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시 심리학 - 심리학의 잣대로 분석한 도시인의 욕망과 갈등
하지현 지음 / 해냄 / 2009년 5월
평점 :
전 세계의 도시화 비율은 50퍼센트이고, 한국의 경우는 85퍼센트에 달한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도시화 비율은 최근에 만들어졌다. 인류는 오랜 기간 동안 먹 거리를 따라 이동하며 살았으며,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부터 정착생활을 했다. 그리고 도시가 생겨난 일은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산업혁명 이후가 되서야 도시는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몸은 구석기 시대인과 비교해서 변함이 없건만, 환경은 아주 달라졌다. 그래서 변한 환경에 적응하기 못하는 도시인의 삶에는 많음 문제가 생겼다. 특히나 도시화의 비율이 높은 한국의 경우에는 그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정신분석의인 하지현은 신간 <도시 심리학>(해냄.2009년)에서 이에 대해 심리학을 통해 해석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머물기에는 갑갑하고 떠나기에는 아쉬운 도시이지만, 우리가 도시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22가지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
현대를 과학 시대라고 부를 만큼 우리는 이성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아주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집이나 사주카페가 수없이 많다는 데에 놀란다. 심지어는 신문에서 조차 오늘의 운세가 나오는 형편이다. 우리는 스스로 점이나 사주 등이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에 끌리고 있다. 그 이유가 무얼까?
과학의 시대이기는 하지만, 과학이 모든 일에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현대인의 삶에는 불확실성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이럴 때 점집을 떠 올릴 수 있다. 점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자신이 찾을 때는 그런 사실을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점집을 찾는 두 가지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먼저 ‘자신이 원하는 답을 확인받기 위해’서다. 즉 우리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본능과 이성적인 판단부분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본인의 마음속에는 어떻게 선택하리라고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다. 이럴 때 점집을 찾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정한 답을 확인받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의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말해주는 점집을 찾을 때까지 점집을 전전한다.
두 번째 이유는 첫째와 반대의 경우다. ‘강력한 브레이크의 존재’를 원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자신의 망설임을 외부의 입을 빌려 합리화하는 경우다. 불확실성 때문에 나의 선택 결과는 나중에 큰 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사주팔자에 의해 내 인생은 원래 이렇게 흘러가게 되어 있다는 운명론을 받아들인다면 마음이 편해진다. 요컨대 우리는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에 기대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며, 또 위로받기를 원한다. 현대 도시인은 삶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정도로 어려움과 벗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시중에는 와인 바와 와인 샵이 성업 중이다. 와인은 종류도 많고, 이름도 매우 다양하다. 또 여러 용어가 있어 와인을 배우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와인을 모르면 남에게 뒤처지는 느낌도 들고 교양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사람들은 책도 사서 읽어보고, 또 와인도 직접 마시면서 맛의 차이를 알려고 노력한다. 사실 소주가 주인 우리네 음주문화와 와인문화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격도 비싸고, 여러 가지 격식도 불편하다. 그럼에도 와인을 찾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이 될까?
와인이 현대사회의 새로운 남성 장난감으로 등장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남자들에게는 오디오나 카메라를 사고, 또 이를 업그레이드하고, 좋아하는 음악 CD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와인 셀러에 와인을 채워가며 흐뭇한 미소로 이를 바라본다. 이에는 자신의 내면에 자기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와인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맛을 즐기기 위함과 아울러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봐주는 것을 즐긴다는 의미다. 그리고 와인에 대해 알아가면서 쌓인 지식을 술자리에서 풀어놓음으로 사회적인 관계에서 귄위를 내세우려는 욕망이 있다. 게다가 와인은 소주와는 달리 술잔을 돌리지 않는다. 이는 동질성보다는 다양한 취향을 받아들이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도시의 삶은 과거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24시간 편의점을 비롯해 24시간 문을 여는 가게가 많아졌다. 이는 도시인들이 참을성이 없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도시인은 무엇이든 원할 때에 바로 해결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을 원하고 있다. 패스트 라이프(Fast life)가 도시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혈액형으로 상대방의 성격을 분류하려고 하는 이유도 이와 닮아 있다. 즉 A형이라고 하면, 소심하다고 생각하기에 그 사람의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즉각적으로 준비할 수 있고,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본인이 다치지 않고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람의 성격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는 비과학적이다. 혈액형으로 상대방의 성격을 예측할 수 있다는 생각은 바로 점집을 찾는 이유와도 비슷하다.
위에서 보았듯이 이 책에는 도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적절한 사례를 들어가며 아주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사람들의 행동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심리를 아주 재미있게 파헤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