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치노 레슨 - 지혜로운 스승에게 배우는 명쾌하고 탁월한 인생레슨
조엘 박 지음 / 박스북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 흡인력이 있다. 이것이 나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 하지만 한편으로는 요즈음 유행하는 심리학적인 가르침들이나, 기독교 안의 가르침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곳곳에 섞어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거부감이 느껴진다. 계속해서 소개되는 이야기들이 너무도 (요즘 유행하는 종류로서의) ‘교과서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교회를 말하고 목회를 말하지만 거기에는 성경적인 기준들이 아니라(성경 구절들이 인용되고 해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의 대부분은 주관적인 해석들로 보인다!) 일반적이고 비즈니스적인 원리와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오히려 하나님은 점점 배제되는 듯한 느낌!

* 자꾸 생각하게 된다. 목회란... 사람을 중심으로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야만 하는가? “사람들은 목회라고 하면 하나님만 생각하지만 목회란 사람을 놓고 하는 것이라네.”(165p)라는 말은 나로 하여금 벤을 멀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공한다.

* 아쉬운 점! 글씨 크기와 행간이 너무 크다. 책을 읽다보면 글씨 크기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는데, 지나치게 넓은 행간은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 마치 text 파일을 조잡한 프로그램으로 읽어 들여서 보는 듯한 느낌…

 

*****(읽으며 메모한 것들, 괄호 안의 숫자는 페이지)*****

1. ‘학생이 준비되면 스승은 나타난다.’는 플라톤의 말처럼…(9) - 저자는 자신과 벤의 만남을 하나님의 역사로 이야기하면서 플라톤의 말을 인용한다. 이 표현은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러면서 정민 교수의 [책 읽는 소리]를 보면서 느꼈던 감화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거기서 저자는 “뭇사람 속에서 그 사람을 천번 백번 찾았네(衆裏尋他千百度)”(172p)라는 시구를 소개하면서 자신도 이 글씨의 전각을 표구해서 연구실에 붙여 놓았다고 말한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런 만남을 기다리면서…

2. 성숙한 삶을 위해 하루에 한 두 시간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네. …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들의 차이는 ‘개인적인 시간을 갖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라네. 성숙한 사람들은 언제나 바쁜 와중에도 개인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을 하지.(25-27) - 벤의 말이다. 이것은 QT에 대한 가르침처럼 보인다.

3. 공장을 비롯하여 아무리 좋은 요소들을 다 갖추었다 하더라고 비가 오지 않아 물이 부족하면 포도는 열리지 않게 되네. 물이 생명이기 때문이지. 목회도 마찬가지라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설교를 잘하고, 업무를 잘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가지에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목회는 어려움을 겪게 되어 있네. … 겨우라니? 자네는 관계를 겨우 정도라고생각하나? 관계는 겨우 정도가 아니라 생명이고 시작과 끝이라네. 관계는 모든 공동체의 생명이고 시작과 끝이라네.(44) - 벤은 ‘관계’가 인생에 있어서도 목회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한다. 나는 저자의 자리에 서서 벤의 말(“목회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네.”)을 듣고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고 나름대로의 답변도 해보았다(내 답변은 ‘진리의 성령’이었다). 그리고 벤의 답변을 읽어가면서 ‘당혹감’을 느꼈다. 과연 그럴까? 인생에 있어서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목회에서도? 그것이 전적으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한다면 단지 사람과의 관계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벤은 요한복음 15:5의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를 가지고 ‘관계’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4.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그 어떤 업무보다도 관계를 우선시하는 사람들 중에서 목회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네. 목회를 기도나 설교, 또는 조직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피곤함을 느끼고 있더군. … 목회에서 관계는 제일 중요한 것이라네. 관계는 목회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도 똑같이 중요하지. 카네기 기술 연구소의 조사결과 엔지니어링과 같은 기술 분야에서도 재정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 중 15퍼센트는 자신의 기술적 지식에 의한 것이고, 85퍼센트 정도는 인간관계, 즉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둔 것으로 통계에 나타나고 있네. 목회에서 설교나 기도보다도 관계가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네.(47~) - 목회를 편하게, 어려움이 없이 하려고 한다면 ‘관계’를 최우선순위에 놓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목회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관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때로는 그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말씀도 전해야 하고, 그래서 관계가 나빠지기도 한다. ‘관계’를 최우선시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만한 설교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벤은 목회에서 설교나 기도보다 관계가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에 대한 근거로 엔지니어링 분야에서의 성공 퍼센테이지를 제시한다. 하지만 과연 엔지니어들의 성공 퍼센테이지가 ‘성공’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제시하는 것 이상으로 ‘목회’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결정하는가? 목회의 목표는 과연 엔지니어들의 성공과 같은 종류의 ‘성공’인가? 현대 비즈니스 이론을 아무런 여과도 없이 목회에 적용시키는 방식!…

5. 갑자기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실 나는 그동안 목회의 성공을 위해 설교준비, 기도, 독서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왔다. 그 외의 것은 목회자에게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관계 역시 설교나 기도보다 우선순위에 둔 적이 없었다. 오히려 설교준비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만남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계를 감소시키려 노력했다. 목회자의 능력과 결과는 설교와 기도로 나타낸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50) - 조엘의 생각이다. 나 역시 기본적으로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해왔다. 물론 설교, 기도, 독서 외의 것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그것들이 ‘핵심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엘은 ‘너무 쉽게’ 설득되어진다. 나는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성공’이나 ‘능력’에 대한 개념도 저자와 좀 다르기도 하지만… 관계도 중요하다. 하지만 관계가 말씀과 기도보다 중요한 것일 수 있을까? 자칫하면 목회에 있어서 ‘신적인 부분’은 전혀 배제된 채 일반 기업의 경영과 똑같은 것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스러운 생각이 든다. 비즈니스 마인드가 목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6. 연합이 어려운 것은 한 사람과 여러 사람이 연합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라네. 리더는 1:1로 연합하는 것만이 아니라, 언제나 1:2, 1:10, 1:100으로 연합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네. 연합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관계라고 한다네. 중요한 것은 연합이 되고 관계가 형성되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네. 우리 주위에서 열매가 없는 이유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네.(60) - ‘관계’의 중요성이 다시금 요한복음 15;5로 설명되어진다. 이번에는 ‘열매’라는 개념도 함께. 그런데… 연합을 설명하면서 중요한 것 하나가 간과되고 있다. 성경 본문에서는 분명 예수님 자신이 포도나무로 제시되고 있는데, 설명에서는 어느 사이에 포도나무가 목회자로 둔갑해버렸다. 결국 성도가 목회자와 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주장까지… 그것이 사실인가? 성도가 목회자와 관계가 현성되면 열매를 맺게 된다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과연 요한복음 본문이 의미하는 것이 이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7. 포도나무의 목적은 가지들에게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이네. 그것은 바로 인정과 격려라네.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의 역할을 맡은 구성원들을 인정하고 격려해야만 하네. 그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지.(63-) - 이제 포도나무의 역할은 수분과 영양 공급으로 한정되었고, 그것은 다시금 인정과 격려라고 못 박아진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록펠러의 이야기와 실용주의자인 윌리엄 제임스의 말이 소개된다. 벤은 과연 요한복음 15:5를 바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해석과 적용은 정당한가? 물론, 목회에 있어서 인정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요한복음 15:5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메시지란 말인가? 예수님은 포도나무로서 우리에게 인정과 격려를 주어서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이란 말인가? 본문은 결국 구색 맞추기에 불과해 보인다. 성경 본문이 소개되지만 결국은 심리학적, 비즈니스적인 가르침이 강력하게 주장되고 있다.

8. 책상의 위치는 업무의 내용과 일치되어야 하네. 예를 들면 상담을 위한 사무실이라면 책상을 전면을 바라보게 둘 필요가 있네. 하지만 독서와 설교준비를 위한 것이라면 책상을 벽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유리하지.(90) -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상당히 지혜로운 조언처럼 들린다. 하긴, 이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에게서 새롭게 들리겠지만…

9. 갈등을 기도나 예배보다도 먼저 해결하라는 말씀이네. 사람들은 갈등을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기도만 열심히 하려고 한다네. 그러나 기도만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네. 누누이 말하지만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일이 따로 있다네. 갈등을 풀고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지.(100) - 이번에는 마태복음 5:23-24의 제물을 드리려다가도 화해할 사람이 있으면 먼저 화해하라는 말씀이다. 기본적으로는 동의한다. 기도만 하고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갈등을 풀고 해결하는 것은 과연 사람의 일일 뿐일까? 갈등 해소를 위해서 하나님은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시는 것일까? 마태복음과 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잠언 16:7을 보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이건 어떤가? 여기서 말하는 것이 찾아가서 화해할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다. 어떤 종류의 갈등은 하나님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것이요,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를 모두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야기는 점점 이상하게 흘러간다. 목회에서 말씀과 기도를 제치고 ‘관계’가 1등 자리로 나섰고, 사람과의 갈등 해소에서 하나님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는 분이 되어버렸다.(하나님이 하실 일과 사람이 할 일이 따로 있는데, 갈등 해소는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니까!)

10. 링컨은 뛰어난 관계의 기술을 소유한 사람이었다네. … 링컨은 이렇게 말을 했네. ‘누군가와 논쟁을 준비할 때 나는 시간의 3분의 1은 나 자신과 내가 말할 내용을 준비한다. 나머지 3분의 2는 상대와 그가 말할 내용을 생각하는데 할애한다.’고 했다네. 초점이 상대에게 있다는 말이라네. 쉽게 얘기하면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라는 말이라네. …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물고기가 좋아하는 것을 미끼로 준비한다네. 내가 치즈와 커피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을 물고기의 미끼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등 앞에서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한다네. 그것은 상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어리석은 생각이라네.(103~) - 이것은 실제적이고 동감이 가는 이야기다. 관계가 최고라는 주장을 보고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관계를 위한 기술과 원리.

11. 한 사람을 대하는 것을 250명을 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소중함은 정말 크게 다가올 것은 분명하네. 250명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118) -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의 250명 법칙에 대한 설명 끝에 나온 결론이다. 비즈니스에 적용한다고 한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을 그대로 목회에 적용시키는 것이 가능하고 옳은 것일까? 목사가 교인을 바라보면서, 그를 통해서 교회에 등록하게 될 250명을 생각하면서 그 소중함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이미 예수님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한 영혼과 천하의 비교는 비실제적인 듯이 보여서 무시되고, 한 사람 뒤에 250명이 있다는 주장은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것으로 보여서 열렬히 환영받아야 하는 것일까? 교인은 목사의 고객인가?

12.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만을 생각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문제가 없겠지만, 이웃과의 관계는 소원해지지. 이런 논리의 주입으로 크리스천들은 성서와 믿음, 그리고 은혜를 자기위안의 도구로만 사용하려고 한다네. 결국 가짜 크리스천들을 양산하는 셈이라네. 성서를 읽어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유익을 위한 믿음, 자신의 유익을 위한 은혜로 이해하게 된다네. 결국 자기도취나 자기자랑 같은 이기적인 신앙으로 전락하고 사회 속에서 지탄을 받는 이유가 된다네. 이런 크리스천들에게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을 기대할 수 있겠나?(129) - 오직 사람, 오직 관계, 오직 성공만을 생각하면 사람을 섬기는 데는 문제가 없겠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소원해지지. 이런 논리의 주입으로 크리스천들은 사람과 관계, 그리고 성공을 자기위안의 도구로만 사용하려고 한다네. 결국 가짜 크리스천들을 양산하는 셈이라네. 성서를 읽어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성공을 위한 관계, 자신의 유익을 위한 사람으로 이해하게 된다네. 결국 자기도취나 자기자랑 같은 이기적인 신앙으로 전락하고 하나님 앞에서 지탄을 받는 이유가 된다네. 이런 크리스천들에게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을 기대할 수 있겠나?

13. 세 가지 기준을 설명할 수 있네. 첫째, 인생의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둘째, 헌신하고 있는가? 셋째, 재능을 사용하고 있는가? …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 있다네. 그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이라네.(133) - 이것은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의 복제판으로 보인다.

14. 아돌프 히틀러의 저서인 [나의 투쟁]에 보면 이런 말이 있네. ‘내가 처음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의아해했다. 두 번째로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나를 미쳤다고 했다. 세 번째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귀를 막고 듣기 싫어했다. 네 번째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섯 번째 이야기했을 때 그들은 나의 신봉자가 되어 버렸다.’ 확실히 히틀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있었네. 그는 군중들에게 반복을 통해 바넘 효과(Barnum Effect)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네.(135-) - 진리는 계속 이야기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진리가 아닌 것도 이렇게 계속 이야기되어지면 진짜인 듯 여겨지기도 한다. 바넘 효과는 사용할 수도 있어야 하지만 주의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15. ‘세 가지 좋은 이유를 대기 전에 말인데, 자신의 사업을 아직 더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든가, 가족이 아직 건실하게 안정을 찾지 못했다든가, 자신의 부인이 아직 수표에 사인을 할 줄 모른다든가, 자식들이 사회현실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든가 하는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길 바랍니다. 나의 관심사는 바로 당신이니까요. 무엇 때문에 내가 당신을 이 세상에 좀 더 놔둘 필요가 있는 건지 그 이유를 설명해 보세요.’(143) - 리아 루프트(Lya Luft)의 [Perdas & Ganhos]에 나오는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출근 준비하는 한 남자에게 죽음의 천사가 찾아왔고, 죽지 않아야 하는 세 가지 이유를 대라고 한다. 그런데 위에 나온 내용들을 제외한 것을 제시하라는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당신은?

16. 사람들은 목회라고 하면 하나님만 생각하지만 목회란 사람을 놓고 하는 것이라네.(165) - 물론 목회는 사람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목회가 ‘하나님’과 무관한 일일까? 하나님과 무관한 목회가 목회일까?

17. 리더들의 가장 큰 약점이 뭔지 아나? 그것은 입을 열고 귀를 닫는 것이라네.(168) - 듣기의 중요성!

18. 여기서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 사람의 구체적인 표현일세.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나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사랑이라네.(177) - 벤의 해석은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의 주장을 세우기 위해서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주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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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공주 2008-04-1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표지와 제목보고 구입했는데 내용은 뭐 별로 신선한 새로움은 없네요...요즘 흔히 많이 하는 이야기들..책사이즈와 행간간격도 좀 그렇고. 한시간만에 다 읽었나? 내용이 너무 진부해요..너무 주관적인거 같기도 하고..별다른 색다른 대안도 없고 종교적이지도, 그렇다고 일반적이지도, 않은..그저 그런 책!!

jayuhon@hanmail.net 2008-04-16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보는 사람마다 시각이 다르니까요... 다른 곳에 올렸더니 비판적인 시각으로 썼다며 큰 일 난 것처럼 떠들더군요. 책 내용 메모한 것이 저작권에 걸리느니 뭐니 해가면서... 책을 읽고 느낀 것을 쓰는 것이 서평이고, 책이 일단 나왔으면 그것이 좋다 나쁘다는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근거 없는 악평은 거절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