은 아마도 그의 글들을 여기저기에서 끌어 모아 편집해 놓은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로, 규장에서 내놓은 토저의 책들에 붙여진 제목이나 카피 글들이 오히려 토저의 기본적인 사상과는 반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히 세속적인 요소와 흥미를 끌기 위한 엔터테인먼트나 상술(商術)을 배척했던 것이 토저의 입장이었는데, 그런 그의 책들을 그가 그처럼 배격했던 방식으로 내놓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다.


2. [불타는 마음으로...] 개괄

이번에 다시 토저에 대한 책이 나왔다.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불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라]라는 책이다. 이 책을 구입한 것은 순전히 그 책을 편집한 편집자 때문이다. 그가 바로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A. W. 토저]를 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쓴 책이라면 신뢰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구입하기 전에 목차나 관련된 내용을 어느 정도 훑어보기는 했지만, 막상 책을 받아들고 보니 꽤 신선한 방식으로 구성을 해 놓은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1부에는 ‘토저를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토저의 생애에 관한 7개의 (간단한) 에세이를 실어놓았다. 그런데 이것들은 각각의 글들끼리도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도 있고, 이전에 썼던 [A. W. 토저]와도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토저를 개괄적으로 소개하기에는 괜찮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부에서는 ‘토저가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토저가 강단에서 선포했던 10개의 메시지를 담아 놓았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역시 토저답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어떤 것들은 토저의 글 치고는 좀 ‘싱거운’ 느낌이 들었고, 어떤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전율시키기도 했다.


3. [불타는 마음으로...] 1부 읽기

토저의 생애에 관한 에세이는 ‘토저’라는 ‘다이아몬드’를 7개의 방향에서 조명한다. 그를 ‘하나님만 추구한 사람’과 ‘하나님께 목마른 영혼’으로,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와 ‘열정의 예배자’ 그리고 ‘경건한 신비주의자’로, 또한 ‘뛰어난 설교가’와 ‘탁월한 저술가’로 소개한다.

1. 하나님만 추구한 사람 : 토저를 보면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영적 통찰력’(18p)이다. 그는 예리할 정도로 정확한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대변자’(19p)로서 활약했다.

사실 이 시대만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쭉 살펴본다 해도 토저만큼 예리한 영적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은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통찰력’은 7번째의 ‘탁월한 저술가’로서의 능력과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 그의 영적 통찰력은 탁월한 글 솜씨를 통해 더욱 강력해진다.

2. 하나님께 목마른 영혼 : 회심한 순간부터 토저의 관심의 대상은 ‘하나님’이었다(22p). 그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목마름은 이 시대가 주는 세속적 압력을 거슬러서, 어떤 대가를 치를지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가치 기준을 최후의 순간까지 고수하고자 하는 열망(23p)으로 연결되었다.

이런 토저의 모습을 보면 칼 바르트가 생각난다. 윤리와 도덕에 파묻혀 있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초월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폭탄’을 던졌던 그! 나는 오늘날에도 그런 폭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와 교회의 하나님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이요 ‘인간을 섬기는’ 하나님이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볼떼르가 했던 말은 그의 시대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적실하다. “신은 자기 모습을 따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인간은 그 모습을 신에게 잘 되돌려 주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께 돌려주면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섬기게 하고 있다. 더 이상 하나님은 우리 삶과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우리 인간이 중심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토저와 같은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과 갈망을 회복해야 한다. 그 기준을 최후의 순간까지 고수해야 하는 것이다.

3.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 : ‘20세기의 선지자’로 불렸던 토저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인물은... 설교를 기도로 준비하여 살아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메시지가 되게 하는 목회자(27p),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확신을 가지고 메시지를 선포하는 일꾼(29p),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선지자, 시대의 흐름을 분별하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두려움 없이 선포하는 선지자(31p)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같은 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셨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 토저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분별하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두려움 없이 선포하는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 주실 것을 기도한다. 바른 교훈을 받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귀를 긁어주는 거짓 스승(딤후 4:3)이 아니라, 그들이 마땅히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메시지를 선포하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4. 열정의 예배자 : 토저는 그 자신이 예배 중심의 삶을 살기 위해 대가를 치렀으며(32p), 인간의 모든 노력은 예배로부터 흘러나와야 한다고(33p) 말했다. 그는 그 시대부터 이미 모습을 드러내었던 엔터테인먼트의 침투를 신랄하고 무자비할 정도로 비판했는데, 예배는 순수해야 하고 세속적인 것에 오염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36p). 그는 이 부분에 있어서 누가 자신을 지지해주는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자신이 진리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것만을 염려했다(38p).

이 시대에 이런 진리를 위한 ‘투사’를 발견하기가 너무도 힘들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끌 것인지, 어떻게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것인지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 목회자들과 교회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넘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그러나 이 시대에서 토저와 같이 말하는 자는 그보다 더한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진리의 편에 설 자가 누구인가!

5. 경건한 신비주의자 : 토저의 하나님에 대한 갈증과 열망은 그를 신비주의자들에게 이끌었다(41p). 그는 올바른 교리도 중요하지만(42p) 신비주의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추구가 절실히 필요함을 주장했다(43p).

토저와 신비주의의 관계는 이미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로 하여금 또다시 신비주의에 눈길을 던지게 만들었다. 보통은 ‘신비’를 주장하되 ‘신비주의’를 배척하지만, 과거의 신비주의자들이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본받아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6. 뛰어난 설교가 : 토저의 설교는 늘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했고(46p),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존엄성을 일깨어주었으며(47p), 그들로 하여금 곧장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가게 했다(49p). 그의 뛰어난 설교는 그의 열렬한 기도생활에 근거한다(52p). 그는 또한 효과적인 설교를 위하여 단어 사용에 예민함과 정확성을 길러야 함을 주장했다(52p). 뿐만 아니라 교인들에게 깊이 생각할 것을 유도했다(54p).

토저의 설교는 ‘하나님 중심’적이다. 오늘날의 ‘청중 중심, 인간 중심’의 설교가 아니다.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어떻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인지에 온통 마음을 쓰지만, 토저는 어떻게 하나님의 진리를 정확하게 전달할 것이며, 어떻게 성도를 하나님의 존전에 이끌어 들일까에 마음을 쓴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설교는 물론 좋은 설교이지만, 성도에게 하나님의 존엄성을 일깨워주고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가게 하는 설교야 말로 가장 뛰어난 설교이다.

7. 탁월한 저술가 : 토저는 밤을 새워가며 진리를 탐구하였고, 게걸스러울 정도로 독서에 탐닉했을 뿐만 아니라, 읽은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56p). 그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정말로 책을 쓰고 싶거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책을 써라. 글을 쓰고 싶은 내적 욕구를 억제하지 못할 때 글을 써라. 그렇지 않거든 책을 써서는 안 된다.”고 교훈한다(59p).

문서 사역을 꿈꾸는 나로서는 토저의 이 말이 마음에 깊이 박힌 못과 같이 여겨진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말하는 것처럼 그저 읽히기 위해서 책을 쓰기보다는, ‘억제할 수 없는 내적 욕구’가 이끄는 대로 글을 쓰고 싶다. 시대에 영합하지 않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영감에 연원한 그런 글과 책을 쓰고 싶다.


4. [불타는 마음으로...] 2부 읽기

2부는 토저의 강단 메시지 10개를 소개하고 있다. 그의 설교를 ‘평’한다는 것은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먼저 내 마음에 깊숙이 들어온 말 몇 마디만 적어본다.

1. 제대로 들으라! : “나는 언제나 너무 쉽게 개종하는 사람들을 의심하는 편이다. 너무 쉽게 개종한다는 말은, 또 너무 쉽게 등을 돌릴 수도 있다는 말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 성장이 마치 로켓처럼 진행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신앙생활을 유지하려면 인내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2. 영적 성숙을 도모하는 확실한 방법 : “인간의 왕국에 거의 넘어가버린 교회가 이 땅에 많다. 그들의 철학은 인간의 철학이며 신념이나 관점 역시 인간의 것과 동일하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그대로 살고 그들의 행동 양식을 모방하면서도 여전히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관계의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말라.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살아간다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형제자매들이여, 교회를 이용하려고 애쓰지 말라. 교회는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양육하기 위해 존재한다. 교회 스스로 방법을 찾아 그 일을 수행할 것이다. 세상으로 하여금 결정하게 할 수는 없다.”

4. 우리가 쇠할수록 그분은 흥한다! : “우리는 지금 ‘기독교’라고 착각하고 있는 이런 현상 속에서 기탄없이 거짓말하고 자만하며 스스로를 과장한다. 하나님 대신 인간의 평판을 숭상하고 성공에 탐닉하며 그것을 얻으려고 애쓴다. 이것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신앙인가 아니면 사이비인가? 내가 보기에 이것은 분명 사이비이다.” “내가 제일 염려하는 바는, 오늘날 평범한 젊은 크리스천들이 모델로 삼는 이들이 성자가 아니라는 데 있다. 과거에 살았던 훌륭한 성자들이 아니라 몇몇 인기 있는 인사들일 가능성이 많다. 젊은이들은 어떻게든 이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관심을 받지 못할 경우에는 단지 평범하고 착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관심을 받을 기회만 있다면 십자가를 내동댕이치고 달려가리라. 아마 젊은이들의 99%가 이렇게 하리라 생각한다.”

5.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라! : “부흥하는 교회와 그렇지 못한 교회와의 차이는 ‘하나님의 희미한 임재’와 ‘하나님의 명백한 임재’와의 차이와 같다.”

9. 회복을 위해 간구하는 방법 :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은 제일 중요한 명령이며, 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희생시켜가며 인간이 영혼을 구원하려는 시도는 그분이 받으실 영광을 사취하는 행위이며, 결국 어떤 영혼도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한다. 오직 그리스도인이 아닌 다른 이상한 형태의 변절자를 양산하게 할 뿐이다.” “어떻게 해서든 기독교로 개종만 하게 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버리자.”


글을 맺으며... - 그를 닮아가기를...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토저다!” 하는 생각이다. 그의 메시지는 나를 ‘하나님 존전’으로 데리고 나갔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성경적인 메시지’가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다는 쓰라린 사실을 생각하게 했다. 모두가 입을 열어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사사기 끝 부분에 나왔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사람들처럼...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가슴 아픈 현실을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쉬운 느낌이다. 앞에서 소개했지만, 1994년에 읽었던 [인스턴트 크리스천](은성)에서 느꼈던 감동과 도전에 비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과 도전은 그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소개된 글이 ‘설교’여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토저의 설교들은 이 시대 교회와 지도자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복음주의의 세속화, 인문주의화는 분명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문제는 이미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경계해야 할 그것 가운데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토저에게서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은 그의 ‘하나님에 대한 추구’이다. 이것은 내가 배우고 또 배우며, 행하고 또 행해야 하는 부분이다! 불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를 닮아가기를... 이 시대를 향한 ‘외치는 소리’로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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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다 - 온누리교회의 교회론과 목회철학
하용조 지음 / 두란노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목사 몇 명이 매 주 한 번씩 모여서 독서 토론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인도를 맡으신 목사님이 이 책을 선정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모두 6개의 part로 나뉘어져 있고, 각 파트마다 몇 개의 장이 할애되어 있다.

1. 기본적인 틀과 방향에 대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기본적인 주제나 틀은 새롭다고 할 수는 없다. 교회를 목회하면서 ‘교회론, 목회철학, 방법론, 팀 사역, 리더십’ 등은 기본적으로 다 갖추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온누리 교회적인 분위기와 내용’으로 가득하다. ‘온누리 교회적’이라는 표현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표현이다.

저자는 ‘사도행전적인 교회를 꿈꾼다’고 하면서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서 ‘온누리 교회’의 모습을 소개하는데, 그것은 결국 온누리 교회야말로 사도행전적인 교회라는 말이 아닌가? 사실 많은 목회자와 교회들은 ‘사도행전적인 교회, 성경적인 교회, 초대 교회’를 모범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지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교회의 모습 가운데서 유독 온누리 교회만이 사도행전적인 교회라고 말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온누리 교회’에 대한 홍보가 아니라, 온누리 교회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성경적인 원리들을 실제적인 사역 속에 적용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들을 사용해 왔는지를 고백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온누리 교회=사도행전적 교회’라는 의미보다는, 온누리 교회가 어떻게 사도행전적인 교회로 세워지고자 노력해왔는지에 대한 보고와 고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

실제로, 이미 특유의 체계를 갖춘 온누리 교회의 시스템과 방법론을 개교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러한 시스템과 방법론 뒤에 숨어 있는 원리적인 측면과 축소/변형하여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은 많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카피(copy)할 생각이 아니라면 매우 유용한 ‘자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2. 각 부분들에 대해...

프롤로그는 따라오는 6개의 파트를 잘 요약하고 있으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읽으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말 잘하는 것과 설교 잘하는 것은 다르다(18p).” “예배에만 머물러 있지 말라. 영적 비만증에 걸리게 된다(19p).” “사람은 자기가 품은 비전만큼 간다. 하나님이 주신 꿈만큼 간다(22p).”는 등의 문구는 핵심을 찌르는 소중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첫 번째 PART인 ‘은혜로 나를 인도하시다’는 하 목사님의 삶과 신앙, 사역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와 고백을 다룬다. 어떠한 영향들 속에서 현재와 같은 신앙과 사역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저자의 의도대로 그러한 점들을 이해하는 것이 현재의 사역을 이해하는 기본 토대가 되어준다. 필자는 특별히 영국 국제장로교회의 유아세례에 대한 내용 가운데 부모에게 하는 질문들(88-89pp)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철저해야’하겠는지에 대해 큰 도전을 받았다.

두 번째 PART인 ‘교회론’은 두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교회론의 기준은 예수님의 교회론이다’에서는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는 빨리 성장하고 싶은 조급함 때문에 신앙고백이 불확실한 사람들에게 교회의 중요한 직책을 맡기는 탓이다.”(100p)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현대 교회가 ‘신앙 고백’에 대한 확고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정말로 필요한 일이다.

‘사도행전적인 교회론’에서는 ‘수단과 목적’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113p)과 ‘성직자주의만큼 위험한 평신도주의’에 대한 지적(114p), 조화로운 팀워크를 위해 교회론과 비전, 목회 철학, 성령 체험이 같아야 하며, 서로의 은사를 존중하고 인정하라는 부분(116-117pp), 그리고 우리가 성공이 아니라 영적 탁월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123p)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부분에서 “신학적인 교회론은 경계를 해야 한다.”(116p)고 지적한 것은 좀 의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성경을 절대 기준으로 삼아야 하고(사도행전적!), 실제적인 사역의 중요성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지적한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인 교회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은 좀 지나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의 설명이 없이 한 문장만 나와 있어서 구체적인 의도를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신학적인 교회론’도 다른 것들과 함께 든든하게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세 번째 PART인 ‘목회철학’‘목회철학의 기준은 사도행전의 교회론이다’라는 한 장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특별히 복음 전파와 고난의 관계에 대한 지적(142p)과 교회라는 이름으로 거룩이 보장되거나 순결이 증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145p)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평소부터 현대 교회의 문제점들 가운데 ‘바른 교회관, 바른 목회관의 부재(不在)’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사도행전’만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른 교회관을 배워야 하고, 거기에서부터 바른 목회관까지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무엇이고 목회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은 너무도 위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PART인 ‘목회철학적 방법론’은 7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어쩌면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이 든다.

‘예배’에서는 마음만이 아니라 몸까지 드리는 예배(163, 164pp), 거룩한 충격과 감격이 있는 예배(169p)에 대한 부분이 좋았다. 문화에 심취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167p)은 정당한 것이었지만, 문화적인 부분에 앞장서는(?) 온누리 교회의 성향을 생각할 때 좀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역’에서는 평신도 사역에 대한 강조(185p)와 특별히 성도가 스스로 비전을 품고 일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187p)에 동감한다. 또한 평신도 리더십을 강조하면서도 주의점까지 지적한 것(190p)은 매우 적실했다. 봉사자를 위한 봉사자에 대한 이야기(208p)는 새롭고 좋은 생각이라 여겨진다.

‘설교’에서는 설교의 선포로서의 특징에 대한 강조(216p)와 함께 사람의 영에게 설교하고(218p) 가슴에서 나온 설교를 하라는 것(228p)과 설교를 위해 깊이 묵상하라는 것(226p) 등은 매우 유익한 지적이었다. 과연 설교자로 부름 받은 이는 죽을 각오를 하고 설교를 뚫어야 한다(235p)!

‘양육 체계’에서는 양육자와 동반자에 대한 이야기(245p)와 프로그램이 아닌 삶으로서의 제자도에 대한 지적(252p)이 좋았다.

‘소그룹과 공동체’에서는 소그룹의 특성을 짚어서 은혜를 나누는 순모임, 성경 연구를 위한 성경대학과 성경연구반, 그리고 큐티를 나누는 소그룹 등으로 소개한 것이 좋았고(263p), 대형 교회만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260p) 역시 소중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교회에도 열두 명은 있다.’라는 말은 ‘열두 명만 모였다면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는 목회철학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할지라도(260p), 조금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개척교회들 가운데 열두 명도 모이지 않는 교회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전도’에서는 교회가 죄인들을 위해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267p)과 생활 전도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280p)가 마음에 들어왔다. 그런데 ‘죄인들을 초청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설교를 해야 한다’고 한 말(268p)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이해하자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죄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부분에 있어서 ‘복음의 분명한 선포’(이것은 278p에서 저자가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보다 ‘초청/위로/격려’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영혼의 구원은 복음으로만 가능하지 사람이 위로하고 격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좀 더 분명하게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도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는 우려 때문에 더욱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선교’에서는 안주하지 말고, 돈에 구애받지 말고 헌신하고 희생하라는 지적과(299p), 선교가 학교와 병원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304p)이 좋았다. 하지만 선교에 대해서는 선교 이야기만 하고 끝냈다면 좋았겠다는... 그것을 ‘교회 부흥의 구체적인 비결’(299p)로 소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는 교회 부흥을 위한 수단으로 제시한 것은 저자 자신이 113p에서 수단과 목적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과 반대되는 발언이 아닌가!

다섯 번째 PART는 ‘팀 사역과 리더십’이다.

‘교회 부흥의 원동력, 팀 사역’에서는 교회가 변하기 위해서는 목사와 장로와 성도가 동시에 변해야 하고 하나의 비전과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319p)에 전적을 동의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할 동역자를 보내달라는 기도(320p)와 은사가 가지는 보완적 의미에 대한 지적(321p)도 좋았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리더십’에서는 많은 도전을 받았다. 목사가 죽기로 결심하고 사역해야 한다는 말(332p)은 개척 교회 목사로서 새로운 다짐을 하게 했다. 특별히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고난이라는 음식을 먹고 자란다”(349p)는 말은 진주나 보석 같이 빛나는 명언이라 생각한다. 비전을 이루기까지 좌절하고 절망하며(335p) 고독과 외로움과 고통과 싸워야 하며, 그것이 정상이기에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라는 지적(335p)도 좋았다. 그리고 리더가 한 사람 또는 소수의 몇 사람을 위해 자기 생애를 바치는 사람들이라는 말과, 보상이 없는 곳, 오래 있었다고 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런 곳에서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영광스럽게 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는 방법이라는 말(351p)은 바로 나에게 주는 말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주신 비전을 이루기까지 전진하는 삶에 대한 각오를 굳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여섯 번째 PART인 ‘러브소나타를 부르다’에서는 ‘일본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러브소나타’라는 한 장에서 최근의 일본에서의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다른 부분들에서도 그랬지만, 전도와 선교 그리고 비전과 리더십이라는 내용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말하는 내용들의 강렬함과 열정이 나를 흥분시키고 고무시키며,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하도록 이끌었다. 영혼에 대한 사랑, 전도와 선교를 향한 열정, 그리고 교회를 향한 지극한 사랑,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어가는 고난이라는 과정...

큰 교회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요 성경적인 참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실 만한 ‘진리’에 근거하여 참 ‘자유’를 누리는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고 개척 교회 사역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눈에 보이는 큰 변화나 성장은 없지만... 성도들 가운데서 발견하게 되는 조금씩 성숙해지는 모습이 내게는 큰 기쁨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에게 주신 비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그 비전을 이루기까지 견뎌야 하는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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