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가인살롱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1
신현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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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지수는 ★★★ (6/10점 : 재미있는 글이었기에 더더욱 아쉽소)

어떤 자는 왕실에서 태어났다면 군주가 될 귀한 상이라고 하고, 어떤 자는 귀상이기는 해도 이마에 천한 기운이 있어 전체 상을 해친다고 하지 않나, 심지어 전주골 관상쟁이는 나더러 궁기가 가득한 빈상이라고 하더군. (p.75)

스스로 잘났다 생각하면 잘난이가 되는 거고, 못났다 생각하면 못난이가 되느니라. (p.200)

21세기에서 조선시대로 날아온 열여섯 살 '초긍정녀' 강체리. 그녀는 실어증에 걸린 공주의 말문을 열기 위해 '공주마마 가인 만들기'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공주가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체리는 자신이 유튜브에서 본 메이크업 영상을 토대로 자기 나름의 화장법을 개발하는데요. 관상학이 지배하는 조선시대에 이를 타파하고자 하는 효림 대군과 함께 하는 사이, 체리는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데......

'조선'과 '화장'이라는 테마를 재치 있게 잘 담아내고 있는

신현수 작가의 <조선가인살롱>입니다. 다 읽은 후에도 변함없는 생각이지만, 표지가 무척 아름다워서 눈길을 확 사로잡기에 충분했어요. 밝은 표지와 마찬가지로, 별명이 초긍정녀인 주인공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소설의 분위기는 상당히 밝습니다. 물론 요즘 중학생에 맞지 않게 '울트라 캡숑', '퀸카' 같은 말을 쓰고 있어 조금 올드한 느낌이 작품의 집중을 어렵게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그러나 주변 사물들을 기반으로 조선시대의 화장법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부분이 신선하고, 작품에 어울리는 공간적 배경의 선정도 탁월하며, 결말도 나름 인상 깊게 끝맺음으로써 청소년 소설이 갖춰야 할 '재미'적인 요소에서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선'과 '화장'이라는 테마를 전반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는데, 후술할 스토리상의 아쉬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덕분이었습니다. 거울을 '면경'이라고 바꾸는 등 조선시대라는 시대상에 맞게 소재들을 한자어로 바꾸어 표현한 부분이 많은데, 다소가 이해가 어려운 한자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를 이루는 소재들의 색채가 짙어 작품이 마지막까지 힘 있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조선가인살롱>은 색채 짙은 소재들과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통해 '재미있는' 청소년 소설을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가벼움이 가벼움으로만 남고, 경쾌함으로 이어지지는 않아 아쉬운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비교적 컸습니다. 이 작품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소설이지만, 작품의 분위기가 작가의 주제의식과 어울려 어떠한 경쾌함을 선사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특히 21세기의 '외모지상주의'와 조선시대의 관상에 대한 인식을 활용한 '관상지상주의'를 연결 짓는 부분은 참신하다고 생각했으나, 작품 내에서 두 사고관을 연관성 있게 그려내려는 시도는 미흡했고, 정작 '외모지상주의' 자체에 대한 주제 의식도 효율적으로 전달되고 있지는 못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는 작가가 자신이 드러내고자 한 주제의식을 마지막에 몰아서 밝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품 내에서는 체리가 '조선가인살롱'을 만들어 화장법을 개발하고 전수하는 장면들이 주를 이루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진정한 주제의식은 최후반부에 일정 인물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전달됩니다. 작중 다른 인물이 다루고자 했던 조선시대 '관상'에 대한 메시지들도, '이런 책을 출간해서 문제점을 고치고자 했다'는 언급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뿐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하는 표현은 75p에서의 대사를 제외하면 드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짙은 여운을 주는 소재들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가가 담고자 했던 주제 의식이 옅어져 버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나아가 작품 내에서 여러 사건들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지루함이 없지만, 이것이 다소 급하게 전개되어 주요 인물들이 소모되고 있다는 인상도 있을뿐더러, 조선시대 기생이 '뽀샤시'라는 말을 쓰는 등 오류라고 여길 수 있는 문장들도 존재했습니다. '미인'이 아닌 '가인'이라는 단어를 활용한 탁월함으로 미루어볼 때, 이 소설은 좀 더 숙성된 후 출간되었다면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아직 날것의 느낌이 남아 있는 이 소설에 더욱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가벼운 분위기가,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주제의식과 잘 맞물려 경쾌함으로 이어졌다면 좀 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조선 천지에 너만 한 인물이 없다. 근데 왜 네가 고운 줄을 모르느냐?" (p.200)

<조선가인살롱>이라는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서 읽게 된 이 책은, 뜻밖에도 가벼움이라는 최대의 장점과 최대의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청소년소설이었습니다. 소재에 대한 활용과 스토리 전개가 상당히 짙은 인상을 부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최후반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도리어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소설이 되어 아쉬웠습니다.

사실 이전 시대까지는 이렇게 마지막에 어른의 입을 통해서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을 청소년 소설에서 무수히 많이 봐왔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가 단순히 가르침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가르침을 주기도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새로 등장한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어른들이 읽는 소설처럼 어린이들이 읽는 소설에서도, 작품의 주제를 등장인물이 직접 말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적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소설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도 말로 듣는 교훈은, 쉽게 잔소리라고 생각하고 넘기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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