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이 점수는 매길지 모르지만 우리를 이끌지는 못한다" (90)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요리에서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태국식 양배추 소스, 망고 소스, 우리나라의 참깨 소스와 카레 마요네즈처럼 직접 만든 개성 넘치는 소스들에서는 나만의 맛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의지와 도발을,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새로운 식당을 선보이는 에너지에서는 이방인의 불안과 생의 열정을 느낄 수 있으니, 평론가들 또한 윤선 씨의 행로를 계속 따라가보고 싶은 마음이리라. (108-109)
고독한 사람은 고독한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니까. 누군가에게 고독은 양지에서 온 다른 이의 손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싶은 늪과 같으니까. 너무 지긋지긋해서, 자신의 고독을 비추는 비슷한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더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알 것 같았다. (116)
가난한 도시를 여행하는 일은 담장도 아닌 창문 너머로 집집마다 얄궂은 사연들을 목격하게 되는 일이다. 한껏 나온 배를 드러내고 대낮부터 텔레비전을 보는 아버지와 그 앞에 앉아 숙제를 하는 삐쩍 마른 여자아이를 스쳐 지나가야 하는 일이다. 왜인지 침대 매트리스가 한가운데 놓여 있는 부엌에 모여 앉은 네댓 명의 가족들과 눈을 마주치게 되는 일이다. 동네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며 기념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올렸다가 베란다에서 웃통을 벗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청년과 눈이 마주쳐 민망함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고, 보풀이 올라오고 고무줄이 늘어난 팬티와 브래지어를 걸어 놓은 빨랫줄과 그 주인으로 여겨지는 여인들을 수없이 맞닥뜨리면서 미안함으로 카메라를 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마치 스스로가 누군가의 숨기고 싶은 치부를 구경하러 온 사람처럼 느껴져 자책하게 되는 일이다. (119-120)
감독은 사회의 얼굴을 그려 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굴을 먹고 샴페인을 마시는 일이 누구에게나 허락된 일인 양 이야기하는 동시에 너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동성이든 이성이든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하며 살지 그러니, 하며 위선의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을. 누구나 알고 있는 냉혹하고 야만적인 논리는 모른 척 감추고 아름답게 웃고 있는 그 얄미운 얼굴을 들추고 싶었던 게 아닐까. (141)
미미 토리송의 삶이 부럽지는 않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10분도 안 돼 우울해진다. 다만 나는 바람에 부응하는 그녀의 순응성이 부럽다.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표준에 자연스럽게 몸을 맞추는 일, 이미 수백만의 여성들과 무엇보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수백만의 모델들이 표지판이 잘 세워 놓은 지대에 들어가는 일은 (중략) 따뜻한 반신욕처럼 기분 좋고 편안한 일이다. (161)
나에게 누군가를 집에 초대함은 기본적으로 나의 세계를 보여 주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세계를. 그런데 이 노트의 주인에게는 ‘당신을 위해 준비한’ 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결국 시어머니에게 식사 초대란 초대받는 사람을 향한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었다. 센스 있는 선물을 고르는 일처럼 상대방의 취향을 가늠하고 상상하는 일이었다. (177)
글렌 굴드를 들어도 듣지 않아도 살 수 있고, 사랑을 해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내 삶의 중요했던 순간은 모두 그런 부차적인 일들에서 탄생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음악을 듣고, 잘 쓰인 글을 읽고, 사람에 매료되며 마음이 움직인 경험들이 내 인생을 만들었다. 욕망을 꾹 참고 넘기는 습관은 삶을 재미없게 만든다. (185)
나는 요리와 집안일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몫이라는 생각이 상식으로 통하던, "여자애가 집안일을 못해서 큰일"이라는 핀잔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자라는 내내 이에 불만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요리는 굳이 잘하고 싶지 않은, 열심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러니 가정적인 남자, 요리하는 남자가 마음에 들어오는 일은 너무 쉽지 않았겠는가. (245-246)
말이 통하지 않아 자기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방인에게 이국의 음식은 가장 쉽고 친절한 외국어였다. (251)
그리고 언젠가는 이 책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는 나의 사랑하는 R에게, 마지막 문장을 선물하겠다. 당신이 있었으므로, 이 책도 존재할 수 있었다.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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