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는 간소하게
노석미 지음 / 사이행성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쑥색이라는 것은 이른 봄을 대변하는 연두색과는 다른 깊은 뽀송함의 촉감을 지닌 색이다. (46)

쑥은 봄을 지나 더워지는 여름이 오면 이른바 쑥대밭으로 변하여 정원에서는 미안하지만 미움을 받는 존재가 되고 만다. (46)

바질잎은 이파리를 그리라고 했을 때 전형적인 관념 속의 단순한 잎 모양이다. (82)

나의 떡볶이는 고추장을 넣지 않고 고춧가루와 간장을 맛을 낸다. 텁텁하지 않고 감칠맛이 나서 더욱 많이 먹을 수 있다. 이런. (189)

가을의 대표적 양식 중 하나가 바로 이 고구마 줄기다. 고구마를 수확하기 전 통통한 고구마 줄기를 자르면서 느끼는 점은 ‘흠, 이게 먹거리라니, 대단한데.’라는 생각.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고구마 줄기를 자르고 껍질을 벗기고 삶고 무치고 하는 수고로움에 비해 후루룩 먹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 그리고 나물로 만들어놓으면 그 양이 팍 줄기 때문에 내가 너무 뭔가를 한 번에 많이 먹고 있다는 죄책감 같은 것도 든다. 하지만 곧 ‘흠, 내가 이렇게 수고롭게 일했는데 이 정도는 먹어야지.’ 하며 곧바로 자신을 위로하기로 한다. 자책과 위로가 반복되는 분주함이 지나면 조용하고 쓸쓸한 계절이 온다. (200)

심고 난 뒤 고구마 순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뜨거운 햇볕을 못 이겨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살기로 결심한 고구마 순은 여름을 지나면서 밭을 점령하려고 작정한다. (208)

세상의 모든 것이 갈색으로 바뀌고 싱싱함이 사라진 추워지는 날들이 오면 곳곳에서 시래기를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산한 계절의 시골 풍경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시래기가 널려 있는 농가들의 모습은 사실 초라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말라가고 있는 시래기의 모습은 정말 쓰레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것이 과연 음식이 될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뭐든 말라가는 식물이 예쁘기는 어렵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다른 그 어떤 채소보다 시래기가 오래도록 겨울 양식이 되어준 것은 맛이 좋아서일 것이다. 시래기를 말리는 귀찮음과 그 보기 흉함을 지나서 시래기가 시래기밥이나 나물, 된장국 등의 음식으로 바뀔 때 ‘아, 어찌 이런 음식이?’ 하는 감동이 몰려온다.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시래기만의 맛과 식감이 있다. (220)

먹을 게 별로 없는 추운 아침. 일어나자마자 먹을거리를 챙기는 나는 냉동고의 유물을 탐사해본다. 냉동고를 뒤져 발견된 돌처럼 딱딱한 가래떡을 꺼내 해동한 뒤 잘라 굽는다. 따스한 커피와 함께 먹는다.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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