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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마카롱 수수께끼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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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7/10점 : 역시 가을 편이 제일 재밌었어)

"내게는 타인의 연애보다 마카롱이 흥미진진해." (p.75)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오사나이, 제발 무사해줘.

어쨌거나 오사나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내가 데리고 돌아가야 하니까......! (p.106)

소시민의 삶을 지향하는 고등학생, '고바토 조고로'는 여느 때처럼 '오사나이 유키'의 권유로 디저트 가게로 향합니다. 그런데 주문한 마카롱의 개수가 세 개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영문인지 접시에는 네 개의 마카롱이 담겨 있었는데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마카롱 하나를 더 갖다 놓은 것이라 예상한 두 사람은 범인의 의도를 추리해내려 합니다. 뉴욕 치즈 케이크, 베를린 튀김빵 등등 디저트와 얽힌 미스터리들로 꽉꽉 채워 담은 <소시민 시리즈> 첫 단편집!

사소하지만 강렬한 한 방, 매력적인 '일상 미스터리'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이 일본에서 2009년에 발간된 이후, 실로 오랜만에 발간된 '소시민 시리즈'입니다. 작가님은 워낙에 일상 추리소설로 유명하신 분이고, 대표작인 고전부 시리즈는 <빙과>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도 나왔죠. 보통 추리소설을 생각하면 살인이나 상해 등 무게감 있는 사건들이 스토리 소재로 활용되곤 하는데, 작가님의 추리소설은 일상에서의 사소한 소재들을 가지고 매력적인 서사를 구축해나간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특히 이번 단편집은 단편이라는 특성상 이전에 발매된 봄, 여름, 가을 편보다도 사건의 무게감은 다소 가볍습니다. 그럼에도 각 에피소드 후반부에 나름 강렬한 반전을 남겨두어 내용 자체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고, 새로운 캐릭터 '코기 코스모스'도 작품의 감초 역할을 잘 수행해주고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단편은 세 번째, '베를린 튀김빵 수수께끼'였는데요. 사건의 소재도 매우 규모가 작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서사구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하게 허를 찌르는 서사가 매력적이었습니다.

결말로 나아가는 과정, '추리'에 대한 아쉬움

그러나 작은 계기에서 출발해서 마지막에 반전을 터뜨리는 서사구조에서 과정에 해당하는 '추리' 영역이 지루하다는 느낌이 있어 이 점이 아쉬웠습니다. 특히 처음에 나온 <파리 마카롱 수수께끼>는 추리 과정도 납득이 되고, 작가님 특유의 '씁쓸한' 뒷배경도 좋았지만, 마카롱의 개수 차이만으로 오직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진상에 다가서는 서사 구조는 단편의 길이를 고려하더라도 집중하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또한, 추리를 즐겨하는 인물들의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그들이 일부러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시리즈 이전 작품인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을 가장 재밌게 읽었는데, 가을 편에서는 주인공 두 사람의 감정이 본편의 방화사건과 촘촘히 얽히면서 추리 영역에 있어서도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작가님께서 이전 작품이나 '고전부 시리즈'의 단편집인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에서 보여주신 만큼, 보다 다채로운 장면들로 추리 영역을 꾸려주셨다면, 독자들이 결말뿐 아니라 결말까지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최고의 디저트를 원하는 건 구도자 같아서 멋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뭘 먹어도 '거기에 비하면'이라고 말하는 속물에 지나지 않아." (p.97)

사실 위에서의 이야기들은 서평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언급한 비판점들로, 중학교 때부터 이 분의 소설을 즐겨 읽었던 팬의 입장에서 이 책은 가볍게 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일상 추리소설 단편집이었습니다. 소시민 시리즈'는 듣기로는 겨울철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완결되는 모양인데, 전편에서의 장점을 살려 좋은 끝맺음을 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나저나 작품에 등장하는 디저트들은 삽화 하나 없음에도 읽는 것만으로 먹음직스럽게 느껴지니, 공복 시에는 독서에 주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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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 - 스물다섯 선박 기관사의 단짠단짠 승선 라이프
전소현.이선우 지음 / 현대지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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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9/10점 : 읽으면 안다. 두 분 다 정말 멋지시다.)

소중한 추억은 험난한 인생길에서 그만큼의 힘을 발휘한다. (p.74)

뭐든지 잘하려면 공부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진리는 돈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p.180)

하지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탓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어차피 이 일을 그만둘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적응하는 건 자기 몫이다. 분노하고 실망하고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면 거기에 쏟아부은 감정과 에너지만 아까울 뿐이다. 그럴 시간에 오히려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p.241)

'선우'는 어느 날 스물다섯 살 선박 기관사 '소현'을 만납니다. 배 위에서 3등 선박 기관사로 생활하는 그녀의 독특한 일상과 자신만의 꿈을 펼쳐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문득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학창 시절 나름 공부를 잘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바다에서 자신의 길을 찾은 '소현'의 이야기를 엮었습니다. '소재는 있는데 글을 써보지 않은' 소현과 '글은 써봤는데 마음에 드는 소재가 없던'(p.11) 선우의 조합이 주목할 만합니다.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다

전소현 기관사님이 소재를 제공하고, 이선우 작가님이 글로 옮긴 <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입니다. 처음에 책을 집었을 때 내용이 많이 궁금했는데요. 배 위에서의 전반적인 생활은 어떨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 여성으로서 선박 기관사의 길을 선택한 전소현 기관사님이 과연 어떤 분이실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책에서 작가님은 뛰어난 필력을 바탕으로 인물이 살아온 생애와 직업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재미있게 엮어주셨습니다. '소현'이 해양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느낀 감정들, 데이터도 잘 터지지 않는 배 위에서의 생활, 여기에 바다 위에서의 연애, 덕질 등등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잘 볼 수 없을 법한 사사로운 일상들도 그려지고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브런치 작가와 선박 기관사, 두 사람의 탁월한 조합

책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지만 공동 작가로 표기된 두 사람의 조합이 상당히 탁월했습니다. 프롤로그에 밝힌 대로, 한 사람은 '소재는 있는데 글을 써보지 않은' 3등 선박 기관사이며, 다른 한 사람은 '글은 써봤는데 마음에 드는 소재가 없던' 브런치 작가입니다.

이러한 전략이 이 책을 읽기 좋은 책으로 만들어주었는데, 일단 소재를 제공하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의 가치관에 치우친 부담스러운 에피소드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에세이의 단점 중 하나가 본인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자칫 독자들에게 통하기 힘든 부담스러운 견해를 전달할 수도 있다는 점인데, 이 책은 소재 제공자와 편집자가 서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로 '소현'이라는 인물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언니'를 써 내려간 작가의 탁월한 치고 빠짐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전소현 기관사님 본인이 쓰신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는 '소현'의 시점에 거의 완벽하게 빙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 '소현은'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읽을 때에야 비로소 이 책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인 글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선우'가 '소현'을 바라보는 시선 덕분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선우'가 '오늘부터 소현은 내게 '언니'다'(p.20)라고 말한 바가 있는데, 언니라는 단어는 동질성과 존경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선우'는 자신과 같이 학창 시절에 일정한 불행을 겪은 '소현'에게 동질성을 느끼면서, 동시에 젊은 나이에 꿈을 개척해나간 '소현'을 멋있다고 여깁니다. 이와 같은 시선이 '빙의'를 가능하게 했을뿐더러, 이 책을 과도한 찬양이 아닌 순수한 존경의 의미만을 담은 알맞게 읽기 좋은 글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선우'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며 무대에 비유하자면 사회자 역할을 수행하는데, 본문에서는 무대 뒤로 숨어 '소현'을 연기함으로써 독자들이 오로지 본편인 해양 위에서의 생활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각 에피소드에 대한 '선우'의 의견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주도적으로 작품의 내용을 수용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치고 빠짐이 탁월했기 때문에 에세이적인 성격을 지닌 이 책을 읽으면서도 부담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었고, 그러면서도 두 작가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꿈에 대한 의식은 설득력 있게 전개되어 인상 깊은 글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바다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p.294)

에세이와 인터뷰 기록의 성격을 두루 갖춘 <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는 멋지게 자신의 삶을 가꿔나가고 있는 두 지은이의 조합이 만들어낸 기분 좋은 책이었습니다. 구성에 있어서 에피소드의 구분법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점 등 사소한 아쉬움은 있습니다만, 읽으면서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며 또한 꿈으로 인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인상 깊게 전달될 구절도 많아,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바다가 '소현'에게 있어서 하나의 디딤돌이 된 것처럼, 이 책도 독자들이 보다 넓은 세상으로 시선을 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딤돌 역할을 수행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희 서재에서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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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가인살롱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1
신현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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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지수는 ★★★ (6/10점 : 재미있는 글이었기에 더더욱 아쉽소)

어떤 자는 왕실에서 태어났다면 군주가 될 귀한 상이라고 하고, 어떤 자는 귀상이기는 해도 이마에 천한 기운이 있어 전체 상을 해친다고 하지 않나, 심지어 전주골 관상쟁이는 나더러 궁기가 가득한 빈상이라고 하더군. (p.75)

스스로 잘났다 생각하면 잘난이가 되는 거고, 못났다 생각하면 못난이가 되느니라. (p.200)

21세기에서 조선시대로 날아온 열여섯 살 '초긍정녀' 강체리. 그녀는 실어증에 걸린 공주의 말문을 열기 위해 '공주마마 가인 만들기'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공주가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체리는 자신이 유튜브에서 본 메이크업 영상을 토대로 자기 나름의 화장법을 개발하는데요. 관상학이 지배하는 조선시대에 이를 타파하고자 하는 효림 대군과 함께 하는 사이, 체리는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데......

'조선'과 '화장'이라는 테마를 재치 있게 잘 담아내고 있는

신현수 작가의 <조선가인살롱>입니다. 다 읽은 후에도 변함없는 생각이지만, 표지가 무척 아름다워서 눈길을 확 사로잡기에 충분했어요. 밝은 표지와 마찬가지로, 별명이 초긍정녀인 주인공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소설의 분위기는 상당히 밝습니다. 물론 요즘 중학생에 맞지 않게 '울트라 캡숑', '퀸카' 같은 말을 쓰고 있어 조금 올드한 느낌이 작품의 집중을 어렵게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그러나 주변 사물들을 기반으로 조선시대의 화장법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부분이 신선하고, 작품에 어울리는 공간적 배경의 선정도 탁월하며, 결말도 나름 인상 깊게 끝맺음으로써 청소년 소설이 갖춰야 할 '재미'적인 요소에서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선'과 '화장'이라는 테마를 전반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는데, 후술할 스토리상의 아쉬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덕분이었습니다. 거울을 '면경'이라고 바꾸는 등 조선시대라는 시대상에 맞게 소재들을 한자어로 바꾸어 표현한 부분이 많은데, 다소가 이해가 어려운 한자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를 이루는 소재들의 색채가 짙어 작품이 마지막까지 힘 있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조선가인살롱>은 색채 짙은 소재들과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통해 '재미있는' 청소년 소설을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가벼움이 가벼움으로만 남고, 경쾌함으로 이어지지는 않아 아쉬운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비교적 컸습니다. 이 작품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소설이지만, 작품의 분위기가 작가의 주제의식과 어울려 어떠한 경쾌함을 선사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특히 21세기의 '외모지상주의'와 조선시대의 관상에 대한 인식을 활용한 '관상지상주의'를 연결 짓는 부분은 참신하다고 생각했으나, 작품 내에서 두 사고관을 연관성 있게 그려내려는 시도는 미흡했고, 정작 '외모지상주의' 자체에 대한 주제 의식도 효율적으로 전달되고 있지는 못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는 작가가 자신이 드러내고자 한 주제의식을 마지막에 몰아서 밝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품 내에서는 체리가 '조선가인살롱'을 만들어 화장법을 개발하고 전수하는 장면들이 주를 이루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진정한 주제의식은 최후반부에 일정 인물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전달됩니다. 작중 다른 인물이 다루고자 했던 조선시대 '관상'에 대한 메시지들도, '이런 책을 출간해서 문제점을 고치고자 했다'는 언급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뿐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하는 표현은 75p에서의 대사를 제외하면 드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짙은 여운을 주는 소재들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가가 담고자 했던 주제 의식이 옅어져 버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나아가 작품 내에서 여러 사건들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지루함이 없지만, 이것이 다소 급하게 전개되어 주요 인물들이 소모되고 있다는 인상도 있을뿐더러, 조선시대 기생이 '뽀샤시'라는 말을 쓰는 등 오류라고 여길 수 있는 문장들도 존재했습니다. '미인'이 아닌 '가인'이라는 단어를 활용한 탁월함으로 미루어볼 때, 이 소설은 좀 더 숙성된 후 출간되었다면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아직 날것의 느낌이 남아 있는 이 소설에 더욱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가벼운 분위기가,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주제의식과 잘 맞물려 경쾌함으로 이어졌다면 좀 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조선 천지에 너만 한 인물이 없다. 근데 왜 네가 고운 줄을 모르느냐?" (p.200)

<조선가인살롱>이라는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서 읽게 된 이 책은, 뜻밖에도 가벼움이라는 최대의 장점과 최대의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청소년소설이었습니다. 소재에 대한 활용과 스토리 전개가 상당히 짙은 인상을 부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최후반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도리어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소설이 되어 아쉬웠습니다.

사실 이전 시대까지는 이렇게 마지막에 어른의 입을 통해서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을 청소년 소설에서 무수히 많이 봐왔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가 단순히 가르침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가르침을 주기도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새로 등장한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어른들이 읽는 소설처럼 어린이들이 읽는 소설에서도, 작품의 주제를 등장인물이 직접 말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적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소설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도 말로 듣는 교훈은, 쉽게 잔소리라고 생각하고 넘기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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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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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지수는 : ★★★★ (8/10점 : 그래, 이게 소설이지!)

지속되고 축적되는 슬픔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여름은 물빛처럼, p.80)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에게는 하룻밤보다 많은 밤들이 필요합니다. (동면하는 남자, p.187)

칠성사이다는 1초에 서른세 개씩 팔린다지. 장담컨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인간이 매분 매초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죽고 있을 것이다. (알래스카는 아니지만, p.220)

표제작 <유령의 마음으로>에서 '나'는 어느 날 나와 똑같이 생긴 '유령'을 만나게 됩니다. 딱히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악마도 아니고 유령도 아니(p.11)'라고 이야기하는 이 친구는 뜻밖에도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데요.

러한 유령 이야기와 함께 단편집에 수록된 다른 이야기들에서는 해파리로 변하는 인간들(<빛이 나지 않아요>), 자신을 산에 묻어달라고 하는 남자(<동면하는 남자>) 등 일상 속에 갑자기 등장하는 독특한 존재, 그리고 그들과 함께 지내는 주인공들의 기묘한 체험이 담겨 있습니다.

섬세한 관찰력에 강렬한 상상력 한 스푼

임선우 작가님의 단편집 <<유령의 마음으로>>입니다. 작품 내에는 총 8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고, 각 이야기에서는 공통적으로 평범한 일상 속에 판타지인 사건들이 예고 없이 등장합니다. <유령의 마음으로>에서는 남들이 아닌 나만 볼 수 있는 '유령'이 등장하는가 하면, <여름은 물빛처럼>에서는 전 여자 친구의 집에 찾아갔다가 나무가 되어버린 남자도 등장합니다. 이러한 판타지적인 소재들은 난데없이 이야기에 등장하며, 눈앞에 나타난 기묘한 사건에 놀라면서도 거기에 적응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묘하게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 첨가된 강렬한 타지는 작품 내에서 전혀 이질감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탁월합니다. 작가는 일상 소재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을 기반으로, 자칫 이질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었던 비일상적인 소재들을 일상과 자연스럽게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름은 물빛처럼>에서 등장하는 '나무가 되어버린 남자'라는 비현실적인 소재는 '극장 카운터에서 가만히 일을 하는 '나'', '화분에 놓인 망고 씨앗'과 같은 일상 소재와 비슷한 이미지를 공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이로써 예고도 없이 등장하는 비일상적인 소재들을 작품의 매력으로 살려냈으며, 작가 특유의 관찰력을 기반으로 탄탄한 단편을 꾸리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정적인 감정 속에서 스스로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단편들은 각기 다른 색채를 띠며 독자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선사합니다만, 공통적으로 주인공들이 처음에 겪는 감정은 무기력과 좌절에 가까운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그들은 꿈을 포기할 뻔하거나, 소중한 반려동물을 잃어버려 찾아다니거나, 하던 일로는 돈을 벌지 못해 부도덕한 일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러한 모습은 일상에 지친 우리의 모습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습니다.

좌절 직전의 상황에서 이제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이지도 알 수 없게 된 위태로운 그들 앞에, 앞서 언급한 비현실적인(혹은 독특한)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알래스카는 아니지만>에서는 바닥에 난데없이 구멍이 뚫리며, <동면하는 남자>에서는 겨울 산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하는 남자가 등장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주인공을 직접 좌절에서 구원해주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단편집 현실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로, 단편집의 매력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산이 된 남자, 빛이 나는 해파리 등에 의해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큰 영향을 받긴 하지만, 주인공들은 그들에 의해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들을 보면서 스스로 무기력에서 버티는 자세를 터득하게 됩니다. 이 점이 현에서의 우리의 모습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감정을 벗어나게 해주는 데에 타인의 조언, 타인의 경험도 분명 영향을 주긴 하지만, 감정들에서 억지로 벗어나려고 해서 성공하는 경우보다는, 감정들이 지나가기까지 버티고 있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헤어 나오는 경우들이 많으니까요.

내가 나를 안아줄 수 있게 하는 '유령의 마음으로'

사실 단편집을 다 읽은 후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빛이 나지 않아요>가 가장 임팩트 있는 작품이었고, 정작 표제작인 <유령의 마음으로>가 조금 맛이 부족한 작품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집의 표제를 '유령의 마음으로'라고 설정한 것은 매우 탁월하다고 생각했는데, 각 단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공통적인 주제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이 로 표제인 '유령의 마음으로' 였기 때문입니다.

첫 단편인 <유령의 마음으로>를 읽다 보면, 유령이 스스로 유령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부분, '나'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답변해주는 부분 등을 토대로, '유령'이라는 존재가 '나'를 바깥에서 바라보게 해 주고, 또 자기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게 해 주는, 이른바 자아성찰의 역할을 돕는 존재라는 사실을 쉽게 예측할 수 있을 듯합니다. '나'는 '유령'에게서 자신의 감정을 전해 듣고,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제야 '유령'은 '나'를 끌어안고, '나'는 그제야 '완전한 이해'를 받았다고 느낍니다.

작품 내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위로해주는 장면들도 다수 등장하지만, 단편들은 궁극적으로 '유령'이 '나'를 끌어안듯, '내가 나를 다독여주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서 자야지>에서 마지막에 주인공을 깨운 것은, 주변 사람이었던 조나 정우가 아닌, (어쩌면 유령의 목소리와도 닮아 있는) 허공에서 들려온 목소리 였습니다. 그밖에 단편들에서 비현실적인 존재들은 '나'의 옆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 '나'를 직접적으로 돕지 않습니다. <낯선 밤에 우리는>에서는 다소 현실적인 존재인 '초등학교 동창'이 등장하지만, 현실의 괴로움에 버틸 수 없어진 주인공은 직접 그녀가 사는 곳을 찾아가서 능동적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즉, '나'가 좌절하지 않을 계기를 제공하는 것은 주변의 사물, 사람이지만, 결국 주인공인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은 언제나 '유령'으로 상징되는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요컨대 이 단편집은 타인에 의해 직접적으로 구원을 받는 허무맹랑한 서사구조도 아니고, 그렇다고 타인 혹은 자아를 보면서 스스로를 부정적인 감정에서 구원하는 것도 아닌,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유령의 마음' 강조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위로를 전달해주고 있는 책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무언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더디지만 분명한 방향으로, 모난 곳 없이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는 시간을 지나,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가 그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낯선 밤에 우리는, p.138)

비록 예상치 못한 무기력과 슬픔 속에서 자포자기 직전에 놓인 우리들입니다만, 그럴 때마다 우리를 좌절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부정적인 감정들이 지나갈 때까지 버티고 있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임을 이 단편집의 이야기들이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후기에서 작가님이 '고빌라트론을 구한 것이 고빌라트론이었다는 사실이, 뜨거운 생각이 마침내 근사한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좋았다'(p.261)고 이야기하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독자 분들도 만약 자신의 마음이 얼어 있다고 느끼신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 자신을 안아주는 '유령의 마음'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간만에 현대소설을 읽으면서 위로받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나는 늘 생각이 너무 많았고, 한때는 그것을 고쳐야 할 단점으로 여겼다.'(p.261)고 작가님께서 후기에서 밝히신 바 있는데, 저는 오히려 작가님께서 좀 더 많은 생각들을 들려주셨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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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 - 고민 상담부 나의 괴물님 YA! 1
명소정 지음 / 이지북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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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 구성은 촘촘하고, 스토리는 촉촉합니다



"그걸 판단해야 하는 사람은 너야. 직접 부딪쳐 보고 판단해.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는 일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테니까." (p.71)

"너를 위한 선택을 해. 과거도, 지금도, 미래도 모두 만족할 만한 선택을. 지금의 너만 만족할 방법을 선택하면 다른 시점의 네가 널 원망할 수도 있으니까." (p.159)

온전히 자신을 원망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을 믿는 삶. 그 길을 걸을 수 있으려면 자신의 꿈을 쟁취해야 함을, 그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p.163)


소개

화괴. 이야기를 먹고사는 괴물.

도서부장인 '세월'은 어느 날 밤, 괴물이 도서관 책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알고 보니 그는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던 잘생긴 남학생 '혜성'! 그의 정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잡아먹는 '화괴'입니다.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세월은 화괴의 모습에도 당황하지 않고, 고민상담부를 만들어 혜성이 다른 학생들의 걱정과 고민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꿈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학생, 짝사랑의 기억을 잊고 싶어 하는 학생 등 다양한 친구들의 고민을 접하면서 점차 그들은 감정을 익혀나가게 되고, 그런 그들 또한 중요한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이게 되는데......


이야기를 먹는 요괴, 독자를 이끌다

기억과 이야기를 소재로 한 웹툰, 웹소설은 빈번하게 등장합니다만, 이처럼 이야기를 먹는 요괴가 전면에 등장한 소설은 적어도 청소년 소설에서는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 소재가 참신하게 느껴진 것은 '화괴'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허락을 받아야만 타인의 기억을 먹을 수 있다는 설정, 그리고 그에 얽힌 사연들도 매력적입니다.

어찌 보면 화괴는 이야기를 만들고, 또 읽음으로써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끼는 작가와 독자를 비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괴인 혜성이 점차 성장해나가는 과정은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한 책을 폭식 아닌 폭독해본 사람이 있다면) 단순히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다만 화괴의 설정이 워낙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보니, 주인공 중 다른 한 명인 '세월'에 대한 이미지가 초기에 옅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이 작품의 큰 줄기는 세월과 혜성이 각자 감정을 익히며 성장하는 과정이므로 두 인물의 서사가 거의 대등하게 발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중반부에 들어서야 세월이라는 인물이 스토리 상에서 눈에 띄기 시작해 아쉬웠습니다. 이 인물이 지니고 있는 사연이 작품 전반에 걸쳐 설득력 있게 다가오려면, 초기에 보다 많은 서사를 부여해줄 필요는 있었다고 봅니다.

주체적으로 고민을 해결해나가는 등장인물

고민을 상담하러 오는 서브 캐릭터들, 그리고 그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고민은 등장인물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며, 주인공들은 '고민을 지우는' 데에만 열중하지 않고, 그들의 고민을 지워주는 것이 과연 상대방을 위하는 일인지를 계속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고민하는 데에서 어중간하게 끝맺지 않고,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신만의 결론을 내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때로는 과거의 선택에 후회하면서, 그로 인해 반성을 하기도 하지만, 당면한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을 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합니다. 독자들은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함에도 회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등장인물들을 응원하게 됩니다.

다만 해원의 고민은 너무 이상적으로 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부분은 소설가에 대한 작가님의 경험이 많이 투여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튼튼한 기반이 가능하게 극적인 결말

무엇보다도 작품을 읽으면서 뻔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단순히 전래동화처럼 괴물이 소원을 들어주고 나중에 등장인물들이 대가를 치르는 식의 플롯을 따랐다면, 소설의 맛은 한참 떨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기억을 먹는 요괴라는 설정과 그가 먹게 되는 기억들은 작품 내에서 맛깔나게 묘사되어 있고, 그 기반이 튼튼했기 때문에 세월과 혜성 앞에 놓인 최후의 선택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정과 사랑으로 설명할 수 없는 둘의 관계를 보고 무척 설레고 아팠습니다. 솔직히 결말 읽으면서 되게 아렸어요. '아니 여기서 끝내면, 아니 이게 제일 깔끔하긴 하겠지만, 아니 그래도...' 하고 굉장히 아쉬워했네요.


정리

명소정 작가님의 데뷔작인 <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입니다. 장르소설이 지니는 매력을 한껏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게, 맛있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인 청소년 소설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소설을 존재 가능하게 했던 것은, 작가님께서 이야기를 통해 느끼신 '살아 있다는 감정'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시중의 모든 이야기가 살아 있다는 감정을 부여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생동감 넘치는 이 작품에 대해 애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이 책처럼 '살아 있다는 걸 실감시켜 주는' 이야기들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였습니다. 근데 그림 누가 그린 거예요? 너무 이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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