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별밤 에디션)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천 지수는 : ★★★ (6/10점 : 당분간은 계속 밤에 머무를 듯한)

   ★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p.82)


   ★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p.130)


   ★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p.336-337)


  희령으로 이주한 지연은 이혼과 관련해서 엄마와 말다툼을 하던 와중, 어느 날 자신의 할머니인 영옥과 우연히 마주치게 됩니다. 할머니께서 건네신 사진을 바탕으로 옛이야기를 듣게 된 지연은 증조모에서 자신으로까지 이어지는 백 년의 역사를 전해 듣게 되는데요. 신분제 차별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등 비극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견뎌 와야만 했던 증조모와 조모의 서사를 들으면서, 지연은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정갈한 문장으로, 과거를 '재연'하다

   <쇼코의 미소>로 유명하신 최은영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장점이라고 생각된 부분은 증조모에서 '나'로 이어지는 그 기나긴 시간들을 사실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문장과 문체였습니다. 증조모로부터 조모인 영옥으로 이어지는 과거 이야기가 어찌 보면 소설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데요. 실제로 존재하는 역사를 그대로 서술할 때도 문장이 길어지다 보면 자칫 모순이 생길 위험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정갈한 문장 속에 꼼꼼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작가님의 내공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역사에서 옥수수를 팔고 있는 증조모의 모습, 피난을 내려가기 전 증조모와 증조부에게 며칠만 재워주기를 부탁하는 새비 아주머니의 모습, 영옥의 낭독을 듣는 희자와 명숙 할머니의 모습 등등 소설을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인상적인 장면들이 여운으로 남게 됩니다. 나아가 각각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짜임새 있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즉, <밝은 밤>은 백 년의 시간을 특별한 모순 없이 생동감 있는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한다는 점에서, 과거를 충실하게 '재연'하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과거의 이야기에 힘이 실려 있는 탓인지 모친에서 '나'로 이어지는 현재의 이야기는 과거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처럼 보여 다소 아쉬웠습니다. 전개 특성상 과거의 이야기는 편지 몇 장과 조모인 영옥의 입을 통해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데, 작중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이야기를 거의 조모의 입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이야기는 영옥과 지연의 대화가 주를 이루게 되고, 자연스럽게 현재를 살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설명이 부족하고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모친과 언니에 대한 이야기, 모친과 조모의 이야기 등은 조모와 증조모 사이의 이야기에 비해 설명이 부족하며, 대표적으로 주인공이 사고를 당하는 장면은, 주마등 속에서 주요 인물을 등장시키고자 억지로 중앙선을 침범했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감동적일 수 있었던 인물의 등장과 마지막 말이 작위적인 전개로 인해 감동이 다소 반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천문학 연구원이라는 주인공의 처지가 좀 더 이야기를 다채롭게 꾸며줄 수 있었음에도 활용 빈도가 약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문제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농도를 지니게 되면서 증조모에서 '나'로 이어져야 할 등장인물들의 연대가 생각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개개인의 서사에 많은 분들이 눈물을 훔치고 가슴 아파하셨지만, 이야기의 직접적인 서술자인 '영옥-지연'을 제외한다면 주인공들 사이에 일관되게 이어져야 할 연대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단절되어버립니다. 대표적으로 제시되는 증조모와 새비, 증조모와 조모, 조모와 명숙 할머니 간의 연대는 모두 과거의 이야기에 해당할 뿐입니다. 아무리 연대라는 것이 간접적으로 제시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과거에서 현대로 삶이 전달되는 방식을 그리고 있다고 보기에 본 작품은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백 년 전부터 이어져내려오는 기나긴 이야기를 일정한 템포를 유지하면서 인상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 클 것입니다.


   '연대'를 방해하는 '배타성'에 대해

   그런데 사실상 이 책이 등장인물들 간의 긴밀한 '연대'를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에는 연대의 주체에 해당하는 인물들과 그 반대편에 있는 인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배타적인 구도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서평에서도 지적된 바가 있는데, 주인공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성격 상에 결점이 없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상호 간에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사실은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하염없이 헌신적인 인물이면서, 정말 극한 상황에 이르지 않는 이상 자신의 삶에 체념하고 용인하기에 바쁜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루고 있는 세계의 바깥에 서 있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융통성이 없고 뻔뻔하기 그지없는 인물들입니다. 과거의 시모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P선배나 중년 남성과 같이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도, 하나같이 주인공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P선배는 "사적 영역의 감정이 공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줘선 안 되는 거잖아요.(p.174)"라는 다소 오지랖 넓은 말을 굳이 건네서 지연의 사생활을 은근히 건들며, 중년 남자는 '자리에 주저앉아서 팔로 머리를 감(p.267)'싸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사정도 물어보지 않고 "아줌마, 차 빼야 돼요. 좀 비키세요."(p.268)라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최측근에 있는 남성들은 새비 아저씨를 제외하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매번 하나같이 평면적이고 이상한 사람들뿐입니다. 증조부는 처음에는 증조모를 위기에서 구했음에도 아이가 장난을 쳐서 밥을 쏟은 상황에서 '형님이 오셨는데 밥도 없이 먹으라는 거야?(p.59)'라고 이야기하는 복합적인 인물처럼 보였다가, 후반부로 가면서 전형적으로 가부장적인 인물이 되어버립니다. 조부는 두말할 것도 없는 인간쓰레기고, 아빠는 엄마나 딸의 아픔에는 괴상할 정도로 관심이 없다가 이혼 문제가 나오니까 "씨발, 이혼이 자랑이야?(p.275)"라고 이야기하며 큰소리를 치고, 나의 전남편은 외도를 했음에도 마지막까지 상당히 떳떳합니다.

   지나치게 체념적인 인물들과 한없이 개념 없는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배타적인 구도는 이전 소설들에서 자주 등장했던 권선징악 구도와도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권선징악 구도는 살아 있는 배경 속에서 마찬가지로 살아 있어야 할 등장인물들을 종이 인형처럼 만들어버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사실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작중에서 묘사되는 세계와 역사는 생동감이 넘침에도 불구하고, 인물 배치에서 느껴지는 배타성은 작품 속에서 가장 살아있어야 할 인물들의 이야기를 죽은 이야기처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나'가 할머니를 이해하면서, '비가시권의 우주'와도 같이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p.337)'한다고 이야기한 것과 달리, '나'는 자신들의 연대 바깥에 있는 인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순 속에서 제시되는 등장인물 간의 '연대' 또한 다소 얄팍한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 작품은 과거의 서사를 탁월하게 재연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등장인물들 간의 배타적인 구도와 과거에 치우쳐진 이야기 구조가 작품이 지닌 매력을 반감시키고 있어 아쉬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가 아무리 터프한 구조로 되어 있고, 불합리하고 무차별적인 사건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통을 거부하고 맺는 연대가 과연 긴밀한 연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저는 다소 의문입니다.

   배타적인 구도를 통해 사회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했던 시기는 이미 지났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일삼는 이들을 이해하고 용인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해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연대를 짓밟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는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설득력 있는 논리가 완성됩니다. 그들이 지닌 '비가시권의 우주'에 대해 계속 등을 돌린 채로 연대를 이야기한다면, 연대를 맺은 사람들의 밤은 다소 밝을지는 몰라도, 세계가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데에는 또다시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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