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환대 - 밀양과 여러 현장 투쟁에서 배운 우리 시대 운동론 팸플릿 시리즈 (한티재) 28
박지호 지음 / 한티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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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원칙들

1. 연대는 확장되어야 한다. 이해관계자의 집단행동이 아니라, 정당성이 연대자에게도 납득이 되어야 한다. 

2. 연대는 주-객체의 구분이 없다. 어떤 긴급한 사안에 연대하지만 결국 나에게도 좋기 때문에 연대한다. 

3. 연대에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연대하는 이유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연대자를 동원하는 사람으로 이용하지 말고, 실제 의사결정도 같이 해야한다. 그래야 확장이 가능하다. 


환대의 원칙들

1. 역할주기 : 집회에서 할일주기, 호명하여 집회의 일원으로 책임감을 느끼게하기. 등

2. 이해시키기 :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사정을 설명하기....

3. 진심으로 대하기 : 자기점검을 위한 질문들 :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룰 수 있는 구호나 요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 연대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밀양할매들이 연대자들을 정말로 존경한다고 하는데 ㅠㅠ 나도 그걸 느끼겠어서 너무 몸둘바를 모르겠더라. 저는 농활을 갔는데 감을 왤케 많이 주세요... 제가 뭘 잘한 게 있다고요.. 그리고 집회 온 사람에게 왜 이렇게 감을 보내세요....할매 이 귀한 감을 어찌 먹나요 진짜 미안하게..라고 말하지만 다 먹고 없다. 가만 있을 수 없어서 열심히 나눴다. ㅠㅠ)

세상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걸 연대를 다니다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도 연대하러 다니고 싶다. 연대를 결정하는 것은 연대자와 환대자의 관계이지, 활동가의 의지나 계획이 아니므로. 에측을 벗어나고 통제하지 못할 공간에서 불현듯 등장한다는 말이 적절하다. 

모든 것을 '나와 관계된' 나의 일로 여기고 외면하지 않는 그런 자세가, 자신만 그럴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런 사회가 되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애쓰는 자세가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 사이에 놓인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 계속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승리라 부를 것인가? 연대와 환대를 배우는 것이 승리이다. 우리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으면 승리이다. '우리'의 개념이 확장되는 게 승리... 모든 투쟁은 사회적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성공한 집회는 함께하는 각각의 연대자가 연대와 환대를 배우는 커머닝을 해냈을 때.. 그것이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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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02-08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도 먹고 성공적 연대!

우끼 2025-02-08 01:35   좋아요 1 | URL
감.. 드실라우? 작년엔 다 먹었으니 올해… 감농활갔다오면 연락드립죠 뚜뚜뚜

반유행열반인 2025-02-08 01:57   좋아요 0 | URL
아쿠 괜찮아요 ㅎㅎ 전 변비 걸릴 거 싫어해서 감도 잘 안 먹어요. 농활도 매해 가고 찐 행동인!!! 난 입만 터는 빙구!!!

우끼 2025-02-08 02:10   좋아요 1 | URL
앗……. 저 지난해 첫밀양농활이었어요 ㅠㅠㅠㅠㅜ 지나친 환대를 받아버려서 송구해졌지만….
빙구 아니다~~~~~~ 에잇 왜자꾸 이러시나… 누구나 처음은 있다 ~~~저도 마음만 보태다 환대가 있어서 끼어든 사람일뿐 ㅎㅎ
감을 못드신다니 다른 맛난것이라도 챙겨드리고 싶네요 주섬주섬
두유 그릭 요걸트 혹은 발효식품..

숲노래 2025-02-08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손을 잡거나 어깨를 겯으면서 함께 나아가려는 길을 일본 한자말로 ‘연대(連帶)’라 하고, 길을 나란히 걷는 사람을 반길 적에 일본 한자말로 ‘환대(歡待)’라 하더군요. 아직까지 일본 한자말을 그냥그냥 쓰기에 나쁠 일이 없지만, 손을 맞잡을 적에는 어린이도 알아듣도록 ‘손잡기’라는 우리말을 할 수 있고, 어깨를 겯을 적에는 어린이도 나란하도록 ‘어깨동무’라는 우리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나아가니 ‘함께걷기’이고, 같이 걸어가니 ‘같이걷기’입니다. 너와 나를 아우르려고 하기에 ‘나란히’라 하지요.

밝게 웃으면서 맞이한다는 뜻으로 ‘반기다·반갑다’ 같은 우리말이 있습니다. 한결 품을 넓히면서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려는 길이라면 ‘나눔’을 바라볼 만합니다. ‘나눔’이라는 우리말을 멀리하면서 ‘분배·배분·공유·할당·부조·노블리스 오블리제·공존·안배·평등·자선’이나 ‘커머닝(commoning)’ 같은 바깥말에서 맴돈다면, 우리는 여태 손잡기나 어깨동무나 반가운 마음하고는 멀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남(그들)하고 맞붙어서 이긴다거나, 남(저놈)하고 싸워서 꺾으려는 뜻이라면, 아무래도 손잡기나 어깨동무나 나눔하고는 멀구나 싶어요. 어느 누구도 이기거나 지지 않는 길이어야 비로소 ‘손잡기·어깨동무·나눔’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뜻이 달라도 같이 놀아 왔고, 다른 마음이나 몸이어도 깍두기로 여겨 언제나 얼싸안았는데, 이제 아이들 사이에서도 손잡기가 잊히고 어른들 사이에서도 어깨동무가 매우 흐리다고 느낍니다.

참다우면서 착하고 아름다이 빛나는 어깨동무와 나눔이라면, “품 넓히기(연대 확장)”란 무엇인지 다시 짚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끼리끼리 갈라서 붙으려는 굴레가 아닌, 너나없이 자라는 들풀과 나무가 어울리는 ‘숲’을 바라보고서 배우는 길이 “품 넓히기”일 텐데 싶습니다.

어쩐지 우리는 스스로 어린이였던 나날을 너무 쉽게 잊는 듯합니다. 어른이란 몸을 입은 뒤에는 어린이와 손을 잡거나 어깨를 겯을 뿐 아니라, 이웃하고 나란히 걸어가는 길도 그만 잊는 듯합니다.

우끼 2025-02-08 23:22   좋아요 0 | URL
단어를 다르게 쓰는 건 그 단어를 사용하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바꾸려면, 바꾼 단어에도 다른 맥락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네요. 언어가 혼자 쓰는게 아니듯 맥락도 혼자 쓰는 게 아니구요. 바꿀 수야 있겠지만 의미전달이 어려워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