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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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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떠오르는 희미한 기억 속의 그때, 다세대 주택이란 이름의 지붕 아래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집을 나눠쓰는 모양새로, 방 하나에 한 가정씩 여러 세대가 살았다. 말 그대로 한데 모였지만 따로 또 같이, 그렇게 어울려 가족처럼 살았다.

가난했지만, 나만 가난한게 아니었고 다들 가난했다. 그 시절은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의 가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가난했기에 펼쳐졌던 일상과 삶이 이제와서는 추억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다. 괜스레 그때가, 예전이, 재밌었던 것 같다. 복작복작 요란스럽게 살던 시절이 더없이 그리운 것만 같다. 다같이 부업을 하고, 아침 일찍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것에 신경전을 벌이고, 연탄을 갈고, 컬러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드라마를 시청하고......

왜 불편하지 않았을까. 왜 이러한 형편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을까. 좋아서 그렇게 살던 게 아니었다. 사정에 맞춰서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다.
물론 실제로 좋았던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안 좋은 기억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불을 꺼둔 채로 가급적 켜지 않게 된다. 켜지 않고 어둠으로 감춰둔 채로 과거는 추억이란 이름으로 미화된다. 정화의 과정을 거쳐서. 심지어는 도저히 들춰낼 수 없을 만치 겹겹이 겹쳐져 포장된다. 무엇이 진짜의 기억이고, 무엇이 가공되었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잔인하지만 사람은 일부든, 전체든 어느 정도는 조작된 기억을 가지고 있을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궁금해하고, 알아가고 끝내는 모든 것을 알게 된 순간, 행복했다고 생각했던 기억은 저만치로 밀려나는 것이 아닐까.

개인차는 있겠지만 누군가는 후련할 것이고, 누군가는후회할 것이다. 누군가는 씁쓸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게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수빈은, 우돌은, 순자는, 어땠을까.
그들 감정의 변화를 가늠해본다. 어떤 마음이 되었는지, 그 깊이와 폭을 그려본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 소설을 기억을 다룬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하고 철없는 나의 기억, 당신의 아픈 기억, 우리가 즐거웠거나 혹은 영영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 모두가 켜켜이 쌓아올린 기억의 무더기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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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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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시전설 세피아>는 <새빨간 사랑>에 이은, 슈카와 미나토의 책 중에선 두 번째로 읽어본 책이다. <새빨간 사랑>을 읽은지는 족히 3년은 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 책을 읽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걸렸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새빨간 사랑>이 그냥저냥, 실은 별로......에 가까운 편이기도 했고 기억에 남지도 않았던 탓이 클 것이다. 돌이켜보면 딱히 재미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술술 잘 읽혔던 것 같은데, 읽고 나서는 머릿속이든, 마음속이든 오래 담아두기 힘든, 그런 책이었던 것 같다.

 

 

<도시전설 세피아>를 읽고 나서, 슈카와 미나토의 모든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책을 찾아보는데, <새빨간 사랑>을 포함해서 <수은충>, <꽃밥>까지 절판 아니면 품절로 확인되었다. 사람 심리가 이상한게, 절판 되었다고 하니까 내용도 잘 생각나지 않는 <새빨간 사랑>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판단하고 싶어지고, 못 읽어본 <수은충>, 특히 <꽃밥>은 진짜 읽고 싶어져서, 중고책이라도 뒤져봐야겠다고 또 한 번 결심했다라는......얘기.

 

 

각설하고, <도시전설 세피아>는 정말정말 재미나게 읽은 책이었다. 이걸 읽고 나서, 다른 책도 다 읽어볼까, 생각했으니 말 다한 거지.

 

 

수록 단편 중, 상당수가 제일 좋다고 하는 <어제의 공원>은 나 역시도 제일 좋았다. 아무래도 이런 쪽이 뭉클하니까. 코흘리개 시절 매일 같이 투닥 거리며 노는 친구 사이. 그리고 어느덧 자라, 다정한 아버지가 된 나와 아들 사이.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간절함과, 안타까움은 감동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바꿔보려고 해도, 정해진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걸까. 그럴 테지.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이미 받았다면. 오렌지 씨앗 다섯 알, 말이다.

 

 

표제작이라고 보여지는 <올빼미 사내>는 오히려 이 책에서 제일 임펙트가 없었다. 표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게, 솔직히 표지가 맘에 드는 책은 아니다. 사둔지도 꽤 됐는데 이제와서 읽게 된 이유로 표지 탓도 무시할 수 없다. 읽고 싶어지는 표지,라는게 확실히 있다. 수록된 다른 단편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표지를 만들어도, 지금의 표지보다는 훨씬 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표지 얘기는 이쯤 하고,<올빼미 사내>는 제목처럼 도시의 전설이 되고 싶은 한 남자의 수기느낌이 나는 편지글이다. 대체적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떠도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이지만, 전설로 떠도는 그 전설. 사내는 그저 살인마일 뿐인지만, 괴수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짜 전설로 남고 싶어한다. 전설에 골몰. 혹은 환상에 집착하는 사내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호오- 호오- 하고 올빼미 우는 소리를 내는 장면이 몇 있는데, 기괴하면서도 좀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실제로 찍찍- 거리며 대답 했다가는 확 잡아먹히니까, 조심해야한다.

 

 

<사자연>은, 두 여자가 죽은 한 남자를 두고 기묘한 경쟁 아닌 경쟁을 하는 이야기. 읽다보면, 둘 다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또 묘하게 그러려니, 하고 보게 된다. 집착의 대상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서, 더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인생을 다 바치게 되면, 머리가 살짝 도는 것도 이해가 된달까. 갈구하고, 사랑하고 있지만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그러니 당연히 그 남자에 대한 다른 것, 이를 테면 가족, 또는 유품, 묘지, 같은 것에 더 매달리게 된다. 불행한 삶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해보지만, 그러는 내내, 그녀들은 행복했을 수도 있다. 일그러진 행복일수록 더 진짜같으니까.

 

<아이스맨>과 <월석>은 둘 다 다른 느낌으로 오싹오싹했던 이야기였다. 결말 즈음에서는 그 느낌이 확 갈리지만.

 

<아이스맨>은 이 책에서 제일 호러 소설답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괴를 놓고 벌이는 진짜 혹은 거짓. 그리고 진짜 요괴. 예측 가능한 진실은, 그렇게 생각하게끔 작가가 의도한게 아닌가 싶다. 여기 나오는 '갓파'처럼 물컹물컹하고,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지만 결국엔 서늘한 그런 단편.

 

 

<월석>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엉뚱한 아파트에서, 전철안을 달리는 '나'를 매일매일 보고 있다는 설정과 함께 시작된다. 닮은 사람이겠거니, 하지만 아니다. 그 사람이 맞다. 내내 미안함을 가지고 있던 그 사람. 그렇게 닮은 사람은 또 있을 수가 없는데, 아침마다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내 얼굴을. 돌아가신 어머니로 바뀌기도 한다. 그 뒤로는 또 어머니와 매일 마주한다. 미안함이 가장 큰 존재가 보이는 것으로 대상이 바뀐 것이다. 가시지않는 죄스러움, 혹은 미안함이 응어리져 그렇게 보인다. 그 사람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것과,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에 어떤 큰 차이가 있을까. 중요한 건,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던 내 마음인 것을. 그리하여 지금의 '나'를 투영하고 있다는 것을. 달에서 떨어져나온 월석을 위해, 아니 '나'를 위해 달리던 어머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라멘가게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회사 후배. 원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멍하고, 조금 아프다. 그랬던 마음들에게.

 

다 읽고나서 떠오른 생각인데, 이 책과 츠네카와 코타로의 책들과 비교해가면서 읽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작풍이랄까, 분위기가 비슷한 면면이 은근히 있다. 호에 가까운, 아주 좋아하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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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울음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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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마타 마호카루의 소설 속엔, 얼핏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인간들만 한가득 나온다. 극단적이거나, 엉뚱하거나, 거칠거나, 단순하거나. 이 책, <고양이 울음>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역시 그렇다. 그래서 그들이 내뱉는 말이나, 발산하는 행동들엔, 약간의 거부감과 이해불가의 마음이 동시에 든다.

 

하지만, 그 말과 행동들 뒤에 숨겨진 내밀한 상처와 심리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쉽게 이해당하고, 쉬이 납득해버리는 내가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묘하게 수긍하고 있달까. 그래 뭐,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몽'은 엄청난 생명력을 지닌, 고양이이다. 끈질기게 살아남고, 끈질기게 살아간다. 사람을 귀찮게하지 않으며, 동족은 사랑할줄 모르나, 사람은 사랑할줄 알고, 사랑받을 방법 또한 아는 그런, 고양이.

 

몇 번이고 버려지고, 죽을 고비도 몇 번이나 넘기는 '몽'

'몽'은 자신에게 부여된 생명을 고귀하게 여기고 삶을 터프하게, 때로는 무심하게 넘기며 살아간다. 죽음 역시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몽'에게 있어, 생명과 죽음은 시작과 끝이며, 끝과 시작이기도 하다.


나 역시 '몽'처럼 의연하게 읽어낸 이야기였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수 있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과는 별개로, 결국엔 상통하는 하나의 이야기인데 굳이 3부의 챕터로 나눌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의문이 든다. 시간의 격차가 큰 탓인지, 각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인지, 각 부와의 연결이 매끄러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약간 쌩뚱맞다는 생각. '몽'이라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연작 단편이라면 모를까. 이 점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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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6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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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는 언제나 '죄'에 대해 말한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과정이 흘러가는 패턴은 지금까지도 비슷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변하고 있다.

 

전작들에서는, 악행을 저지른 인간을 가리고, 심판하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여러 사람의 입을 빌러 원죄는 누구에게 있는지, 그로 인해 파생된 각자의 불행은 또 얼마나 큰지, 이러한 것들에 초점을 맞춰 알게 하려는 목적이 강했달까.

 

<왕복서간>에서부터 <경우>에 이르기까지, 그런 미나토 가나에의 관점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전처럼 '죄'에 집중하기보다는, 모든 죄와 원인이 낱낱이 파헤쳐진 후를 보여주고 있다. 관조하듯, 그러나 전하려는 바가 반드시 있으니 확인하라는듯, 직접적으로. 대놓고 용서와, 화해와, 희망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것은 기존의 미나토 가나에의 방식과 동일하다.

 

그녀의 관점은 '이해'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당신의 죄를 '이해'해 본다는 것,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것,
우리의 관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것,
그런 다짐에서의 '이해'말이다.

 

모두가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은 죄다 비슷하다고 한다.
얼핏 비슷해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 비슷함속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약간의 변주속에서, 조금씩 목소리를 키워가면서. 그녀가 주는 메시지가 나약하지만은 않다. 더딜지언정, 그녀와 그녀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단연코,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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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난 시체의 밤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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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인 <내 남자>는 음침하고, 나쁘고, 그럼에도 절절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소설이다. 그때부터 눈여겨 보았을 것이다. 사쿠라바 가즈키라는 이름을.

 

<토막난 시체의 밤(ばらばら死體の夜)>은 빚에 허덕이는 형편없는 여자와, 역시 빚에 허덕이는 제멋대로인 남자의 이야기다.

 

사바쿠는, 유복한 가정에서 별다른 어려움없이 나름 행복하게 자랐지만 부모를 잃은 날을 기점으로 불행의 낭떠러지 앞으로 끌려간다. 인생이 통째로 흔들릴 수도 있는 순간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의도와는 관계 없이 삼켜버린 절망이라는 씨앗. 하지만 아직 그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난건 아니었다. 다시 토해낼 수는 없겠지만, 노력하면 어찌어찌 더 크지 못하게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재미있는건, 사바쿠는 몰랐겠지만 본인 스스로가 자청해서 낭떠러지 밑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닥쳐온 불행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그녀 나름대로 취한 방법이란, 이렇게 된거 그냥 될대로 되라지, 하는 식으로 막 살겠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하면 헤어나올 수 없다.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 빨려들어갈뿐. 나를 치켜세우고, 나를 살게 하고, 나를 나로 있을 수 있게 하는, 그야말로 찬란한 '빛'이라고 생각했던 돈은, 그저 눈사태처럼 불어난 '빚'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요시노는 참 이상한 인간이었다. 위험하고, 더럽고, 그러면서도 흔들흔들 위태로워보이는. 교수 겸 번역가라는 어엿한 직업에, 미모의 아내와 똑똑한 딸까지 있지만 그는 늘 불안하다. 동화될 수 없는 가족, 쫓기고 감출 것이 많은 삶을 살고 있기에.

 

그는 사바쿠에 끌린다. 동족혐오라 해야 할까. 혐오하면서도 자연스레 그녀를 찾는다. 인위적이지만 미인인 사바쿠의 정돈된 얼굴과 거리가 먼 가지런하지 못한 난항치에 불가해하며.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바쿠와 요시노는 비슷한 부류이며, 코드도 맞지만, 주파수는 맞지 않는 그런 관계에 불과했다.

 

요시노, 그리고 사바쿠는 위태로운 삶을 연명해간다. 비틀비틀 거리며, 바둥바둥 거리며. 토막난 인생은 좀처럼 복구되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몸도 마음도 삭아버린 늙은 요시노는 이제 그만 저 빛나고 반짝이는 세계에 섞이고 싶은데 좀처럼 가능하지 않다. 죽을때까지, 혹은 영원히. 그것이 신이 내린 가장 가혹한 형벌이라면 구원은, 없다.

 

 

"이게 재미있어. 전공이 그 분야인 동료한테 들은 건데, 귀향, 이라는 뜻의 노스토스, 라는 단어와 괴롭다, 는 뜻의 아르고스가 결합하면 그립다, 는 뜻의 노스탤지어가 된다는 거야." [P.60]

 

"노스토스와 아르고스야. 고통스러운 과거야말로 그리운 법이야. 따라서 인간은 과거로부터도,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도망칠 수 없어." [P.62]

 

"근면한 태만, 지성과 무기력." [P.78]

 

"사회에 있어 진정한 적이란 젊은이의 반항 따위가 아니야. 왜냐하면 반항이란 내일을 만드는 에너지이기 때문이지. 진정한 적이란 말이지, 젊은이의, 퇴폐라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함. 우리들 한때의 반항은 결코 사회의 적은 아니었어." [P.108]

 

아아, 이 세상은 온통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뿐이다. 그리고 사람은, 모르는 것에는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동물이다. 지식을 얻어 그 어둠에 강한 빛을 비출 때 그제야 비로소 극복될 수 있는 공포도 있다. 빛에 익숙해지면 좋겠지만. [P.251]

 

"부자만 되면 무엇이든 손에 넣고, 누구보다도 행복한 인생을 보내게 되는 게 아니야.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불행의 씨앗을 최대한 몰아내는 것. 그뿐이야."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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