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계약 - 근대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
찰스 W. 밀스 지음, 정범진 옮김 / 아침이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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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92년 가을 내가 미국 LA지역을 갔을 때였다. 도시 곳곳에 있는 건물들이 불에 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LA 흑인 폭동이었다. 그때 미국에 갔을 때에 나는 무척이나 몸조심을 했었다. LA 폭동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한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다면 우리 한인이 흑인에게 무언가를 잘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냐 하면 그도 아니다. 다만 우리 한인들은 마치 돈만 아는 유태인들처럼 어떤 기회(도화선)가 왔을 때에 손가락질을 받을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기회란 로드니 킹 사건이었다.

로드니킹 사건은 1991년 3월 미국 LA에서 과속운전하다 도주하던 흑인을 백인경찰이 무차별 구타한 장면이 비디오로 촬영돼 TV에 나간 후 경찰관들이 기소됐으나 백인이 다수였던 배심원단이 무죄평결을 내려 이에 분노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LA라는 도시는 마치 내전의 양상처럼 방화, 약탈 등의 각종 범죄가 판을 치는 무법천지로 변했다. 즉 이 사건의 뿌리에는 인종차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백인 경찰이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이 책 <인종계약>(아침이슬, 2006년) 143쪽에 보면 “미국에서는 경찰이 흑인들을 잔인하게 다루는데, 이 잔인성의 오랜 유혈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이를 인종주의자의 개인적인 난폭함이 아니라 이런 정치기획의 유기적 구성요소로 인식해야 한다. 흑인 사회에서 경찰은 기본적으로 ‘점령군’이라는 인식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저자는 “더 나은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추한 진실(인종차별)을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 어떻게 해서 이러한 현실들이 은폐되고 백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지는지 그 방식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내가 보기에는 아마도 이 부분이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한 목적으로 보여 진다.

그렇다면 인종차별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근대에 들어서 유럽 사회는 새로운 사회이론을 내놓는다.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사회와 국가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사회정치적 구조와 정치 제도의 정당화를 둘러싸고 있는 규범적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사회계약론이 바로 그것다. 이러한 가치관을 통하여 미국 헌법에서처럼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것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사회에서 진실로 만인은 평등한가?

인종계약이란 한 인간집단(백인)이 자시들과 피부의 색, 혈통,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하등인간으로 분류해 백인들에게 차별적인 특권을 부여하고, 비백인들의 신체, 땅, 자원을 착취하기 위한 것이며 비백인들에게 동등한 사회경제적 기회를 부여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렇게 인종을 차별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회의 자원 분배와 부, 권력, 특권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회계약이론과 인종계약이론을 합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만인은 평등하다. 하지만 그것은 백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이후로 세계를 지배한 백인들이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였다. 그들은 아메리카대륙과 아프리카대륙을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들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살육하고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논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백인들은 그들의 눈에는 인간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동물이었다. 그들을 죽이면서도 동물을 도살하는 정도의 죄책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니까 동물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희생되어야만 하는 존재로 치부했던 것이다.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개념은 근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인종에 대한 편견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가장 잘 알려진 것이고 코소보니 쿠르드족 문제 등 모든 것이 인종의 차이로 인한 살육의 현장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실제예이다.

생물학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백인들은 머리의 크기나 모양 등이 지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두상학을 연구하여 백인들이 비백인들에 비해 지능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 기억도 있다. 또 백인 내에서도 유럽 북부와 남부에 있는 백인들의 차이도 있다고 하면서 소란을 떤 것도 20세기에 일어난 일들이다. 하지만 그 연구 결과는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었다. 인종 간의 지능의 차이보다도 오히려 같은 인종 간에 지능차가 더 크다는 것이 밝혀졌을 뿐이다.

우리 한국의 현상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세계화시대에 걸맞게 한국에서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대우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는 다르다고 볼 수있다. 미국사람이나 유럽인의 경우에는 정중하게 대해주면서(떠받들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영어 학원 강사의 실정을 한 번 생각해보자) 동남아 근로자들에게는 마치 짐승한테 하듯이 한다는 것을 신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사람들은 백인이 1등이고 우리는 2등, 동남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3등이라는 식의 2등 민족론으로 보이는 Color Complex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들도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민족적인 차별을 받은 피해자였음에도 그 설움을 잊었단 말인가! 어떤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우수한지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생물학적 민족에 따른 우열을 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한다. 인종에 대한 평등이 담보된다면 젠더에 대한 평등도 따라올 것이다.

21세기가 도래했음에도 세계 각국에서는 인종간의 갈등이 여전히 전개되고 있다. 과연 인종의 평등은 가능한 것일까! 아울러 젠더의 평등도 달성될 것인가! 이 책을 읽고서 평등은 항상 미래에 해치워야 할 숙제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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