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체이스 (10만 부 기념 특별 에디션) 설산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지수는 : ★★☆ (5/10점 : 별 것도 아닌 일에 승부욕이 발동해서)

"그런 미덥지 않은 정보에 네 인생을 걸 생각이야?" (p.62)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는 제각각 달라요. 행방을 감췄다고 그걸 꼭 도주라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요?" (p.222)

"무슨 수를 쓰든 증인이 될 그 여자를 찾아내. 경찰에 사정을 얘기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 (p.329)

(* 이 서평은 소미미디어가 주최한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대학생 와키사카 다쓰미는 스키장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살인사건 용의자로서 의심을 받게 됩니다. 유일하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스키장에서 우연히 이야기를 나눴던 이름 모를 여성뿐. 그녀를 '여신'이라 부르는 법학과 친구 나미카와와 함께 두 사람은 그녀의 행방을 쫓아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으로 향하게 되는데요. 코앞까지 찾아온 경찰들의 추적을 따돌리던 와중 다쓰미는 '여신'에게 다가서게 되고, 사건 현장이 찍힌 사진에서 우연히 진범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술술 읽히는 문장들, '눈보라'처럼 시원한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시리즈 네 번째 작품, <눈보라 체이스>입니다. 작가의 특성답게 해당 작품도 상당히 술술 읽히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더군다나 스노보드 마니아인 작가의 경험이 충분히 녹아들어 있어 독자들을 겨울 스포츠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합니다. 특별 에디션 표지가 주는 시원함에 더해 이 책은 겨울이라는 계절과 아주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작가는 독자들을 스키장으로 이끌어 미스터리와 겨울 스포츠의 매력을 마음껏 선보입니다.

얄팍한 구상과 느려 터진 '체이스'

그러나 작가가 느끼는 즐거움은 독자의 즐거움으로까지 확장되기는 조금 어려워 보입니다. 다작이 특징인 작가의 작품 목록에 있어서도 해당 작품은 너무나도 '얄팍'하기 때문입니다. 진범이 아니라 목격자 탐색에 중점을 둔다는 발상 자체는 괜찮다고 하더라도, 작가는 그 발상 하나에 의존해서 필요 없는 내용을 지나치게 많이 삽입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매력을 부여할 수 있었던 스키장의 인물들은 후반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이들과 연관된 반전 요소들은 죄다 최후반부에 얕게, 또한 급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독자의 흥미를 끌어야 할 초중반부의 내용은 스키장과 겨울 스포츠를 소재로 한 지루한 추격전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다는 생각과 작가에 대한 팬심 하나만으로 심심한 '체이스'에 동참하게 됩니다만, 결과적으로 밝혀지는 진실 또한 지루한 체이스를 버텨내고 얻어낸 것치고는 매우 작은 것이기 때문에 작가에게 큰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실공사에도 뻔뻔하게 운영을 이어나가는

그렇다고 이것을 단순히 템포의 문제라고 단정 짓기에는 스토리의 구조 자체가 너무나도 부실합니다. 문제는 작가가 위태로운 서사 구조에 독자들을 강제로 끌어들인다는 점입니다. 엔자이와 같은 문제가 일본에서 아무리 문제시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취조를 우려해서 이름도 모르는 목격자를 쫓아 다른 스키장으로 도주한다는 발상은 상당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매력적이지도 않습니다. 스키장이 무슨 옛날 <소년탐정 김전일>에 나오는 무인도도 아니고, 아무리 고글이나 마스크, 스키복 등으로 사람 분간이 어렵다고 해도 그렇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서사를 출발시키는 행위는 아무리 생각해도 독자에 대한 기만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미 초반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전개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것을 만회할 생각 없이 나사 빠진 인물들로 서사를 억지로 이끌어갑니다. 혐의도 없는 친구를 도주시켜서 수사를 혼란시키는 법학과 학생, 상부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다고 해도 사고가 편협한 멍청한 경찰들이 '눈보라 체이스'를 질질 끌어버립니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주요 등장인물인 나미카와와 상당히 닮아 있는데, "스키장에도 방범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겠지?(p.62)"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알리바이를 쫓는 다쓰미에게 이 법학과 학생은 "그런 미덥지 않은 정보에 네 인생을 걸 생각이야?(p.62)"라고 이야기하며 친구에게 '여신'을 찾을 것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작품은 "설명은 나중에."(p.71)라고 이야기하는 나미카와처럼 상당히 작가의 입맛대로, 뻔뻔하게 운영을 이어나갑니다.

"언제까지고 어린애예요. 별것도 아닌 일에 승부욕이 발동해서 고집을 피우고 오기를 부린다니까. 본인이야 그래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걸 따라줘야 하는 쪽은 너무 힘들지요." (p.197)

작중 유키코가 고스기 형사에게 하는 말은 등장인물뿐만이 아니라 작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무식을 모르고 고집스럽기만 한 등장인물들의 행동, 원하는 스토리를 형성하기 위해 독자들을 억지로 끌고 가는 어설픔, 그런 상황에 등장인물들이 자기 스스로에게 취해 던지는 신파스러운 대사들까지, 마치 담배를 처음 피워보고 자기를 어른으로 착각하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별로 알고 싶지는 않네요. 작가에게 있어서 다작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많은 작품들을 써서 그중에 한 작품이라도 대박을 치는 것이 작가의 지향점이라면, 저는 이 사람 책을 다시 읽고 싶지는 않을 듯합니다.

마음에 든 것은 소미미디어에서 특별 에디션으로 제작한 시원한 표지뿐이었습니다.

#푸른여우의냠냠서재

#리뷰 #독서 #소설 #히가시노게이고 #설산시리즈 #소미미디어 #서평단 #눈보라체이스 #겨울

#스노보드 #문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