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두에게 해피엔딩 - 황경신 연애소설
황경신 지음, 허정은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그들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엇갈린 그들의 사랑이 참으로 아프고 시리다. 과연 모두가 웃는 해피엔딩이 존재할까?
그들은 바라보고 있지만 서로의 모습을 보는 건 아니다. 엄연히 말하자면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시린 가슴을 부여잡고 공허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 눈 딱 감고 자신을 바라보는 이에게 걸어가면 될 것을 뭐가 그리 힘든건지, 제 마음조차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보다. 그들의 눈은 참으로 깊고 깊지만, 그 깊음에는 처절한 상실이 숨어있다.
에세이 <생각이 나서>의 저자이기도 한 황경신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세 사람의 엇갈린 사랑을 그녀만의 감성적인 언어로 버무려 놓았다. 전작인 에세이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책 중간중간에 에세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문장들이 독자들의 감성을 울릴 수도 있으니 꼭꼭 씹어서 드시길.....
그녀를 사랑하는 에이!!
그녀와 같이 있지만 마음은 공허하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눈은 자신이 알 수 없는 다른 세계에 머물러 있다. 그건 그녀 마음에 내(에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에이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의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에이지만 언젠가 모든 것이 증발하고 마는 상실감이 지배할 것을 그는 안다. 그 시간이 느릿느릿 오도록....
" 소원 같은 건,어른이 되면서 모두 버렸어.
무언가를 이룬다는 건, 그건 너무 깊은 상실을 가져다 준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P32)
그녀가 사랑하는 비!!
친오빠의 친구인 비, 남매처럼 자라온 그들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어쩌면 너무나 어렸을지도....
그들은 그렇게 어쩡쩡한 사이로 마음의 돌하나 달아놓은 무게만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 감정이 무엇이라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과연 사랑일까? 아님 집착일까? 하지만 그 감정이 무엇이든간에 그들의 사랑법은 이러하다.
" 나는 더 이상 감정에 대해 연연해하지 않고 그걸 잊었다고 생각하지. 실제로도 잊어버려.
하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공기 중에 섞여 있는 그 감정의 먼지들이 날아다녀.
호흡을 할 때마다 뭔가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해.
그게 뭔지는 잊어버렸어도,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는 없어도, 그런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야. 불행하게도". (p87)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단순한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책에서 나온 등장인물들은 모두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지 못할 거라는 상실감에 힘들어하고, 어떤 사람은 정작 하고 싶은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마음 속에서 떠나 보내야 하는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되어 있다는 말...과연 그녀가 택했던 방법이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줄 수 있을까?
과연 그렇다고 단언지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읽고 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관념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아는 해피엔딩만이 진리고 정답인냥 말이다.
그들의 마음이 가을을 닮았다. 겉보기에는 따뜻하고 포근한 것 같지만 떨어지는 낙엽의 바람에 이리저리 정처없이 거리를 헤메는 것처럼 그네들의 시선이 그렇다.
작가는 분명 소설을 썼는데 에세이를 보는 느낌이 든다. 스토리는 많이 들어봄직했고, 결말이 살짝 갸우뚱거려지지만 그것마저도 나의 관념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훨씬 편해진다.
어떤 방향으로 가든지 모두의 인생이 해피엔딩이길......
" 때로 운명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나는 언제나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그것이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 운명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어.
좋기만 한 방향이라든가,나쁘기만 한 방향 같은 건 없으니까. 아니 어쩌면 방향 같은 건 없는지도 몰라.
운명이라는 것 역시 인간이 인간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낸 관념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