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체이스 (10만 부 기념 특별 에디션) 설산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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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 (5/10점 : 별 것도 아닌 일에 승부욕이 발동해서)

"그런 미덥지 않은 정보에 네 인생을 걸 생각이야?" (p.62)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는 제각각 달라요. 행방을 감췄다고 그걸 꼭 도주라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요?" (p.222)

"무슨 수를 쓰든 증인이 될 그 여자를 찾아내. 경찰에 사정을 얘기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 (p.329)

(* 이 서평은 소미미디어가 주최한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대학생 와키사카 다쓰미는 스키장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살인사건 용의자로서 의심을 받게 됩니다. 유일하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스키장에서 우연히 이야기를 나눴던 이름 모를 여성뿐. 그녀를 '여신'이라 부르는 법학과 친구 나미카와와 함께 두 사람은 그녀의 행방을 쫓아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으로 향하게 되는데요. 코앞까지 찾아온 경찰들의 추적을 따돌리던 와중 다쓰미는 '여신'에게 다가서게 되고, 사건 현장이 찍힌 사진에서 우연히 진범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술술 읽히는 문장들, '눈보라'처럼 시원한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시리즈 네 번째 작품, <눈보라 체이스>입니다. 작가의 특성답게 해당 작품도 상당히 술술 읽히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더군다나 스노보드 마니아인 작가의 경험이 충분히 녹아들어 있어 독자들을 겨울 스포츠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합니다. 특별 에디션 표지가 주는 시원함에 더해 이 책은 겨울이라는 계절과 아주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작가는 독자들을 스키장으로 이끌어 미스터리와 겨울 스포츠의 매력을 마음껏 선보입니다.

얄팍한 구상과 느려 터진 '체이스'

그러나 작가가 느끼는 즐거움은 독자의 즐거움으로까지 확장되기는 조금 어려워 보입니다. 다작이 특징인 작가의 작품 목록에 있어서도 해당 작품은 너무나도 '얄팍'하기 때문입니다. 진범이 아니라 목격자 탐색에 중점을 둔다는 발상 자체는 괜찮다고 하더라도, 작가는 그 발상 하나에 의존해서 필요 없는 내용을 지나치게 많이 삽입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매력을 부여할 수 있었던 스키장의 인물들은 후반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이들과 연관된 반전 요소들은 죄다 최후반부에 얕게, 또한 급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독자의 흥미를 끌어야 할 초중반부의 내용은 스키장과 겨울 스포츠를 소재로 한 지루한 추격전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다는 생각과 작가에 대한 팬심 하나만으로 심심한 '체이스'에 동참하게 됩니다만, 결과적으로 밝혀지는 진실 또한 지루한 체이스를 버텨내고 얻어낸 것치고는 매우 작은 것이기 때문에 작가에게 큰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실공사에도 뻔뻔하게 운영을 이어나가는

그렇다고 이것을 단순히 템포의 문제라고 단정 짓기에는 스토리의 구조 자체가 너무나도 부실합니다. 문제는 작가가 위태로운 서사 구조에 독자들을 강제로 끌어들인다는 점입니다. 엔자이와 같은 문제가 일본에서 아무리 문제시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취조를 우려해서 이름도 모르는 목격자를 쫓아 다른 스키장으로 도주한다는 발상은 상당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매력적이지도 않습니다. 스키장이 무슨 옛날 <소년탐정 김전일>에 나오는 무인도도 아니고, 아무리 고글이나 마스크, 스키복 등으로 사람 분간이 어렵다고 해도 그렇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서사를 출발시키는 행위는 아무리 생각해도 독자에 대한 기만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미 초반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전개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것을 만회할 생각 없이 나사 빠진 인물들로 서사를 억지로 이끌어갑니다. 혐의도 없는 친구를 도주시켜서 수사를 혼란시키는 법학과 학생, 상부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다고 해도 사고가 편협한 멍청한 경찰들이 '눈보라 체이스'를 질질 끌어버립니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주요 등장인물인 나미카와와 상당히 닮아 있는데, "스키장에도 방범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겠지?(p.62)"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알리바이를 쫓는 다쓰미에게 이 법학과 학생은 "그런 미덥지 않은 정보에 네 인생을 걸 생각이야?(p.62)"라고 이야기하며 친구에게 '여신'을 찾을 것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작품은 "설명은 나중에."(p.71)라고 이야기하는 나미카와처럼 상당히 작가의 입맛대로, 뻔뻔하게 운영을 이어나갑니다.

"언제까지고 어린애예요. 별것도 아닌 일에 승부욕이 발동해서 고집을 피우고 오기를 부린다니까. 본인이야 그래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걸 따라줘야 하는 쪽은 너무 힘들지요." (p.197)

작중 유키코가 고스기 형사에게 하는 말은 등장인물뿐만이 아니라 작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무식을 모르고 고집스럽기만 한 등장인물들의 행동, 원하는 스토리를 형성하기 위해 독자들을 억지로 끌고 가는 어설픔, 그런 상황에 등장인물들이 자기 스스로에게 취해 던지는 신파스러운 대사들까지, 마치 담배를 처음 피워보고 자기를 어른으로 착각하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별로 알고 싶지는 않네요. 작가에게 있어서 다작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많은 작품들을 써서 그중에 한 작품이라도 대박을 치는 것이 작가의 지향점이라면, 저는 이 사람 책을 다시 읽고 싶지는 않을 듯합니다.

마음에 든 것은 소미미디어에서 특별 에디션으로 제작한 시원한 표지뿐이었습니다.

#푸른여우의냠냠서재

#리뷰 #독서 #소설 #히가시노게이고 #설산시리즈 #소미미디어 #서평단 #눈보라체이스 #겨울

#스노보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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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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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추천 지수는 : ★★★ (6/10점 :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쓰였어야)


그때, 그 눈물의 시간을 통해 무늬는 진심이라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어떤 형체가 실은 매우 연약하다는 진리를 배웠다. (p.85)


그럴 때면 그냥 다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고 생각해버리는 거지. 저 별도 지구도, 나도 그냥 다 점이다. 좆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p.121)


나는 이 소리 없는 이별의 신호를 내 업보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었다고 해서 쓸쓸한 기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p.267)


상담사인 '나'는 '1004'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로부터 디엠을 받고 자신의 10대 시절을 돌아보게 됩니다. '기이한 열정으로 들끓고 있(p.17)'던 2003년 밸런타인데이, '나'는 자신이 짝사랑하고 있는 남학생 '윤도'에게 초콜릿을 몰래 전하려던 와중 같은 학원의 '무늬'에게 들키고 마는데요.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둘은 각자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학교 생활을 이어나갑니다. '나'는 점차 '윤도'와 가까워지는 한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태리'와 무언가 비밀이 있어 보이는 '희영' 등 다양한 인물들과 만나게 되는데.......


'그 시절' 10대의 감정과 삶을 섬세하면서도 담담하게

박상영 작가님의 <1차원이 되고 싶어>입니다. 소설을 읽고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낀 점은 작중 과거에 해당하는 2000년대 전후의 현실을 밀도 있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IMF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주인공의 부모들이 느끼는 부에 대한 열등감,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 등이 어우러진 복잡한 현실이 MSN 메신저, 자우림의 '연인' 등 그 당시 유행했던 소재들과 어우러져 짙은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이렇게 깊게 묘사되는 현실 속에서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비밀과 감정을 지니고 있는 주인공들이 서로 유대를 쌓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충분히 짙은 인상을 남깁니다.

그러면서도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거창하게 얘기하지 않고, 최대한 담담하게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이 또한 매력적입니다. 복잡한 현실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차원으로 벗어나고 싶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잘 드러내는 문구가 제목인 '1차원이 되고 싶어'입니다만,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결코 1차원적이지 않은 배경과 인물 묘사는 굉장히 탁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스쿠터에 탄 윤도의 옷에서 날리는 하얀 깃털을 '나'가 처음에 낭만적으로 느끼는 부분은 물론, 심지어는 단순히 식당에서 '나'와 무늬가 밥을 먹는 장면조차도 하나하나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님의 역량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다소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작가님의 담담한 문체가 소설이 지녀야 할 '치고 빠지는' 매력을 감소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작중에서 여러 반전들이 등장하지만, 특유의 조용한 서술이 해당 반전들을 임팩트 없게 만드는가 하면, 오히려 필요 없는 반전처럼 느껴지게 하기도 합니다. 무늬가 사모하던 언니의 동거인이 누구인지, 윤도의 책상에 초콜릿을 놓고 간 또 한 명의 정체 등 매력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던 반전들이 이러한 담담한 서술에 묻히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아쉬움을 낳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우리가 흔히 과거의 일정 부분을 회상할 때와 비슷하게 해당 소설이 '그런 일이 있었다'는 온화한 느낌으로 조용히 전개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서술 방식이 실제 회상 방법과 비슷하다 보니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본인들의 10대 시절을 떠올려보면서, 등장인물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좀 더 쉽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1차원이 되고 싶어>는 고차원적인 현실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복잡한 현실로부터 단순해지고 싶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보다 설득력 있게 전달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구원'에 찬 현실 속에서 '실패'를 이야기하는 모순

작가님은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실패의 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p.408)'고 이야기하신 바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여기서 언급하신 '실패'는 단순히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좌절에만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인즉슨, 작중 서술되는 과거의 이야기는 다소 세밀하면서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데에 반해, 작품 중후반부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비교적 엉성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맨 처음 등장하는 '과거로부터 온 편지 1'에서는, 상담사인 '나'가 유명세를 얻고 PD로부터 '살아갈 의지를 얻었다는 분들이 많습니다.(p.9)'라고 이야기를 듣는 부분이 짧은 분량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짧게 제시되는 '나'의 이야기는 뒷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다소 엉성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져 초반부터 독자들에게 반감을 살 우려가 있습니다. 후에 수성못의 백골 사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본격적인 과거 회상에 들어가면서 작품의 장점들이 독자들에게 소설을 읽어나갈 이유를 부여하지만, 초반부에서 느낀 작위적인 설정은 중후반부의 전개에 있어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선 작품에 있어서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윤도라는 캐릭터의 활용을 먼저 지적하고 싶습니다. 후반부에 이 캐릭터가 주인공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는 대충 예상이 갔는데도, 초중반에 보였던 대사나 인물이 풍기는 분위기와 달리 후반에 실제로 '나'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쏟아내는 윤도의 모습은 생각보다 다소 갑작스럽고 어색합니다. 윤도의 속셈이 드러나는 374쪽은 윤도라는 캐릭터가 결국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보다 주인공에게 좌절을 부여하는 것이 먼저 우선시 되었다는 느낌이 있어, 결국 '나'에게 좌절을 경험시키기 위해 윤도라는 캐릭터가 소설의 장치로서 급하게 활용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너 진짜 게이냐?' 라는 말과 '넌 그냥 내 좆집이었어.'라는 말이 같은 인물에게서 나오는 것은 이상하니까요.

이렇게 '실패'를 급하게 주입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후의 '나'의 행적도 초반의 설득력 있던 인물 전개와는 다소 멀어집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완독한 독자는 '나'가 수성못에서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 '나'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여 약물 치료까지 받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나'가 속죄의 뜻으로 품는 심리와 그 후의 행적은 안타깝다기보다는 이기적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상대방이 등장하는 꿈을 꾸는 장면은,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진실을 털어놓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의 죄책감을 해소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기반에 있어 보입니다. 상대방이 행방불명된 상황에서 '내가 저지른 일이 언젠가 만천하에 드러날지도 모른다(p.337)'고 생각하는 모습 또한 그 예시입니다. 물론 그동안의 심리나 대화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이 10대의 불안한 심리를 탁월하게 대변했기 때문에, 서술되는 '나'의 행적은 오히려 미숙한 10대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나'의 철없음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해당 작품이 전달할 수 있었던 여러 주제들이 설득력을 잃어버린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주인공은 자신의 죄책감을 원인으로 에세이를 써서 출간했습니다만, 이 행위는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에세이임으로 에세이에 등장할 주변 인물들의 동의를 어느 정도 구해야만 마땅합니다. 에세이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기 고백을 주제로 삼은 에세이는 상당히 낭만적입니다만, 그 속에 등장할 실존 인물들의 입장에서는 그 행위를 마냥 낭만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나'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에세이를 읽고 그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있기에 주인공이 지나치게 '구원'의 상황에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합니다. 심지어 태란의 경우 아무리 악행을 저질렀다고 한들 자신의 어머니가 에세이에 마음대로 쓰였음에도 오히려 '나'의 마음을 공감해주기까지 합니다.

즉, '나'는 자기 죄책감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에세이를 출간했고, 우연한 인터뷰로 운 좋게 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갈 의지를 주는 데에 성공했으며, 운 좋게 자신의 에세이를 읽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운 좋게 상대로부터 재회의 의지를 듣습니다. '나'는 분명히 자신이 연모했던 대상으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좌절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실패'를 담고 있습니다만, 실패 자체도 다소 급하게 주입되었으며, 그 점을 제외하고 보았을 때 현재 시점에서 '나'의 처지는 아무리 본인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구원'에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 속에서 실패를 이야기하는 모순을 끌어안은 채 어설프게 맺어진 결말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 현재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작품의 주제를 분산시켜버립니다. 과거의 이야기만큼이나 현재의 이야기도 '구원'과 '실패' 중 방향을 확실하게 정하고 촘촘하게 써 내려갔다면, 아무리 '나'가 철없는 인물로 비춰진다한들 적어도 독자들에게 임팩트 있는 결말을 전달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 1차원의 세계에 머무르자. (...) 너와 나라는 점, 그 두 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말이야.(p.130)"

작품에서 활용된 문자 내역, 미니홈피 글귀, 그리고 노래와 만화 등등을 접하다 보면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사람마저도 해당 시기가 풍기는 어떤 향기를 느끼는 것이 가능합니다. 해 질 녘 노을과 초저녁의 푸른 하늘이 어울리는 이 시대에서 미숙한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웃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그들이 저마다의 사랑과 비밀에 좌절하는 모습은 독자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는 것 또한 가능하게 합니다.

과거를 짙게 그려내는 것이 작가님의 장점이기 때문에, 그만큼 설득력 있는 현재를 그려내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보다 촘촘한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려내셨다면, 적어도 4장 이후의 '나'의 대사와 행동이 1차원적인 속죄로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설프게 속죄하는 주인공은 때때로 속죄하지 않는 주인공보다 훨씬 큰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법입니다. 1차원적으로 살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입니다만, 그럼에도 우리가 호감을 느끼는 대상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궁리하는 인물일 것입니다.


추신 : 그리고 코멘터리 북은 완성도 높은 책에 대해 독자들이 열화와 같은 요청을 보내고, 거기에 대해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어쩔 수 없이 내는 것이 가장 적절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어쨌든 작품의 완성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현란한 마케팅은 작품의 완성도가 높을 때는 더욱 작품을 빛나게 하는 법이지만, 작품에 흠집이 나있을 경우 그것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푸른여우의냠냠서재

#문학동네 #박상영 #10대 #1차원이되고싶어 #도서 #독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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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토성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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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 (6/10점 : 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밌게 읽은)


"지구 역사가 46억 년인데 겨우 20분 지각하는 게 뭐 어때서?" (p.52)

"그걸 알면 무슨 도움이 되는데?" / "글쎄.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 (p.101)

"그래, 앞으로 지구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니. 언젠가 달에 살게 된다면 세탁도 꼭 해야 하잖아." (p.120)

열네 살인 안나는 '우주 덕후에 촌스럽지만, 다정한(p.21)' 대학생 오빠 가즈키를 두고 있어요. 중학교 생활을 귀찮다고 여기고, 다른 별로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중학생 안나에게 가즈키는 목성은 가스 행성이라 살 수 없다는 둥 이과적인 농담을 던지곤 하는데요. 집과 학교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안나는 오빠가 전해주는 우주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되새겨보기도 합니다. 그런 안나가 친구인 미즈호의 말을 듣고, 오빠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해하기 시작하는데......

잔잔하면서 독특하게, 마스다 미리의 감성으로

<오늘도 상처받았나요?> 등 만화로 유명하신 마스다 미리의 첫 장편소설 <안나의 토성>입니다. 작가님의 여타 작품들처럼 이 소설도 잔잔한 분위기에서 전개되는 일상과 작가님의 독특한 시선이 일품인데요. 특히 안나와 가즈키 사이의 대화는 작품의 매력을 가장 잘 담아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외당하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어서 '전교생은 혼자 도시락을 먹는 규칙 준수(p.54)'와 같은 교칙을 꿈꾸는 안나의 모습이나, 우주의 구조를 발견한 과학자의 노벨상 소식을 듣고 감탄한 나머지 밥을 거르는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전개되면서도 톡톡 튀는 그들의 일상에 자연스레 빠져들 수 있습니다.

'중학생의 일상'과 '우주의 지식'

그런데 잘 어울려야만 할 안나의 일상과 오빠의 우주 이야기가 작품 내에서는 생각보다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가 무언가 연관성이 있는 듯 제시되지만, 둘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따로 논다는 느낌이 적지 않아요. 문제는 두 이야기가 도킹에 실패하면서, 해당 작품이 미완성인 채로 남겨진다는 점입니다. 완독한 후 인물들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는 것 이외의 인상이 남지는 않았으며, 작가님의 여타 작품들처럼 이 소설도 나름의 재미를 간직하고 있지만, 작가님의 이름을 놓고 보더라도 해당 작품이 설익은 작품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글과 그림 사이의 간격, 도킹에는 실패했지만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던 와중에, 머릿속으로 작가님의 만화 그림체에 <안나의 토성>의 문장이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상상해보았어요. 그러자 책에 쓰인 문장들이 만화에 사용될 때, 보다 잘 어울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즉, 이 소설이 날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해당 작품이 소설보다도 만화를 위한 대사집에 가깝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의 추측입니다.

그렇다고 작가님의 글솜씨를 미흡하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것이, 전에 쓰신 에세이 <영원한 외출>은 에세이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도가 있었거든요. 어쩌면 작가님께서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아직까지 적응하지 못하신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께서 소설과 만화, 또한 소설과 에세이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신 후 향후 다른 작품을 집필하신다면, 좀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하늘에는 오늘 밤 죽는 별도 있고 지금 태어나는 별도 있어. 우리와 관계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안. 누군가와 오늘 밤에 본 별하늘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지 않니?"(p.192)

그런데 사실 작가님의 첫 소설 출간에 대한 우려를 사전에 많이 접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저는 이 책을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읽었습니다. 무언가를 거창하게 말하고자 하는-그러나 사실상 거창할 것 없었던-책들을 최근에 워낙 많이 접했던 탓일까요. 오히려 이렇게 일상 이야기를 차분하게 보여주는 책에 마음이 더 끌렸습니다. 설령 이 책이 소설로서는 다소 부족한 면모를 지니고 있더라도, 잔잔한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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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럭키 소녀, 세상을 바꿔줘 YA! 3
나나미 마치 지음, 고마가타 그림, 박지현 옮김 / 이지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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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지수는 : ★★★☆ (7/10점 : 이 책, 자꾸 정이 가네?)

    ( * 이 서평은 이지북에서 주관하는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앞으로도 많은 사람을 돕고 싶어. 가능하면 기사라기와 함께."(p.99)


   ★ "강하게 마음먹으면 못 할 건 없어. 괜찮아."(p.138)


   ★ "하지만 실패를 무서워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순간, 실패하는 거나 마찬가지야."(p.154)


   주인공 '기사라기 미우'는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미래를 보는 '미래 시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녀는 어릴 적 겪었던 일을 계기로 다른 사람의 운명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소심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요.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자신과 똑같이 미래 시력을 지니고 있는 '다키시마 유키토'를 만나면서 서서히 변화하게 됩니다. 운명을 점치는 유튜브 리포터 '유키우사'의 정체와 또다시 닥치는 불길한 미래, 깜찍 발랄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가 일품입니다.


   소박한 소재들로 쌓아 올린 클리셰

   일본에서는 <사키요미!>라는 이름으로 현재 5권까지 발간된 바 있는, 나나미 마치와 고마가타의 <제로 럭키 소녀, 세상을 바꿔줘>입니다. 순정만화를 보는 듯한 귀여운 캐릭터들이 눈길을 끄는 책인데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설정은 이미 클리셰라고 불릴 정도로 수십 번 넘게 활용되어 왔고,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남자아이를 만나 주인공이 변화된다는 전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반전이나 인물들이 숨겨둔 진심 또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아동 애니메이션에서 언젠가 본 것 같은 소재에 해당합니다. 더군다나 1권의 큰 줄거리를 이루고 있는 사건 또한 생각보다 소소하고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기존의 아동 문학을 접한 학생들에게는 조금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합니다.


   자꾸 응원하게 되네? 촘촘하고 디테일한 '진짜' 어린이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읽다 보면, 평범한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책 속에 만들어진 허구의 등장인물들을 응원하게 된다는 것은, 다시 얘기하자면 그 등장인물들을 마치 살아 있는 인물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가도카와 츠바사문고 게시판을 보면, 일본의 초등학생 독자들이 작중 등장인물들을 응원하고 있는 메시지를 많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특별한 힘이 이 책을 단지 평범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게 합니다.

   그것은 작품의 분위기를 이끌어주는 귀엽고 깜찍한 그림체 때문도 있을 것입니다만, 물론 그것뿐만은 아닙니다. 요컨대, 이 책은 주인공들의 인물 설정이 실제 아이들을 보는 것처럼 촘촘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장점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처음에 '운명을 바꿀 수 없다'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며, '유키와 맞바꾸어 자기가 살아났다는 사실을.......(p.10)'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창해 보이는 묘사와 달리 유키라는 아이는 머리에 상처가 나고 이후 사이가 멀어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 입장에서 볼 때 자기 때문에 누군가가 다치는 일은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것처럼 거창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주인공이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비관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는 과정은, 오히려 상당히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동화들이 스케일도 커지고, 소재도 점점 복잡해지다보니 큰 사건을 겪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이른바 '멘탈 강한 아이들'이 자꾸만 등장합니다. 그런데 본래 어린이들의 모습이란 이 책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등장하는 아이들은 (물론 이 책의 아이들은 비정상적으로 예쁘고 잘생겼지만!) 작은 상처에도 쉽게 좌절하게 되고, 친구가 이사하면 영영 못 만날 것이라는 생각에 며칠 동안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촘촘한 어린이들의 심리 묘사가, 다소 평범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을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서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도 응원을 얻을 수 있는 거겠죠. 이러한 심리를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기에는, 어쩌면 이와 같은 소소한 전개가 오히려 어울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번역과 구성에 대한 아쉬움, '사키요미'에서 '제로 럭키'로

   원제였던 <사키요미!>는 '미래를 읽는다'는 뜻으로, 일본에서는 작품의 제목을 네 글자로 짓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어색하지는 않은 제목입니다. 특히, '사키요미'는 번역판에서 '미래 시력'에 해당하는 능력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책에서 가장 메인이 되는 부분은 '불행'이 아니라 그러한 불행을 읽고 등장인물들이 바꾸어나가는 '미래'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사키요미!>가 <제로 럭키 소녀, 세상을 바꿔줘>라는 제목으로 변화하면서 메인이 '미래'에서 '제로 럭키', 즉 '불행'으로 옮겨집니다. 표지에서 '제로'에 형광펜이 그어져 있는 것도 이러한 중점 이동에 한몫하고 있고, 이로 인해 독자들은 '불행'의 주체를 주인공인 소녀로 착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미 올라온 서평에서는 미우를 불행한 소녀로 해석한 경우가 많은데, 작중에서 '제로 럭키'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며,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우는 타인의 불행을 볼 수 있을 뿐이지 본인은 불행과는 거리가 멉니다. 문제는 이 책이 한 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시리즈물이라는 점인데, 이미 1권에서 '다키시마'와 함께 운명을 바꾸기로 긍정적으로 변화한 미우에게 '제로 럭키'라는 수식어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 책에서는 '사키요미'를 '미래 시력'으로 번안한 것과 달리,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원판 그대로 가져오면서 유튜브 리포터 이름인 '유키우사'나 '미미후와'도 일본어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후와포요' 같은 방송 리액션 등이 작중 몇 번 등장하는 만큼, 오히려 이러한 콘텐츠들을 우리말로 적절히 번안하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즉, 원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고찰을 한 흔적이 눈에 보이지만, 이 책의 주제와 시리즈적 구성을 고민했을 때 좀 더 효율적인 번역이 이루어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괜찮아. 운명은 바꿀 수 있으니까.(p.50)"

   등장인물의 입으로 직접 전달되는 이 책의 주제는 다소 직접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어째선지 마음 한 곳을 울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고마가타 일러스트레이터의 깜찍하고 귀여운 그림체와 함께, 진짜 어린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촘촘한 심리 묘사가 이러한 울림을 가능하게 했을 것입니다. 간단하고 소박한 전개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등장인물들을 응원하게 만드는 따뜻한 소설입니다. 이 작품이 우리 어린이들에게도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그에 걸맞은 좀 더 적절한 편집과 번역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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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별밤 에디션)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천 지수는 : ★★★ (6/10점 : 당분간은 계속 밤에 머무를 듯한)

   ★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p.82)


   ★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p.130)


   ★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p.336-337)


  희령으로 이주한 지연은 이혼과 관련해서 엄마와 말다툼을 하던 와중, 어느 날 자신의 할머니인 영옥과 우연히 마주치게 됩니다. 할머니께서 건네신 사진을 바탕으로 옛이야기를 듣게 된 지연은 증조모에서 자신으로까지 이어지는 백 년의 역사를 전해 듣게 되는데요. 신분제 차별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등 비극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견뎌 와야만 했던 증조모와 조모의 서사를 들으면서, 지연은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정갈한 문장으로, 과거를 '재연'하다

   <쇼코의 미소>로 유명하신 최은영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장점이라고 생각된 부분은 증조모에서 '나'로 이어지는 그 기나긴 시간들을 사실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문장과 문체였습니다. 증조모로부터 조모인 영옥으로 이어지는 과거 이야기가 어찌 보면 소설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데요. 실제로 존재하는 역사를 그대로 서술할 때도 문장이 길어지다 보면 자칫 모순이 생길 위험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정갈한 문장 속에 꼼꼼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작가님의 내공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역사에서 옥수수를 팔고 있는 증조모의 모습, 피난을 내려가기 전 증조모와 증조부에게 며칠만 재워주기를 부탁하는 새비 아주머니의 모습, 영옥의 낭독을 듣는 희자와 명숙 할머니의 모습 등등 소설을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인상적인 장면들이 여운으로 남게 됩니다. 나아가 각각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짜임새 있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즉, <밝은 밤>은 백 년의 시간을 특별한 모순 없이 생동감 있는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한다는 점에서, 과거를 충실하게 '재연'하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과거의 이야기에 힘이 실려 있는 탓인지 모친에서 '나'로 이어지는 현재의 이야기는 과거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처럼 보여 다소 아쉬웠습니다. 전개 특성상 과거의 이야기는 편지 몇 장과 조모인 영옥의 입을 통해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데, 작중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이야기를 거의 조모의 입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이야기는 영옥과 지연의 대화가 주를 이루게 되고, 자연스럽게 현재를 살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설명이 부족하고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모친과 언니에 대한 이야기, 모친과 조모의 이야기 등은 조모와 증조모 사이의 이야기에 비해 설명이 부족하며, 대표적으로 주인공이 사고를 당하는 장면은, 주마등 속에서 주요 인물을 등장시키고자 억지로 중앙선을 침범했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감동적일 수 있었던 인물의 등장과 마지막 말이 작위적인 전개로 인해 감동이 다소 반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천문학 연구원이라는 주인공의 처지가 좀 더 이야기를 다채롭게 꾸며줄 수 있었음에도 활용 빈도가 약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문제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농도를 지니게 되면서 증조모에서 '나'로 이어져야 할 등장인물들의 연대가 생각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개개인의 서사에 많은 분들이 눈물을 훔치고 가슴 아파하셨지만, 이야기의 직접적인 서술자인 '영옥-지연'을 제외한다면 주인공들 사이에 일관되게 이어져야 할 연대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단절되어버립니다. 대표적으로 제시되는 증조모와 새비, 증조모와 조모, 조모와 명숙 할머니 간의 연대는 모두 과거의 이야기에 해당할 뿐입니다. 아무리 연대라는 것이 간접적으로 제시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과거에서 현대로 삶이 전달되는 방식을 그리고 있다고 보기에 본 작품은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백 년 전부터 이어져내려오는 기나긴 이야기를 일정한 템포를 유지하면서 인상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 클 것입니다.


   '연대'를 방해하는 '배타성'에 대해

   그런데 사실상 이 책이 등장인물들 간의 긴밀한 '연대'를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에는 연대의 주체에 해당하는 인물들과 그 반대편에 있는 인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배타적인 구도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서평에서도 지적된 바가 있는데, 주인공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성격 상에 결점이 없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상호 간에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사실은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하염없이 헌신적인 인물이면서, 정말 극한 상황에 이르지 않는 이상 자신의 삶에 체념하고 용인하기에 바쁜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루고 있는 세계의 바깥에 서 있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융통성이 없고 뻔뻔하기 그지없는 인물들입니다. 과거의 시모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P선배나 중년 남성과 같이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도, 하나같이 주인공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P선배는 "사적 영역의 감정이 공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줘선 안 되는 거잖아요.(p.174)"라는 다소 오지랖 넓은 말을 굳이 건네서 지연의 사생활을 은근히 건들며, 중년 남자는 '자리에 주저앉아서 팔로 머리를 감(p.267)'싸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사정도 물어보지 않고 "아줌마, 차 빼야 돼요. 좀 비키세요."(p.268)라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최측근에 있는 남성들은 새비 아저씨를 제외하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매번 하나같이 평면적이고 이상한 사람들뿐입니다. 증조부는 처음에는 증조모를 위기에서 구했음에도 아이가 장난을 쳐서 밥을 쏟은 상황에서 '형님이 오셨는데 밥도 없이 먹으라는 거야?(p.59)'라고 이야기하는 복합적인 인물처럼 보였다가, 후반부로 가면서 전형적으로 가부장적인 인물이 되어버립니다. 조부는 두말할 것도 없는 인간쓰레기고, 아빠는 엄마나 딸의 아픔에는 괴상할 정도로 관심이 없다가 이혼 문제가 나오니까 "씨발, 이혼이 자랑이야?(p.275)"라고 이야기하며 큰소리를 치고, 나의 전남편은 외도를 했음에도 마지막까지 상당히 떳떳합니다.

   지나치게 체념적인 인물들과 한없이 개념 없는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배타적인 구도는 이전 소설들에서 자주 등장했던 권선징악 구도와도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권선징악 구도는 살아 있는 배경 속에서 마찬가지로 살아 있어야 할 등장인물들을 종이 인형처럼 만들어버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사실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작중에서 묘사되는 세계와 역사는 생동감이 넘침에도 불구하고, 인물 배치에서 느껴지는 배타성은 작품 속에서 가장 살아있어야 할 인물들의 이야기를 죽은 이야기처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나'가 할머니를 이해하면서, '비가시권의 우주'와도 같이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p.337)'한다고 이야기한 것과 달리, '나'는 자신들의 연대 바깥에 있는 인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순 속에서 제시되는 등장인물 간의 '연대' 또한 다소 얄팍한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 작품은 과거의 서사를 탁월하게 재연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등장인물들 간의 배타적인 구도와 과거에 치우쳐진 이야기 구조가 작품이 지닌 매력을 반감시키고 있어 아쉬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가 아무리 터프한 구조로 되어 있고, 불합리하고 무차별적인 사건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통을 거부하고 맺는 연대가 과연 긴밀한 연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저는 다소 의문입니다.

   배타적인 구도를 통해 사회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했던 시기는 이미 지났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일삼는 이들을 이해하고 용인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해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연대를 짓밟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는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설득력 있는 논리가 완성됩니다. 그들이 지닌 '비가시권의 우주'에 대해 계속 등을 돌린 채로 연대를 이야기한다면, 연대를 맺은 사람들의 밤은 다소 밝을지는 몰라도, 세계가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데에는 또다시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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