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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신경림 엮음 / 다산책방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시는 어렵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아니면 변명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동안 시집을 한 권도 산 일이 없으며, 집에 있는 시집조차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경험조차도 없다. 이런 내가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 읽어보았다. 눈으로 읽었으며, 또 소리 내어 읽어도 보았다. 역시 시는 어려웠다. 산문 읽기에 익숙한 나에게 여유를 갖고 음미해야 하는 시는 내게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읽어가면서 그 운율에 젖어 들자 시는 내게 새로운 의미를 전해주었다.
21세기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의 하루는 이십사 시간이고 일만 년 전의 이땅에서도 하루는 이십사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와 비교해서 우리의 모습이 꽤나 바쁠 것이다. 왜 우리는 시간에 쫓기듯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좀 여유롭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편안함은 더 이상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인가! 아마 이는 생산성과 능률을 강조하는 우리의 세계관에 기인하는 것이다. 결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항상 결코 넉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우리에게서 더욱 멀어진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어려워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에 수록된 시 한편마다 신경림씨의 해설이 있어 나같이 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시 읽는 방법과 또 시의 의미를 알려 준다. 나는 시를 한 번 읽고 해설을 보고는 다시 시로 돌아와 읽으면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풍경을 다시 그려볼 수 있었다. 즉 이렇게 반복해서 읽으므로 나는 처음 읽었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조금은 알아 차릴 수 있다. 시는 이렇게 내게 다가왔다.
눈으로만 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시를 듣는 다면 눈으로 볼 때와는 달리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눈을 감고 듣는다면 그 감흥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시는 결코 눈으로만 보는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라고 정해진 것 같다. 그러면 내 입으로 시를 읽어보면서 내가 듣는다. 내가 시를 암송할 수 있다면 그 의미를 좀더 가까이 느낄 것 같다. 나의 온 감각을 듣는 것에 치중하자 온몸으로 시가 느껴진다. 시각이 감각 중추에서 가장 중요한 줄로 알았던 나에게
시는 청각이 진화된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시를 읽는 것은 천천히 사는 삶을 의미한다. 시는 한 단어 한 단어 천천히 그 의미를 살려가며 읽어야만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산문을 읽듯이 읽는다면 우리는 허둥대다가 모든 것을 잊어버릴 것이다. 즉 시는 우리에게 슬로 라이프를 실천하게 해준다.
이 책에는 47명의 시인이 쓴 50편의 시를 수록했고, 33장의 그림이 시들의 의미를 북돋워주고 있다. 소리 내어 천천히 읽더라도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는 분량이다. 또 시와 수록된 그림을 보고 소리 내어 읽어보면 내 마음이 더욱 푸근해지고, 상상력이 더해진다.
시 한편을 읽어보면 시인이 보는 세상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의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고, 이별의 슬픔을 탄식하기도 하며, 숨 쉴 수 없는 현실의 정치 상황을 묘사하기도 하고,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을 함께 아파하기도 한다. 몇 줄 되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시인은 많은 것을 독자들에게 이야기해준다. 시의 세계는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빨리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내게 다가왔다. 시를 통해 새로운 세계와 교우했던 그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다음에 시를 다시 읽을 때에도 처음 느낀 ‘처음처럼’ 시를 다시 느끼고 싶다.
아래의 글은 책에 수록된 시에 대한 정의이다. 이 또한 시를 읽는 것처럼 다시 천천히 읽어보면서 시를 만난 기쁨에 찬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를 즐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이 맛보지 못하는 삶이 즐거움을 하나 더 가지고 세상을 사는 셈이다.”
“산문이 도보(徒步)라면 시는 무도(舞蹈)이다.”
“시는 뜻으로 읽지 않고 느낌으로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시는 자기 탐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