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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여우 리사 책 읽는 샤미 13
명소정 지음, 이솔 그림 / 이지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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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 (9/10점 : 서평단 안 했어도 진짜 개인적으로라도 홍보하고 다녔을 듯)

 

  동물원에서 자란 북극여우 리사는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고향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유럽에서 북극까지는 꽤나 먼 거리이기 때문에, 리사는 여러 지역을 거쳐가면서 다양한 사람, 동물들과 만나게 되는데요. 각양각색의 여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리사는 인간과의 경계에서 자신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윽고 긴 여정이 끝나고 북극에 도착한 리사는, 먼 기억을 쫓아 빙판에 발을 내딛게 되는데...

 

 

  담담하게 펼쳐나가는 조용한 모험

  명소정 작가의 <북극여우 리사>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 리사의 모험이 굉장히 담백하게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리사가 고향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이솔 님의 부드러운 삽화와 맞물려 담담하고 조용하게 전개됩니다. 읽는 데에 있어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며, 후에 드러나는 작품의 주제의식과 관련해서도 차분한 분위기가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탁월합니다.

  물론 이것이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독자층인 어린이들의 흥미를 이끌기에는 초반의 서사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습니다. 후반부로 가면서 진면목이 드러나는 스토리의 특성상 처음부터 독자들을 사로잡기에는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여우의 시선에서

  소설의 담담한 분위기는 어느 순간 독자들을 깊숙한 주제 의식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북극으로 가까워질수록 리사는 다양한 인간 군상, 여우 군상을 접하고, 인간에게 과연 호의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신중하게 고민합니다.

  동물원에서 탈출할 때만 해도 사육사에 대한 리사의 인식은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행 중 자신에게 나침반을 선물해 준 멜리사를 떠올리며, 세상에는 나쁜 인간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다가 다른 여우에게 눈살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리사의 고민은 결코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지 않습니다. 인간과 화해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을 거부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리사는 결국 북극에 다다르게 됩니다.

  보통의 작품들이 '인간과 동물의 화해'로 주제를 귀결 짓고, '세상에는 좋은 인간들도 많다'는 식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 문제를 논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흐름입니다. 밀렵꾼들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을 잃는 여러 여우 가족들의 일화를 접해나가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여우의 시선에서 기존의 고민들을 새롭게 생각해나갈 수 있습니다.

 

 

  어설픈 화해 없이, 조용하게 깊숙이 파고들며

  리사가 북극에 도착하면서 보이는 행동들을 접하다 보면, 독자들은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인간과 동물의 화해'와 같은 어설픈 주제의식이 아님을 알아챕니다. 오히려 '진짜로 동물들을 위하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 나름의 주장을 제시하면서도, 그 근거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이 작품은 단순한 생태동화의 영역을 뛰어넘어서 환경과 동물을 생각하는 인간들이 한 번쯤은 읽어야 하는 필독서처럼 느껴집니다. 화해를 이야기하는 많은 소설들이 사실상 인간의 관점에서 그려진 이기적인 동화임을 이 작품을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동물들이 용서하지 않았는데, 왜 인간들은 멋대로 화해하려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들게 합니다. 모든 인간이 정말로 나쁜지, 나쁘지 않은지에 대한 문제는 최대한 중립적으로 묘사하면서, 결말에서 독자들은 사실 그 문제가 작품에서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알아채게 됩니다. 작가가 묘사하는 리사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서 독자들은 진정으로 동물을 소중히 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선택의 기회를 뺏고'(p.119), '인간 때문에 사라질 동물을 보호하겠답시고 뒤늦게나마 관심을 쏟는(p.137)'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인간들은 인간들대로,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살아가도록(p.161)'

  작중 등장하는 탐험가 여우의 말은 이 작품을 꿰뚫는 하나의 중심 문장입니다. 동물의 탈을 쓴 이기적인 인간이 쓴 작품이 아니라, 진짜로 동물의 관점에서 쓰기 위해 노력한 이 작품은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일반 소설로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단지 작품에서 동물의 습성을 동물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 과정이 교과서적인 어투가 약간 느껴진다는 점, 그것과 연관해서 초반의 서사가 흥미를 부여하기에는 조금 심심하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초반에 등장한 소재들이 충실하게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복선으로 재등장하는 점도 놀라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반전마저 딱히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 겸손하게 서술해나가는 서사가 작품을 상당히 세련된 명작으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여정을 마친 북극여우(p.185)'를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되는 것처럼, 책을 읽은 후 저 또한 감히 여우의 시선에서, 이 작품을 자연스럽게 응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푸른여우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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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런 것이었고, 그랬기에 누구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 P71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은 우리에게 직접 다가오지 않아. 다만 우리가 어디서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 도와주려 하지." - P139

"그리고 나는 이것이 이상적인 여우의 삶이라고 생각한단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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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여우 꼬리 1 - 으스스 미션 캠프 위풍당당 여우 꼬리 1
손원평 지음, 만물상 그림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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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창비에서 주최하는 <위풍당당 여우 꼬리 1> 가제본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고민이 많은 열한 살 소녀 단미는 어느 날 자신의 몸에서 난 여우꼬리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함부로 누구에게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어 고민하던 단미는 엄마로부터 꼬리에 대한 비밀 이야기를 듣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그러던 와중 단미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미션 캠프에 참가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하는 기묘한 소년 재이, 매사에 툴툴대지만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빛나는 윤나 등등 우연히 같은 팀이 된 아이들은 서로의 고민과 비밀을 나누게 됩니다.

<아몬드>와는 또 다른 매력, 구미호 이야기를 창의적으로 풀어내다!

손원평 작가님의 첫 어린이책 시리즈 <위풍당당 여우 꼬리>입니다. 사실 <아몬드>도 일반 문학보다는 청소년 문학에 더욱 가깝습니다만, 엄연히 어린이책과 청소년 소설도 장르가 다르기 때문에 읽기 전에는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단미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문체가 열한 살답지 않게 올드하고 어려운 점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교훈 전달을 목적으로 했던 다른 어린이책과 달리 이 시리즈는 아이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녹여내고, 또한 전래동화에서도 자주 활용되었던 구미호라는 소재를 꼬리를 중심으로 새롭게 풀어내고 있어 우려는 기대로 전환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주렴', 여우꼬리가 건네는 따스한 말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왼손잡이인 어린이들에게 억지로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 연습을 강행했던 문화가 있었습니다. 어린이책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존중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은 비교적 최근입니다만, 이 <위풍당당 여우 꼬리> 시리즈도 이러한 현대적인 주제에 알맞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대한 진실을 마주치고도 그것을 자신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단미의 모습, 그리고 단미에게 건네는 꼬리의 따스한 말은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도록 힘껏 이끌어줍니다.

아직까지는 올드한 문체, 그러나 앞으로가 기대되는 시리즈

아이들이 서로 나루는 대화나 제시되는 성격은 각각의 캐릭터들에게 충분히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재이를 두고 단미가 건네는 의외의 말(가제본 기준 p.119)은 처음에는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지?’라는 생각을 들게 했는데, 그다음 부분에서 단미의 심리를 개연성 있게 보여주면서 독자들을 자연스레 설득하는 부분이 작가님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어 인상 깊었습니다.

이렇듯 세련된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사용되는 소재가 다소 올드하다는 것은 이 시리즈가 앞으로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되기 위해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아이들이 서로에게 붙이는 별명, 예를 들면 ‘미미 시스터즈’라든지 대화나 서술에서 사용되는 비유 등은 요즘 아이들의 모습과는 다소 동떨어진 옛날 동화의 느낌이 조금 강합니다. 때문에 작품을 읽으면서 그러한 올드한 문체가 다소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 시리즈는 탄탄한 설정과 만물상님의 깜찍한 작화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시리즈로서 2편, 3편이 자연스럽게 기다려지는 시리즈임에 분명합니다. 아직 보여주지 않은 꼬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이후의 에피소드가 더욱 기대가 됩니다. 요컨대 <위풍당당 여우 꼬리 1>은 깜찍하고 발랄한 분위기와 더불어 아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매력적인 시리즈의 첫걸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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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방금 봤잖아. 내가 너한테서 나온 걸." - P34

"만약...... 네 말대로 나한테 비밀이 있다면 말이야, 그 비밀은 좋은 거야, 나쁜 거야?" - P79

하지만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한다면 이 세상 누가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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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마카롱 수수께끼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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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7/10점 : 역시 가을 편이 제일 재밌었어)

"내게는 타인의 연애보다 마카롱이 흥미진진해." (p.75)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오사나이, 제발 무사해줘.

어쨌거나 오사나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내가 데리고 돌아가야 하니까......! (p.106)

소시민의 삶을 지향하는 고등학생, '고바토 조고로'는 여느 때처럼 '오사나이 유키'의 권유로 디저트 가게로 향합니다. 그런데 주문한 마카롱의 개수가 세 개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영문인지 접시에는 네 개의 마카롱이 담겨 있었는데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마카롱 하나를 더 갖다 놓은 것이라 예상한 두 사람은 범인의 의도를 추리해내려 합니다. 뉴욕 치즈 케이크, 베를린 튀김빵 등등 디저트와 얽힌 미스터리들로 꽉꽉 채워 담은 <소시민 시리즈> 첫 단편집!

사소하지만 강렬한 한 방, 매력적인 '일상 미스터리'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이 일본에서 2009년에 발간된 이후, 실로 오랜만에 발간된 '소시민 시리즈'입니다. 작가님은 워낙에 일상 추리소설로 유명하신 분이고, 대표작인 고전부 시리즈는 <빙과>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도 나왔죠. 보통 추리소설을 생각하면 살인이나 상해 등 무게감 있는 사건들이 스토리 소재로 활용되곤 하는데, 작가님의 추리소설은 일상에서의 사소한 소재들을 가지고 매력적인 서사를 구축해나간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특히 이번 단편집은 단편이라는 특성상 이전에 발매된 봄, 여름, 가을 편보다도 사건의 무게감은 다소 가볍습니다. 그럼에도 각 에피소드 후반부에 나름 강렬한 반전을 남겨두어 내용 자체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고, 새로운 캐릭터 '코기 코스모스'도 작품의 감초 역할을 잘 수행해주고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단편은 세 번째, '베를린 튀김빵 수수께끼'였는데요. 사건의 소재도 매우 규모가 작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서사구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하게 허를 찌르는 서사가 매력적이었습니다.

결말로 나아가는 과정, '추리'에 대한 아쉬움

그러나 작은 계기에서 출발해서 마지막에 반전을 터뜨리는 서사구조에서 과정에 해당하는 '추리' 영역이 지루하다는 느낌이 있어 이 점이 아쉬웠습니다. 특히 처음에 나온 <파리 마카롱 수수께끼>는 추리 과정도 납득이 되고, 작가님 특유의 '씁쓸한' 뒷배경도 좋았지만, 마카롱의 개수 차이만으로 오직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진상에 다가서는 서사 구조는 단편의 길이를 고려하더라도 집중하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또한, 추리를 즐겨하는 인물들의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그들이 일부러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시리즈 이전 작품인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을 가장 재밌게 읽었는데, 가을 편에서는 주인공 두 사람의 감정이 본편의 방화사건과 촘촘히 얽히면서 추리 영역에 있어서도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작가님께서 이전 작품이나 '고전부 시리즈'의 단편집인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에서 보여주신 만큼, 보다 다채로운 장면들로 추리 영역을 꾸려주셨다면, 독자들이 결말뿐 아니라 결말까지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최고의 디저트를 원하는 건 구도자 같아서 멋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뭘 먹어도 '거기에 비하면'이라고 말하는 속물에 지나지 않아." (p.97)

사실 위에서의 이야기들은 서평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언급한 비판점들로, 중학교 때부터 이 분의 소설을 즐겨 읽었던 팬의 입장에서 이 책은 가볍게 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일상 추리소설 단편집이었습니다. 소시민 시리즈'는 듣기로는 겨울철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완결되는 모양인데, 전편에서의 장점을 살려 좋은 끝맺음을 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나저나 작품에 등장하는 디저트들은 삽화 하나 없음에도 읽는 것만으로 먹음직스럽게 느껴지니, 공복 시에는 독서에 주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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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 - 스물다섯 선박 기관사의 단짠단짠 승선 라이프
전소현.이선우 지음 / 현대지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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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9/10점 : 읽으면 안다. 두 분 다 정말 멋지시다.)

소중한 추억은 험난한 인생길에서 그만큼의 힘을 발휘한다. (p.74)

뭐든지 잘하려면 공부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진리는 돈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p.180)

하지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탓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어차피 이 일을 그만둘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적응하는 건 자기 몫이다. 분노하고 실망하고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면 거기에 쏟아부은 감정과 에너지만 아까울 뿐이다. 그럴 시간에 오히려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p.241)

'선우'는 어느 날 스물다섯 살 선박 기관사 '소현'을 만납니다. 배 위에서 3등 선박 기관사로 생활하는 그녀의 독특한 일상과 자신만의 꿈을 펼쳐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문득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학창 시절 나름 공부를 잘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바다에서 자신의 길을 찾은 '소현'의 이야기를 엮었습니다. '소재는 있는데 글을 써보지 않은' 소현과 '글은 써봤는데 마음에 드는 소재가 없던'(p.11) 선우의 조합이 주목할 만합니다.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다

전소현 기관사님이 소재를 제공하고, 이선우 작가님이 글로 옮긴 <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입니다. 처음에 책을 집었을 때 내용이 많이 궁금했는데요. 배 위에서의 전반적인 생활은 어떨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 여성으로서 선박 기관사의 길을 선택한 전소현 기관사님이 과연 어떤 분이실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책에서 작가님은 뛰어난 필력을 바탕으로 인물이 살아온 생애와 직업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재미있게 엮어주셨습니다. '소현'이 해양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느낀 감정들, 데이터도 잘 터지지 않는 배 위에서의 생활, 여기에 바다 위에서의 연애, 덕질 등등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잘 볼 수 없을 법한 사사로운 일상들도 그려지고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브런치 작가와 선박 기관사, 두 사람의 탁월한 조합

책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지만 공동 작가로 표기된 두 사람의 조합이 상당히 탁월했습니다. 프롤로그에 밝힌 대로, 한 사람은 '소재는 있는데 글을 써보지 않은' 3등 선박 기관사이며, 다른 한 사람은 '글은 써봤는데 마음에 드는 소재가 없던' 브런치 작가입니다.

이러한 전략이 이 책을 읽기 좋은 책으로 만들어주었는데, 일단 소재를 제공하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의 가치관에 치우친 부담스러운 에피소드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에세이의 단점 중 하나가 본인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자칫 독자들에게 통하기 힘든 부담스러운 견해를 전달할 수도 있다는 점인데, 이 책은 소재 제공자와 편집자가 서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로 '소현'이라는 인물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언니'를 써 내려간 작가의 탁월한 치고 빠짐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전소현 기관사님 본인이 쓰신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는 '소현'의 시점에 거의 완벽하게 빙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 '소현은'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읽을 때에야 비로소 이 책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인 글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선우'가 '소현'을 바라보는 시선 덕분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선우'가 '오늘부터 소현은 내게 '언니'다'(p.20)라고 말한 바가 있는데, 언니라는 단어는 동질성과 존경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선우'는 자신과 같이 학창 시절에 일정한 불행을 겪은 '소현'에게 동질성을 느끼면서, 동시에 젊은 나이에 꿈을 개척해나간 '소현'을 멋있다고 여깁니다. 이와 같은 시선이 '빙의'를 가능하게 했을뿐더러, 이 책을 과도한 찬양이 아닌 순수한 존경의 의미만을 담은 알맞게 읽기 좋은 글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선우'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며 무대에 비유하자면 사회자 역할을 수행하는데, 본문에서는 무대 뒤로 숨어 '소현'을 연기함으로써 독자들이 오로지 본편인 해양 위에서의 생활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각 에피소드에 대한 '선우'의 의견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주도적으로 작품의 내용을 수용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치고 빠짐이 탁월했기 때문에 에세이적인 성격을 지닌 이 책을 읽으면서도 부담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었고, 그러면서도 두 작가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꿈에 대한 의식은 설득력 있게 전개되어 인상 깊은 글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바다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p.294)

에세이와 인터뷰 기록의 성격을 두루 갖춘 <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는 멋지게 자신의 삶을 가꿔나가고 있는 두 지은이의 조합이 만들어낸 기분 좋은 책이었습니다. 구성에 있어서 에피소드의 구분법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점 등 사소한 아쉬움은 있습니다만, 읽으면서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며 또한 꿈으로 인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인상 깊게 전달될 구절도 많아,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바다가 '소현'에게 있어서 하나의 디딤돌이 된 것처럼, 이 책도 독자들이 보다 넓은 세상으로 시선을 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딤돌 역할을 수행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희 서재에서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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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가인살롱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1
신현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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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지수는 ★★★ (6/10점 : 재미있는 글이었기에 더더욱 아쉽소)

어떤 자는 왕실에서 태어났다면 군주가 될 귀한 상이라고 하고, 어떤 자는 귀상이기는 해도 이마에 천한 기운이 있어 전체 상을 해친다고 하지 않나, 심지어 전주골 관상쟁이는 나더러 궁기가 가득한 빈상이라고 하더군. (p.75)

스스로 잘났다 생각하면 잘난이가 되는 거고, 못났다 생각하면 못난이가 되느니라. (p.200)

21세기에서 조선시대로 날아온 열여섯 살 '초긍정녀' 강체리. 그녀는 실어증에 걸린 공주의 말문을 열기 위해 '공주마마 가인 만들기'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공주가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체리는 자신이 유튜브에서 본 메이크업 영상을 토대로 자기 나름의 화장법을 개발하는데요. 관상학이 지배하는 조선시대에 이를 타파하고자 하는 효림 대군과 함께 하는 사이, 체리는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데......

'조선'과 '화장'이라는 테마를 재치 있게 잘 담아내고 있는

신현수 작가의 <조선가인살롱>입니다. 다 읽은 후에도 변함없는 생각이지만, 표지가 무척 아름다워서 눈길을 확 사로잡기에 충분했어요. 밝은 표지와 마찬가지로, 별명이 초긍정녀인 주인공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소설의 분위기는 상당히 밝습니다. 물론 요즘 중학생에 맞지 않게 '울트라 캡숑', '퀸카' 같은 말을 쓰고 있어 조금 올드한 느낌이 작품의 집중을 어렵게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그러나 주변 사물들을 기반으로 조선시대의 화장법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부분이 신선하고, 작품에 어울리는 공간적 배경의 선정도 탁월하며, 결말도 나름 인상 깊게 끝맺음으로써 청소년 소설이 갖춰야 할 '재미'적인 요소에서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선'과 '화장'이라는 테마를 전반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는데, 후술할 스토리상의 아쉬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덕분이었습니다. 거울을 '면경'이라고 바꾸는 등 조선시대라는 시대상에 맞게 소재들을 한자어로 바꾸어 표현한 부분이 많은데, 다소가 이해가 어려운 한자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를 이루는 소재들의 색채가 짙어 작품이 마지막까지 힘 있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조선가인살롱>은 색채 짙은 소재들과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통해 '재미있는' 청소년 소설을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가벼움이 가벼움으로만 남고, 경쾌함으로 이어지지는 않아 아쉬운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비교적 컸습니다. 이 작품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소설이지만, 작품의 분위기가 작가의 주제의식과 어울려 어떠한 경쾌함을 선사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특히 21세기의 '외모지상주의'와 조선시대의 관상에 대한 인식을 활용한 '관상지상주의'를 연결 짓는 부분은 참신하다고 생각했으나, 작품 내에서 두 사고관을 연관성 있게 그려내려는 시도는 미흡했고, 정작 '외모지상주의' 자체에 대한 주제 의식도 효율적으로 전달되고 있지는 못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는 작가가 자신이 드러내고자 한 주제의식을 마지막에 몰아서 밝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품 내에서는 체리가 '조선가인살롱'을 만들어 화장법을 개발하고 전수하는 장면들이 주를 이루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진정한 주제의식은 최후반부에 일정 인물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전달됩니다. 작중 다른 인물이 다루고자 했던 조선시대 '관상'에 대한 메시지들도, '이런 책을 출간해서 문제점을 고치고자 했다'는 언급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뿐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하는 표현은 75p에서의 대사를 제외하면 드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짙은 여운을 주는 소재들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가가 담고자 했던 주제 의식이 옅어져 버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나아가 작품 내에서 여러 사건들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지루함이 없지만, 이것이 다소 급하게 전개되어 주요 인물들이 소모되고 있다는 인상도 있을뿐더러, 조선시대 기생이 '뽀샤시'라는 말을 쓰는 등 오류라고 여길 수 있는 문장들도 존재했습니다. '미인'이 아닌 '가인'이라는 단어를 활용한 탁월함으로 미루어볼 때, 이 소설은 좀 더 숙성된 후 출간되었다면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아직 날것의 느낌이 남아 있는 이 소설에 더욱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가벼운 분위기가,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주제의식과 잘 맞물려 경쾌함으로 이어졌다면 좀 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조선 천지에 너만 한 인물이 없다. 근데 왜 네가 고운 줄을 모르느냐?" (p.200)

<조선가인살롱>이라는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서 읽게 된 이 책은, 뜻밖에도 가벼움이라는 최대의 장점과 최대의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청소년소설이었습니다. 소재에 대한 활용과 스토리 전개가 상당히 짙은 인상을 부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최후반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도리어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소설이 되어 아쉬웠습니다.

사실 이전 시대까지는 이렇게 마지막에 어른의 입을 통해서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을 청소년 소설에서 무수히 많이 봐왔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가 단순히 가르침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가르침을 주기도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새로 등장한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어른들이 읽는 소설처럼 어린이들이 읽는 소설에서도, 작품의 주제를 등장인물이 직접 말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적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소설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도 말로 듣는 교훈은, 쉽게 잔소리라고 생각하고 넘기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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