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 - 고민 상담부 나의 괴물님 YA! 1
명소정 지음 / 이지북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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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지수는 ★★★★☆ : 구성은 촘촘하고, 스토리는 촉촉합니다



"그걸 판단해야 하는 사람은 너야. 직접 부딪쳐 보고 판단해.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는 일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테니까." (p.71)

"너를 위한 선택을 해. 과거도, 지금도, 미래도 모두 만족할 만한 선택을. 지금의 너만 만족할 방법을 선택하면 다른 시점의 네가 널 원망할 수도 있으니까." (p.159)

온전히 자신을 원망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을 믿는 삶. 그 길을 걸을 수 있으려면 자신의 꿈을 쟁취해야 함을, 그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p.163)


소개

화괴. 이야기를 먹고사는 괴물.

도서부장인 '세월'은 어느 날 밤, 괴물이 도서관 책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알고 보니 그는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던 잘생긴 남학생 '혜성'! 그의 정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잡아먹는 '화괴'입니다.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세월은 화괴의 모습에도 당황하지 않고, 고민상담부를 만들어 혜성이 다른 학생들의 걱정과 고민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꿈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학생, 짝사랑의 기억을 잊고 싶어 하는 학생 등 다양한 친구들의 고민을 접하면서 점차 그들은 감정을 익혀나가게 되고, 그런 그들 또한 중요한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이게 되는데......


이야기를 먹는 요괴, 독자를 이끌다

기억과 이야기를 소재로 한 웹툰, 웹소설은 빈번하게 등장합니다만, 이처럼 이야기를 먹는 요괴가 전면에 등장한 소설은 적어도 청소년 소설에서는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 소재가 참신하게 느껴진 것은 '화괴'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허락을 받아야만 타인의 기억을 먹을 수 있다는 설정, 그리고 그에 얽힌 사연들도 매력적입니다.

어찌 보면 화괴는 이야기를 만들고, 또 읽음으로써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끼는 작가와 독자를 비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괴인 혜성이 점차 성장해나가는 과정은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한 책을 폭식 아닌 폭독해본 사람이 있다면) 단순히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다만 화괴의 설정이 워낙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보니, 주인공 중 다른 한 명인 '세월'에 대한 이미지가 초기에 옅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이 작품의 큰 줄기는 세월과 혜성이 각자 감정을 익히며 성장하는 과정이므로 두 인물의 서사가 거의 대등하게 발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중반부에 들어서야 세월이라는 인물이 스토리 상에서 눈에 띄기 시작해 아쉬웠습니다. 이 인물이 지니고 있는 사연이 작품 전반에 걸쳐 설득력 있게 다가오려면, 초기에 보다 많은 서사를 부여해줄 필요는 있었다고 봅니다.

주체적으로 고민을 해결해나가는 등장인물

고민을 상담하러 오는 서브 캐릭터들, 그리고 그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고민은 등장인물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며, 주인공들은 '고민을 지우는' 데에만 열중하지 않고, 그들의 고민을 지워주는 것이 과연 상대방을 위하는 일인지를 계속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고민하는 데에서 어중간하게 끝맺지 않고,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신만의 결론을 내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때로는 과거의 선택에 후회하면서, 그로 인해 반성을 하기도 하지만, 당면한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을 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합니다. 독자들은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함에도 회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등장인물들을 응원하게 됩니다.

다만 해원의 고민은 너무 이상적으로 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부분은 소설가에 대한 작가님의 경험이 많이 투여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튼튼한 기반이 가능하게 극적인 결말

무엇보다도 작품을 읽으면서 뻔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단순히 전래동화처럼 괴물이 소원을 들어주고 나중에 등장인물들이 대가를 치르는 식의 플롯을 따랐다면, 소설의 맛은 한참 떨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기억을 먹는 요괴라는 설정과 그가 먹게 되는 기억들은 작품 내에서 맛깔나게 묘사되어 있고, 그 기반이 튼튼했기 때문에 세월과 혜성 앞에 놓인 최후의 선택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정과 사랑으로 설명할 수 없는 둘의 관계를 보고 무척 설레고 아팠습니다. 솔직히 결말 읽으면서 되게 아렸어요. '아니 여기서 끝내면, 아니 이게 제일 깔끔하긴 하겠지만, 아니 그래도...' 하고 굉장히 아쉬워했네요.


정리

명소정 작가님의 데뷔작인 <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입니다. 장르소설이 지니는 매력을 한껏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게, 맛있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인 청소년 소설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소설을 존재 가능하게 했던 것은, 작가님께서 이야기를 통해 느끼신 '살아 있다는 감정'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시중의 모든 이야기가 살아 있다는 감정을 부여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생동감 넘치는 이 작품에 대해 애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이 책처럼 '살아 있다는 걸 실감시켜 주는' 이야기들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였습니다. 근데 그림 누가 그린 거예요? 너무 이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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