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여우 리사 책 읽는 샤미 13
명소정 지음, 이솔 그림 / 이지북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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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 (9/10점 : 서평단 안 했어도 진짜 개인적으로라도 홍보하고 다녔을 듯)

 

  동물원에서 자란 북극여우 리사는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고향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유럽에서 북극까지는 꽤나 먼 거리이기 때문에, 리사는 여러 지역을 거쳐가면서 다양한 사람, 동물들과 만나게 되는데요. 각양각색의 여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리사는 인간과의 경계에서 자신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윽고 긴 여정이 끝나고 북극에 도착한 리사는, 먼 기억을 쫓아 빙판에 발을 내딛게 되는데...

 

 

  담담하게 펼쳐나가는 조용한 모험

  명소정 작가의 <북극여우 리사>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 리사의 모험이 굉장히 담백하게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리사가 고향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이솔 님의 부드러운 삽화와 맞물려 담담하고 조용하게 전개됩니다. 읽는 데에 있어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며, 후에 드러나는 작품의 주제의식과 관련해서도 차분한 분위기가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탁월합니다.

  물론 이것이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독자층인 어린이들의 흥미를 이끌기에는 초반의 서사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습니다. 후반부로 가면서 진면목이 드러나는 스토리의 특성상 처음부터 독자들을 사로잡기에는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여우의 시선에서

  소설의 담담한 분위기는 어느 순간 독자들을 깊숙한 주제 의식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북극으로 가까워질수록 리사는 다양한 인간 군상, 여우 군상을 접하고, 인간에게 과연 호의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신중하게 고민합니다.

  동물원에서 탈출할 때만 해도 사육사에 대한 리사의 인식은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행 중 자신에게 나침반을 선물해 준 멜리사를 떠올리며, 세상에는 나쁜 인간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다가 다른 여우에게 눈살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리사의 고민은 결코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지 않습니다. 인간과 화해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을 거부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리사는 결국 북극에 다다르게 됩니다.

  보통의 작품들이 '인간과 동물의 화해'로 주제를 귀결 짓고, '세상에는 좋은 인간들도 많다'는 식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 문제를 논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흐름입니다. 밀렵꾼들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을 잃는 여러 여우 가족들의 일화를 접해나가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여우의 시선에서 기존의 고민들을 새롭게 생각해나갈 수 있습니다.

 

 

  어설픈 화해 없이, 조용하게 깊숙이 파고들며

  리사가 북극에 도착하면서 보이는 행동들을 접하다 보면, 독자들은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인간과 동물의 화해'와 같은 어설픈 주제의식이 아님을 알아챕니다. 오히려 '진짜로 동물들을 위하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 나름의 주장을 제시하면서도, 그 근거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이 작품은 단순한 생태동화의 영역을 뛰어넘어서 환경과 동물을 생각하는 인간들이 한 번쯤은 읽어야 하는 필독서처럼 느껴집니다. 화해를 이야기하는 많은 소설들이 사실상 인간의 관점에서 그려진 이기적인 동화임을 이 작품을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동물들이 용서하지 않았는데, 왜 인간들은 멋대로 화해하려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들게 합니다. 모든 인간이 정말로 나쁜지, 나쁘지 않은지에 대한 문제는 최대한 중립적으로 묘사하면서, 결말에서 독자들은 사실 그 문제가 작품에서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알아채게 됩니다. 작가가 묘사하는 리사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서 독자들은 진정으로 동물을 소중히 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선택의 기회를 뺏고'(p.119), '인간 때문에 사라질 동물을 보호하겠답시고 뒤늦게나마 관심을 쏟는(p.137)'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인간들은 인간들대로,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살아가도록(p.161)'

  작중 등장하는 탐험가 여우의 말은 이 작품을 꿰뚫는 하나의 중심 문장입니다. 동물의 탈을 쓴 이기적인 인간이 쓴 작품이 아니라, 진짜로 동물의 관점에서 쓰기 위해 노력한 이 작품은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일반 소설로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단지 작품에서 동물의 습성을 동물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 과정이 교과서적인 어투가 약간 느껴진다는 점, 그것과 연관해서 초반의 서사가 흥미를 부여하기에는 조금 심심하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초반에 등장한 소재들이 충실하게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복선으로 재등장하는 점도 놀라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반전마저 딱히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 겸손하게 서술해나가는 서사가 작품을 상당히 세련된 명작으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여정을 마친 북극여우(p.185)'를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되는 것처럼, 책을 읽은 후 저 또한 감히 여우의 시선에서, 이 작품을 자연스럽게 응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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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런 것이었고, 그랬기에 누구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 P71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은 우리에게 직접 다가오지 않아. 다만 우리가 어디서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 도와주려 하지." - P139

"그리고 나는 이것이 이상적인 여우의 삶이라고 생각한단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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