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이를 악물고 울었다. 울음이 터져 나와 이를 악물 수도 없어서 입술을 앙다물고 울고 또 울었다. 뜨거운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그 뒤로 그날 왜 그렇게 슬피 울었는지 차분히 생각해보았다. 별것 없었다. 내가 대견해서 그렇게 울었다. 가게 팔고 반년도 안 돼 관광차 몰고 시골 아주머니 아저씨들 원 없이 춤추고 놀게 해준 내 자신이 너무 멋져서 그렇게도 울었다. (31)
신념이니 자유의지니 하는 것들이 뇌과확 앞에서는 모두 소설이었다. 화가 나 있는 상태이기도 한 높은 베타파가 습관화되어 내 삶을 끌어왔던 것이고, 그 예민함과 날카로움이 다른 사람과 대비되는 나만의 매력인 줄 알고 살았는데 그냥 울화병 환자였다. (47)
아버지를 용서하기가 힘들어요. 아버지를 용서할 수가 없어서 너무 괴로워요. 그날 밤 아버지한테 죽도록 맞고 무서워서 울지도 못한 큰아들이 지금 울고 있어요.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아버지는 술 먹고 저희들을 다 망치셨어요. 동생들도 제대로 못 살잖아요. 아버지가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정말 나쁜 놈이에요. 바보 천치 농판 등신이에요. (62)
자기 능력의 70퍼센트를 쓰며 사는 사람이 제일 현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머지 30퍼센트의 여유 공간에서 인간다운 면모가 나온다고 한다. (81)
최전방 공격수로 나가서 럭비 하듯 공을 찬다. 우리 팀 공격수의 활로를 열어주기 위해 상대 수비수의 시야를 가리거나 진로를 막는 전술이다. 상대편 수비가 나보다 훨씬 빨라서 큰 효과는 없다. 최소한 상대 수비수 한 명은 달고 다녀야 팀 전력에 도움이 될 텐데 씨방새들이 아무도 나를 마크해주지 않는다. (104)
제법 깝치고 추월해가는 직행버스를 따라잡을 때는 그 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시내에서 쌓인 울분을 외곽에서 맘껏 푼다. 승객들의 반응도 의외로 좋다. "아따 기사님, 운전이 성깔 있네!" (132)
두 가지 경우다. 아무 생각 없이 들고 다니는 학생하고 다 알면서도 들고 다니는 학생이다. 알고도 들고 다니는 학생은 전주 시내버스 기사들이 너무 미워서 일부러 일반 카드를 들고 다니는 나름 정의로운 그룹이다. 전주에는 현재 일부 젊은이와 시내버스 기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사 아저씨가 모르는 줄 아나 본데 다 알고 있다. 빨랑 카드 바꿔라! (145)
현재의 친절기사 선정 방식은 비록 좋은 의도로 하고 있다 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 전반의 시스템 문제를 들쑥날쑥한 인간의 품성에 기대어 해결해보려는 것은 너무 궁색하다. (160)
하마터면 또 울 뻔했지 뭐야. 미사곡이 길게 흘러나오는데 이 친구 기도 소리가 딱 얹히니까 절묘한 거야. 뭔가 막힌 것을 도려내는 것 같기도 하고, 텅 빈 것을 꽉 채워주는 것 같기도 하고, 면도칼에 베었는데 아프지 않고 오히려 시원할 것 같은 그런 느낌 있잖아? (191)
하루는 할머니 한 분이 뭣이 그렇게 급했던지 한참을 말을 더듬다가 "거시기 가요?" 그러시기에 (거시기는 보나 마나 중앙시장일 테니까) "예, 거시기 가요!"라고 큰 소리로 익살스럽게 답을 해서 버스가 뒤집어진 적이 있다. (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