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신경림 엮음 / 다산책방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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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는 어렵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아니면 변명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동안 시집을 한 권도 산 일이 없으며, 집에 있는 시집조차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경험조차도 없다. 이런 내가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 읽어보았다. 눈으로 읽었으며, 또 소리 내어 읽어도 보았다. 역시 시는 어려웠다. 산문 읽기에 익숙한 나에게 여유를 갖고 음미해야 하는 시는 내게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읽어가면서 그 운율에 젖어 들자 시는 내게 새로운 의미를 전해주었다.

 

21세기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의 하루는 이십사 시간이고 일만 년 전의 이땅에서도 하루는 이십사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와 비교해서 우리의 모습이 꽤나 바쁠 것이다. 왜 우리는 시간에 쫓기듯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좀 여유롭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편안함은 더 이상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인가! 아마 이는 생산성과 능률을 강조하는 우리의 세계관에 기인하는 것이다. 결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항상 결코 넉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우리에게서 더욱 멀어진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어려워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에 수록된 시 한편마다 신경림씨의 해설이 있어 나같이 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시 읽는 방법과 또 시의 의미를 알려 준다. 나는 시를 한 번 읽고 해설을 보고는 다시 시로 돌아와 읽으면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풍경을 다시 그려볼 수 있었다. 즉 이렇게 반복해서 읽으므로 나는 처음 읽었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조금은 알아 차릴 수 있다. 시는 이렇게 내게 다가왔다.

 

눈으로만 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시를 듣는 다면 눈으로 볼 때와는 달리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눈을 감고 듣는다면 그 감흥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시는 결코 눈으로만 보는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라고 정해진 것 같다. 그러면 내 입으로 시를 읽어보면서 내가 듣는다. 내가 시를 암송할 수 있다면 그 의미를 좀더 가까이 느낄 것 같다. 나의 온 감각을 듣는 것에 치중하자 온몸으로 시가 느껴진다. 시각이 감각 중추에서 가장 중요한 줄로 알았던 나에게

시는 청각이 진화된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시를 읽는 것은 천천히 사는 삶을 의미한다. 시는 한 단어 한 단어 천천히 그 의미를 살려가며 읽어야만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산문을 읽듯이 읽는다면 우리는 허둥대다가 모든 것을 잊어버릴 것이다. 즉 시는 우리에게 슬로 라이프를 실천하게 해준다.

 

이 책에는 47명의 시인이 쓴 50편의 시를 수록했고, 33장의 그림이 시들의 의미를 북돋워주고 있다. 소리 내어 천천히 읽더라도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는 분량이다. 또 시와 수록된 그림을 보고 소리 내어 읽어보면 내 마음이 더욱 푸근해지고, 상상력이 더해진다.

 

시 한편을 읽어보면 시인이 보는 세상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의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고, 이별의 슬픔을 탄식하기도 하며, 숨 쉴 수 없는 현실의 정치 상황을 묘사하기도 하고,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을 함께 아파하기도 한다. 몇 줄 되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시인은 많은 것을 독자들에게 이야기해준다. 시의 세계는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빨리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내게 다가왔다. 시를 통해 새로운 세계와 교우했던 그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다음에 시를 다시 읽을 때에도 처음 느낀 처음처럼시를 다시 느끼고 싶다.

 

아래의 글은 책에 수록된 시에 대한 정의이다. 이 또한 시를 읽는 것처럼 다시 천천히 읽어보면서 시를 만난 기쁨에 찬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를 즐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이 맛보지 못하는 삶이 즐거움을 하나 더 가지고 세상을 사는 셈이다.”

산문이 도보(徒步)라면 시는 무도(舞蹈)이다.”

시는 뜻으로 읽지 않고 느낌으로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시는 자기 탐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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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형 CEO, 마법사형 CEO
리 G. 볼먼,테렌스 E. 딜 지음, 신승미 옮김, 강경태 감수 / 명진출판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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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원제는 The Wizard and The Warrior (전사와 마법사)이다. 그런데 한글 제목에는 CEO가 각각 들어가 있다. 굳이 한글제목에 CEO라고 넣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원 제목대로 했어도 상관이 없었을 만큼 이 책의 내용은 CEO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직의 리더에 관한 내용이기에 그렇다.

이 책 안에는 자신의 리더 자질을 평가해보는 부분이 있다. 12문항에 자신의 경우를 선택하는 것인데. 나의 경우에는 마법사형이나 분석가로 나타나고 전사형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보기에 맞는 결과로 보인다. 내게는 전사와 같은 승부사 기질이 부족하다.

두가지 리더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전사형 리더란 “전투와 경쟁에 맞서기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기꺼인 받아들인다. 이 유형은 조직과 조직의 관심사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열성적으로 경합을 벌인다. 조직이 공격을 받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직을 보호하고, 성공할 가망이 있다면 경쟁자와 정면 승부를 벌인다.”

마법사형 리더란 ”오래된 문젯거리에 새롭고 상상력이 풍부한 해결책을 제시해서 추종자를 놀라고 기쁘게 한다. 또한 다른 이들이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활동하도록 자극한다. 일을 처리하면서 종종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마법을 발휘한다. 극적인 효과를 일으키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으며, 상징을 향한 열망이 있는 공상가로 사람들이 조직의 문화와 활동에 흥미를 갖고 헌신하도록 돕는다.“

그러니까 개념적으로 보았을 때에 두 리더의 유형은 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나와 같은 범인의 입장에서 보면 멋지기까지 하다. 하지만 전사형 리더가 필요할 경우와 마법사형 리더가 필요한 시기가 다르다. 이를테면 조직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용기나 결단력이 필요할 경우에는 전사형 리더가 적격일 것이다. 또한 조직에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든지 무언가 변화를 이끌어 내는 등 창조적인 경영이 필요한 시기에는 마법사형 리더가 필요하다고 한다.

한 사람 안에도 여러 유형의 리더십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성격을 특별히 한가지라고 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보통 여러 가지 상반된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변화가 빠르고, 또한 미래가 불확실한 요즘 같은 시대에 한가지의 리더십만 가지고 세상을 대처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유능한 리더라면 전사형과 마법사형을 필요에 따라 선택이 가능한 사람일 것이다.

이 책 속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많은 리더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가진 리어십의 활용결과로 승리자가 되어 역사에 멋진 모습으로 남아있는 사람도 나오고, 리더십을 잘못 발휘해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존재하는 사람도 나온다. 과연 나는 나중에 사람들에게 어떤 리더였다고 기억될 것인가. 멋진 리더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다만 독서로 끝날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이를 적용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내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제 또 새해가 시작이 되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결심을 하기 마련이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나름대로 정해 놓고 이를 실천하려고 한다. 나도 올해는 나의 모습을 좀 더 멋지게 디자인 하고 싶다. 올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과연 얼마만큼 도달이 되었는지는 매일 매일의 실천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래! 멋진 리더가 되기 위해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해야만 하는 것은 반드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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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계약 - 근대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
찰스 W. 밀스 지음, 정범진 옮김 / 아침이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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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가을 내가 미국 LA지역을 갔을 때였다. 도시 곳곳에 있는 건물들이 불에 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LA 흑인 폭동이었다. 그때 미국에 갔을 때에 나는 무척이나 몸조심을 했었다. LA 폭동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한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다면 우리 한인이 흑인에게 무언가를 잘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냐 하면 그도 아니다. 다만 우리 한인들은 마치 돈만 아는 유태인들처럼 어떤 기회(도화선)가 왔을 때에 손가락질을 받을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기회란 로드니 킹 사건이었다.

로드니킹 사건은 1991년 3월 미국 LA에서 과속운전하다 도주하던 흑인을 백인경찰이 무차별 구타한 장면이 비디오로 촬영돼 TV에 나간 후 경찰관들이 기소됐으나 백인이 다수였던 배심원단이 무죄평결을 내려 이에 분노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LA라는 도시는 마치 내전의 양상처럼 방화, 약탈 등의 각종 범죄가 판을 치는 무법천지로 변했다. 즉 이 사건의 뿌리에는 인종차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백인 경찰이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이 책 <인종계약>(아침이슬, 2006년) 143쪽에 보면 “미국에서는 경찰이 흑인들을 잔인하게 다루는데, 이 잔인성의 오랜 유혈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이를 인종주의자의 개인적인 난폭함이 아니라 이런 정치기획의 유기적 구성요소로 인식해야 한다. 흑인 사회에서 경찰은 기본적으로 ‘점령군’이라는 인식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저자는 “더 나은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추한 진실(인종차별)을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 어떻게 해서 이러한 현실들이 은폐되고 백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지는지 그 방식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내가 보기에는 아마도 이 부분이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한 목적으로 보여 진다.

그렇다면 인종차별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근대에 들어서 유럽 사회는 새로운 사회이론을 내놓는다.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사회와 국가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사회정치적 구조와 정치 제도의 정당화를 둘러싸고 있는 규범적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사회계약론이 바로 그것다. 이러한 가치관을 통하여 미국 헌법에서처럼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것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사회에서 진실로 만인은 평등한가?

인종계약이란 한 인간집단(백인)이 자시들과 피부의 색, 혈통,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하등인간으로 분류해 백인들에게 차별적인 특권을 부여하고, 비백인들의 신체, 땅, 자원을 착취하기 위한 것이며 비백인들에게 동등한 사회경제적 기회를 부여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렇게 인종을 차별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회의 자원 분배와 부, 권력, 특권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회계약이론과 인종계약이론을 합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만인은 평등하다. 하지만 그것은 백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이후로 세계를 지배한 백인들이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였다. 그들은 아메리카대륙과 아프리카대륙을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들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살육하고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논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백인들은 그들의 눈에는 인간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동물이었다. 그들을 죽이면서도 동물을 도살하는 정도의 죄책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니까 동물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희생되어야만 하는 존재로 치부했던 것이다.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개념은 근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인종에 대한 편견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가장 잘 알려진 것이고 코소보니 쿠르드족 문제 등 모든 것이 인종의 차이로 인한 살육의 현장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실제예이다.

생물학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백인들은 머리의 크기나 모양 등이 지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두상학을 연구하여 백인들이 비백인들에 비해 지능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 기억도 있다. 또 백인 내에서도 유럽 북부와 남부에 있는 백인들의 차이도 있다고 하면서 소란을 떤 것도 20세기에 일어난 일들이다. 하지만 그 연구 결과는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었다. 인종 간의 지능의 차이보다도 오히려 같은 인종 간에 지능차가 더 크다는 것이 밝혀졌을 뿐이다.

우리 한국의 현상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세계화시대에 걸맞게 한국에서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대우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는 다르다고 볼 수있다. 미국사람이나 유럽인의 경우에는 정중하게 대해주면서(떠받들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영어 학원 강사의 실정을 한 번 생각해보자) 동남아 근로자들에게는 마치 짐승한테 하듯이 한다는 것을 신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사람들은 백인이 1등이고 우리는 2등, 동남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3등이라는 식의 2등 민족론으로 보이는 Color Complex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들도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민족적인 차별을 받은 피해자였음에도 그 설움을 잊었단 말인가! 어떤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우수한지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생물학적 민족에 따른 우열을 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한다. 인종에 대한 평등이 담보된다면 젠더에 대한 평등도 따라올 것이다.

21세기가 도래했음에도 세계 각국에서는 인종간의 갈등이 여전히 전개되고 있다. 과연 인종의 평등은 가능한 것일까! 아울러 젠더의 평등도 달성될 것인가! 이 책을 읽고서 평등은 항상 미래에 해치워야 할 숙제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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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김옥림 지음 / 미래북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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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작가라면 사랑이란 말에 정의를 내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인간의 삶과 열정의 원동력이 사랑일 것이다. 그렇기에 신화에서 시작해서 예술 작품들 그리고 특히나 문학의 주제에서 사랑은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일 중요할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사람이 시인이 된다고 한다. 이 말의 뜻을 한 번 생각해보자. 시인이라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물이나 형상 또 현상을 보는 데에 있어서 일반인하고는 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들 눈에 비친 풀 한포기도 꽃 한 송이도, 또 일몰의 광경도, 초등달의 모습에서 조차도 그들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물론 시인은 그런 의미를 아름다운 언어를 가지고 함축적으로 포장을 해서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런데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의미는 세상의 사물들이 어제와는 다르게 보이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첫사랑에 눈멀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 시절 나는 정말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다는 것을 내가 스스로 느낄 수가 있었다. 정말 그 감수성을 가지고 내 속에 숨겨져 있었던 문학적인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시절에 쓴 글을 나중에 읽어보고서는 그 유치함에 쓴 웃음을 지었던 기억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랑은 이처럼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랑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역동적인 무엇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을 모른다면 이러한 것을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랑은 이렇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하지만 또 사랑은 항상 기쁨과 행복만을 우리에게 주는 것은 아니다. 눈물과 절망, 상처 등도 동반된다. 이러한 아픔의 과정도 진정한 사랑을 이루어 가는 과정 중의 하나라고 보여 지지만, 아픔을 느끼는 그 시점에서는 정말 죽음까지도 생각해 볼 정도로 우리는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은 소외와 절망에 빠진다. 이것이 사랑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의 예술적 원천은 바로 사랑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사랑하며 자신의 심미안이 쓰러지지 않도록 했을 것이다.

그런 사랑을 찾고 싶은가? 그럼 이런 글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250여 쪽에 달하는 책에 온통 사랑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물론 연애하는 법을 알려주거나 작업남(여)가 되는 방법을 말해주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읽으면 사랑에 배고파지고 목말라질 것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을 한 번 생각해보라. 우리에게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날이 하루밖에 없다면 그 사랑이 얼마나 처절하겠는가. 연말연시에 짝이 없는 총각 처녀들조차도 힘든데 말이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도 사랑하는 상대방이 없다면 이는 더욱 처절할 것이다. 마지막 날에 사랑 없이 가지는 말자. 그것은 너무 슬픈 것이다. 사랑을 찾아서 가보자. 사랑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자. 거절할까봐 두렵다고? 그런 사람에게는 사랑은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본다면 아마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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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의학 - 의학 상식의 치명적 오류와 맹점을 고발한다
크리스토퍼 완제크 지음, 박은영 옮김, 허정 감수 / 열대림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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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인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음식은 김치라는데 대해 반론을 제기할 사람들을 없을 것이다. 빨간 고추 가루와 각종 양념을 넣은 김치! 얼마나 먹음직한가! 그렇다면 이 김치란 음식이 우리와 얼마나 오랫동안 같이 했을까? 정확한 대답은 하기 어렵지만 아주 오래되었을 것이다. 몇 천 년이 지났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빨간 김치도 그렇게 오래되었을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 이다. 고추 가루를 넣은 김치를 먹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이 조선 시대이니 그 이전에는 고추 가루를 넣지 않은 김치를 먹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상식과 실제의 진실 사이에는 항상 오차가 존재한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온 것 중의 많은 것들이 이렇다. 즉 우리의 상식은 항상 깨어지기 쉬운 유리 그릇 같은 것이다.

 

의학에 대한 부분에서도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항상 제일 관심을 끄는 주제이다. 그것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과 가장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업성과 연결된 사이비 의학이나 사이비 건강 보조 식품들이 우리 주변에서 활기를 치고 있다. 이 책에는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아왔던 건강이나 의학에 대한 편견들을 속속들이 파헤쳐 주고 있다. 읽다 보면 내가 오랜 세월 동안 무진장 속아 왔다는 생각에 속이 쓰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실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딱딱한 의학이나 건강 분야를 수록하고 있지만 저자는 우리들에게 웃음을 선사해 주고 있다. 물론 냉소적인 부분도 많이 있으나 이런 분위기 조차도 저자는 독자들을 웃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완제크는 저널리스트이다. 그러다 보니 결코 적지 않은 분량(거의 400)의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는 유머러스하게 이끌고 있다. 그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글쓰기에 탁월한 능력 때문이겠지만, 여러 가지 의학에 관한 상식을 폭 넓게 소화하여 독자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만약 한 분야에 정통한 학자나 의사라면 자신의 분야에 대해 깊숙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나, 저자는 반대로 폭넓게 여러 분야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요지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 상식 중의 많은 부분은 철저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훌륭한 글쓰기 솜씨와 유머러스한 부분을 한 번 살펴보자.

지능에 관련된 속설로 머리가 크면 영리하다고 하는 이야기는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아인슈타인 이야기를 한다. 이를테면 천재는 뇌의 영역 중 어느 한 부분이 발달되어 있으면 다른 부분에서는 덜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경우를 보면 수학적 사고와 공간 운동의 시각화 능력을 관장하는 하두정엽이 다른 사람들보다 15퍼센트 더 퍼져있었다고 하면서, 그렇기에 아인슈타인은 다른 어딘가에 일반인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부족한 부분이 머리 빗기 능력 쪽이었을까 하고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 나는 한참이나 웃었다. 그 순간 사진에서 본 아인슈타인의 얼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머리 스타일을 한 번 보라, 정말 오랫동안 머리도 감지 않았는지 덥수룩한 곱슬머리이다. 사진 찍을 때조차 이런 모습이니 정말 평소에 빗질을 전혀 하지 않은 티가 나지 않는가? 나는 하하하! 하고 웃었다.

 

, 간의 기능을 도와주는 건강 식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곧장 의사를 찾아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간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식사 조절과 운동으로 간을 보호하라고 말하며, 간을 위한 건강 보조 식품 10일치를 사는 데 10일치에 20달러를 쓴다고 하는데, 그나마 간은 재생 능력이 뛰어난 기관이라 괜찮다지만 가계부까지 그런 능력을 가지지는 않았다는 냉소적인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슬며시 미소 짓게 했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많은 가설도 다른 증거에 의해 쉽게 반박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책에 소개된 내용도 마찬가지로 불량 의학 혹은 사이비 의학의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수십억 년의 진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우리 세계를 안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우리는 휴먼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 연구만 완성이 된다면, 우리는 유전자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모두 정복할 줄을 알았다. 하지만 2001년에 발표된 결과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유전자 수는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적은 수(2만여 개)에 불과했지만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가지의 일을 하고, 또 여러 개의 유전자가 합쳐져서 하나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의 단초만 알게 된 것이다. 아직 우리의 과학 수준은 가설만 나열할 수밖에 없는 미천한 수준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 때에는 마치 복음서처럼 여겨졌던 많은 상식들이 실제로는 어리석은 사이비 의학이었던 것이다. 정말 이 책의 제목처럼 불량 의학인 것이다.

 

자신의 건강이 염려되는 분들은 괜히 의사를 찾아가거나 건강 보조 식품에 매달리지 말고, 차라리 이 책을 읽어라. 이 책은 불과 일만 오천 원에 즐거운 웃음과 건강을 찾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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