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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
구드룬 슈리 지음, 김미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열린 눈으로 세상을 돌아다녀야 한다. 세계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와 그 흔적들을 주의 깊게 읽고, 지혜와 통찰력을 동원해 바르게 해석하고 창조적으로 변화시킬 때 진정한 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다.” (5쪽)
인간의 역사는 자연의 신비를 밝히는 역사라고 볼 수도 있다. 하늘의 움직임에서 계절의 변화를 알아내고, 이를 농경에 이용하기부터 지구와 우주 생성의 비밀, 생물의 탄생과 진화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비밀을 알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중력의 비밀을 알아낸 뉴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밝힌 코페르니쿠스, 인간의 지위를 자연계의 많은 생물종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알아낸 다윈 등의 업적은 세계관의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 했다.
독일 밤베르크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인 구트룬 슈리(Gudrun Schury)는 건축학에서 시작해서 인류학, 고고학, 천문학, 의학 그리고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수수께끼 같은 발견에 대해서 전문가에게 물었다. 그 결과 16가지의 사례를 모을 수 있었다. <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다산초당.2008년)이 바로 그 결과이다.
알프스의 빙하에서 찾아낸 5,000년 전의 인간인 아이스맨, 이집트의 문자를 읽어낸 상폴리옹, 진시황릉을 지키고 있는 진흙 전사들, 엑스 선을 발견한 뢴트겐, 진화를 거부한 살아있는 고대 물고기인 실러캔스의 발견 등 이 책에는 아주 흥미로운 발견이 수록되어 있다.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은 아주 재미있다. 그 발견에는 세 번에 걸쳐 우연한 사건이 겹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플레밍은 1881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런던에 온 그는 런던의 병원 가운에 어떤 곳을 갈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은 가장 현재적이고 규모가 큰 병원으로 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플레밍은 군복무시절 수중 폴로 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 시절 세인트메리 병원 팀과 경기를 했던 일을 기억했다. 그 기억은 그에게 세인트메리 병원에 대해 호감을 느꼈고, 결과적으로 그는 이 병원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 병원에는 박테리아에 대한 연구, 즉 세균을 연구하는 분야가 있었다. 그는 세균학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우연이었다.
세균학을 연구하면서 1차 세계 대전 중에 감염증으로 사지를 절단해야 했던 병사들과 괴저병으로 많은 병사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 때문에 플레밍은 염증의 원인과 이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연구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이 연구를 위해 그의 연구실에는 페트리 접시를 준비해놓고 다양한 균을 배양했다. 1928년 여름 2주간의 휴가를 다녀온 플레밍은 연구실을 둘러봤다. 그런데 박테리아가 들어 있는 페트리 접시 몇 개를 냉장시키지 않고 책상위에 그냥 놓아둔 것을 발견했다. 큰 실수였다. 습하고 더운 날씨로 인하여 페트리 접시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이를 모두 깨끗이 청소를 해야만 할 처지에 있었다. 그런데 페트리 접시를 자세히 보자 곰팡이가 핀 부분에는 박테리아가 번식하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푸른색의 이 곰팡이는 백혈구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우연은 계속된다. 푸른곰팡이의 종류는 약 650종이나 된다. 그런데 그 중 한 종만이 페니실린의 원료가 될 수 있었다. 그 한 종이 플레밍을 찾아온 셈이다. 플레밍은 이 균에서 얻은 약에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페니실린은 1944년부터 전쟁터에 대량으로 투입된다. 병사들은 이제 더 이상 세균 감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알렉산더 프레밍은 페니실린을 발견한 공로로 1944년 귀족 작위를 받아 프레밍 경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5년 프레밍은 하워드 프로리와 에른스트 체인과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이 책에 소개된 발견 가운데 빅뱅의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한 과정도 아주 흥미롭다.
우주의 시작, 그 순간을 우리는 빅뱅이라고 말한다. 큰 폭발의 개념은 1920년대에 벨기에의 성직자이면서 학자였던 조르주 르메트르가 별다른 근거 없이 제안했을 때부터 떠돌던 것이지만, 우주론에서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허블과 밀터 휴메이슨이 적색편이 때문에 우주가 팽창하는 증거를 발견하면서 사실로 밝혀졌고, 또 1960년대 중반에 두 명의 젊은 전파천문학자의 발견 덕분에 확실한 증거를 가지게 되었다.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과 아르노 펜지아스(Arno Penzias)는 1965년 벨 연구소에서 대형 통신 안테나를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끊임없이 들려오는 잡음 때문에 실험에 차질이 빚어진다. 잡음은 하늘의 어느 쪽에서나 똑같이 들렸고, 밤과 낮, 계절에도 상관이 없었다. 잡음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안테나를 상세히 점검했으나, 문제가 없었다. 그 과정에서 안테나에 비둘기 한 쌍이 둥지를 튼 것을 발견했다. 비둘기를 쫓아내고, 비둘기의 배설물을 모두 청소를 했다. 그렇지만 소음은 여전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에서 불과 50킬로미터 떨어진 프린스턴 대학의 로버트 디키는 두 사람이 없애려고 한 그 잡음을 찾아내려하고 있었다. 디키는 천체물리학자인 조지 가모브가 1940년대에 주장을 확인하려 했다. 가모브는 우주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폭발에서 남겨진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디키의 연구팀은 벨 연구소로 와서 함께 작업을 한다. 그리고 이 알 수 없는 소음의 원인을 밝혀낸다. 그리고 이 소음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알게 된다. 그 소음은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빛, 즉 최초의 광자였다. 그 빛은 오랜 기간 먼 거리를 여행하면서 마이크로파로 바뀌어 있었다.
이상한 소음은 약 1밀리미터의 파장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주에서 오는 배경 방사선이었다. 우주 배경 방사선은 폭발로 비롯된 모든 진화의 처음 시작, 즉 우주 대폭발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150억 년 전에 일어났다고 추정되는 대폭발 이후 불덩어리의 시기를 지나면 우주의 온도는 캘빈 3도로 떨어졌다. 켈빈 3도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온도이다. 이것은 영하 273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절대 영도에 가깝다.
우주는 높은 밀도의 물질과 매우 높은 기온, 강렬한 광선과 함께 탄생했다. 우주에는 오늘날까지도 불타는 빛들이 남아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 공간 속에서 균일한 잡음의 형태로 여파가 남아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말하자면 대폭발의 메아리인 셈이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우주 배경 복사를 찾고 있지도 않았고,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것을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논문을 발표한 적도 없었지만, 1978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프린스턴의 연구진은 어떤 상을 받았을까? 동정을 받았을 뿐이다.
우리 눈에도 우주 배경 복사는 보인다. 텔레비전 방송이 없는 채널에서 보이는 무질서하게 물결치는 무늬 중에서 1퍼센트 정도는 오래 전에 일어났던 대폭발의 잔재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비밀을 밝히는 과정은 우연한 사건이나 행운도 함께 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천재들의 성공 이유는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파고든 그 열정이리라.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현대 과학으로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아주 많다. 이 부분을 밝혀내고자 하는 천재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세상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가게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