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시전설 세피아>는 <새빨간 사랑>에 이은, 슈카와 미나토의 책 중에선 두 번째로 읽어본 책이다. <새빨간 사랑>을 읽은지는 족히 3년은 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 책을 읽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걸렸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새빨간 사랑>이 그냥저냥, 실은 별로......에 가까운 편이기도 했고 기억에 남지도 않았던 탓이 클 것이다. 돌이켜보면 딱히 재미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술술 잘 읽혔던 것 같은데, 읽고 나서는 머릿속이든, 마음속이든 오래 담아두기 힘든, 그런 책이었던 것 같다.

 

 

<도시전설 세피아>를 읽고 나서, 슈카와 미나토의 모든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책을 찾아보는데, <새빨간 사랑>을 포함해서 <수은충>, <꽃밥>까지 절판 아니면 품절로 확인되었다. 사람 심리가 이상한게, 절판 되었다고 하니까 내용도 잘 생각나지 않는 <새빨간 사랑>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판단하고 싶어지고, 못 읽어본 <수은충>, 특히 <꽃밥>은 진짜 읽고 싶어져서, 중고책이라도 뒤져봐야겠다고 또 한 번 결심했다라는......얘기.

 

 

각설하고, <도시전설 세피아>는 정말정말 재미나게 읽은 책이었다. 이걸 읽고 나서, 다른 책도 다 읽어볼까, 생각했으니 말 다한 거지.

 

 

수록 단편 중, 상당수가 제일 좋다고 하는 <어제의 공원>은 나 역시도 제일 좋았다. 아무래도 이런 쪽이 뭉클하니까. 코흘리개 시절 매일 같이 투닥 거리며 노는 친구 사이. 그리고 어느덧 자라, 다정한 아버지가 된 나와 아들 사이.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간절함과, 안타까움은 감동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바꿔보려고 해도, 정해진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걸까. 그럴 테지.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이미 받았다면. 오렌지 씨앗 다섯 알, 말이다.

 

 

표제작이라고 보여지는 <올빼미 사내>는 오히려 이 책에서 제일 임펙트가 없었다. 표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게, 솔직히 표지가 맘에 드는 책은 아니다. 사둔지도 꽤 됐는데 이제와서 읽게 된 이유로 표지 탓도 무시할 수 없다. 읽고 싶어지는 표지,라는게 확실히 있다. 수록된 다른 단편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표지를 만들어도, 지금의 표지보다는 훨씬 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표지 얘기는 이쯤 하고,<올빼미 사내>는 제목처럼 도시의 전설이 되고 싶은 한 남자의 수기느낌이 나는 편지글이다. 대체적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떠도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이지만, 전설로 떠도는 그 전설. 사내는 그저 살인마일 뿐인지만, 괴수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짜 전설로 남고 싶어한다. 전설에 골몰. 혹은 환상에 집착하는 사내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호오- 호오- 하고 올빼미 우는 소리를 내는 장면이 몇 있는데, 기괴하면서도 좀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실제로 찍찍- 거리며 대답 했다가는 확 잡아먹히니까, 조심해야한다.

 

 

<사자연>은, 두 여자가 죽은 한 남자를 두고 기묘한 경쟁 아닌 경쟁을 하는 이야기. 읽다보면, 둘 다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또 묘하게 그러려니, 하고 보게 된다. 집착의 대상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서, 더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인생을 다 바치게 되면, 머리가 살짝 도는 것도 이해가 된달까. 갈구하고, 사랑하고 있지만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그러니 당연히 그 남자에 대한 다른 것, 이를 테면 가족, 또는 유품, 묘지, 같은 것에 더 매달리게 된다. 불행한 삶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해보지만, 그러는 내내, 그녀들은 행복했을 수도 있다. 일그러진 행복일수록 더 진짜같으니까.

 

<아이스맨>과 <월석>은 둘 다 다른 느낌으로 오싹오싹했던 이야기였다. 결말 즈음에서는 그 느낌이 확 갈리지만.

 

<아이스맨>은 이 책에서 제일 호러 소설답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괴를 놓고 벌이는 진짜 혹은 거짓. 그리고 진짜 요괴. 예측 가능한 진실은, 그렇게 생각하게끔 작가가 의도한게 아닌가 싶다. 여기 나오는 '갓파'처럼 물컹물컹하고,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지만 결국엔 서늘한 그런 단편.

 

 

<월석>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엉뚱한 아파트에서, 전철안을 달리는 '나'를 매일매일 보고 있다는 설정과 함께 시작된다. 닮은 사람이겠거니, 하지만 아니다. 그 사람이 맞다. 내내 미안함을 가지고 있던 그 사람. 그렇게 닮은 사람은 또 있을 수가 없는데, 아침마다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내 얼굴을. 돌아가신 어머니로 바뀌기도 한다. 그 뒤로는 또 어머니와 매일 마주한다. 미안함이 가장 큰 존재가 보이는 것으로 대상이 바뀐 것이다. 가시지않는 죄스러움, 혹은 미안함이 응어리져 그렇게 보인다. 그 사람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것과,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에 어떤 큰 차이가 있을까. 중요한 건,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던 내 마음인 것을. 그리하여 지금의 '나'를 투영하고 있다는 것을. 달에서 떨어져나온 월석을 위해, 아니 '나'를 위해 달리던 어머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라멘가게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회사 후배. 원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멍하고, 조금 아프다. 그랬던 마음들에게.

 

다 읽고나서 떠오른 생각인데, 이 책과 츠네카와 코타로의 책들과 비교해가면서 읽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작풍이랄까, 분위기가 비슷한 면면이 은근히 있다. 호에 가까운, 아주 좋아하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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