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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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것은, 우울치료제로 여행을 복용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더없이 넓은 동굴이고 또한 가장 작은 동굴이다. 그런 여행에서는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않는다. 나 자신과도 더 친해지지 않는다. 그냥 나를 잘 모르겠고 내가 싫은 상태로 어딘가로 갔다가 그대로 다시 돌아온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냥, 동굴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게 전부다. (107)

대인관계에서 유일한 나의 철학은, 상대가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캐묻지 않는다는 것 정도. 상대방이 처박힐 수 있는 골방 하나쯤은 허락하고, 그곳에서 ‘너무 오래‘ 나오지 않는 것 같으면 억지로라도 부수고 들어가버린다. 그쯤 되면 자신의 날숨으로 탁해진 공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오지랖이 훨씬 위로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신이 혼자만 있고 싶어 하는 인간이었다면 날 애초에 좋아했을 리가 없잖아! 라고 주장한다. 팔을 잡고 거리를 걷거나 나란히 앉아서 각기 다른 일을 하며 잠깐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대개의 인간은 훨씬 ‘덜 부정적‘이 된다. (115)

지금은 더 이상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는 친구인데, 근사한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친구의 활약을 멀리서 지켜볼 때면, 종종 그날이 떠오른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버리고, 그 결과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없이 충만했던.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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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키즈의 생애 - 안은별 인터뷰집
안은별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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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지금까지 해온 선택의 결과이지만, 그것은 ‘총합‘이라기보다는 ‘가능성‘을 제거하는 ‘감산‘에 가까운 법이다. (27)

‘n포 세대‘가 청년 세대의 지배적인 표상이 되고 n의 가짓수는 늘어가는 상황에서,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 안정이나 내 집 마련을 성취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원래 가족‘으로부터 ‘자기 가족‘으로의 전환을 완수한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그러한 삶을 충분히 살 수 있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성애-가부장제-가족주의의 틀 안에서 물리적인 보금자리를 포함한 ‘새로운 가정‘을 구축한 전자의 경우에만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독립, 어른 됨으로 인정된다. 그 ‘진정한 독립‘이야말로 대개 부모로부터의 지원이나 증여를 수반한다는 아이러니를 안은 채 말이다. (27)

근처 시립도서관에 자전거 타고 가서 일곱 시간 공부하고 돌아오곤 했는데, 그게 정말 평화롭고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남자 친구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거 외에는 사람도 하나도 안 만나고, 라디오에 정 주면서 새벽까지 듣곤 했어요. 그리고 디트 시험에는 생물 파트 비중이 큰데, 그 생물학이 주는 본질적인 아름다움, 그런 데서 행복을 느꼈던 것 같아요. (51)

어떤 사람을 가장 잘 알려면 함께 고생을 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힘든 순간에 나오는 성격이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둥. 하지만 그런 궁지에 몰린 상황은 일시적인 예외일 뿐이라는 반대의 의견에 더 동의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냉정하게 판단할 여력이 있을 때, 그때의 모습을 그 사람의 진실에 가깝게 봐주는 게 온당하지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역사 속에서, 힘들어서 아무거나 붙잡고 싶을 때의 감정과 모습과 행위들도 진짜이며, 그걸 벗어난 상태에서 ‘지금의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겠지‘라고 약간은 후회하는 모습도 진짜라고 생각한다. 모든 감정은 진짜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말은 변명이 아니라 진실에 가깝다. 김마리 씨의 일에 대한 생각은 첫 번째 인터뷰와 두 번째 인터뷰에서 크게 달랐지만, 어떤 모순 없이(혹은 모순이 있기 때문에) 그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59)

사이비 종교, 사기 범죄의 유혹은 이미 약해져 있는 사람들을 노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어떤 종류의 위험이 잘 실감나지 않는다면, 과장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그만큼 자신이 어떤 속성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느껴야 할 것이다. (62)

"근데 사실 생각해보니까 ‘먹다보니 라지두판‘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건 우리 가족 사이에서 지금껏 암묵적으로 금기시된 일이었다. 확실히 그건 가게 이름만큼 장난스럽거나 재미있었던 일은 절대로 아니니까. 그때는 모두가 힘들었던 만큼 서로 손톱을 세우고 상처를 주고받은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김재욱은 픽션 화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경험한 베이비붐 세대 이야기를 클리셰지만, 그런 전형성 뒤에는 이렇게 대체될 수 없는 하나하나의 고유한 상처가 있었을 것이다. (95)

좀 교활한 얘기를 하나 하자면, 한국에선 제가 게이라는 거 말고는 소수자인 점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삶에서 내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점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뭔가를 할 때는 제가 게이라는 것을 중추에 두게 될 텐데, 반대로 미국에서는 제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가지고 뭔가를 할 것 같아요. 제가 한국인이라는 점이 저를 얼마나 만들었는지를 간과할 수 없고, 전 저를 만들어온 것들을 이용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그것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거든요. ‘한국 사회가 나를 만들었다‘라고 한다면, ‘만들었기 때문에 만든 대로 갈 것이다‘에서 최대한 벗어나게 행동하고 싶은 거죠. 그렇게 하려면 한국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보다 똑똑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냥 ‘안 할래, 안 할래‘ 이렇게 해서 되는 건 아니죠. 전 그렇게 팔짱 끼지 않고 이 사회가 날 만들었다는 점을 최대한 이해하고 이용해서 그것에 대한 변화를 제 일로 삼는 거, 그런 게 하고 싶어요. (223-224)

4년제 대학 교육을 받고 안정적인 공직에 맞벌이로 종사하는, 학생 운동은 하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론 어느 정도 진보적인 스탠스를 가진, 아마도 자가를 소유한 도시 중산층. 인터뷰이에게 들은 약간의 추측을 조합해 그린 두 사람의 윤곽이다. ‘개인주의 성향‘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무엇보다 안정적인 경제력과 자녀가 없다는 변수는, 홍스시 씨를 아무런 보호망도 없는 극단적인 환경으로 내몰거나 예민한 시기의 감정적인 갈등이 너무 심해지진 않도록 보호해줄 수 있었다. 이 보호자-피보호자 관계는 다소 건조하지만 그 건조함 때문에 서로를 조금도 부식시키지 않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248)

"저는 늘 광주와 반목했다가 조금 화해했다가를 반복하며 살아왔습니다." (282)

개인에게 성장은 자신을 지켜보는 관객이 있느냐 그리고 어떤 관객을 두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298)

지난 시간은 선명하게 떠오르지만, 제 것 같지 않습니다. 기억을 소유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쓸쓸한 마음에 곰곰 따져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레 하나로 통합해 시간을 엮어가고 있을까요? 기억들은 매순간 무한히 갈라지기만 할 뿐, 저에게 돌아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편, 위안하기도 합니다. 과거는 지나갔으니 저를 볼 수도, 해할 수도 없다고. (373)

인터뷰를 돌아보니, 각 시기마다 주위 상황도 많이 변했고 삶에 대한 제 해석도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시간과 기억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다른 풍경으로 옮겨가지만 지금 이 자리는 제가 디뎌온 걸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시간이 흘러가고 또 축적된다는 의미를 처음으로 제대로 느낀 한 해였습니다. 미래를 그릴 때 현재를 그대로 연장하는 대신, 여지를 많이 두는 힘을 기르고 싶습니다.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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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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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저런 순간에 다르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고 앉아 있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음만 심란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전환점’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내가 그런 순간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돌이켜 볼 때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날 그런 상황들을 되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들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와 켄턴 양의 관계에서 엉뚱한 것들을 솎아 낼 수 있는 날이, 달이, 해가, 끝없이 남아 있는 줄만 알았다. 이런저런 오해의 결과를 바로잡을 기회는 앞으로도 무한히 많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모든 꿈을 영원히 흩어 놓으리라고 생각할 근거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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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하프 트루먼 커포티 선집 2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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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 돌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 집에 갔을 때 돌리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상상해보라. 소란스럽고 캐묻고 다니기 좋아하는 열한 살 소년. 돌리는 내 발소리만 들어도 휙 도망갔고, 도저히 나를 피할 수가 없다면 수줍은 많은 아가씨 양치식물 꽃잎처럼 몸을 푹 웅크렸다. 돌리는 거기 있는 게 미묘한 우연인 양, 방 안의 물건이나 구석의 그림자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 신발을 신고 치맛자락이 발목까지 닿는 수수한 처녀 같은 드레스를 입었다. 베레나보다도 나이가 많았지만, 돌리는 나처럼 베레나에게 입양된 아이 같아 보였다. 베레나 행성의 중력에 이끌리듯이 우리는 각각 이 집의 외계에서 빙빙 돌았다. (13)

베레나는 여러 사람과 외교적이고도 정치적인 관계를 유지하긴 했으나 절친한 친구는 없었다. 남자들은 베레나를 두려워했고, 베레나 본인은 여자들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몇 년 전에 모디 로라 머피라고 하는 금발의 명랑한 아가씨가 베레나와 무척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모디는 여기 우체국에서 잠깐 일하다가 결국에는 세인트루이스 출신의 주류 외판원과 결혼했다. 베레나는 이를 몹시 못마땅해하며 이 남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그래서 베레나가 결혼 선물로 신혼부부를 그랜드캐니언에 보내주었을 땐 다들 놀랐다. 모디와 남편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따금 베레나에게 코닥 필름으로 찍은 사진 몇 장만 보내올 뿐이었다. 이 사진은 기쁨이기도 하고 슬픔이기도 했다. 베레나는 장부를 펴 보지 않는 밤이면 이 사진들을 책상 위에 펴두고 이마를 두 손으로 받친 채 앉아 있곤 했다. 사진을 치워버린 후에도 불도 끈 채로 방 안을 서성거렸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어디 걸려 넘어지기라도 한 양 아픔에 겨운 쉰 울음소리가 들렸다. (15)

라일리가 몸을 돌려 내 발에 오줌을 누자 나는 당연히 모욕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하지?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너 장난도 모르냐? 그가 말하면서 한 팔로 나를 어깨동무했다.
그런 사건들에 날짜를 매길 수 있다면, 라일리 헨더슨과 내가 친구가 된 건 그 순간이라고 하겠다. 그 순간, 적어도 그의 마음 속에서 나에 대해 애정 어린 감정이 시작되고 그 덕에 내 감정이 한층 더 깊어진 순간이었다. (86)

라일리는 장미 건포도 술을 따서 토파즈 색 술을 잔 네 개에 따랐다. 잠시 후, 그는 다섯 번째 잔에도 술을 채웠다. 캐서린 몫이었다. (104)

일단 변하면 제자리로 도로 돌아오는 것은 별로 없다. 세상은 우리를 알았다. 우리는 절대로 다시 따뜻해지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추운 나무를 향해 오는 겨울을 생각하며 자제심을 잃고 울음을 터뜨렸다. 울면서 비를 맞아 썩은 누더기처럼 갈가리 찢겨졌다. 집을 떠난 이후로 항상 이렇게 울고 싶었다. 카운티 부인은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자기가 무슨 언짢은 말이라도 했느냐고 물었다. 부인이 부엌에서 지저분해진 앞치마로 내 얼굴을 닦아주자 밀가루와 눈물이 풀처럼 엉겨 붙어 내 얼굴은 도리어 엉망이 되었고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111-112)

"용서해요. 나 역시 동생이 필요해요." 그래서 판사는 돌리에게 닿을 수 없었다. 두 팔로도, 마음으로도. 베레나의 주장은 너무나 결정적이었다.
한밤에 가까운 어디쯤에서 비가 느슨해지다 멈췄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나무를 짜고 비틀었다. 무도회에 지각한 손님들처럼 하나둘 나타난 별들이 하늘을 뚫었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퀼트 이불은 썩도록, 숟가락은 녹슬도록 놔두었다. 나무 오두막과 숲을 겨울에 맡겨두고 우리는 떠났다. (163)

"봄이 되면." 베레나는 돌리에게 약속했다. "같이 여행하자. 그랜드캐니언에 가서 모디 로라를 찾아갈 수 있을지 몰라. 아니면 플로리다로 가든가. 언니는 한 번도 바다를 본 적 없잖아." 하지만 돌리가 원하는 것은 자기가 있고 싶은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여행하고 싶은 소원은 없었다. "난 별로 재미없을 것 같아. 더 귀한 광경들을 보고 내가 이제껏 알았던 것들이 부끄러워지는 게 싫어." (166)

과거와 미래는 나선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한쪽 고리가 다음 고리를 포함하기 때문에 앞으로 올 주제를 미리 예언한다는 말을 읽을 적이 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삶은 닫힌 원의 연속처럼 보였다. 자유롭게 나선형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고리들. 하나의 원에서 다른 원으로 가려면 스르르 미끄러지는 게 아니라 도약해야 했다. 내 기운을 빼앗은 것은 그사이의 휴지였다. 어디로 뛸지 알기 전의 기다림. 돌리가 죽은 후에 나는 한참 동안 그저 대롱대롱 있을 뿐이었다.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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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 소수자를 위한 일상생활의 정치학
이라영 지음 / 동녘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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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사회에 ‘유대인’이 있다면, 남한 사회에는 ‘전라도인’이 있다.(82)

흔히 영호남 갈등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지역 감정 혹은 지역 갈등이라는 말은 지역 간의 권력관계를 정확히 담지 못한다. 지역감정이나 갈등은 대등한 권력관계에서 벌어진다.(83)

전라도의 야권 지지율 90퍼센트는 이러한 지역 차별에 대해 유권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다. 새누리당 계열의 역대 정당들이 1980년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한 이들의 후신임을 생각하면 이러한 결과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아무도 나치와 유대인의 ‘갈등’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명백하게 박해였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84)

남편의 동생인 시동생은 ‘서방님’이나 ‘도련님’ 또는 ‘아가씨’지만 아내의 동생을 부를 때는 ‘님’이 필요 없다. ‘처제’나 ‘처남’으로 부른다. 여성들은 남편의 가족에게 옛날 하인들이 쓰던 호칭을 사용한다. 이는 성차별이지 예법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세대, 성, 계층 간의 강고한 위계가 종종 예의로 포장된다.(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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