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0세부터 만 30세까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뭐 이러저러 저러이러한 우여곡절로 현재의 나는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그게 한국 현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신의 모습은 아닐거라 생각하고, 종교보다는 영성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려놓음‘이란 말 때문이다. 대학교 시절 즈음 교회에서 폭발적으로 읽혔던 것이 이용규 선교사님이 쓴 <내려놓음>이다. 이용규 선교사님은 서울대를 나오고(오래 전 읽은 거라 하버드일 수도 있다. 물론 학벌은 높을 수록 좋다.) 좋은 직장에 다닐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 ‘내려놓고‘ 몽골인가 어딘가로 선교사가 되어 가셨다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나와 대학부 청년들은 ‘내려놓음‘ 정신과 정반대로, 좋은 걸 달라고 기도했다. 왜냐면, 그래야 내려놓을 게 생기니까. 내가 대학도 못가고 선교사 된다고 껍적거리면 교회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차며 말할거다. 대학 못가서 저러고 있다고. 반면 내가 서울대에 붙었는데, 한국에서 안락함을 버리고 선교사로 간다고 하면 교회 어른들은 나를 칭송할 것이다. 내려놓기 위해 좋은 걸 가져야 하는 것, 이렇게 좋은 걸 포기하면 그 보상으로 신이 더 좋은 것을 손에 쥐어주는 것. 기독교의 부끄러운 민낯, 기복신앙은 이렇게 또 한번 내려놓음이란 예쁜 포장지로 공고해졌다.
-이 책이 너무 잘되서 두번째 책도 내셨는데, 그 제목은 ‘더 내려놓음‘이었다. 그 때까지도 덜 내려놓은게 있으셨나보다.
사실 ‘내려놓음‘은 성공하려는 욕심, 남들에게 인정 받으려는 욕심, 무엇보다 내가 잘 되어서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은 욕심(자아=에고)을 내려놓으라는 건데 말이다.
(근데 내 안에도 이런 갈망이 그득해 이렇게 열폭 중인거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갈망을 알아차리고 흘려 보낸다.
갈망을 사라지게 할 순 없지만 휘둘리지 않을 수는 있으니까... 언젠가 이게 정말 나에게 의미 없고 고통이란 걸 알게 됨 내려놓을 수 있다고 나의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그 전까진 계속 깨어서 알아차림!!

갈망은 당신을 고통으로 이끕니다. Craving leads to suffering, 내려놓음은 당신을 평화로 이끕니다. Letting go leads to peace.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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