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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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천 지수는 : ★★★★ (8/10점 : 이 정도의 온도를 간직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짜로.)


할 일은 해야 했다. 설거지 같은 일이었다. 식탁에 밥 한 공기 더 올리면 되는, 딱 그 정도의 일이었다. (p.47)


서러웠고 치사했고 가슴이 뭉클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었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닥쳐 버린 모든 일이 그렇듯 이 마음도 어쩔 수가 없었다. (p.78)


누군가가 연우에게 "너 아침 먹었어? 뭐 먹었어?" 하고 물었을 때 연우가 "밥 먹고 왔지. 그럼 뭘 먹어?"하고 대꾸하게 해 주고 싶었다. (p.142)


고등학생 유리는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 '서정희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열여덟 살 때부터 할아버지와 살던 유리에게 배 다른 동생 연우가 생기게 되는데요. 기본적인 생활 습관도 잘 갖춰지지 않은 연우를 돌보던 와중, 유리는 경찰로부터 연우가 엄마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연우의 몸에 난 아동학대 흔적을 발견하고, 자신과 비슷한 입양 가정의 학생을 만나게 되며 유리는 점차 과거를 훌훌 털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가게 됩니다.


첨예한 감정선으로, 차갑지만 따뜻하게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문경민 작가님의 <훌훌>입니다. 상이라는 것이 작품의 품질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만, 8회, 10회 수상작을 워낙 재밌게 읽은 터라, 이번 수상작은 어떤 느낌일지 먼저 관심이 갔어요. 우선 이 작품은 <작가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작가님께서 직접 입양 가정의 어머니를 인터뷰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하신 소설인지라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상당히 섬세했습니다.

특히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여러 자잘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유리가 겪는 감정 변화가 굉장히 현실적이고 예리하다는 점이었어요. 233쪽에 서술된, 진실을 알게 된 후 유리가 느끼는 감정이 상당히 드라마틱하면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이야기하는 '차가운 현실 속 따뜻한 애정'이 작품에 녹여내기 굉장히 힘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리라는 캐릭터의 성격과 어우러져 작품은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매력을 지니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대상화되지 않도록 주인공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어떤 소설이든, 작가는 자신이 소재로 차용한 현실이 독자들에게 대상화되는 일을 충분히 경계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대상화'라는 말은 쉽게 이야기하자면 인간성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한다는 뜻이에요. 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장애우友로 바꾸고자 했던 옛날의 사례를 생각하시면 이해가 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판 모르는 남이 갑자기 나를 친구라고 부르고, 나를 돌봐주어야 하는 존재로 여긴다니, 그거야말로 대상화에 해당하겠죠.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대상화의 여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작가님이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다양한 처지에 놓인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하면서, 불필요한 연민을 배제하되 그들이 받는 차별과 편견을 가감 없이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죽은 새를 주워 온 연우의 생각, 그리고 연우와 싸우던 와중 엄마 서정희 씨의 학대 장면을 떠올리며 연우를 끌어안고 우는 어린 주인공의 모습 등이 읽으면서도 인상 깊었습니다. 요컨대, 입양 가정의 학생들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은 '돌봐줘야 된다'는 식의 부담스러운 동정도 아니고 '우리와 다르다'는 식의 차가운 손절도 아닙니다. 그러한 점에서 독자들이 적절한 거리에서 따뜻함을 지닐 수 있도록 이끄는 점이 아주 매력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의 이야기는 '훌훌' 털어버리며 읽을 수 있나요?

유리와 연우, 그리고 할아버지가 품고 있는 각자의 사정과 그들이 서로 유대를 쌓아가는 과정은 이 작품이 이래서 대상을 수상했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분명한 인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리네를 제외한 조연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불필요하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조연들의 수가 적지 않은 탓에, 서사가 차지하지 않아도 될 공간까지 차지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더 인상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주인공들의 이야기 농도가 다소 옅어지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미희와 주봉이처럼 단순히 엑스트라 역할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렇다 하더라도, 주요 등장인물에 해당하는 세윤은 유리의 '거울' 역할을 해주고 있으므로 중요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번하게 등장하고는 있지만 남는 이미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연우 아빠, 고향숙 선생님과 같이 뭔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법한 사람들도 줄곧 등장합니다만, 그들은 기대했던 만큼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 소모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갈등의 전환을 야기할 것처럼 보였으나 손쉽게 퇴장하는 인물, 사정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명언을 날리는 인물 등을 사례로 들 수 있을 듯합니다. 스토리 구조를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드는 인물들을 과감히 삭제하거나 플롯 자체를 정돈해서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다 잘 드러낼 수 있었다면 좀 더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긍정적으로 읽을 수 있었던 데에는 유리네 식구들의 서사가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리가 엄마인 서정희 씨의 진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을 힘들게 하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훌훌' 터는 장면에서, 등장인물이 '용서'나 '원망'이 아닌 '애잔'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거리 유지가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네요. 그렇기에 더더욱 이러한 서사들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있었습니다.


"살아온 길이 저마다 다르니까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나는 그 사정을 알 수가 없잖니." (p.207)

고향숙 선생님이 이 말을 던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제쳐두고, 이 문장 자체는 작품의 주제를 담아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 그대로 작중 등장인물들은 차가운 현실 속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함부로 상대방의 삶에 대해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잔잔함과 따뜻함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훌훌'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함부로 뜨겁게 굴지 않고, 잔잔하게 인물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저희 서재가 인정하는 명작이었습니다.

#푸른여우의서재

#글 #도서 #독서 #문학동네 #훌훌 #문경민 #청소년문학 #아동문학 #입양 #가정 #소설 #리뷰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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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엄마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9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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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 (8/10점 : 이걸 진짜 고등학생이 썼다고?)


"이미 오래전에 덮었다고 여긴 과거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자신에게 복수할 때도 있습니다." (p.66)


앞으로도 똑같이 돈에 좌우되는 인생일 것 같다. 그것도 큰 금액도 아닌 돈에. (...) 에이, 그만두자.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 (p.115)


"자기가 한 짓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았으면 우리 앞에 도저히 못 나타났을걸." (p.138)


중학교에 입학한 다나카 하나미는 '자갈밭에서 자는(p.27)' 것보다 낫다며 새 이불을 사지 않는 궁색한 엄마 밑에서 자라납니다. 그러던 와중 그녀의 앞에 낯선 할머니가 등장하는데요. 하나미를 '손주'라고 부르는 할머니 앞에서 엄마의 얼굴은 그대로 굳어져버립니다. 친구인 사치코에게서 듣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이층에 살고 있는 겐토의 비밀,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미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진짜 고등학생이 썼다고?' / 예리한 관찰력과 섬세한 감정선으로

스즈키 루리카의 <엄마의 엄마>입니다. 원제는 「太陽はひとりぼっち(태양은 외톨이)」였는데, 출판사 혹은 번역가가 임의로 변경한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변경한 제목이 더 마음에 드는데, 이에 대해서는 차후 이야기하기로 해요.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점은 사물과 사람을 관찰하는 작가의 시선이 예리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가정에서 소외받는 사치코의 언행과 인물의 성격을 반영하는 집 가구 배치, 돈과 관련해서 하나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등 작중 소재들이 섬세하게 묘사되면서도 밋밋하다는 느낌이 없어 독특했습니다. 고등학생이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물/사건/배경을 다루는 능력이 웬만한 성인 작가들 이상으로 탁월했습니다.


꾸준히 템포를 유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소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겸손하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작품에 전반적으로 드러나 이것이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마치 자전거 페달을 꾸준히 밟아나가듯, 작가님은 자신만의 템포를 유지하면서 소설을 마지막까지 이끌어갑니다. 일상이 흘러가는 것과 비슷하게 담담하게 서술되는 이 소설에서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과하게 묘사될 수도 있었던 소재들임에도 그것을 활용하는 작가의 필체는 어디까지나 담백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미 본인의 감정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려는 나는 역시 단순한 걸까?' (p.138) 라며, 자신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의문을 갖는 부분은 작가님이 작품을 편향된 감정으로만 서술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여 인상 깊었습니다.


이야기가 하나로 뭉쳐지지 않아 다소 아쉬운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작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이 하나로 뭉쳐지지 않고 단지 열거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태양은 외톨이>라는 원제는 최후반부에 그 의미가 밝혀지는데, 기대했던 만큼 제목이 강한 주제의식을 던져주지는 못하고 있어 다소 아쉬웠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말을 전달하는 사람의 행동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엄마의 엄마>로 제목을 변경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소설이라는 것이 꼭 의미 있는 주제만을 전달해야 된다든지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이야기의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으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읽고 난 뒤 머릿속에 특정한 메시지가 남기 힘들어집니다. 같은 책에 수록된 단편에 해당하는 <오 마이 브라더>가 진한 메시지를 던지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 본편인 <엄마의 엄마>도 응집된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인상적인 소설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어, 아니요. 오늘은 가족끼리 백화점에 가셔서요." (p.129)

사치코의 환경을 인물의 대사로 멋지게 요약한 이 문장을 보며, 작가님이 나중에는 어떤 책을 쓰게 되실지 더욱 기대가 됩니다. 작가님이 사물과 사람을 다루는 모양새는 고등학생은 물론 일반 작가들 사이에서도 더욱 탁월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러나 독자인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재능이 있음에도 문체는 어디까지나 겸손하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실력 있는 작가라도 거만하다면(혹은 거만함을 숨기려 애써 거짓된 겸손을 늘어놓는다면) 독자들은 금세 불편을 느껴버리니까요. 부디 작가님께서 앞으로도 이러한 문체를 꾸준히 유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의 엄마>였습니다.

#푸른여우의냠냠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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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여우 꼬리 2 - 알쏭달쏭 우정 테스트 위풍당당 여우 꼬리 2
손원평 지음, 만물상 그림 / 창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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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 (8/10점 : 이제 올드하지 않아! 근데...!)


★ 세상 모든 게 변한다 해도 루미와 나 사이의 우정만큼은 영원할 거라던 믿음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p.26)


★ "단점이라고 여겼던 걸 잘 조절하게 되면 그게 또 그럭저럭 쓸 만한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야." (p.46)


★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야. 아주 잔잔하고 고요하고 소중한 우주로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게 되니까." (p.72)


구미호인 사실을 숨기고 있는 평범한 소녀 단미는 어느 날 절친인 루미와 사이가 틀어져 버립니다. 심지어 배윤나가 가져온 우정 테스트의 결과를 본 이후 두 사람은 더 멀어지게 되는데요. 우정이라는 것이 원래 이런 건지, 고민이 많아진 단미는 여러 사람들과 우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등장한 두 번째 꼬리! 단미는 점차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갑니다.


순한 맛으로 오히려 더 진한 우정 이야기를

손원평 작가님의 <위풍당당 여우 꼬리 2>입니다. 여전히 깜찍한 만물상님의 일러스트와 함께 계절은 여름으로 옮겨 갔는데요. 1권에 비해 판타지적인 요소는 조금 줄어들고, 일상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지면서 내용이 많이 순해졌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순한 느낌으로 작품이 전개되다 보니, 우정이라는 작품의 주제가 더욱 진하게 느껴져 좋았습니다.


'알쏭달쏭'한 우정을 '위풍당당'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우정을 한 가지 형태로만 제시하지 않고, 제각기 다른 형태의 우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었어요. 특히 단미가 여러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이 생각하는 우정에 대해 스스로 결론을 내는 부분이 인상 깊습니다. 인간관계가 지니는 어떤 애매모호함, 알쏭달쏭함을 작품 내에서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스스로 우정의 의미를 찾아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부분이 탁월했습니다. 특히 기존의 작품들이 부모님의 조언을 그대로 수용하는 수동적인 아이들을 그려냈다면, 여기서의 단미는 엄마가 이야기하는 우정과 반대되는 결론을 내린다는 점에서 '위풍당당'함이 잘 살아 있었습니다.


다만 어린이의 입으로 '어른'의 목소리를 내지는 않기를

1권에서 단점으로 생각되었던 부분이 소재들의 올드함, 등장인물들의 개성 부족 등이었어요. 그런데 2권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소재들은 그런 올드함이 없었습니다. 또한 판타지적인 요소가 줄어들면서 인물 개개인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기가 쉬워졌고, 이에 따라 전작에 비해 등장인물들이 개성적으로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작품에서 사용되는 비유와 함께 일부 대사들에서 아직까지 어른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146쪽에서 단미가 결론 내린 우정에 대한 비유는 작가의 목소리에 가까우며, 배윤나가 '조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부분도 아이답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단미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작품의 특성상 어린이의 입에서는, 설령 어른스러운 주제를 담아내더라도, 그 목소리는 어린이의 것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난 그 말을 절대로, 하나도! 믿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나는' (p.146)

단미가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의견을 내는 이 대사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화 속 아이들은 부모의 의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점차 성장해가는 것 같아요.

여전히 책 내에서 어른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이 다소 아쉽습니다만, 이렇게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동화책이 점점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벌써부터 3권이 기다려지네요.


#푸른여우의냠냠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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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고양이 1 - 동물이 사라진 세계 책 읽는 샤미 9
박미연 지음, 박냠 그림 / 이지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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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 (8/10점 : 템포가 빠르긴 해도, 이거야말로 SF지!)

"난 또 진짜 고양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잖아. 그럴 일은 당연히 없겠지만 말이다." (p.43)

"정말 실망이다. 난 널 위해 모든 것을 다 해 주었는데, 넌 나 몰래 이런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니......" (p.161)

"네가 성공해서 날 구해 주면 되잖아. 지금까지 잘 해냈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난 믿어." (p.210)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열네 살 소녀 서림이는 어느 날 회색 고양이 은실이를 만나게 됩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이기심으로 인해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가 모두 멸종된 2085년. 서림이는 살아 있는 동물을 10억 크레에 거래한다는 광고를 보고, 뉴클린시티 진학반에 들어가기 위한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은실이를 데려가는데요. 거래 현장에서 마주친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수상한 여자, 전설의 해커 레드홍, 잘생긴 소년 호세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서림이는 뜻밖의 진실에 다가서게 됩니다.

섬세한 설정, 매력적인 '녹색 SF'

박미연 작가님의 <시간 고양이>입니다. 제목부터 시선이 확 끌렸던 작품이었고, 실제 내용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책들 중에서 SF의 탈을 쓴 문단 소설들이 많아서 아쉬웠는데, 환경 문제를 다룬 이 소설은 SF가 지녀야 할 기본적 요소들을 탄탄히 갖추고 있어 좋았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는 설정, 포유류의 멸종 이후 곤충이 증가하면서 생태계 먹이 사슬이 무너진 상황 등등, 구체적인 상황 설정이 청소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어렵지 않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녹색 SF'라는 장르를 가장 탁월하게 담아내고 있는 책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급박한 소설 전개, 긴장감을 갖추되 조금 아쉬운

꼼꼼한 설정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소설의 전개 자체가 굉장히 빠른 템포로 진행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등장인물 간의 대화나 퍼즐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질질 끌리지 않고 신속하게 이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다음에 등장할 내용을 바로 예측하지 못해 긴장을 느끼고, 무리 없이 제시되는 반전을 통해 작품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 가능합니다. 다만, 전개 속도가 빨라 비밀번호 탐색이나 흑막의 심리 등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어야 할 대목들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현재 분량 자체도 그렇게 적은 분량은 아니기에 템포를 늘이기는 다소 불가능해 보이지만, 소설의 완성도를 위해서 잠시 쉬어갔어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날카롭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녹색 액션으로

이 작품이 생태 동화로서 그 위상이 뚜렷한 이유는, 환경 문제의 원인을 지적하는 방향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기존의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일부 기업의 독점, 혹은 천재지변만을 이야기한 것과 달리, 이 책에서 환경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지구 온난화부터 일부 세력의 음모 등 다양한 요인들이 얽혀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 책을 통해서 환경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고민하게 되고, 그 모든 원인들의 근원에 '인간의 이기심'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겠죠. 다채롭게, 또한 날카롭게 원인을 제시하고, 다양한 장르를 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요소들은 작품 내에서 적절히 융합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환경 문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현재, 우리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를 고민하게 해주는 녹색 액션으로서 탁월했습니다.

'당장 환경을 좋게 하기는 힘들어도, 더 나빠지지 않도록 노력할 수는 있겠죠?' (p.232)

작가의 말을 접하면서, 작가님이 단순히 지구의 환경 문제를 작품의 소재로서만 생각하고 계신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탄탄한 지식과 경험이 뒷받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성공적인 SF가 등장할 수 있었겠죠.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가 모두 사라져 버린 2085년, 동물로부터 위로와 살아갈 힘을 받지 못하는 칙칙한 세계가 도래하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 주는, 짜릿한 재미를 간직하고 있는 <시간 고양이>였습니다.

#푸른여우의냠냠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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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80년 생각 - ‘창조적 생각’의 탄생을 묻는 100시간의 인터뷰
김민희 지음, 이어령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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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생략, 다만 구성과 편집이 아쉬운.

선생님의 말씀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만 같아서, 추천 지수는 생략했어요. (인터넷 서점에 올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점수를 달겠지만요.) 평생 문화를 생각하신 선생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만, "이 책은 나에 대한 용비어천가 같은 책이 되면 절대로 안 돼."(p.368)라고 선생님께서 밝히신 것과 달리, 이 책의 편집과 구성은 답변자에게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서고 있어 부담스러웠습니다. 때문에 담담하게 서술되었을 때 더 매력적이었을 답변자의 생각이 질문자의 어설픈 구성으로 인해 다소 빛이 바랜 것처럼 느껴져 아쉬웠습니다.

이하 내용은 인상 깊게 접한 선생님의 문장들을 개인적으로 인용한 모음집입니다. 직접 책을 통해 생각을 접하고 싶으신 분들은 건너뛰시기 바랍니다.

★ "나는 천재가 아니야. 창조란 건 거창한 게 아니거든. 제 머리로 생각할 줄 안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p.9)

★ (백만대군을 이끄는 장군이 될 팔자에 대해) "그런데 요즘 생각하면 그 사주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백만대군은 내가 지금까지 다루어 온 말(언어)이고 그것으로 공감을 함께 나눠온 독자들일 수도 있으니까. 칼을 그것보다 강하다는 펜으로 바꿔봐. 내가 휘두르는 대로 언어들은 내 명령에 따라 움직여왔어." (p.15)

★ "고독의 대가는 생각의 탄생이었어." (p.18)

★ "거리두기를 하면서 우리는 평소 잊고 있던 '거리'를 자각하기 시작했지." (p.22)

★ "평탄할 때에는 만인이 평등해. 욕망도 비슷하고 별 차이가 없어. 그런데 위기의 순간이 오면 창조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커지지." (p.24)

★ "과연 나의 눈물이 남을 위한 눈물이 되었을까." (p.32)

★ "작가는 글로 말하는 사람이잖어." (p.58)

★ "나는 내가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한 확신범이 아니여. 확신범이라면 유언밖에 더 남겄어?" (p.58)

★ "도서관에 가보면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얘기를 더 보태겠어? 다만 70억 지구인 중에서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모든 사람은 각자 고유의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은 제각각 소중해요." (p.60)

★ "창조를 하려면 먼저 파괴를 해야 돼." (p.70)

★ "빈칸이 있어야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생기는 거지. 빈칸 없이 정확하게 말하면 끌어들이는 힘을 못 가져요." (p.107)

★ "문학이 언론이 되면 안 돼요. (...)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봐요. 그 '님'을 '일제강점기의 조국'으로 한정하면 그건 언론의 언어지 시의 언어가 아니에요." (p.124)

★ '나는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소원이 있다면 보잘것없는 이 하얀 원고지 위에서 숨을 거두게 하소서.' (p.137)

★ "사람들은 일회성 행사에 왜 그 많은 돈을 낭비하느냐고 묻는다. 이 물질주의자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이 태어날 때, 죽을 때도 한순간이다. 그것을 위해 당신은 전 생애를 바치고 있지 않은가." (p.155)

★ "만인이 납득하는 아이디어는 아이디어가 아니지. 낡은 생각이라는 증거니까." (p.158)

★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최고의 해결 방법은 긴장을 푸는 유머야." (p.214)

★ "궁즉통은 몇 천 년간 강대국 사이에서 견뎌온 한국인의 창조력이자 돌파력이지." (p.247)

★ "질투 나는 사람을 적으로 돌리면 내가 비참해지잖아. 대신 그 사람을 돕는 거지. 그러면 천재의 작업을 같이 하는 거니까." (p.348)

★ ('독립된 주체'로 우뚝 서는 삶은 어떤 경지일까요.)

-하루를 살아도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삶이지. 누가 뭐라고 하면, 뉴스에서 무슨 보도가 나오면, 책 한 줄을 읽어도 뭐가 기이고 뭐가 아닌지를 제 머리로 판단하면서 사는 삶 말이야. 역사를 접할 때도 마찬가지야. 역사라는 건 안방 얘기 다르고 부엌 얘기가 다른 법이거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각각 안방과 부엌에서 하는 얘길 들어봐. 안방 얘기 들으면 며느리 잘못이고 부엌 얘기 들으면 시어머니 잘못이지. 그렇다면 누가 옳은 거야? 그래서 지식인이, 지성인이 필요한 거야. 뜬소문, 가짜뉴스, 음모론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경험주의를 넘어선 냉철한 이성의 힘을 가진 지식인 말이야. (p.369)

#푸른여우의냠냠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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