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성난 사람들>

⭐️⭐️⭐️⭐️⭐️

이 영화은 울언니가 예전에 추천해 준 영화이기도 하고, 지금 읽고 있는 책 <변호사 논증법>에 인용된 영화이기도 하다. 해서 잠들기 전 볼 영화로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선택했다. 영화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라!

영화의 배경은 이러하다. 12명의 배심원단이 등장한다. 이들은 아버지 살해 혐의로 피고인이 된, 18세 소년의 유•무죄를 놓고 논쟁한다. 배심원단의 판결이 만장일치가 되면, 소년은 유죄를 받아 사형을 면하지 못할 수도 있고, 무죄를 받아 풀려날 수도 있다. 투표를 진행한 결과, 11명의 배심원은 유죄를 선택했고 오로지 한 명의 배심원만 무죄를 선택했다.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당연히 소년은 유죄다. 그렇지만, 무죄를 선택한 한 사람의 요청으로 그 사람의 주장을 들어보기로 한다. 그 사람은 무죄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주장한다. 무죄라는 것이 아니라, 무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 사용된 증인들의 진술은,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상한 부분들이 많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다른 배심원단들은 모두 생각을 바꾸고 소년이 무죄인 것으로 보고하게 된다.

겉으로만 보면 명백히 소년은 유죄다. 증언도 있고, 증거물인 잭나이프 칼도 있고, 변호사도 별 말 안했고. 하지만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이라면 소년의 유죄를 단언하기 어렵다. 소년이 ‘죽여 버릴거야!’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 노인, 소년이 죽이는 것을 전철 창문 너머로 보았다고 증언한 이웃빌딩 여자, 그리고 그 시간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며 정작 영화제목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 모든 정황이 소년이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바로 끝낼 일일까? 증인으로 나선 노인이나 이웃집 여자나, 이미 소년이 범인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진술한 증언은 아닐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침실에서 문 앞까지 15초만에 갔다는 것, 시력이 불편한 이웃집 여자가 10m도 넘는 거리에서 소년의 범행을 알아보았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합리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있다면, 피고인의 유•무죄를 단번에 결정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증거나 증언의 신뢰성을 한 번 더 검토해보아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았다.

한편, 공정한 재판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예전에 허승 판사님의 <사회, 법정에 서다>를 읽으면서도 했던 생각인데, 법정에서 그 상황을 지켜본 사람은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증언에 대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있어 무죄를 선고했다고 해도 그 결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그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어디까지 보아야 하는지도 판단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죄인을 풀어줄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도 감당하기 어렵다. 수많은 재판과 선고의 과정을 거쳐, 법은 더욱 공정하고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에 있는 법조인들이 신처럼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항상 올바른 판결만 내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항소와 상고, 심급 제도가 있겠다만. 상황에 따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냉철함을 기른다면 완전함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가까이 갈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나로서는... 너무나 어렵다.


+ 1957년 개봉한 흑백영화.
연기라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리얼한 배우들의 열연에, 1시간 30분 동안 논쟁만 하는 영화인데도 (!!)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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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 2018-06-13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논증왕 유나리가 될 듯!

아트 2018-06-13 23:12   좋아요 1 | URL
그러면 좋겠어요 😂😂 탱언니랑 같이~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